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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배우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극장을 연기만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가상의 세계로 만드는 마법은 전적으로 배우가 가진 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연기에 뼈대가 되는 것은 단연 대본이다. 촘촘하지 못하고 구멍이 송송 난 이야기에서는 아무리 ‘국민 배우’가 혼신의 힘을 다해 펼치는 연기도 빛을 잃기 마련이다. 출연 배우만큼이나 힘이 있는 희곡을 탄생시키는 극작가가 중요한 까닭이다. 
 
유명 소설가나 시인처럼 우리에게 친숙하지는 않을지라도, 특유의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로 세계에서 주목 받는 작가들의 작품 세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징적인 것은 적게는 단 두 명, 많아도 일곱 명으로 적은 배우들만이 출연한다는 사실이다. 무대나 조명 역시 화려하지 않다. 이 단출한 구성으로 두 시간여 동안 관객의 집중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밀도 높은 희곡이 가진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극 <M. 버터플라이>는 중국의 경극 배우이자 스파이였던 여장남자 ‘쉬 페이푸’가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 브루시코’를 속이고 국가 기밀을 유출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실화 속 두 주인공은 중국배우 송 릴링, 프랑스 영사관 직원 르네 갈리마르라는 인물로 재탄생했다. 대사관 파티에서 송에게 한눈에 빠져든 르네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환상과 욕망에 눈이 멀어 국가기밀을 누설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연극은 중국계 미국인인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이다. 그는 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유색인종, 특히 아시아계 민족의 문제점을 극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 작품 역시 인간 내면의 욕망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Madam Butterfly)>을 차용해 서양에서 동양인, 특히 동양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녹여냈다(제목의 ‘M’ 역시 ‘마담’을 의미한다). 덕분에 작품은 초연부터 토니 어워즈 최고 작품상,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최고 작품상을 휩쓸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뉴욕 브로드웨이의 최장기 공연 기록을 깰 정도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후에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으로 참여한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연극 <엘리펀트송>은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심리극으로, 상처받은 소년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매혹적으로 그린다. 크리스마스 이브, 의사 한 명이 갑작스럽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자 병원장 그린버그는 그의 행방을 쫓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가 만난 환자인 마이클을 찾는다. 그러나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이클은 코끼리와 오페라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독백을 이어간다. 그린버그는 어떤 실마리라도 발견하기 위해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대화를 이어가고, 마침내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작품은 캐나다의 극작가 니콜라스 빌런의 데뷔작으로, 그를 단숨에 촉망 받는 극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연이어 발표한 두 희곡 역시 모두 호평을 받으며 캐나다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10’에 이름을 올리고, 그의 희곡집은 캐나다 최고 권위인 총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에서 직접 각색을 맡아 스크린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바그다드 동물원의 뱅갈 호랑이>로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작가 라지프 조셉의 작품이다.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연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그는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생각들로 풀어내는데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어릴 적 고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작품의 희곡을 썼다. 바로 17세기 인도 아그라의 황제 샤 자한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만든 궁전, 타지마할에 얽힌 다소 충격적인 비화다. 

궁전이 완성되자 샤 자한이 건축에 참여한 인부 2만 명의 손목을 자르라고 명령했다는 것. 앞으로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궁전이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연극의 주인공은 이 무시무시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 두 명의 오랜 친구다. 황실의 말단 근위병인 휴마윤과 바불은 하룻밤 사이에 4만 개의 손목을 자르는 임무를 맡고, 삶과 우정, 아름다움, 그리고 의무에 대한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은 두 사람이지만, 대화 속 부당한 권력에 대한 충성과 의무, 친구의 갈등과 우정,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앞서 소개한 세 편 작품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공교롭게도 연극의 말미에 놀랄 만한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반전과는 거리가 멀다. 작은 충격으로 작품이 주는 메시지나 여운을 조금 더 오래 남도록 만드는 하나의 장치에 가깝다. 그러니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추리의 ‘촉’을 발동시키기보다는 세 명의 작가가 선사하는 지적인 충격을 기꺼이 즐겨보시길. 



<M. 버터플라이> 9.9-12.3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타지마할의 근위병> 8.1-10.15 |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엘리펀트송> 9.6-11.26 | 수현재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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