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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17교단수기 은상] 보건쌤~ 참새 치료해주세요


오늘은 월요일,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근했다. 보건교사로 일하다 보면 월요일은 보건실이 아픈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나 또한 경력이 쌓일수록 월요일은 늘 긴장되고 두렵기까지 하다. 주말 내내 놀거나 어디 다녀와서 아픈 경우가 대부분인데 주말이니 꾹 참았다 월요일에 병원을 가든지 보건실로 오기 때문이다. 또한 주말동안 이완된 몸이 새로운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미처 적응하지 못해 작은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층 보건실로 올라오니 역시나 아이들이 이미 문 앞에 줄서 있다. 아, 월요일이었지. 마음을 다잡고 보건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와 앉는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하다. 한 아이에게 여러 명이 몰려서 시끄러운 것이다. 어디 많이 다쳤나 싶어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양손을 가슴에 붙이고 있었다. 가만 보니 고사리 같은 2학년 남자아이 손 안에 참새가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참새 다리가 이상했다. 그제야 그 아이는 "보건 쌤, 참새 치료해주세요" 한다. 참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민아, 나는 사람을 치료하는 보건 쌤이지 새를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종민이는 "보건 쌤은 학교에서 우리 다 치료해주잖아요. 학교 오다 참새가 다쳐서 데려왔어요. 참새도 환자잖아요. 도와주세요."

이러면서 우는 게 아닌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종민이와 친구들의 얼굴을 보았다. 다들 잔뜩 실망과 기대가 섞인 얼굴들로 묘한 표정들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경력 15년을 넘어가면서, 그리고 1200명이 넘는 학교에 근무하면서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고 심신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보건실에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오는 줄 모른다. 간단한 상처부터 집에서 키우는 동물(햄스터, 개, 고양이 등)에게 물려서 오는 아이, 감기나 각종 질병, 학교 부적응, 우울, 애정결핍, 성 고민, 이성문제 상담은 물론 옷에 실수를 하거나 바지가 뜯어져 바지 ‘응급처치’를 해달라는 경우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종민이의 그 말에 나는 뭔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종민이의 동심을 짓밟았구나’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려 들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어디보자, 종민아 보건 쌤이 참새 고쳐볼까? 아깐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고 참새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누런 코를 흘리며 울던 종민이의 울음도 뚝 그쳤다. 

새를 치료해 본 적은 없지만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어 나는 비장한 각오로 새를 진지하게 살폈다. 

참새를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 다리가 골절돼 절름이며 날지 못하는 상태였다.  통증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상처에서는 피도 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소독하고 아이들에게 하듯이 부목(두꺼운 박스종이)을 댄 후 붕대를 감아줬다. 

부목을 댄 다리가 무거워서 힘들지 않게 세심한 손길이 필요했다. 그런데 치료를 하면서 아이들의 얼굴 표정을 살짝 살펴보니 참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표정이 점점 환해지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소리까지 죽이며 보고 있는 모습들이란!

순간 월요일부터 우르르 몰려온 아이들에게, 사람도 아닌 참새를 치료해달라고 온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퉁명스럽게 말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치료가 다 끝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이들이 새를 날려보란다. 아이들의 호기심이란 정말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치료는 했지만 과연 새가 다시 날지 자신이 없었다. 만약 날지 못하면 마치 내가 치료를 잘 못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할거고 애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 같기도 했다. 계속 고민하는데 아이들은 계속 오고 더 이상 어찌할 방법도 없어 그냥 날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보건실 창문을 열고 두 손에 참새를 소중히 올려놓은 다음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참새야, 이제 치료했으니 넌 날 수 있어. 훨훨 멀리 날아가거라!"

하늘을 향해 손을 올리고 새를 날렸다. 그런데 새가 처음에 좀 기우뚱하더니 날아가는 게 아닌가! 순간 나와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일제히 "와~난다 날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종민이는 한 술 더 떠서 "거봐요, 보건 쌤은 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는데 왜 이리 가슴이 쿵쿵거리면서 울컥하는지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천천히 그렇지만 열심히 날갯짓을 하며 산 쪽으로 날아가는 참새를 우리들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다 같이 바라보았다. 

당시 나는 읍소재 학교에 근무했었다. 학교 주변이 논과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학교로 의료시설도 적었다. 그래서 더욱 보건실로 오는 아이들이 많았고 대부분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부모님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해 한 번 아픈 아이는 나을 때까지 보건실에 오는 게 당연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인구 100만이 넘는 도회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전히 수많은 아이들과 보건실에서 지지고 볶는다. 자식을 낳아서 힘들게 키워보니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한 명 한 명이 소중했다. 이제 아무리 아이들이 많이 와도 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변했다. 난 참새도 치료한 보건 쌤이니까. 아이들이 오면 치료하면서 간혹 참새 치료이야기를 해준다. 그럼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와~ 우리 보건 쌤 짱이다"하며 탄성을 지른다. 

2009년부터 국가교육과정에 의해 보건교과서를 가지고 아이들과 정규 응급처치교육을 한다. 이 수업을 할 때면 참새가 다쳤다고 응급처치를 해달라던 사랑스런 코흘리개 종민이와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문득 ‘내일은 참새 다쳤다고 데려오는 녀석이 없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놀란다. 

종민아, 고맙다. 그때 네가 "보건 쌤은 할 수 있다"고 말해줘서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어. 앞으로도 네가 말한 것처럼 너희 뿐 아니라 동물도 사랑으로 꼭 치료하는 보건 쌤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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