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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벽 앞에서 사다리를 놓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 졸업하네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2009년 2월, 졸업생의 한 어머니는 나에게 이 말을 남기고 졸업식장을 떠나갔다. 이 말을 듣기까지 나는 일 년 동안 그 아이를 보면서 마음을 닦고 또 닦았다. 이제 마음 속 구석구석에 쌓여 있던 추억의 조각을 맞추어보니 한 송이의 꽃그림이 그려진다.

2008년 3월에 OO의 한 중학교 중3 담임으로 부임했다. 그 해에 개교한 학교라 학생이라고 해봐야 1학년 2개 반, 2학년 2명, 3학년 2명에 불과했다. 개교 첫 해부터 모든 학년이 갖추어진 형태로 개교하는 바람에 우리 반의 구성원은 모두 전학 온 학생들이었다. 나는 3학년 1반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그 이전까지 15여 년 간 줄곧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입시교육에만 매달리다 중학교로 내려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한 달에 두 번 쉬고 거의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입시문제로 씨름하다보니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심장이 정상인보다 비대해졌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고민했다. 결국 의사의 권고에 따라 야간 근무가 적은 중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그 당시, 건강을 추스르면서 새싹과 같은 중학생들과 보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고등학교를 떠나올 때, 여러 선생님들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중학교에 처음 근무하면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아마 부적응으로 1년 만에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나는 중학교 부적응 교사라는 오명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 말들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일단 중학교에 부임해서 보니 중학생들은 마냥 귀엽고 정겹게 보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어떤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교 때의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고 보듬어 주었다. 이것이 중학교를 근무하는 내내 큰 화근으로 번질 줄을 몰랐다.

“나는 중학교 근무는 처음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해 하나 되는 마음으로 생활하자.”
“선생님 첫날인데, 우리 놀아요.”
“아니다, 중학생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선생님 노래 들어요.”
“인생에서 목표를 빨리 설정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요. 그러면 한 사람씩 가장 하고 싶은 직업을 이야기 해보자구나.”
“그런거, 왜 해야 하나요. 잘 되겠지요. 뭐.”

첫 날 첫 시간부터 동문서답을 했다. 서정주 시인의 시구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서리도 내리고 천둥과 번개를 칠 때도 있다.’는 구절을 떠올리면서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학급 교육목표를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교육으로 학급을 이끌어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첫날 약간 당황했다. 첫 날이라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우리 반 구성원은 학기 초에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한 명으로 단 두 명이 1학기 끝날 무렵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넓은 교실에 두 명의 학생이 앉아 수업을 받다보니 우리 반에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쏟으셨다. 거의 개인지도 이상으로 정성과 사랑을 쏟으셨다. 그런데, 그 둘 중 남학생이 3월말부터 무단결석을 하기 시작했다. 이 남학생은 이 학교 저 학교 학교부적응으로 전학 다니다가 마지막에 우리 학교 내 반 학생이 되었다. 무단결석하는 날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는 상황이 안 좋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날 아이를 불러서 왜 무단결석을 했느냐고 상담을 시도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학교가 재미없어요.’라는 말이었다.

나는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다.’, 나는 ‘민주시민으로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자면 반드시 중학교 교육과정은 이수해야 한다’는 점을 쉽게 풀어서 이야기했다. 그 아이는 잠자코 듣고만 있을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내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그 후에 4월과 5월에는 수시로 무단결석을 계속하는 바람에 1학기부터 졸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출석일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석할 때마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지만 어머니의 답변은 병이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사유를 열거하면서 아이를 감싸기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기에 하루는 퇴근길에 아이의 집에 가보니 아이는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담임의 방문에 어머니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그냥 집에서 컴퓨터를 친구로 대신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어머니 입회하에 무단결석하는 이유를 물었다.

“친구도 없고, 공부만 하러 학교 가는 것 같아요.”
“2학년 친구도 있지 않느냐. 또 우리 반 여학생도 있지 않니?”
“학생 수가 없으니까 공부하는 기계 같아요.”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현실이라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수업 시간 질문을 많이 하니 부담스러워요.”

