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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학생에 나는 학부모, 시집살이 각오한 1년

최근 ‘스타들이 외국의 낯선 땅에서 식당을 개업한다’는 소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작년에 방영했을 때에도 보는 내내 가슴이 설레었던 기억이 있어, 올해도 빼놓지 않고 잘 챙겨 봤다. ‘나와 상관없는 삶에 이토록 열광할까’ 헛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출연진들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요리사도 아닌 연예인들이 잠시 운영하는 식당이니 서툴고 실수가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특히 스페인의 작고 예쁜 마을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볼 때는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내가 늘 꿈꿔오던 삶의 한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 다니면서 엄살떤다고?

20대부터 시작된 나의 교직생활. 수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유로웠던 기억’은 거의 없다. 아침이면 직장인 누구나 겪는 출근전쟁을 치렀고, 하루 종일 수업 과 잡무로 화장실조차 갈 시간이 없을 때가 많았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여유롭게 즐길 점심시간도 교사에겐 ‘틈’이 없다. 음식냄새와 함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며 급식지도를 끝내고 나면 ‘인스턴트 커피 한잔의 여유’도 사치스럽다. 교사에게도 분명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하건만, 쉬는 시간마저도 교무실을 점령한 아이들의 온갖 사연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특히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이 쏟아놓는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에 나름대로 세워둔 계획과 일정이 차질을 빚기 일쑤다. 여학생들의 감정싸움은 끊이지 않고, 남학생들은 하루에도 몇 명씩 아프거나 다치고 싸워서 온다. 교무실을 안 방 드나들 듯하며 친구의 잘못을 이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는 귀를 열고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 순간적인 센스를 발휘해서 모두가 상처받지 않도록, 중용을 지키는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다행히 쉬는 시간에 일이 마무리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종소리와 함께 서둘러 아이들을 돌려보 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넋이 나간 채로 수업에 들어가기도 한다. 몸은 교실에, 정신은 여전히 그 사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말이다.


아침 일찍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바깥 공기를 쐬고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봄과 가을이 어땠는지 느끼지도 못한 채 덥거나 추운 방학을 맞이한다. 친구들은 이런 나에게 “대충해! 교사는 일찍 끝나고 방학때 놀면서도 월급이 다 나오는데 왜 엄살이야”라는 말을 건네곤 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신학기증후군, 교사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연륜이 쌓이면 여유있는 교직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자신을 돌보며, 은퇴한 선배교사처럼 아름답게 인생을 가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삶은 더 여 유가 없게 느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봄·가을의 햇살과 풍경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여유가 없는 나의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히 3월이 되면 잔뜩 밀린 숙제를 몰아서 하는 학생처럼 쉬는 날에도 마음이 무겁다.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면서 불안한 마음에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일요일 저녁부터 받는 ‘출근 스트레스’를 교사는 3월 신학기에 한 번 더 크게 겪는 셈이다.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을 찾아오는 ‘신학기증후군’은 교사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3월이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심하면 두통·복통·구토를 동반하는 신체적 증상까지 호소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을 교사는 신학기를 준비하는 2월부터 겪는다. 가벼운 스트레스로 오히려 즐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하는 교사부터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하는 교사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교사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일부 교사는 울렁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소화불량이나 두통을 달고 살기도 한다. 신학기에 맡을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무난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걱정스러운 바람 등이 결국 정신적·신체적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트라우마로 다가오는 비상식적인 학부모와 부적응 학생

