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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어이쿠! 아야.”
“조금 있다가 흔들라니까.”
“다른 사람이 따기 전에 서둘러야지.”

벌써 망에 가득 채워졌는데도 욕심이 앞서 검붉게 벌어진 밤송이를 보게 되면 욕심이 앞서 계속하여 밤나무를 흔들게 된다. 오랜 만에 토실토실한 알밤 수확의 즐거움으로 흡족한 미소를 만면에 띠우며 높은 곳으로 오르고 있었다. 아래쪽 보다는 위쪽으로 갈수록 씨알이 굵고 실했다.

아내와 나는 아침 일찍 등산화와 긴팔 옷 그리고 장갑 등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밤따기 체험을 하기 위해 공주로 출발했다. 어릴 때 해마다 밤따기를 하던 추억이 늘 이맘때만 되면 아련히 그리워지기 때문에 몇 년을 벼루다가 이번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체험장 주위에는 전국에서 밤따기 체험을 위해 몰려든 관광버스의 수에 놀랐고, 가족단위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농촌체험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내와 나는 서둘러 체험장 입구에 가서 밤을 주워 담을 망을 구입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이 많은 사람이 밤을 주워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주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했다. 입구에는 유치원에서 단체로 온 꼬맹이들도 많았다. 밤을 따기도 하고 떨어진 밤송이를 벌려 알밤을 줍는 아이들의 환희에 찬 들뜬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넘쳐났다.

요즈음 알밤 따기 이벤트 행사가 전국적으로 많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밤 생산의 50%는 충남에서 나고, 그 중에서도 공주에서 80%는 생산이 된다고 한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밤의 고장 공주, 특히 공주시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정안 밤은 공주시 정안면 농가에서 생산하는 지역 특산품이다. 정안면의 1100여 농가 중 60% 정도가 밤나무 재배 농가일 만큼 정안면은 공주밤의 주산지이며 연간 160억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특산품의 고장이다. 정안 밤이 이렇게 유명해진 까닭은 차령산맥 주변에 위치하여 밤나무의 생육에 적합한 기후와 토질이 형성되어 당도가 높고 고소한 정안밤 특유의 맛이 있으며 저장력이 타지역 밤보다 우수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하여 전국에서 대형버스를 이용하여 체험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살았던 고향은 골짜기 마다 매화꽃이 만발하고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피는 매화골 면소재지에 살았다. 면 소재지 동네이기에 동네가 꽤나 컸다. 그리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로가 입소문으로 동네 모든 사람들이 알고 기쁠 때나 슬플 때 서로가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인정 많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황악산과 민주지산 및 삼도봉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동네 앞 냇가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늘려 있어서 미역 감고 고기잡이 하는 데에는 안성맞춤이었고, 아름다운 꽃들이 사계절 만발하는 골짜기마다 과일나무로 철철이 향기가 넘쳐나는 전형적인 산동네이었다.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골안 비실 기슭에 우리 감나무와 밤나무 단지가 있었다. 감이나 밤을 따러 갈 때는 온 식구가 함께 갔다. 우리 집에서 너무나 멀기 때문에 감이나 밤을 따러 갈 때에는 원적 가는 것처럼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여 밥을 싸가지고 갔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밤을 털 때 주로 알밤을 줍고, 벌어진 알밤은 양쪽 발로 밟아 벌려서 꺼낸다. 그러나 밤송이는 일일이 그곳에서 다 꺼낼 수가 없기 때문에 밤을 털고 난 다음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 곳에 모아서 가마니에다가 밤송이를 가득 발로 밟아 가며 담는다. 빼곡히 채워진 밤송이는 밤나무 가지로 입구를 틀어막고 단단히 묶어서 소의 등에 양쪽으로 두 가마씩 네 가마니를 얹는다. 소를 앞세운 아버지는 지개에 밤송이 한 가마니를 등에 지고 우리는 알밤 주은 것을 통에 넣어 산길을 따라 집으로 오는 것이다.

오는 길이 멀기도 하였지만 너무 무겁기 때문에 항상 쉬는 곳이 두어군데 있다. 그곳 쉬는 곳에는 보리수나무가 있어서 우리는 보리똥 열매를 맛있게 따먹고 바알갛게 익은 보리수 가지를 꺾어서 집으로 가지고 오기도 하였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는 가을바람에 아름답게 휘날리던 억세 풀과 누렇게 익은 벼 사이로 요상하게 생긴 허수아비가 흔들리는 모습사이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훠이~훠이~” 양재기를 두드리며 온 산에 참새 쫓는 메아리 소리에 참새들은 신바람이 난 듯 더욱 힘차게 날아다니던 정경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따가지고 온 밤송이는 우리 집 뒤 안 감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가마니를 덮어 오래도록 두었다가 밤송이가 검붉게 변하였을 때 빨래방망이 같은 것으로 두들기면 쉽게 밤을 꺼낼 수 있었다. 밤을 보관하기 위해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독에 넣어두기도 하고, 땅을 파서 모래가마니에 넣어 밤을 보관하였다. 아이들 가을 소풍 때나 운동회 때 어느 가정이든지 찐 계란과 찐 밤은 단연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지금은 축제에서 밤 막걸리, 구운 밤, 밤 국수 등 푸짐한 밤 요리를 맛볼 수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나 똑 같이 준비하는 찐 밤 이었지만,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은 그 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난번에 벌초하러 가면서 우리 밤나무단지와 감 밭을 살펴보니 밤나무는 고목이 되었고, 감나무도 시커멓게 변하여 몇 개만 달랑 붙어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이 밤나무와 감나무단지에서 든든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젊음을 볼 수 있었던 곳인데 세월은 어쩔 수 없나보다. 밭둑에 썰렁함이 묻어나는 고목이 된 감나무에 덩그렇게 달려있는 월하와 둥시는 언제 짬을 내어 딸 수 있단 말인가? 공연히 어릴 때 부모님이 따다주시던 밤과 감을 생각하니 부모님이 그립기만 하다. 그래도 자식들을 위해 그 먼 곳까지 멀다하지 않고 함께 밤 따기를 하던 그 아름다운 추억이 묻어나는 소중함을 안겨 주었는데,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과욕을 부려 많이 땄던 토실토실한 알밤은 가족끼리 함께 온 꼬맹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며 내려오는 길을 뒤돌아보니 억새풀 사이로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여보!, 이번 추석에는 아이들과 함께 성묘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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