아이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단결석 며칠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며칠을 더 결석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졸업을 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이 아이는 머리는 의무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은 듯했다.

이 아이에게 공부보다는 졸업을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어 6월말부터 학교에 나올 것을 종용했다. 내가 전화를 하면 잘 안 받기에 2학년 여학생을 시켜서 학교에 등교 지도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렇게까지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가? 학교 공부만이 능사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이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적어도 중학교는 졸업해야 하는데, 그래야 어디 가서 무시는 당하지 않을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학교에 나오게 할 방안을 모색해봤지만 아이의 관심을 끌만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편, 머리카락도 너무 길어서 얼굴을 가릴 정도가 되었기에,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하라고 하면 무단결석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고작 2명의 아이도 지도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학생지도를 잘 하지 못하는 담임의 책임이 막중하기에 학교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늘 죄인이 된 기분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것도 멋쩍어 고등학교를 떠나올 때,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 선생님들의 말이 생각이 났다.

‘선생님은 너무 유약하셔서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중학생은 하나하나 지적해야 알아듣습니다.’
정말 1년 만에 내신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단 부적응 내신을 내고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기에 앞서 이 아이를 졸업을 시켜야겠다는 나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공부보다는 아이가 흥미를 끌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이 아이를 졸업시키기 위해 학교에 출근하지마자 가장 먼저 하는 업무가 아이를 전화로 깨워 등교를 종용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아이가 부담을 느끼는 학력에 대해서 가급적 자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공동체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나갔다.

그 이후에 어머니는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아이 졸업시키려고 한 점 감사하지만 저도 어찌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울먹였다. ‘이 어머니의 마음을 이 아이는 얼마나 알까?’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전화를 하면,

“학교에 나간다니까요?”
“한 두 번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생각이 없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도 있구나.’ 이 아이까지 내가 보듬어 졸업시켜야 하나 의문을 가졌지만 ‘David Matza의 편류이론’에 의하면 ‘문제아는 일시적 현상으로 언젠가는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믿고, 이 아이를 어떻게든 졸업을 시켜 어른이 되면 정상인으로 돌아오길 기대해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으로 전환시킨 결과인지 모르지만 아이에게 교내봉사를 시키면 반성문에 “화단 잡초를 제거하고 나서 제 자신의 생각이 한 순간에 다 바뀌지는 않겠지만 잡초 제거를 하면서 햇빛에서 땀 흘려보니 생각이 어느 정도 바뀐 것을 느꼈습니다.”라는 글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아 그 다음 날 또 무단결석을 반복했다. 물론 나는 이 학생이 하루아침에 정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으로 다가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무단결석 횟수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교장선생님께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니’ 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편지를 교장 선생님께 올렸다.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 저는 3학년 1반 OOO라고 합니다. 제가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올리는 이유는 제가 저지른 잘못을 다시 되새겨 생각해보니 교장 선생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너무 커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제가 친구들 유혹에 넘어가서 무단결석을 많이 하고 제 자신의 머리 속에 박힌 잘못된 생각 때문에 무단결석을 했습니다. 말도 없이 무단결석한 점 죄송합니다. 제가 앞으로는 무단결석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제가 생각없이 행동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말로 성실하게 무단결석을 하지 않고 남은 3학년 동안 출석 잘하고 즐겁게 졸업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없이 무단결석을 한 점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 다니겠습니다. 걱정 끼쳐 드리고 속상하게 해드린 점 정말로 사과드립니다. OOO올림

이런 아이도 졸업식장에서 후배들에게 ‘너희들 선생님 말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내 마음 속에 꽃씨가 떨어지면서 싹이 트는 듯 했다. 이제 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추억의 꽃이 생기를 얻고 향기를 뿜어낼 날을 기다려본다. 그 꽃이 벽을 타고 오르는 사다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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