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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강마을 편지- 망우정에서

망우당께 보내는 편지 3

볕살이 뜨거운 날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말년을 은거하셨던 창녕군 망우정에 와 있습니다. 배롱나무 붉은 꽃이 언덕을 오르는 자락마다 피었고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기운이 넘치는 무궁화 꽃이 몇 그루 씩씩하고 멋진 자태로 반깁니다. 망우정 언덕에는 당신의 오랜 벗이었을 몇 그루의 고목이 짙은 그늘을 드리웁니다. 그 그늘에 앉아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당신께서 왜 이 외진 강가로 와서 계셨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김덕령 장군의 죽음을 보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조정으로의 출사에 회의를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하고 어리석은 후인은 당신의 마음결을 더듬어 봅니다. 임진란의 뜨거운 현장에서 왜병을 맞아 함께 싸웠던 의병장 김덕령은 참으로 허망하게 갔습니다.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킨 후 배후로 당신과 김덕령 장군 등을 지목하였을 때 당신은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을 것입니다. 임금은 당신이 아닌 김덕령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 죽음은 당신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지요.

 

삶과 죽음이 함께 발을 딛고 서 있던 전장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의 숲이었습니다. 용맹을 담보로 백성을 지킨 대가를 참담하게도 의병장의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무능한 왕과 권력에 눈먼 자들이 지키는 이 사직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곳으로 오시던 그 길에 달은 하현달이었을 것입니다. 자정 무렵에 떠서 세상을 비추는 일그러진 달을 보며 스러지는 조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요? 슬픈 반달이 뜬 깊은 밤, 말을 타고 오던 강가에 들엔 국화 곱게 피어 당신을 반겼으리라 믿습니다. 이런 당신의 마음을 표현한 시를 읽었습니다.

 

歸江亭(귀강정: 강정으로 돌아오다) / 곽재우

誤落塵埃中    혼탁한 세상을 살다 보니

三千垂白髮    수많은 흰 머리카락만 드리워졌네

秋風野菊香    ​가을 바람에 들국화 향기 그윽하여

策馬歸江月    달밤에 말을 달려 강정으로 돌아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불원천리(不遠千里) 험로와 거친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셨나요? 무엇을 얻고자 하셨나요? 돈도 명예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저,  길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셨고, 풍전등화의 임란 속에 백성들을 지켜내고자 하셨습니다. 그 간절함을 생각합니다.

망우정 툇마루에 앉아 당신의 삶을 생각하며 언덕에 올랐습니다. 강은 피곤한 표정으로 가까운 도시의 오염과 칠서 공단의 매연을 마시며 바다를 향한 걸음을 재촉합니다. 아,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함안보에 막혀 짙은 초록의 녹조를 뒤집어쓰고 누워있습니다. 한여름 학질이라도 앓는 듯 숨소리조차 힘겨운 낙동강이 보입니다. 강은 우리 모두의 잘못을 혼자 뒤집어 쓰고 먼 산을 응시합니다.  아픈 강이 보이는 망우정을 마지막으로 당신을 찾아가는 제 여정을 끝맺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편지가 될 것입니다. 부디 저 강 너머에 계시지만 이 땅에 사는 후손들의 삶에 힘을 실어주십시오.  당신께서 보내는 굳센 기운에 힘입어 젊은이들의 힘든 어깨가 가벼워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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