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27일 영국 하원은 대학 수업료의 자율화를 가결함으로서 '모든 국민들이 동등하게 의료혜택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정부는 보장한다' 라는 복지국가 실현의 방향을 수정하고 있다. 비록 그 자율화라는 것이 현재로선 '년 600 만원 이내' 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이 상한선이 인상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무료교육에 익숙해져 온 영국인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다.
이번 투표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고 700 가까운 의석 중에 반대파들이 100 표 이상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었으나 투표 결과는 316 대 311 라는 5 표의 근소한 차이로 가결이 되었다. 영국 언론에서는 이 의결안을 두고 토니 블레어 수상은 정치 생명을 걸고 있다고 보고 있었으며, 블레어 수상 그 자신도 투표를 앞둔 당일 국회연설에서 자신의 입안에 반대하는 노동당 의원들을 향해 "이 의결이 부결되면 당신들은 차기 정권에서 스미스(야당, 보수당 당수) 씨가 수상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이러한 정책 결정의 배경에는 지난 20 여년 동안 다섯 배로 불어난 대학 진학률과 그러한 대학의 재정 지원을 정부가 부담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대학측에서 볼 때, 지난 20년 사이 학생 한 명 당 정부 지원액은, 물가 상승률을 제외한 실질액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현재 영국 정부는 2010년까지 30세 미만 인구의 50%까지 대졸자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1997년 디어링 보고서 (Lord Dearing Report) 에서 현행 상태로선 정상적인 대학운영이 불가능하며, 짧은 시간내에 획기적인 대학재정의 확보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영국의 대학은 세계 대학의 선두그룹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했었다.
이러한 경고들과 함께 일부 대학에서는 이미 그 재정부족의 폐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공계에서는 영국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는 임페리얼 대학의 경우, "학생 한 명 당 연간 평균 지출이 2000만원이지만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1500 만원 정도로 매년 500 만원씩의 적자가 나고
있는 상황" 이라고 토로하고 있고, 1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DNA 구조를 발견한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의 화학과는 2003년 폐과를 하고 신입생 내정자 50 명에게 사과문을 돌렸다. 2002년 한 해 사이에 절반의 교수가 그 대학의 학과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각성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간에 재정확보 방안을 마련해야만 했고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어 왔다. 정부는 더 이상 일반국민의 세금으로서 대학 재정 지원을 못한다는 입장에 못을 박고 있었고 따라서 대학교육의 수혜자가 그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한다라는 전제가 이미 토론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러한 한계에서 강구 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우선 일차적으로 결정 해야될 사안은 대학 졸업세 같은 후불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은행 융자 같은 선불제로 할 것인가였다. 고든 브라운 재부무 장관은 졸업세를 선택할 경우, 고졸자와 대졸자의 소득세 차이는 약 7% 가 될 것으로 내다 봤고. 여론조사에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평생 7% 의 부가적인 소득세를 내는 '후불' 보다,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지불하는 '선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선불제로 선택을 할 경우, 현재 학비를 조달 할 수 없는 가난한 부모를 가진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 할 수 없다는 불평등의 문제가 야기된다. 이러한 모순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편 논지는 "대학생은 18세 이상이고, 18세 이상은 이 나라에서 법적으로 성인이며 계약을 할 수 있다.
또한 18세가 되면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개인사업을 시작 할 수도 있다. 대학교육도 자신에 대한 투자이며 이 투자를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는 본인의 의지의 문제이지 어떤 부모를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다.
한편에서 정부는 이러한 논지를 펴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무이자 학자금 융자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제금리 0%), 연수 3천 만원 미만 가정의 자녀일 경우 생활 보조비를 년간 2백 만원 지급과 학비 전액 면제라는 지원책도 마련해 두고 있다. 무이자 학자금 융자는 2000년부터 이미 시행되어 오고 있으며 현행 최고 대출액 2천 만원에서 3천 만원으로 상한선이 높아진다. 이 융자금의 반제는 졸업 후 연간수입 3 천 만원이 될 때까지 유예가 되며, 정부 예측으로는 완전 반제까지 한 달에 20만원 정도로 13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의뢰로 행해진 South Bank 대학 정책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졸업반 학생을 기준으로 해서, 평균, 고소득층 자녀 학생은 약 1300 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반면 저소득층 자녀 학생은 약 2000 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2003년의 소득을 기준으로 환산해서 대졸자와 고졸자의 평생 수입격차는 약 8억원 (40만 파운드) 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수업료의 징수법안에 대한 대학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영국에는 77개 대학 (university)을 포함해서 131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또한 고등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162개의 칼리지가 있다. 이들 중 고등교육이 급팽창하던 80년대 이전에 대학의 위치를 확고히 굳히고 있던 40 여 개의 대학들은 상한선 600 만원까지 징수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나 1992년 교육법 (FHEA 1992) 에 의해 승격된 구 폴리테크닉, 그리고 그 이후에 신설 또는 인가된 고등교육기관들은 수업료를 최고상한선까지 징수할 경우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럴 경우 대학의 재정수입격차는 벌어지게 되며 영국의 고등교육 평준화의 신화는 무너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