교사들의 신학기증후군은 업무나 새롭게 바뀐 환경에서 오기도 하고, 경험에서 나오는 트라우마 때문에 나타나기도 한다. 몇 년 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 소위 말하는 기가 센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몰려 있었다. 게다가 학교생활에 전혀 흥미가 없는 학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학생은 개학 첫날부터 등교를 거부하고 집을 나갔다. 나는 3월부터 경찰차를 타고 그 학생을 찾아다녀야 했다. 학부모는 아이를 찾을 의지가 없었다. 다만 자녀의 정보는 주고 싶었는지 간혹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자녀가 어디에 있는지 전화로 알려주고는 했다. 학생은 SNS를 통해 ‘부모가 자신을 때린다’며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해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때마다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결국 자작 극으로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학생을 찾기 위해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시내의 모든 PC방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극적인 추격전 끝에 찾아낸 학생에게 밥을 먹이고, 차비도 손에 쥐어 주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 학생은 출석일수를 계산하며 간헐적으로 등교를 하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일으킨 문제를 학 교까지 끌고 들어왔으며,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학부모는 이따금씩 “담임교사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협박전화까지 일삼았다.


3월 학부모상담주간에는 네 명의 학부모가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 명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면담은 앞으로 천천히 하죠”라며 위아래로 훑어보고 갔는데, 결국 1년 내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 학부모는 얼마 전 현재의 담임교사를 찾아와 교무실에서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또 다른 학부모는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양해도 구하지 않고 학교관리 자와 전화통화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했다. “나 ○○선생님(관리자)하고 아주 친한데, 평교사하고는 별로 말 섞을 일은 없을 것 같네요”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 학부모는 다른 교사에게 “선생님은 왜 나한테 인사를 똑바로 안 해요?”라며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겨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한 학생이 교무실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자 담임교사가 이를 꾸짖었다. 그러자 그 학부모는 “담임교사 때문에 아이가 자살할 지경에 이르렀다”며 아이와 함께 번갈아 억지를 부리는 전화를 했다. “혹시 돈 을 달라는 뜻이라면 경찰서로 가자”는 말이 나오고서야 그 담임교사는 억지 전화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담임교사 면담을 와서는 “선생은 얼마 벌어요? 난 하루에 100만 원을 버는 사람인데. 내가 그걸 포기하고 여기와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얘기를 하려는 건지 들어나 봅시다”라는 말을 던진 후, 마치 감시자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가 갔다.


강렬했던 이런 기억들은 결국 무난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졌고, 걱정으로 다가왔다. 학기 초에는 가뜩이나 업무가 많은데 개성 넘치는 학생과 학부모들까지 교사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니 우울증까지 호소하는 교사가 생겨날 정도이다.


모든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3월

교사는 신학기가 되면 마라토너가 된다. 긴장된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을 때는 ‘장거리 달리기를 위해 체력 안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차례 난관에 부딪히면서 힘을 소진한다. 처음 세웠던 계획은 무산되고 에너지도 바닥났지만 마지막까지 있는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 이렇게 마라톤 같은 한 학기를 보내고 나면 체력은 완전히 소진된다. 모든 교사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20년 전보다 지금이 신학기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손으로 잉크를 밀어 시험지를 찍어냈 던 시절보다 기계나 교구가 편리해졌고, 학생 수도 적어졌으며, 교육행정실무사도 도움을 주고 있지만 왜 교사에게는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인지.


방학이라고 계속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연수도 들어야 하고 학교생활기록 부도 정독해야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장소만 옮겨져 마치 재택근무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교과 내용 재구성과 평가계획에 대한 생각, 자유학기제와 자유학년 운영계획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편하지도 않다. 학교생활기록부나 평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징계를 피할 수 없고, 열정과 열심히 하는 자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무겁다.


벌써 2018학년도 신학기가 되었다. 늘 그렇듯 책상 위에는 업무 관련 문서들이 늘어나고, 수업을 갔다 오면 그사이 수십 개의 부재중 메신저가 노트북 화면 전체를 장악한다. 마치 무대 위의 뮤지컬을 보듯 다양한 캐릭터의 학생과 학부 모도 등장한다. 불안하고 힘들지만 3월에는 모든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학기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교사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이 한마디를 건네 본다. 오늘이 있기에 은퇴 후 햇살 좋은 바닷가나 한적하고 예쁜 시골길도 걸을 수 있고,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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