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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다시는 '비극의 눈물'을 흘리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 오랜 인류 역사에 걸쳐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다. 구약성경에는 '피의 성에 화가 있을 것이다. 사기와 약탈이 판을 치고 있으므로 희생자가 떠날 날이 없다. 휙휙하는 채찍 소리, 덜거덩거리는 전차소리, 뛰는 말과 , 달리는 전차, 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빛나는 창, 수많은 사상자, 시체 더미, 헤아릴 수 없는 주검들! (나훔서 3: 1-3)'라는 기록이 있다. 나훔서에 기록된 니느웨성의 처참한 기록이다.


니느웨성은 원래 물이 모인 연못처럼 은과 금과 아름다운 기구가 풍족한 성읍이었으나 이처럼  '피의 성'이 되었다. 불의한 침략 전쟁을 통해, 합법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불의한 재판을 통해, 야만적인 살인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비호하는 불의한 일들을 통해 수많은 무죄한 피가 흘러 넘쳤다. 또한 거기에는 거짓이 가득했다. 진실이 사라졌고 정직한 자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구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부를 쌓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았고, 거짓을 일삼으며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렸다.  이런 상황은 마치 우리 나라가 겪어던 67년 전 일어난 전쟁중의 참화와 다름이 없다.


우리와는 거리가 떨어져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지만 지금도 이런 전쟁의 참화가 지속되고 있는 곳이 있다. 지중해 연안 요충지에 위치해 한때 '동방의 진주'라고도 불린 시리아는 벌써 6년의 내전에 피로 물들었다. 현지를 탐방한 어느 기자는 시리아의 참상을 글로 쓰기에는 한계를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처참함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증거이다. 사실 미국과 유엔 등은 내전 종식을 위해 몇 번이나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을 돕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으론 도와줄 대상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역설적으로 시리아는 너무 많은 파벌로 갈라져 있어 누군가를 도와 평화를 이끌기 어려운 구조다. 국론이 갈기갈기 찢긴 나라의 귀결은 이런 것이다. 국민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면 강력한 우방이 도와줘도 절대 살아나지 못한다. 시리아는 이미 극단주의 종파와 제국주의 국가에 휘둘리는 신세가 되었다.


시리아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살펴 보면 역내 요충지요 식민지배의 역사, 주변의 열강까지 우리 나라의 현재 국제정치 환경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우리에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우린 이미 한 차례 전쟁으로 처참한 전쟁의 역사를 알고 있으며, 남과 북이 갈라진 채 아직도 비극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나라다. 그런데 이 반쪽마저 아직도 또 갈라놓겠다고 분열을 노래하는 세력이 아직도 있다.


최근에 신약성서 학자인 박경미 교수가 쓴 '시대의 끝에서'는 성서와 역사를 가로지르면서 그가 화두로 내세운 것은 ‘시대의 끝', 바로 종말론적 성찰이다. 끝을 인식해야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존재의 끝에서” “모든 존재의 근원, 중심과 만날” 수 있고, 그곳에 가서야 “모든 생명은 관계성 안에서 존재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성서가 그린 역사도 그래 왔다. 제국의 침략과 가신들의 수탈, 이에 대한 예언자들의 분노와 심판의 선언이 이어졌다. 즉 종말에 대한 어두운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의 희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연이지만 일력에 의하면 오늘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일요일과 같은 주일 아침이다. 6.25전쟁 당시 지게에 탄약과 식량을 싣고 밤낮 없이 산악지대를 오르내린 건 한국노무단 일명 '지게부대'의 활약상을 보면서 이 나라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름없는 지게부대의 노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전투 현장에서 매일 45kg 정도의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16km씩 운반했다.


이렇게 참전한 인원은 무려 약 30만 명에 이른다. 미군은 지게 모양이 알파벳 A와 닮았다해서 이들을 'A특공대'라 불렀다. 철모는 커녕 무명바지나 학생복 등 징집 당시 옷을 그대로 입고 참전해 적에게 쉽게 노출되기 쉬워 기록된 전사자 수만 2천 여명, 실제 희생은 더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서에 기록된 니느웨성의 처참한 기록은 바로 67년 전에 겪었던 전쟁 상황과 별반 큰 차이가 없다. 6.25 전쟁의 숨은 영웅 '지게부대'의 참전을 보면서 이 아침에 그 이름이 잊혀져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직도 입으로만 애국을 노래하면서도 자신의 자녀는 국방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하는 일부 특권층이 존재한다. 이 나라의 지식과 특권을 가진 지배층은 6.25전쟁 발발 67주년 추모의 날을 맞이하여 아직도 선진국의 문턱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후손들에게 부끄럼 없는 삶이 될 것인가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