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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작은 사설 박물관과 아동 교육


2005년 미주리대 세인트루이스 캠퍼스에서 교환교수로 있을 때 Mrs. Robinson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로빈슨 부인은 한국인이고 남편인 로빈슨씨는 미국인이다. 로빈슨씨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님이 한국의 대학에 교수로 임용이 되셔서 한국에서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냈다. 한국어가 한국 사람보다 더 능통하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로빈슨 부인에 의하면 한국의 역사, 문화,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한국 사람인 자신보다 오히려 더 많이 알고 있으며, 미국으로 간 다음에도 한국관련 책자를 탐독하고 출근하면서 부인보고 읽어 보라고 때때로 책을 탁자에 놓고 간단다.

로비슨부부를 보며 제목과 조금 비껴서는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위치는 한국에서 생각해 볼 때 어떠한 나라들에 해당할 수 있을까?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나 남미의 나라들? 한국 사람들이 그러한 나라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교수로 근무하며 이렇게 온 가족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심혈을 기울이는가? 얼마 전 선배가 내게 묻기를 그 집도 똑같이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미국인이며,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미국으로 건너갈 것이므로 가능하면 영어위주로 훈련시키며 한국말을 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단다.

미국으로 가면 자연히 영어에 익숙해질텐데 언제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손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이중언어 환경에 자연히 노출되어있다는 것은 천혜의 혜택이다. 필자라면 아프리카의 언어와 문화, 이슬람 언어와 문화, 라틴언어와 문화 등 아동이 접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알 기회를 주고, 친구들도 만들어 주도록 노력하겠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아프리카의 대사로도 갈 수 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 큰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유엔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서로간의 입장을 잘 조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빈슨씨의 자녀들은 현재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이 아이들이 한국에 있을 때 아이들은 한국말만 하였단다. 미국으로 가자 영어로만 말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환경에 극히 민감하며 어른보다 적응을 잘한다. 로빈슨부부는 필자를 배려하여 한국말을 하였으며, 아이들은 영어를 사용하였으나 한국말을 다 알아들었다. 로빈슨씨의 자녀들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라서 한국과 한국의 주변, 일본이나 중국을 잇는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식층들이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조금 못사는 나라에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 그 문화와 언어를 익히기에 노력한다는 소식은 필자의 무지로 인함인지 별로 들은 적이 없다. 부모는 그러한 나라에 나가살더라도 어린 자녀들을 유럽과 미국으로 보냈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지금도 넘치고 넘친다. 부부를 바라보며 몹시 현명하다고 느꼈으며 동시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필자도 내 아이의 교육을 놓고 볼 때 전문분야교육은 학문적 성취에 있어서 검증된 혹은 그 학문에 유리한 나라에 가서 교육을 받게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능하다면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학기 중에 교환수업을 받게하거나 혹은 학위를 끝낸 후 한 두해는 세계의 이곳저곳을 경험하게 하고, 자신이 있고 싶은 곳을 선택하여 살게하고 싶다. 얼핏 듣기는 아프리카 문화와 언어, 중국의 문화와 언어, 중동 국가의 문화와 언어 등에 관한 연구도 그 나라보다 선진국이 더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말을 듣기는 한다. 교육체계에 있어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과 교육의 목표, 접근하는 방법, 내용은 해당 국가의 입장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한국도 지금 먹고살기가 조금 나아졌다고 몽골,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동, 동유럽, 파키스탄 등에서 직업을 구하려고, 혹은 결혼을 하려고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증가하는 외국인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다른 나라의 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배운 사람들, 기술이 있는 사람들을 선별하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싼 임금 때문에 혹은 하인부리듯 마구 대할 수 있는 사람들만 선호하다보면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후일 재앙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한국도 이제 굳이 외국을 나갈 필요없이 주변에서 손쉽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지고 있다. 이들 다양한 외국사람들이 한국에서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인으로 그들에게는 사소한 일일 것이나 한국인에게는 새롭고, 색다른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전달하며 한국의 단일 토양, 단단히 굳은 동네 중심 사고방식에 변화를 주고, 한국인으로서 보다 발전되고 열린 사회를 이루는데 힘을 보태고 동화되어 자라나는 자녀들이 희망과 미래를 품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로빈슨 부인은 필자가 미국에 있는 동안 아동교육을 포함한 교육과 관련된 도서실, 박물관, 과학관, 미술관, 민속촌, 풍경이 좋은 집들이 들어서 있는 동네, 미국 문화의 일부인 동네 창고세일, 다양한 형태의 종교 기관 즉 재즈 풍의 성가를 부르는 성당, 유태교회, 개신교회, 대학, 공원 등을 소개하며 그곳에 가는 길약도를 소상히 넣어 메일을 보내주었다. 필자가 본래 왕길치(길눈이 몹시 어두운 사람)이며, map 盲(지도를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 아들 뒤치다꺼리와 자원봉사 활동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로빈슨 부인은 커다란 차에 세 아이를 태우고 우리 집으로 와서 필자까지 태우고 두루두루 돌아다녔다. 더러 필자 혼자 가보라고 권하는 몇몇의 장소는 용기가 나지 않아서 혹은 장소를 찾지 못하여 가보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필자가 소개받은 곳 중의 하나가 상가 내에 위치한 아동 대상의 작은 사설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란 고정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박물관 근처까지 가서 정말이지 엄청나게 고생을 하였다. 알려준 곳 주변을 돌고 또 돌아도 상점과 커다란 주차장만이 보일 뿐이었다. 상점내에 위치하여 상점과 비슷한 겉모습과 크기를 지녔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하였다. 손전화를 발명하신 분들의 덕택으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Children's Museum World Ways'란 간판 아래 필자가 찾는 박물관이 있었다. 일반 상점 입구와 똑같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개방된 공간에 관람료 받는 창구가 놓여 있고, 한 옆으로 재미 러시아 사람들이 기증한 민속의상, 각종 인형 등이 유리 함에 넣어져 있었고, 그 옆으로 재미 필리핀 사람들이 기증했다는 필리핀 전통의상, 왕실 마차, 가구, 그림들이 실내나 혹은 유리함에 넣어져 있었다. 마주 바라보이는 벽에는 바닷속 풍경 그림을 배경으로 한 암벽타기 놀이장이 있고, 그 옆으로 돌아가며 세네갈을 소개하는 그림과 멕시코 문화 유산들이 놓여있었다. 멕시코의 부엌에서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도구를 이용하여 직접 곡식을 갈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시기는 이 박물관의 ‘중국문화 행사의 달’이었기 때문에 중국문화를 소개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소개되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유학을 온 대학원생이 임시로 채용되어 영어와 중국어로 중국문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국문화 체험 공간이기 때문에 중국 사람의 방, 부엌, 미끄럼틀에서는 직접 침대에 누워보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며, 부엌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상에 차려볼 수도 있게 하였다. 12간지에 색을 칠하면서 그 의미와 각각의 시기에 해당하는 해(年)를 써놓았다. 예를 들면 1958년, 1970년, 1982년, 1994년, 2006년은 개띠해라고 개의 그림 밑에 犬 과 Dog를 함께 써놓았다.

