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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g와의 만남
 

g는 1학년 때부터 워낙 유명했던 아이라 반편성할 때부터 조금 걱정이 됐다. 더구나 교무부장을 맡고 있기에 밀려오는 업무 부담에 주도면밀한 생활지도까지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오랜 교직생활의 경험이 있었기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학기초 나의 예상은 결코 빗나가지 않았다. 


“선생님, g가 때렸어요. g가 꼬집었어요. g가 얼굴을 할퀴었어요. g가 고추를 때렸어요”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아이들의 원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엄마 아빠까지 학교로 찾아오고 빗발치는 전화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어 교감선생님과 주변 지인들에게 상담도 해보고 교육지원청 Wee센터 에 상담을 의뢰해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원 방문 상담도 병행했다. 교실에서는 최근 생활지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적용했다. 


우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친구가 내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친구가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해”라는 바람을 포스트잇에 적게 한 후 큰 전지에 모두 붙이고 친구들 앞에서 크게 읽은 후 직접 사인까지 하는 '존중의 약속' 실천 서약을 했다. 그리고 교실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붙인 후 '존중의 약속'을 세 번 어기면 10분간 '존중의 약속' 게시판을 바라보고 5번 어기면 중간놀이와 일체의 바깥놀이 시간에 나갈 수 없도록 했다.

CCTV 사건


g가 처음에는 이 약속을 잘 지키는가 싶더니 며칠가지 못하고 이번에는 정말 큰일을 내고 말았다. 주말에 동인지 작가 모임에서 문학기행으로 강원도 이효석 문학관을 방문했는데 학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적중하고 말았다. 


쉬는 시간에 피구를 하다가 자신의 아이가 g에게 정신없이 맞았다며 다짜고짜 CCTV열람을 했으면 했다. 오랜 학생부장을 했기에 CCTV 열람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조목조목 말씀드렸더니 워낙 화가 많이 나 있었는지 지금 당장 열람을 하란다. 간신히 설득을 했지만 이번에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학폭을 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도 g가 낙인을 찍혔는데 더욱 더 낙인 효과가 클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일단 학폭은 막아야할 것 같아 g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k(피해자) 부모님께 진정어린 사과를 할 것을 말씀드렸다. 내가 강하게 말씀을 드린 효과가 있었던지 k아빠도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후유”크게 한 숨을 쉬고 일단 ‘k아빠의 마음을 녹이는데 성공은 했으니 학폭은 열리지 않겠구나.’라는 작은 기대감에 다음 날 출근을 했다. k아빠가 아침에 득달같이 달려오셨다. 상담실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경청을 해드리고 차후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담임차원에서 약속을 하겠노라며 k아빠의 손을 잡고 단단히 약속을 했다. 그러나 CCTV에는 미련이 있었던지 정보공개청구대장에 열람신청을 해서 경찰관을 부르는 소동까지 벌이고 말았다. 역지사지해 내가 k아빠의 입장이 되어보면 이해가 충분히 되었다. 워낙 g의 괴물같은 행동이 무성했고 실제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기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계속되는 g의 일탈행동
 

g의 일탈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다고 계속되었다. 아이들에게 욕을 하고 비아냥거리고 옷에 연필로 낙서를 하는 등의 행동에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까지 “짜증 나. 재수 없어”라는 말과 3학년 선배들에게 쌍욕을 해서 우리 반 교실로 대여섯 명의 여자 아이들이 찾아오는 등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나날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짝꿍의 머리를 때려서 아빠가 학교로 찾아오겠단다. 계속되는 g의 일탈행동에 g엄마도 이젠 자포자기한 느낌이다. 엉엉 우시면서 자기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며 g를 당분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오셨다. 그것만은 바람직한 방법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교감 선생님과 Wee센터 상담원에게 문의를 해보니 공통된 의견이 g의 아빠를 만나서 상담을 해볼 것을 권유했다. 


나도 두 곳의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너무 자신이 무능하고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무기력하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교무부장으로서 타 교사의 모범이 되어도 시원찮을 판에 학폭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동료교사나 관리자를 볼 면목이 없었다. 하도 괴로워서 지인을 불러서 회피 수단으로서 밤새껏 술을 마시기도 했다. 괜스레 아내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짜증을 내는 등의 못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잠시 g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나도 이리 괴로운데 어린아이인 g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 g가 무슨 잘못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드니 g가 한없이 불쌍하고 가엽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일부터라도 g에게 더 잘해주고 인정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주어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또한 g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g이해하기 프로젝트


g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대학원에서 배웠던 HTP(집 나무 그림 검사)와 SCT(문장완성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g혼자만 하면 어색할 것 같아 반 전체 아동을 대상으로 “여러분, 지금부터 가족을 어항이라고 생각하고 어항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그려보세요”라며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기에 몇 가지 방법들을 알려주었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g는 아빠를 큰 이빨을 가진 물고기로 표현했다. g의 아빠가 어떤 분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g의 엄마에게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Wee센터 상담원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g아빠가 화가 나면 g를 발로 걷어찬 적도 있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g의 아빠를 만나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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