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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해상왕장보고 유적지 답사 기행문

1. 석도항 도착
한국해양재단 주관으로 해상왕 장보고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오랜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석도항. 오늘날 안전하고 큰 배로도 13시간이나 걸리는데, 돛단배 수준의 작은 배 한척으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땅에 도착해 한국인의 기상을 떨쳤던 장보고 대사의 위대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해 전,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던 '해신(海神) 장보고'가 생각났다. 해신이란 용어는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학생들에게 21세기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는 남무희 국민대 교수의 말에 많은 공감을 했다.

산둥반도는 강태공과 공자의 고향으로 중국을 알려면 먼저 산둥반도부터 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내에서 매우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산둥성은 남한의 1.6배이며 중국의 1.6%를 차지하고, 2008년 GDP가 10%(중국에서는 광동성에 이어 두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고 하니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자장면의 원조(元祖)로 ‘인천에서 닭이 울면 산둥성에서 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2. 봉래각, 등주수성, 고선박물관
둘째 날의 일정은 봉래각, 등주수성, 고선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이었는데 한 코스를 보기 위해 3~4시간씩 버스로 이동하면서 중국 영토의 광활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봉래라는 이름은 옛날 신선들이 살았다는 전설 속의 바다 가운데 있는 산의 이름이라고 했다. 이곳은 8명의 신선이 바다를 건넌 곳이라고 한다. 남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도교의 영향이었으며 봉래각은 송나라 때 만들어지고 청나라 때 복원되었으며 당나라 때는 ‘등주’라고 불렸다고 한다. 봉래산은 진시황이 장생 불로초(長生 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찾았던 산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로초를 먹고 진시황이 56세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등주수성은 왜구 격퇴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한반도 침략 시 이 곳을 이용했다고 한다. 당시 산둥 연해의 군사 6만 명 중 이곳에만 3000명 이상이 주둔했고 명나라 말 왜구 격퇴에 큰 공을 세웠던 척계광도 바로 이곳 등주 출신이란다. 등주 고선박물관(古船博物館)은 1990년 완공된 옛 선발 전문 박물관으로 등주 수성의 입구에 있으며 통나무 배, 용선(用船), 차륜선, 모래선 등 여러 배들의 모형들이 전시돼 있었다.
 
3. 순마갱, 고차박물관 견학 및 태산 등정
순마갱에서는 평소 말을 좋아하던 제경공이 순장한 600여 마리의 말 중 108마리가 출토됐다고 한다. 고차박물관(古車博物館)은 중국 고대의 차량이 진열된 곳으로 중국 차량의 발전상과 제조기술을 알 수 있었다. 32필의 말과 10대의 마차가 1990년 임치에서 제남을 거쳐 청도로 가는 고속도로 공사 중 발견된 곳이다.  물산이 풍부한 산둥성의 경제적, 군사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한다.

태산은 198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는 시조에서 태산은 굉장히 높은 산 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와보니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태산을 오르기 전, 남 교수가 정성들여 만든 태산 등정 유인물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됐다. 

버스 30여분, 케이블카를 10분 정도 타고서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한 여 선생님은 케이블카로 올라가면서 산 밑을 내려다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높은 산 위에도 온갖 사찰과 수많은 시설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태산에 있는 사찰에는 향을 피우고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부부 간에 서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뜻의 부부열쇠 꾸러미가 많이 있었다. 태산 등정을 마치고 양사언 선생에게 화답하는 남 교수의 시 한수가 참 재미있었다.

‘태산이 높다 하네 양선생 와봤는가.
우리는 왔다 가네 케이블카 두둥실.
정상을 오르고 보니 공자 마음 알겠네. ‘

양사언은 사실 태산 등정을 하지 못했는데 우리 답사단은 케이블카를 이용해 아주 가볍게 올랐다는 생각을 해보니 양사언 선생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4.  강태공 사당, 제나라 역사박물관, 청주 박물관
강태공 사당으로 이동하면서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낚시꾼으로만 알고 있었던 강태공이 주나라의 군사가로서 제나라 제후에 봉해졌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태공은 139세 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강태공 셋째 아들의 묘인 부조전이 있었다. 고대사를 전공한 김덕원 명지대 교수에 의하면 이곳에서 대한민국 부씨 종친회가 열렸다고 한다. 제나라 역사박물관은 춘추 전국시대 패권을 다투었던 일곱 나라 가운데 제나라의 형성 발전과 흥망을 보여주는 300여점의 유물과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었다.

청주 박물관은 1959년 건립된 종합 박물관으로 중국의 현급 박물관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손꼽히며 도자(陶瓷), 서화, 석각(石刻), 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버스로 이동 중 KBS 신년 스페셜 5부작 최인호의 다큐 로망 '해신 장보고'를 시청했다. 역시 장보고는 당대 최고의 무역상이며 21세기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삶의 방향과 큰 꿈을 제시해준 위대한 인물이었다.
 
5.  성산두, 적산법화원, 장보고 기념관
성산두는 중국의 가장 동쪽에 있는 해안 절벽으로 제일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진시황이 이곳을 세 차례나 찾아와 관련된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금년 5월에 호운각(好運角)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는데, '손님들에게 복과 행운을 주는 곳'이란 의미라고 한다. 중국이 고조선을 공격할 때 여기서 출발했다는 설명을 들을 때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이 번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적산법화원을 견학했다. 적산법화원은 산둥 지역 신라인의 교화(敎化)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고 신라에서 당으로 들어오는 신라인들의 사교처로서의 기능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또한 신라어로 법회(法會)를 열었다고 하니 장보고의 영향으로 당시 신라인들은 큰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았다. 장보고 기념관과 기념탑을 견학하고 느낀 것은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장보고는 우리들에게 위대한 세계시민이 되는 길을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길이 한국으로 통하도록 우리의 국력을 더욱 신장시키고 글로벌 마인드와 감각을 키워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선(造船)은 세계 1위, 해운(海運)은 세계 5위라고 한다.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도 또한 해양강국이 된 것도 그 밑바탕에는 해상왕 장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확신한다. 장보고의 해양 경영 활동이 해양 모델로 제시돼야 해양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장보고의 업적과 활동은 21세기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교훈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6.  귀국
5일간의 빡빡한 여행 일정을 마치고 승선을 했다. 여행은 사람들을 가장 빨리 친밀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낯선 선생님들은 어느 새 친해져서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안에서 또는 갑판 위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유명한 시인 두목(杜牧)은 '번천문집'에서 장보고를 인의(仁義)의 사람이며 개인보다는 국익을 중시한 동이(東夷)의 영웅으로 극찬했다고 한다. 신라 김부식은 중국의 기록이 없었다면 장보고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고 하니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장보고는 모반을 꿈꾸다가 반역자로 몰려 암살당한 인물이라는 왜곡된 평가가 있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장보고 유적지 답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장보고는 당시 골품제의 한계를 극복한 창의력과 추진력, 개척정신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노예로 팔려가는 신라인을 긍휼이 여기고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청해진을 설치할 정도로 측은지심과 의협심이 있었고, 세계 물류의 허브를 장악한 훌륭한 해양 경영자로서 오늘날 글로벌 CEO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법화원을 설립해 신라인의 사교를 돕고 승려와 절을 지원한 종교개혁가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동북아시아의 해상을 장악해 한·중·일 삼국의 무역을 주도하며 한반도를 국제 무역과 물류의 중심으로 일으켜 세운 해상왕 장보고가 그랬듯이 세계 속의 '파워코리아'를 만드는데 일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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