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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아름다운 만남, 윤명 선생님

윤명선생님을 만난 것은 딱 한 번 강릉사랑문인회에서다.

그러니까 2013년 6월 28일, 동해의 푸른 바람과 상큼한 솔잎 향이 어우러진 허난설헌 생가가 있는 강릉원주대학교 홍보관 뜰에서 열린 ‘강릉 가는 길’ 4집 출판기념회에서였다.

성남에서 출발했을 때는 비가 내려 출판기념회 행사가 잘 될까 걱정하며 내려갔는데 행사장에 도착하니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얼굴을 드러냈다. 솔숲 행사장 아래는 많은 회원이 와 있고 몇몇 눈에 익은 얼굴도 보였다.

나는 여성회원들이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출판기념회 의식이 진행되었다. 식장에는 내외 귀빈도 있어 식순이 길어졌다. 먼저 장소를 제공한 전방욱 강릉원주대학교 총장님의 환영사, 이어서 강릉 해밀턴합창단의 축가, '강릉 가는 길' 노래 제창(우리 회원인 이광자 선생의 곡, 김완기 작사), 축하 떡 자르기 등의 의식이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잠시 다과를 나눈 뒤 2부 행사가 이어졌다.

홍성암 회장님(소설가, 전 덕성여대 교수)이 연단에 오르더니 온화한 얼굴에 눈빛 맑은 백발의 노인을 소개하였다. 박수가 뜨겁게 들렸다. 맨 앞에 앉아계신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몇 회원이 극진히 모시는 윤명 선생님이셨다. 이렇게 나는 윤명 선생님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윤명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홍성암 회장님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다.

그 후 해가 지나면서 나는 윤명 선생님을 잊고 말았다. 다시 해가 두 번 바뀌어 올해도 강릉사랑 문인회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강릉으로 내려가기 전 나는 우리 문인협회 카페(강릉 가는 길)를 들려보았다. 게시물 사이 윤명 선생님의 소천 소식이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시간이 없어 자세히 읽지 않았다. 색소폰 연주를 위해 내가 다니는 탑 뮤직 동호회 회원 몇을 대동하여 가기느라고 마음이 여유가 없어서다. 이렇게 출발한 강릉 길, 약간의 설렘도 가지고 찾아간 출판기념회는 강릉의 변두리 한적한 레스토랑이었다.

막상 식장에 들어가니 들뜬 나의 기분과는 추모의 분위기가 엄숙했다. 추모시 낭독, ‘사랑하는 그대에게’ 추모곡 합창과 합주 등을 할 때는 더욱 숙연해졌다.

윤명 선생님은 1926년 평양에서 탄생하셔서 젊은 나이에 강릉일대에서 학생을 가르친 선생님이고 시인이다.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사범학교까지 강릉 일대 학교를 전전하며 문학을 가르치셨다. 선생님의 교직 생활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강릉 사범이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릉 사범에는 윤명 선생님이 가르치는 문예부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강릉사범 문예부 덕분에 이 학교 출신 중 꽤 많은 시인, 소설가, 극작가들이 우리나라 문학을 이끌고 있다.

선생님께서 일생을 몸담고 계신 교단을 떠난다던 소식이 들리던 어느 날 누군가 스승님을 그냥 보낼 수 없으니 뭔가 하자고 제안을 했다. 이렇게 하여 모은 돈으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사은회를 해드리고 가난하게 살면서 시집도 하나 내지 못한 스승님께 시집을 만들어드렸다. 윤명 선생님의 첫 시집이 출간된 것이다.

사은회 자리에서 제자들이 모여 스승님의 시집을 손에 들고 가르친 은혜에 감사하며 사제의 정을 맘껏 풀었다. 의식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 매년 윤명 선생님을 모시고 각자 쓴 글로 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강릉가는 길’이다.

강릉사범 문예반에서 시작한 ‘강릉사랑문인회’에는 우리나라 원로 극작가 신봉승도 계시고 각처에서 이름을 날리는 시인, 소설가도 있어 금세 유명해졌다. 그리고 가입하려는 사람이 많아 강릉을 사랑하는 문인이면 누구에게나 문을 열기로 했다. 그래서 강릉출신 문인, 연고를 가진 문인들이 많다. 지금 ‘강릉가는 길’은 ‘강릉사랑문인회’에서 발간하는 책의 이름이다. (현재 9집 발간)

강릉 사랑문인회하면 윤명 선생님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만남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름다운 만남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을 보기 때문이다.
이 시대 교권이란 무엇일까? 사실 없어져야 할 말이다. 오죽 존경받지 못하니까 가르치는 일도 권리라고 보호를 할까?
사제지간 정도 없는 교권이 가르치는 권한일까? 사랑과 존경 없는 교육이 보람이고 가치일까? 요즘 선생님 참 불쌍하다.

아름다운 정경(윤 명 선생님의 시)

푸르른 그리움이 출렁이는
제2의 고향 동해안 맹방
흰 모래톱 거기 발돋움하던
해당화 보름달 소녀와의
반세기만의 전화 통화

지금은 저만치 극락에서나 피는
서향나무 꽃으로
과천 양지바른 언덕에 기대서서
메마른 내 마음 밭으로
짙은 천리향으로 퍼져와
촉촉이 스며들지만

이윽고 아련한 수평선으로
사라져 갈 까치놀처럼
우리 사제간의 정의 또한
아쉬운 것

하면 우리가 부른
이 듀엣의 세레나데는
과연 3세 인연으로까지 누릴 수 있는
우리들만의 푸짐하고 아름다운
향연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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