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1 (수)

  • 맑음동두천 29.5℃
  • 맑음강릉 28.4℃
  • 맑음서울 30.3℃
  • 맑음대전 29.9℃
  • 맑음대구 27.7℃
  • 맑음울산 29.2℃
  • 맑음광주 28.7℃
  • 맑음부산 30.7℃
  • 맑음고창 28.4℃
  • 맑음제주 29.6℃
  • 맑음강화 29.3℃
  • 맑음보은 26.7℃
  • 맑음금산 26.5℃
  • 맑음강진군 28.1℃
  • 맑음경주시 26.5℃
  • 맑음거제 29.5℃
기상청 제공

경험하는 예술의 교육적 가치

학교예술교육의 비전과 전망

인공지능 시대를 향한 새 질문 등장해

2000년 밀레니엄 이후 인공지능의 등장과 발전으로 인류는 새 시대의 질문을 다양하게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현재 우리는 ‘인류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이제 새 시대의 질문은 교육과 예술이 왜 만나야 하는지로 이어진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과거 시스템에 의존한 학교 교육의 기능은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육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는데 학교 교육은 여전히 과거에 묶여있다. 지식과 정보 축적 중심의 근대 교육 시스템으로는 앞으로 살아갈 친구들이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지식 교육은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앞으로 학교 교육은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술교육을 이야기할 때 먼저 ‘교육’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교육은 교과 연계 프로그램이나 예술 교과 수업 등 강습식 교육이 떠오른다. 이는 교육을 근대식 교육의 틀 안에서 지식 혹은 정보 전달 위주 교육으로 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을 근대적 교육방법으로 제한하지 않고 배우고, 깨닫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면 달라진다. 교육을 이러한 개념으로 받아들일 때 예술교육은 기능과 학습, 혹은 타 학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서 예술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인문적 가치, 삶을 향한 질문이 가능한 교육방법이 될 수 있다.

 

 

예술교육,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고 경험하다

왜 교육이 예술과 만나야 하는가, 근대 교육의 문제점들을 예술이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가라는 지점들을 들여다본다면 예술교육이 가야 할 길도 더 확실해질 것이다.

 

예술(art)의 어원은 본래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됐다. 아르스는 ‘법칙에 따른 합리적 제작 활동’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나왔다. 이는 기술이 상징적이고 정신적 의미를 함께 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본래 예술의 의미는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예술은 바로 기술과 개념(정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현대 예술교 육이 과정 중심, 경험 중심의 인문적, 정신적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것 만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예술의 다양성이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가지듯이 예술교육방법의 다양성 또한 매우 중요하다. 예술교육은 매우 개별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참여자들이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통해 개별적으로 자극과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냥 기술이 아닌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 말이다.

 

우리는 때로 예술의 창조 과정을 탐구하는 것뿐 아니라 반복적 훈련을 통해 예술 작업에 집중할 때도 예술의 힘을 발견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무용수가 몸의 균형을 잡는 동작을 끊임없이 연습하는 순간, 배우가 반복적으로 역할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순간 갑자기 스치듯이 삶을 관통하는 무엇을 경험할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주는 인문적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기계적이나 기술적인 행위를 벗어나 기술을 포함한 개념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지극히 특별한 일부만이 무조건적 행위의 반복을 감내하고 그 안에서 경험한다. 보통 사람들은 반복적 기술 훈련과 예술 가치를 통합,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 기술 훈련을 예술교육 안에 설계할 때 바로 이 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학습하는 기술훈련이 아닌 경험하는 기술, 안내받는 기술이 될 때 기술을 포함한 개념적 경험을 유도할 수 있다. 학습이냐 경험이냐 하는 것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놀이, 개념적 활동인가 혹은 장르를 탐구하고 반복 훈련하는 활동인가의 차이가 아니다. 예술교육가가 어떤 태도로 참여자를 다루는가, 예술을 다루는가에 달려있다. 바로 가르치거나(Teaching) 배움(Learning)의 방식이 아닌 안 내(Guide)하고 경험(Experience)하는 접근 방식이다.

 

우리의 예술교육은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현대 예술의 키워드를 몇 가지로 정리하자면 특별함이 아닌 일상성, 결과보다는 과정, 기술적 표현보다는 개념, 창작이 아닌 발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예술에서는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하는 특별한 활동 을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다다선언(소변기를 뒤집어 설치한 뒤 ‘샘’이라고 명한 다다이즘 대표 작가 뒤샹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새 예술행동을 선언한 내용) 이후 예술은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 아닌 누구나 예술을 향유하고 어떤 것이든 예술이 될 수 있으며, 저 먼 곳의 예술이 아닌 우리 삶 속의 예술이 되고 있다.

 

이렇듯 현대 예술은 ‘예술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언제나 탈출하고 싶고, 비루하고, 지리멸렬하고, 문제투성이인 일상에서 출발한다. 이제 예술의 창작 과정은 창조라는 말보다 ‘발견’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대가 되었다. ‘일상’을 발 견하고 재조명하다 보면 어느새 일상은 새로운 곳, 창조의 보물창고가 되어 있 다. 현재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이 상위권에 속한 우리나라가 살펴보아 야 할 부분이다. 문제투성이인 일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때 인간의 삶의 가치, 생존의 의미를 찾아가는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28년 전 한때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였던 핀란드의 아난딸로(Annantalo) 창립자는 ‘생존을 위해서 예술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앞 서 말한 개념을 포괄한 기술적 훈련이 예술이라면 바로 이 개념의 발생, 개념 그 자체를 몸으로 경험하는 것, 단순히 창의적 활동에 목적을 두거나 그럴싸한 발표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닌 예술 창작 과정에서 창작자가 경험하는 삶의 질문, 그 질문을 둘러싼 기호적 해석 즉, 표현 방법을 창출하면서 자기 자신과 세계를 깊이 있게 경험하는 행위로서 예술교육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 연계를 통해 학교의 공간 개념을 확대해야

그러나 교육환경이나 교육제도들이 미래지향적인 예술교육가들에게 여전히 과거지향적인 예술교육을 강조하거나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교과 학습과 발 표 중심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부터 어떻게 미래지향적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을까? 또한 교과 시수와 공간 문제는 어떠한가? 이런 경험을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 교과시수와 운영의 탄력성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전문적 공간과 기 자재는 필수다.

 

하지만 학교가 전문적 공간을 모두 갖추기는 매우 쉽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공간적 확장을 해야 할 시기다. 공간의 개념으로서 학교를 확대, 학교 교육과 연계한 예술교육 장소들이 학교 밖에서 학교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역 연계 프로그램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다양한 지원정책도 필요할 때다. 이미 많은 서구의 선진국들은 지역 연계를 통해 학교 교육의 유연성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기도교육청을 중심으로 학교예술교육을 지원하는 공간(가칭, 예 술창작소)를 설립하고 있다.

 

필자는 미래사회의 학교예술교육에서는 예술 자체를 탐구하고 경험함으로써 인문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 학교라는 공간적 제한에서 벗어나 다양한 지역사회의 공간적·인력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 등을 통해 미적 체험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본질적 접근 방법에 바탕을 둔 예술교육의 새 패러다임은 미래사회에 가장 중요한, 아니 인류 역사 이래 가장 중요했던 삶의 비밀스럽고 영원한 수수께끼 인간 자체의 가치를 탐구하는 즐겁고 의미 있는 교육방법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