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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에 자왈(子曰)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자(子)자는 스승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논어의 자왈(子曰)은 공자의 가르침을 뜻한다. 하지만 공자 이외의 사람의 가르침은 맹자왈(孟子曰), 노자왈(老子曰)처럼 가르침을 준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굳이 스승님의 이름을 기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승님의 존함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제자로서 예의를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서 기원전 479년까지 73세를 살았다. 공자는 주나라의 여러 제후국 가운데 약소국인 노나라 추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지금의 산동성 곡부에 해당 한다. 본래 노나라는 주나라 초기의 공신인 주공의 후손의 땅이었다. 공자가 그리던 인물은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완비하고 통치 기반을 다진 주공이다. 따라서 곡부는 비록 작은 땅이기는 해도 상당한 문화수준을 가졌다. 공자사상은 이러한 문화적 토양과 무관하지 않다.

공자의 집안은 몰락한 귀족으로 아버지 숙량흘은 하급 무사였다. 공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공자의 아버지는 몸이 성한 자식을 갖고 싶어서 뒤늦게 안징재라는 여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때 얻은 아이가 공자라고 한다. 당시 숙량흘은 70세가 넘었고, 안징재는 어린 소녀였다고 한다. 이러한 나이 차이 때문에 사마천은 ‘野合而生’(야합해서 낳았다)이라고 공자의 출생을 기록했다. 야합(野合)이란 들에서 합쳐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사생아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학자들은 공자를 폄하하는 기록이기 때문 온갖 근거를 동원하여 미화하였다. 어떤 주장은 어머니가 이산(尼山)에 기도를 드려 공자를 낳았다고도 했다.

공자의 얼굴은 머리 가운데가 들어가고 바깥이 불룩해서 마치 언덕 모양을 연상했다. 그래서 이름을 구(丘:언덕)라고 지었다는 말이 있다. 공자에게는 10명의 많은 누나들과 형이 하나 있었는데 형은 몸이 성치 못했다. 아버지 숙량흘이 안징재를 만난 것도 똑똑한 아들은 얻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공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은 중니(仲尼)인데, 중(仲)은 둘째 아들이라는 뜻이며 니(尼)는 앞에서 말한 이산(尼山)에서 따왔다고 한다.

공자의 부친은 공자가 세 살 때 돌아가고, 모친은 그가 24세 때 세상을 떠나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공자는 15세가 되서야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나 학문에 있어서 누구 못지않은 열정이 있었다. 공자는 19세 때(B.C. 533년) 견관씨의 딸과 혼인하고 다음해 아들 리를 낳았다. 공자는 결혼하던 해에 벼슬길에 나갔다. 사회에 나가 젊은 공자는 정원을 관리하고 가축을 돌보기도 하고 창고에서 물건을 내주고 받는 맡아했다. 공자의 이런 경험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자가 살던 당시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고 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라는 이름은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春秋)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주나라가 멸하고 작은 나라들끼리 싸움을 그치지 않아 봄철에 씨앗을 뿌릴 수도 없고 가을에 추수할 겨를도 없었다. 이 때문 추운 겨울을 나기도 어려워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겼다. 또한 신분제도가 크게 흔들려 좋은 관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관리를 조달하기 위해 명망 있는 학자들이 가르친 사람을 찾았다. 이 시기 훌륭한 사상가들을 많이 배출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이는 또한 비슷한 시기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와 비슷하다.

공자는 무엇이 바른 인간관계이며 무엇이 바른 정치인가,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끝임 없이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자의 가르침은 통치의 기본이 되었으며 인간관계에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공자의 탄생이 사생아라 해서 공자의 위대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선 점에서 위대성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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