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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곰삭은 부부의 일상

50대에 입문하고 은혼식을 코앞에 둔 필자에게 흰머리와 주름살, 요기조기 고장이 나서 수리를 요하는 삭신을 바라보는 일은 우울하기만 한 것일까?

오랜 기간 사용한 기관들이 노후되어 고장이 나는 일은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우울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돋아나오는 새살처럼 뺀들뺀들한 모습을 바라보는 일 또한 괴상한 이물질을 대하는 듯 받아들이기에 유쾌한 것은 아니다. 몸이 아픈 것만 빼고 적당한 흰머리, 주름살은 필자에겐 정겹다. 흰머리에 주름살 진 모습을 지닌 이들도 또한 정겹다.

직장생활을 하는 필자에게 점심시간은 다양한 주제와 철학, 삶의 방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동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푸는 시간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돋보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해도 빛나는 업적을 쌓고, 인맥을 찾아다녀야 하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서 얼마정도 벗어날 수 있기에 여유라는 모래밭에서 함께 토닥토닥 두꺼비집을 지으며 씩둑꺽둑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성향 비슷한 혹은 가벼운 재담을 나눌 동료를 먼저 찾는다.

날씨도 좋아 연분홍의 벚꽃이 화사하게 날리는 봄날 오전 수업을 끝내고 점심식사를 위해 학교식당으로 들어섰다. 필자는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 식판에 준비된 밥과 국, 반찬을 적당히 담아들고 실내를 휘~익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함께 테이블에 앉아 담소하며 식사를 즐기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눈길이 마주치는 선생님마다 눈인사를 나눈 뒤 그 중 한 테이블로 가서 소리 내어 인사를 하고 마침 한 자리 비어있는 곳에 앉아 이 장소에 온 목적 즉 먹는 일에 충실하며 식욕을 생존을 위한 동물적 행위가 아닌 고차원적 유희로 승화시킨 대화를 시작한다.

나이가 50대이고 신분이 교수라지만 같은 연배의 동료로 서로 격의가 없는데 대화의 주제나 표현방식에 선생의 정형화된 틀이 있을 리 없다. 필자가 인터넷 신문에 올린 글에 대한 평부터 식사비 인상문제에 대한 의견, 예전과 달리 집안에서 우아한 어른으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는 남편의 위상에 대한 못마땅한 심정을 직설적으로 혹은 반어적으로 언성까지 높여가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말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서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바 없이 인사말만 하고 지냈을지라도 오래 보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편하고 두루뭉실한지도 모르겠다.

만남의 자리에서 분위기가 편해지면 우스개 소리로 등장하는 나이든 부부에 관한 일화는 퍽 비극적이다. 남성의 우월적인 지위하에 억압을 받는 여성들의 사소한 반항으로 들리는 수다시리즈로 ‘힘만 없어져봐라 그 때가 되면 복수하리라’로 요약된다. 이사갈 때 강아지를 잘 안고 있으라는 둥, 곰국을 끓여놓으면 조심하라는 둥의 류이다. 이러한 우스개 소리는 어렵고 힘든 현실을 슬기롭게 이겨내려는 지혜로 피로한 심신을 정화시키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담당한다. 수다 즉 말이 많음은 문제를 일으키는 여지가 있으므로 예로부터 지탄을 받아왔으나 몸 안에 쌓여진 노폐물이 밖으로 배출되지 않으면 병이 생기듯 마음에 쌓인 노폐물 역시 밖으로 내보내져야 한다. 적절치 못하고, 과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수다 뿐 아니라 여타의 모든 일에서도 그러하다. 필자는 적절한 수다의 순기능을 지지하고 있으나 어른 뿐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의 점점 더 소란해지는 수다의 정도를 우려되는 사회현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대화와 수다의 차이는 절제력에 있지 않을까?

점심을 들며 필자의 일행이 나눈 이야기는 남편의 우월적 지위와 억압에 대한 마나님(여편)의 반항이 아니라 가정 내에서 행사되는 마나님의 우월적 지위와 그에 반항하는 남편의 불편한 심기 표출이었다. 새댁 때에는 얌전하고 고분고분했던 마나님이 나이가 들면서 호랑이가 되어간다는 말씀이다. 마나님을 어찌 감히 함부로 여길 수 있냐며 친구라고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 분’이라며 떠받들고 살고 있다고 하는 말씀, 경제 주도권이 마나님께 있어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카드로 결제를 하여도 마나님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가 일상의 시시콜콜한 간섭을 받고 산다는 말씀 등 비슷한 연배의 비슷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격의 없는 대화였다.

