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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뮤지컬 ‘별종’ 열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영화 <왕의 남자>) 이 한 문장은 극장 안 배우와 관객의 거리를 잘 보여주는 대사가 아닐까. 배우는 무대에서, 관객은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선으로 나뉜 두 영역에서 두 그룹은 철저히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적어도 얼마 전 까지는. 그러나 점차 암묵적인 규칙을 뛰어넘어 서로의 영역을 과감하게 침입하는 극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달에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별난 뮤지컬 세 편을 소개한다. 

 

 

매일이 새로운 뮤지컬

 

세상에 단 하루, 단 한 번만 공연되는 뮤지컬이 있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 바로 그 주인공. 공연은 미리 쓰인 대본이 아닌, 그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공연 시작에 앞서 관객들이 작품의 주인공부터 시간과 장소, 제목과 장르 등을 고르면, 1명의 연출가와 5명의 배우들이 ‘죽이되든 밥이되든’이라는 극단 이름처럼 주어진 상황을 갖고 즉흥적으로 두 시간여의 뮤지컬을 만들어간다. 대체 무슨 공연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지금까지의 공연 줄거리를 슬쩍 공개한다. 인간의 간 근처에 사는 유산균들이 장까지 살아서 가기 위해 돈을 주고 캡슐을 사는 이야기 <아이가 다섯>, 황금 사과를 먹고 예상치 못한 능력을 얻어 래퍼로 거듭난 40대 심마니의 이야기 <잠자는 숲 속의 태우>, 살아 있는 사람을 먹을 수 없어 모기의 피만으로 연명하는 착한 뱀파이어가 햇살 속에서도 안전하게 일광욕하는 날을 꿈꾸는 이야기 <호텔 옆 장례식장>. 이렇듯 천차만별 다채로운 공연이 한 무대에서 매일 다르게 펼쳐진다. 자꾸 봐도 새로울 수밖에 없기에, 재관람을 부르는 중독성 있는 무대에 관객 연출가로 동참해 보시길.  

 

극장은 피바다

 

등장인물들의 사지가 자비 없이 절단되고 무대에는 유혈이 낭자하다. 그러나 객석은 비명 대신 웃음으로 가득하다. ‘코믹 호러 뮤지컬’을 지향하는 <이블데드>의 공연 풍경이다. 다섯 명의 대학생이 숲 속 오두막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죽음의 책에서 악령을 풀어주고, 좀비와의 한 판 승부를 벌인다. 작품은 샘 레이미 감독의 B급 공포영화 <이블데드> 시리즈 1, 2편을 한 편의 뮤지컬로 묶었다. 원작의 B급 정서를 극대화함으로써 공포 대신 웃음에 방점을 찍는다. 최신 유행어와 각종 패러디는 피바다 속에서도 웃음을 멈출 틈을 주지 않는다.

 

공연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면,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스플래터(Splatter)’ 좌석을 예매할 것. 좀비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에게 아낌없이 피를 퍼붓는다. 관객들에게는 미리 우비가 제공되지만, 일부 관객은 일부러 흰 티셔츠를 입고와 핏자국이 뿌려진 자신만의 기념품을 만들기도 한다.

 

 

극장 안 모두가 배우

 

1973년 초연된 <록키호러쇼>는 컬트와 B급 문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이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여전히 세련되고 파격적이다. 여행길의 한 커플이 갑자기 몰아친 폭우를 피하기 위해 한 성(城)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성의 주인 프랑큰 퍼터는 트랜실베니아 은하계 소속 트랜스섹슈얼 행성에서 온 야성 과학자이자 외계인. 뿐만 아니라 성에는 양성애자, 외계인 남매, 인조인간 등 독특한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4차원 등장인물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코르셋에 망사스타킹, 가터벨트, 하이힐 등 파격적인 의상으로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이들의 현란한 춤바람에는 관객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공연 시작 전 관객에게 강습 시간까지 마련된 ‘타임 워프 댄스’를 다 같이 추는 순서가 있기 때문. 관객의 몫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극 중 관객들의 참여를 지칭하는 ‘콜백(callbacks)’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록키호러쇼>에서 관객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배우들의 대사나 노래에 반응하며 환호와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어떤 대목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객용 대본도 따로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관객이 공연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두 시간 여 동안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대사를 주고받고, 한바탕 댄스 파티를 벌인 뒤 극장을 나서는 길에는 ‘오늘 공연 잘 마쳤다’하는, 배우스러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7.6-8.19 | 대학로 TOM 2관 | 02-541-2929
<이블데드> 6.12-8.26 | 유니플렉스 1관 | 1666-8662
8.3-10.21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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