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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얘들아, 쓰레기 주우며 스트레스 해소하지 않을래?"

점심 후, 잠깐이나마 휴식을 가지려고 교정을 거닐었다. 교정의 벤치 여기저기에는 점심을 먹고 난 아이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 중 일부는 점심 대용으로 매점에서 산 과자와 빵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을 피해 쉴 곳을 찾았다. 점심시간이라 어느 곳 하나 아이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찾은 곳이 교실과 조금 떨어진 체육관 주위 쉼터였다. 5교시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잠깐 쉬어야겠다는 요량으로 벤치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누군가가 버려놓은 껌이 양복바지 엉덩이 부분에 묻은 것이 아닌가? 화가 났지만 우선 껌을 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모두를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벤치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이들이 씹다 버린 껌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나와 같은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벤치 주변은 아이들이 버린 과자 봉지와 휴지로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심지어 아이들은 바닥에 버린 것도 모자라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나뭇가지에 끼워 넣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학교에서 비치해 둔 쓰레기통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데는 아이들의 의식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배워 온 생활습관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퇴색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참다못해 아이들 몇 명과 함께 교정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로 하였다. 잠깐 주운 쓰레기가 쓰레기봉투 반을 채울 정도로 교정은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 또한 놀라는 눈치였다. 청소시간 반별 담당구역을 정해놓고 청소를 시키고 있지만, 그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은 어떠한가? 습관이 잘 길들지 않는 탓에 아이들은 매점에서 사온 과자를 먹고 난 뒤,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교실 바닥에 그대로 버려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고민하다가 아이들의 습관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쓰레기 벌점제였다.
 
즉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 주변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벌점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벌점 30점이 되면 일주일 동안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정 주변 쓰레기를 줍게 하였다. 그리고 매점에서 산 과자를 교실로 가져오지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청소시간, 교실이 깨끗하다고 판단되면 실장 권한으로 정리 정돈만 하고 쓸기와 닦기를 생략해도 관계없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이 벌점제에 대해 아이들은 불만이 많았다. 특히 자리에 떨어진 휴지를 발로 차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다가 언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버린 쓰레기가 아니라며 발뺌을 하다가 야단을 맞기도 하였다. 한편 자신의 구역을 확실히 정해놓고 관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청소 벌점제가 시행된 후, 교실은 예전보다 매우 깨끗해 졌으며 매일 넘쳐났던 쓰레기통의 쓰레기도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던 아이들의 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아이들의 습관은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 또한 다양해진 것 같다. 화가 날 때마다, 화장을 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하고 싶은 말을 낙서로 풀기도 하고 심지어 분풀이로 학교 시설물을 부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집어 던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이들도 있어 의외였다. 
 
한번은 생각 없이 창문 밖으로 쓰레기를 던진 아이를 잡아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쓰레기를 던지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주변이 더러워진다는 사실보다 단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그 아이의 말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중요한 사실은 쓰레기를 버리고 난 뒤, 자신의 행동에 전혀 반성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태도였다.
 
아이들에게 예전에 없던 버릇이 갑자기 생겨난 데는 인성을 무시한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요즘 아이들. 학교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나름대로 해소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현실은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받아줄 만큼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아무런 부담이 없고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쓰레기 투척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요즘 교정 주변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있지만 학교현장은 줍는 사람보다 버리는 사람이 더 많아 담당 부서인 환경부는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진정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성적보다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시민의식이 아닐까 싶다. 교과서에서 배운 기본 소양을 실천하지 않는 아이들이 설령, 사회 큰 인물이 된다 할지라도 과연 언행일치를 실천하는 사람(人)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따라서 지나친 지식 강요보다 기본을 실천할 줄 아는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쓰레기 없는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 또한 잘 알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일거양실(一擧兩失)의 어리석음보다 쓰레기를 주우며 스트레스를 푸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지혜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얘들아, 쓰레기 주우며 스트레스 해소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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