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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새해첫날, 아이들이 보내 온 가장 큰 선물

매년 명절 때가 되면 졸업한 제자들로부터 안부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아이들과 통화를 하면서 그리고 답장을 해주면서 느끼는바, ‘그래도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주제넘게 하곤 한다. 한편 아이들과 함께 한 날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곤 한다.

그런데 재학 중인 아이들로부터 많은 전화나 메시지를 받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그건, 사제 간의 정이 갈수록 퇴색해져 가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기보다 그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 선생님 또한 아이들과의 이별을 불편한 혹을 떼어내듯 속 시원하게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지난 한 해는 내게 악몽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부 아이들의 연일 끊이지 않는 사고와 무단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 하는 아이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그렇지 않은 아이들마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마주치기 싫어 수업 시간 외 교실에 들어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어느 해보다 잔소리가 유난히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내심 하루라도 빨리 이 아이들과 헤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란 적도 여러 번. 

지난 2월 7일(목요일) 종업식 날. 간단하게 교실 청소를 시킨 뒤, 아이들에게 마지막 종례를 하기 위해 교실로 갔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보다 가방을 메고 진급 반을 빨리 불러 달라고 요구하며 아우성을 쳤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이 나를 더 화나게 하였으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감정을 잠재웠다.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간단히 하고 난 뒤, 반을 불러주었다. 아이들은 배정받은 반을 확인하자마자 한마디 말도 없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나마 몇 명의 아이들이 다가와 작별 인사를 해주어 위안을 얻긴 했으나 조금은 씁쓸함이 감돌았다.     

모든 아이가 빠져나간 텅 빈 교실을 둘러보면서 지난 일 년이 떠올려졌다. 좋은 추억보다 나쁜 추억을 더 많이 주었던 아이들과 헤어지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막상 아이들과 작별을 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해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못할 때마다 원망하고 미워한 것이 후회되었다. 어쩌면 아이들 또한 나와 같은 담임과 함께한 일 년이 삼 년처럼 느껴졌으리라.

올 설 명절 연휴가 예년에 비해 짧기에 가족들과 조용히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부모님께는 봄방학을 이용하여 조만간 찾아뵙기로 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졸업하여 사회인이 된 제자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매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제자가 고맙기도 하고 찾아뵙지 못함을 멀리서나마 안부전화나 문자메시지를 전하는 제자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특히 올 설 명절에는 생각지도 못한 문자메시지가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종업식 날, 반 배정을 알자마자 다시는 보지 않을 듯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나간 아이들이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형식적인 내용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말이다.

아이들 대부분은 지난 일 년 동안 말썽을 부린 것에 죄송하고 반성한다며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의 글을 사랑의 하트와 함께 보냈다. 결석을 많이 하여 하마터면 진급을 못 할 뻔한 한 녀석은 잘 이끌어 준 것에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지각을 자주 하여 아침마다 꾸지람을 듣곤 했던 한 여학생은 선생님의 진심을 이제야 알았다며 때늦은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새해부터는 절대로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제자가 되겠다며 지켜보라는 다짐의 글을 적기도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문자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지난 아이들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자신의 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고치려는 의지가 부족했을 뿐.

새해 첫날, 아이들로부터 받은 뜻밖의 새해 선물로 올 한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또한 이제 고3이 되는 아이들에게 좋은 덕담(德談)으로 화답을 해주었다.

“얘들아!
 항상 건강하고 올 한해 하고자 하는 일 모두 이루기를 바라마.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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