짧지 않은 세월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비통한 일을 함께 겪으며 서로 의지하고, 기대어 살며, 감추고 덧붙일 일 없는 곰삭은 부부들이라 남들에게 어떠한 흉거리를 드러내어도 ‘재미나게 살고 있다’는 여유로 들렸다.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져 나와 너 사이에 간격이 없어진 곰삭은 부부의 일상은 어떠할까?

스스로 곰삭은 부부라고 생각하는 필자와 필자가 보기에 닭살 돋는 사랑을 나누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도 티격태격하는 중에도 훈풍이 도는 주변 친구 부부들의 단편적 일상생활로 유추하여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장면 1.
느긋한 휴일 남편은 저녁을 먹고 TV를 틀어놓고 한편으로는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뒤적인다. 옆에 앉아 있는 마나님은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남편의 불만 중의 하나는 마나님이 TV를 보며 극중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분해서 쌕쌕거리기도 하고, 울고불고 야단을 한다는 데 있으나 그러한 일상도 삷을 풍요롭게 하는 양념중의 하나로 치며 내색하지 않는다. 남편이 배안이 부글거리는지 ‘짹’ 하고 방귀를 뀌나 신문에 고정된 시선과 몸자세는 변한 것이 없다. 옆에 앉아있는 마나님은 남편의 방귀소리로 신체 상태를 점검한다. ‘당신, 몸상태가 아주 좋으네.’하고 퍽퍼진 소리가 아니라 튼실하고 건강한 소리임에 안심한다. 소리뿐 아니라 냄새도 변비 상태를 가늠할 척도이다. 배안에 오래 묵은 것과 소통이 원할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혹 마나님이 화답을 하는 때에 남편은 더러 ‘시원하겠네’ 하거나 ‘그러려니’ 하고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이에 고춧가루가 끼면 ‘아~해’ 하고 휴지로 빼주거나 거울을 가져다주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한다.

장면 2.
직장 생활을 하는 마나님이 저녁 약속이 있어 늦어지는 날. 전화로 저녁을 함께할 수 없음을 알리는 마나님에게 ‘나 알아서 해결할테니 잘 다녀와’하고 집에 있는 반찬과 밥으로 식사를 해결하거나 근처의 빵집에 들러 넉넉히 빵을 사되 한 끼의 식사뿐 아니라 마나님이 좋아하는 찹쌀 도너스까지 들고 나온다. 김소운님의 수필집에 전쟁의 아수라 속에서 서로를 살피는 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밥 한끼가 어려운 시절 일거리를 찾으러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은 부인대로 거리를 헤매며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던 중 귀한 쌀밥 한 공기를 얻은 남편이 상위에 쌀밥 한 공기와 간장 한 종지를 올려놓고 편지글을 써놓는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 오늘은 이것으로 참아주시오.‘ 사랑하는 부부의 일상이기도 하거니와 서로의 존재가 더 중해진 곰삭은 부부의 상호 위해주기 일상도 된다. ’황제의 밥, 걸인의 찬. 오늘은 이것으로 참아주세요.‘

장면 3.
밤늦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마나님은 걱정이 태산이다. 예전에 술을 많이 해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갔더니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도 주저앉아 있고 도대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주변의 말도 듣지 않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는 쓰러지거나 구토를 하는 경우 잠을 재우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힘이들므로 지쳐 화가 나더라도 마음으로는 안심이 되며 좋지않은 일이 있었나 걱정을 한다.

예전에 본 TV 드라마에서는 60세가 너머 20세의 다방 아가씨와 사랑을 나누는 남편을 보며 보약을 데려주는 할머니가 나온 적이 있다. 평생 꼬장꼬장하게 세상 일을 모르다가 어쩌다 한 눈을 파는 남편이니 죽기 전에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던데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할머니의 여유가 재미있었다. 자신감인가? 안쓰러움일 것이다. 60세이면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강변을 해도 삶을 추스르며 정리하고 다져온 세월 안에서 남은 생을 곰실곰실 어루만지며 서로 온기를 나눌 때이다. 마나님을 존중하며 잘 살아온 영감님이었기에 이런 호사도 가능했을 것이다.

수명이 늘어난 요즈음 50대는 젊은이라고 말들을 할지라도 짧지 않은 세월 무탈하게 함께 살아온, 또 앞으로 함께 의지하고 기댈 남편과 마나님이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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