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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TV와 일상


필자의 취미는 친구와 전화로 '수다떨기', 'TV 보기', ‘각종 인쇄물 읽어보기’이다. 그 중에서도 친구와의 오랜 수다로 머리가 멍해지고 팔이 아퍼지고 지루해질 때, 인쇄물로 눈이 피곤하고 쉬고 싶어질 때 소파에 편히 누워 리모콘을 손에 들고 TV를 켠다. 손가락 끝으로 톡톡 누르면 전국 곳곳, 세계의 이모저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거운 주제의 시사물이 눈에 들어오고 생각이 많아진다.

“시사기획 쌈-새터민 만명, 얼굴없는 대한민국 주민”

새터민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온 북한 주민으로 남한 정부로부터 정착을 위해 일정부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필자의 부모님은 1,4 후퇴 때 피난을 와 남한에 정착한 분들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활짝열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아 열심히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새터민들이 주로 입주하는 임대아파트에서 새터민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기존의 주민들과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을 중심으로 통일을 대비한 문제점 점검과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한 것이었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려면 가슴은 따듯할지언정 머리는 냉정해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지 어느 한 편에 치우친 편향성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하게 만들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한다.

프로그램의 방향은 다소 감상적, 감정적이었다.

남한의 주민들은 새터민들에 대해 57%가 무관심하고 23%정도가 동포애를 느낀다고 한 반면 새터민은 48%가 동포애를 느낀다고 하였으며, 남한의 주민은 새터민과 만난 사람일수록 새터민을 싫어하고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방송에서는 남한의 주민들이 더 동포를 따듯하게 여겨야 한다고 질책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같은 말과 문화를 지닌 지역으로의 이동이므로 다소 적절하지는 않더라도 새터민은 헐벗고 가난한 자신의 지역을 떠나 잘 살아보겠다고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나 의사나 변호사 등 한국 사회에서 우대받는 전문직이나 앞날에 비젼이 불투명해 보다 나은 삶을 택해 미국으로 이민한 초기 한국 이민자와 그 처지를 비교할 수 있다.

새터민의 경우는 미국이 정책적으로 자신의 국가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그야말로 동포애를 발휘하여 험하고 어려운 장벽을 넘어 고생하고 남한 땅에 왔다고 정착금을 주고 적응훈련을 시켜주고 있으므로 상황이 낫다. 전쟁 중에 이북에서 피난 온 내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여도 훨씬 형편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포애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면 불평과 불만만 많아질 뿐이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에 보탬이 되는 집단과 사람들이 우대를 받는다. 미국에 이민 간 이민자들은 사탕수수밭에서 혹독한 고생 끝에 현재의 다소 안정된 생활을 얻은 것이며, 전문가 집단으로 간 사람들도 그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하는 자신의 노력에 의지할 뿐 타인의 도움에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사회에서 열심히 일을 해 개인적인 부는 축적한 요즈음도 집단에 보탬이 되는 일에는 인색하다는 이유로 미국내에서 한국인들은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어느 사회고 그 개인의 노력과 그들의 동질 집단이 적응을 위해 노력하고 그 사회에 보탬이 되었을 때 대우를 받고 주변의 타 집단들과 통합과 융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차원에서는 보다 큰 시각으로 통일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정착금을 주고 교육을 해주고 집터를 주지만 주민의 경우는 다르다. 남한의 주민은 개인적인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살다보면 굳이 새터민이 아니라도 이웃과의 갈등으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미 정착하여 같은 주민이 된 사람들에게 새터민이므로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자체가 무리이다. 문화가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주민으로 자신을 위해 생활을 해가는 중 부닥치는 어려움은 스스로 혹은 같은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끼리 해결책과 위안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면 어느 곳이나 텃세라는 것이 있고 사는데 어려움이 있다. 남한 사람들도 남한 내 다른 곳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60년의 분단으로 인해 문화가 다르고 생활방식도 달라졌으므로 미국이라는 아주 다른 나라에 정착하였다는 심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새터민의 적응을 돕는 길이다. 차별이 서러워 영국의 런던으로 망명을 신청했다는 새터민은 영국에 가면 그야말로 절절히 모든 것에서 혼자라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선진국 시스템에 한국적 정서 즉 정에 의거한 인정은 없다. 능력과 노력만이 요구된다. 남한 사회는 많은 것을 베풀고 있다. 방송이나 신문 등 매스컴의 무뇌적인 행위로 탈북자의 이북 가족이 위험해지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한 등급 낮은 사람들, 모자라는 사람들의 우월적 생각과 무시하는 행동은 어느 사회에서고 있는 일이다. 그럴수록 더 노력하고 합심하여 그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굶주림에서 죽어가는 그 곳보다는 백배 천배 낫지 않은가. 그 이상을 동포애에 의지한다면 남한 사회에서 더욱 고립되고, 남한 주민들의 반발도 높아져 적응과 화합은 요원해질 것이다.

돌이 채 안된 버려진 갓난쟁이를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다가가는 봉사자에게는 아기를 돌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아기는 그 상황이 안되긴 했지만 어찌되었거나 혼자서 이겨내는 마음가짐과 처지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 사회에서 살아날 확률이 높다. ‘그 아기를 평생 데리고 돌볼 생각이 아니라면 안아주지 마세요.’ 라고 말하던 영아원 선생님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필자가 영아원에 가서 한 방에 있는 여덟명의 아기 중 한 아기가 안아달라고 팔을 벌리기에 안아주려하자 선생님이 만류하며 들려준 말이다.

이북에서 한학을 공부하셨던 필자의 할아버님도 피난을 내려와 벽돌을 지고 공장을 짓는 노동자로 일했으며, 아이 열을 낳고도 오직 하나만 살아남은 귀한 아들이라고 이름을 여럿 가진 필자의 아버님도 생활고에 못 이겨 아이스케키통을 들고 아이스케키를 팔러 나갔다가 ‘사세요’라는 말을 못해 모두 녹여버리기를 반복하였단다. 골목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아버지가 옛날에 다니던 길이라고 말씀하실 때 필자의 형제들은 눈물이 났었다. 그 인고의 세월 위에 자손들이 잘난 체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할아버님은 전쟁 중에 하나뿐인 아들이 군인으로 징집될까봐 크게 걱정을 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고 하셨다.

그 때에 비교하면 지금의 새터민은 너무도 좋은 환경이다. 무리한 기대와 희망, 요구는 금물이며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을 위한 현실적인 교육 즉 직업훈련, 사기에 대한 주의사항 등을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 새터민 자신의 성공적인 삶과 남한 사회의 발전 더 나아가 통일 한국에 보탬이 되는 길이다.

고단한 일상과 버거운 삶의 무게로 고향과 어머님을 그리며 눈물로 얼룩진 글을 썼던 아버지의 일기가 생각났다. 책들이 뭉텅뭉텅 쌓여진 다락방을 뒤지다가 필자가 발견한 희긋히긋노르스름하게 바랜 여러 권의 책이 아버지의 일기였다.

TV를 보며 다시 한번 부모님의 어렵고 힘든 세월을 되새기고 직접적인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에둘러서 “아버지, 아픈 데는 없으시지요? 잘 챙겨드시고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세요. 여기 식구들은 모두 다 잘 있어요.” 라고 전화를 드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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