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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수업이야기] 교사의 신념




교사란? 수업이란? 교육이란?
아이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원들의 영원한 숙제들을 수석교사와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는 ‘수업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생생한 ‘수업나눔’ 경험을 토대로 교사로서 신념 세우기, 학생과 관계 만들기, 의미 있는 배움 만들기, 삶과 연결하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한문교과의 허생전 수업을 나눈 적이 있다. 허 생이 마을의 제일가는 부자를 만나 돈을 빌리는 장면을 한문으로 읽으며 그 뜻을 알아가는 수업이었다. 교과 특성 상 수업은 아이들에게 다소 지루한 듯 보였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너희가 이 부자라면 허 생에게 돈을 빌려 줬을까?’ 질문을 던졌다. 엎드려 열심히 필기만 하던 아이들은 고개를 들었고 교실은 금세 생기를 띠며 술렁였다. 평소 주관이 뚜렷하던 서영이가 "저는 절대 안 빌려줘요" 단호히 말하며 "왜냐하면 저는 허 생이 싫거든요"라고 묻지도 않은 이유까지 설명했다.

박지원의 ‘허생전’은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사대부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비판하며 지배층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이다. 한자 원문을 공부해 보다 깊은 의미를 알면 깨달아지는 이치를 통해 인성교육을 하는 것이 학습 목표였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업 흐름으로 보면 선생님의 질문은 그야말로 난데없는 것이었다. 순간 ‘왜 갑자기? 계획에 있는 발문인가?’ 궁금증을 품고 지도안을 확인했다. 그리고 볼이 발갛게 상기된 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그것은 일탈을 꿈꾸는 망설임이 틀림없었다. 

이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수업 나눔에서 조심스레 선생님의 의도를 여쭸다. 선생님은 다소 머뭇거리다가 "내 스스로 몇 번이고 물었던 질문이었다"며 조금 엉뚱한 대답을 했다. 

전 시간 타 학급 수업에서도 학생들 중 ‘허 생이 싫다’는 반응이 나왔고, 특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아이들의 눈빛을 진도 때문에 외면하고 있는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생각이 정말 궁금해졌고, 그것을 토론하는 것이 박지원의 한문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의 의도에 지지를 보냈다. 다음 시간에 아이들이 생산해 낼 살아있는 지식이 기대되고, 그런 수업이 가능하게 아이들을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며 수용적인 자세로 경청하려는 선생님의 존재가 너무 소중하다는 말씀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한문이 암기 위주의 고리타분한 과목이라는 인식을 깨고 이야기 속의 지혜를 찾아내며 삶과 연결시키는 학문으로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소신을 목소리 높여 밝혔다. 

며칠 후 선생님은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문 교사로서 자신의 교육적 신념이 무엇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한문 수업을 ‘빵빵 터지게 하는 개그맨처럼 해야지’라고만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수업이 생활과 연관된 한자어를 알아가며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지를 받아 힘이 난다고 했다. 또 한문이 고립된 교과가 아닌 고전, 국사, 지구과학, 수학과 연결시켜 통합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수행평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이 고민하는 지점에 함께 머물러주고 공감하며 지지했을 뿐인데 선생님은 시들했던 열정을 회복할 힘을 얻었노라고, 자신의 수업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노라고 말했다. ‘진도 나갑시다’, ‘그거 시험에 나와요?’라는 말만으로도 흔들리고 ‘선생님 그거 꼭 해야 하나요?’라는 볼 맨 소리에 주저앉는 현장에 교사는 서있다. 그 때마다 문득 처음 교단에 설 때 품었던 청운의 꿈, 소명감, 신념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우리가 품었던 교육적 신념들은 옳으며 그런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런 신념을 알아차리고 지지, 격려해 줄 동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교육 전문가로 공인된 교사들은 평가자나 지도자의 가르침보다 상처받고 무너진 내면을 일으켜 세워줄 진정한 동행과 지지가 필요하다. 교사는 이미 교육을 행하는, 즉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 주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는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 늘 사유하고 합당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국가와 학생, 학부모와 갈등관계에 놓이더라도 흔들림 없는 신념을 가져야한다. 그러려면 혼자서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교사들은 서로를 존재로서 바라봐 주고 함께 머물러주며 동행으로 지지와 격려가 돼 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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