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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교육> 70년, 한국 교육 70년 발자취



인간의 나이 70세를 고희(古稀)라고 표현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예로부터 드물다’는 말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라고 읊은 데서 유래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예 로부터 사람이 살아남기 어려운 나이가 70이었다. 70년을 존속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뿐이 아니다. 정기간행물도 그렇다. 해방 직후 이 땅에 다양한 정기간행물이 등장했지만 지금까지 존속하는 것은 몇 개 신문 이외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1948년 7월 탄생, 지난 70년 세월을 대한민국 교육의 변화와 함께 해온 <새 교육>은 대한민국 교육 70년을 대표하는 상징물임에 틀림없다.


<새교육>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이고,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는 <새교육> 70년의 경험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모두가 이야기 하는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인 지금, <새교육> 70년의 성과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미래 교육의 방향과 과제를 탐색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임에 틀림 없다. <새교육> 70년은 우리 교육이 걸어온 제1의 길, 제2의 길, 제3의 길과 앞으로 걸어갈 제4의 길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먼저 <새교육>에 발표된 글들을 통해 우리 교육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자.


대한민국 교육이념 제시, 커리큘럼 개조운동 전파 앞장

우리 교육이 첫 발을 내디뎠던 제1의 길은 1948년 7월 정부 수립 전야에 이루어진 <새교육> 창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새교육> 창간호는 민주주의 국가를 실현하는 데 우리의 새교육이 바탕으로 삼아야 할 교육 이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창간호 ‘머리말’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의 이념은 이러하다.


농삿군은 농삿군의 위인이 되어라. 고기잽이는 고기잽이의 위인이 되어라. 신길이는 신길이의 위인이 되어라. 땜쟁이는 땜쟁이의 위인이 되어라. 자기임무 를 충실히 실천한 자, 사람 중에 가장 큰 위인이다. 인개위인(人皆偉人)됨을 가르치는 지침이 우리 모임의 ‘새교육’이로다.


<새교육>이 추구하였던 사회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임무에 충실하면 위인이 될 수 있는 사회였다. <새교육>이 추구하는 교육은 그런 인간을 만드는 데 봉사하는 것이었다. <새교육> 창간호가 선언한 대한민국 의 교육이념은 인개위인(人皆偉人, 자기 임무에 충실할 때 위인이 될 수 있다)의 정신이었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재능을 찾고, 이에 기초하여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임무를 설정하고, 이 임무에 충실하면 누구나 위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에 충실한 교육이었다. <새교육>이 선언하였던 교육이념 실현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당시 교육자들의 열정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1950년대 중반 커리큘럼 개 조운동이었고 이를 이끈 것은 <새교육>이었다.


미국 군인들이 지배하던 군정 3년, 민족주의적 열정이 민주주의를 압도했던 정부 수립 초기 2년, 그리고 공포와 가난이 지배했던 전쟁 3년의 시간에도 우리 민족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커리큘럼 개조를 통해 경험 중심, 생활 중심 교육을 실천하려는 교사들의 열정은 전쟁의 공포를 이겨냈다. 전주 풍남국민학교, 부산 동광국민학교, 서울 남산국민학교와 남대문국민학교 등 전국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던 커리큘럼 개조운동을 전국 교사들에게 전파하는 데 있어서 <새교육>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새교육>은 일찍이 1949년 2월호(제2권 1호)에서 ‘커리큘럼(curriculum)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게재하여 커리큘럼의 개념과 조직 원리를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 교육과정에 대한 대한민국 최초의 학술적 논의였다. 195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교육과정 개조운동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를 상징하는 개념은 ‘경험 중심 교육과정’과 ‘중핵교육과정’이었다. 교육학 분야 학회 활동이 활성화되지 않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이 두 가지 교육과정 이론을 소개하고, 두 가지 핵심 개념을 따라 교육과정 개조운동을 주도했던 것은 바로 교사단체 대한교련과 잡지 <새교육>이었다.


1952년 8월 간행된 속간 제2호는 정범모의 ‘교육사조의 새로운 경향’과 이수남의 ‘현대교육학과 쨘 듀이’를 통해 지식을 넘어 경험과 생활을 강조하는 존 듀이의 교육철학을 소개한 후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 커리큘럼 연구 상황을 소개하고, ‘커리큘럼을 말하는 좌담회’ 등 특집 논문 세 편을 게재했다. 1952년 12월에 나온 <새교육> 제4권 제3호에는 다시 ‘한국 교육을 말하는 좌담회-커리큘럼을 중심으로 한’이란 긴 글이 실렸다.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던 1953년에 이르자 커리큘럼 개조운동은 교사 문영한의 표현에 따르면 ‘절정’에 이르렀다. 정범모는 커리큘럼 개조운동이 이미 “新鮮潑刺한 교육적 노력을 자극해 왔다”라고 평했고, 주요섭은 “커리큘럼에 대한 탁상논리는 비록 산만적이기는 하나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도 이미 충분히 논의된 줄로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한 가지씩이라도 실천에 옮겨가면서 재건하고 평가하고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적당하다고 볼 시기에 이르렀다”라고 주장했다. 1954년에 이르면 커리큘럼 개조운동은 ‘논의 단계를 지나 실천 단계’에 확실하게 접어들었다(김향, 1954). 문영한은 당시 느낌을 “마치 연구 발표 시즌 같은 감”이라고 표현했다. <새교육>은 1955년 제2호부터 4회에 걸쳐 커리큘럼 개조운동의 중심 개념인 단원학습 사례를 연재했고, 마지막 연재인 제5호에는 ‘연구수업의 참관과 평가 매뉴얼’이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