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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목욕탕의 물’ 헤퍼도 너무 헤프다

언제부턴가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할 때마다 목욕하는 습관이 생겼다. ‘목욕이 보약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목욕을 하고 나면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고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더군다나 동네 가까이에 목욕탕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가 있다.

금요일 오후, 며칠째 계속되는 감기로 몸이 좋지 않아 목욕하면 조금 나아질까 하는 생각으로 목욕탕으로 갔다. 평일이기에 부담 없이 목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목욕탕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호자와 함께 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친구들과 함께 온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연일 이어지는 맹추위로 밖에 나가 놀지 못한 아이들이 추위를 피하려는 곳 중의 하나로 목욕탕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방학 중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목욕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조용히 앉아 목욕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함께 온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목욕탕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말 그대로 목욕탕은 아이들의 무법천지였다.

수영금지라는 경고문에도 일부 아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냉탕에서 물장구를 치며 수영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샤워기로 물싸움을 하여 주위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온탕은 많은 아이의 왕래가 잦은 탓인지 물이 식어 있었으며 온갖 부유물이 떠다녀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순간,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 자신이 목욕탕이 아니라 동네 놀이터에 왔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누구 하나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물론 목욕탕에는 아이들을 나무랄 연령의 어른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참다못해 장난이 심한 몇 명의 아이들에게 잠깐 주의를 주었으나 그때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람이 없는 데도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샤워기에서 물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으며, 목욕 중에도 물을 잠그지 않아 뜨거운 물이 대야 위로 넘쳐 하수구로 흘러갔다. 아까운 물이 하수구로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물 씀씀이가 전국에 있는 모든 목욕탕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고 물을 물 쓰듯이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로서 왠지 모르게 조금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그나마 잘 실천하고 있는 물 절약 운동이 물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목욕탕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이 계속해서 나오는 샤워기를 찾아다니며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한 아이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는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용하지 않는 샤워기의 수도꼭지 모두를 잠그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세신을 하고 있던 또래 아이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이었다.

내심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하여 그 아이의 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해 졌다. 그래서 목욕탕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선행이 궁금하여 다가가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그 아이는 수업시간 물의 소중함을 배웠다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대답을 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아간 목욕탕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일로 하마터면 기분을 망칠 뻔했으나 한 아이의 행동으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하루였다. 비록 목욕은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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