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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한자는 이제 버려야할 표기 수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이해 지인들이 카톡으로 인사를 보낸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다양한 사진과 그림으로 연하장 형식을 띠고 있다. 멀리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 힘이 솟는 닭 그림, 한껏 멋 부리고 쓴 글씨까지 누가 만들었는지 탐나는 사진들이다.

그런데 이 사진들이 반갑지 않다. 왜 유독 ‘복’자만 한자로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글로 써도 되는 ‘복’자를 큼지막하게 한자로 썼다. 복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나. 나로서는 마음이 상한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모습도 돌이켜봐야 할 것이 많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 둘러놓은 병풍을 보면 한문뿐이다. 후손들이 병풍의 글 내용을 알고 있을까. 지방도 그렇다. ‘顯祖考(현조고), 顯祖妣(현조비)’로 시작해, ‘學生(학생), 孺人(유인)’을 쓰고 있다.

이는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과거의 문화다.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물론 공무원을 했다면, 이 자리에 퇴직 때의 직급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우는 일부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學生(학생), 孺人(유인)’을 쓴다. 이를 보고 어린 학생들은 할아버지가 자기들과 같은 ‘학생’인 줄 안다. 지방에 쓰인 한자를 모르다보니, 결국 받드는 제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절을 한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한글 지방을 쓰는 집안도 많다. ‘할아버지 000 신위, 할머니 000 신위’라고 적어놓고 절을 한다. 제사 모시는 분이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쉽게 안다. 이렇게 한글로 적어놓고 절을 하다 보니 후손으로 정성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집안에 어른이 돌아가시면 부고를 하는 인습은 이제 없다. 그런데도 제법 돈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집안은 신문 광고란에 부고를 낸다. 이때도 가관이다. ‘대인(大人), 대부인(大夫人)’으로 시작해서 온통 알 수 없는 한자로 채운다. 돌아가신 날짜와 시간조차 한자로 표기해 숫자로 옮겨 써봐야 알 수 있다.

부고는 돌아가신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로 써 놓으면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그냥 한글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기다가 미망인(未亡人)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다.

문화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새로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노화돼 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전통문화란 무턱대고 지키는 것이 아니다. 세월에 따라 변하지 못한 형태로 남아 있다면 고리타분한 인습으로 남는다. 문화는 시대에 맞게 만들어가고 지킬 때 생명력을 얻는다. 공자님도 예를 마음이라고 했다. 형식으로 하는 예보다 정성스러운 마음이 중요하다. 제사 지낼 때 ‘할아버지 000 신위, 할머니 000 신위’라고 적어놓고 절을 한다면 마음이 따뜻하게 만들어진다. 부고도 결국은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이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 쉽게 써야 한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말과 글이 일치되는 생활을 하게 됐다. 한때 사대문화와 지배층의 잘못된 의식 때문에 냉대를 받았지만 한글은 우리 민족의 글로 생명력을 이어왔다. 주시경 선생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 하여 ‘한글’이라 이름을 붙이고,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대에도 한글은 핍박을 이겨내고 빛났다.

광복과 함께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빠른 기간 내에 극복한 것도 배우기 쉬운 한글 때문이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한글은 교육 효과가 높았고,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와 경제가 빨리 발전해서 우리가 큰 나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 문자라는 것은 세계적인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도 한글의 과학성을 극찬했다. 이런 한글을 저버리고 한자를 쓰는 습관은 외국인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류 바람을 타고 세계 곳곳에서 한글을 만날 수 있게 됐고,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이런 마당에 뜻도 모르는 한자를 쓰는 문화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에게 좋은 말과 여기에 딱 들어맞는 우수한 글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물론 학문을 하거나 기타 특별한 상황에서 한자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필요 없는 상황에서는 한자를 버려야 한다. 한글을 살려 쓰면 우리의 정신도 건강해지고 나라도 튼튼해진다. 한글의 올바른 사용, 한글이 빛나고, 우리 민족도 빛나는 일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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