새해에 돈을 넣어주는 붉은 봉투 즉 hong bao 만드는 법을 쉽게 소개하는 한 장짜리 설명서와 직접 가위로 오려 풀로 붙이도록 재료가 놓여 있었고, 선으로만 그려진 탈에 색칠해보도록 색연필을 준비하여 놓았다. 중국의 중의원도 있어 약상자를 열어보고, 약을 만져볼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며, 안내자가 설명을 해주었다. 미국식 이름을 한자어로 나타내는 법을 알려주는 소책자도 놓여있어 필자는 Harry를 哈利로 쓴다는 것을 거기서 알았다. 흥미로웠다. 중국식 정자도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고, 통속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미끄럼틀 입구 양옆에는 해태와 같은 동물이 세워져 있었다. 중국에서 상서롭게 여기는 수호동물일 것이다. 그 밖에도 탱그램, 상용문자의 발자취를 나타내는 목각판 등이 있었다.

각 나라 문물을 관람하거나 체험하고 나오면 오벨리스크처럼 긴 기둥이 서 있고, 여러 개의 시계가 각 나라의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시계 위에는 ‘아이들은 자고 있나요? 학교에 있나요? 아침을 먹고 있나요?’ 하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같은 시간대에 다른 나라에서는 자고 있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이렇게 크고 넓은 것이다.

박물관 뒤편에는 휴게실이 있고 탁자와 의자, 음료수 자판기, 싱크대가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관람과 체험 그리고 놀이기구를 타보고 쉬고 싶을 때 휴게실에 앉아서 아이들이나 다른 부모들과 관람한 내용이나 일상의 이야기도 나누고 가지고 온 도시락도 함께 먹을 수 있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관람객 스스로가 청소함을 열고 청소도구를 찾아서 바닥에 떨어진 것을 쓸고 닦아야 하며, 물로 씻을 필요가 있는 것은 싱크대를 사용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한다.

이 박물관은 그 지역 외국이주민들이 기증하거나 제공하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많다. 사실 일상의 사소하거나 하챦은 것은 그 집이나 그 문화권에서 살지 않으면 보거나 체험하기 매우 어렵다. 기존의 박물관에서 얻을 수 없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것을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박물관의 독특함으로 그 내용이 비록 크게 훌륭하지는 않아도 필자에게는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체험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지역 필리핀인회나 세네갈 혹은 다른 이주민 협회가 자신의 문화를 알려달라고 기증을 하거나, 박물관 관계자들이 찾아다니며 기증해 줄 것을 부탁하여 관람 내용을 바꾼다고 한다. 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근처에 함께 사는 사람들의 문화를 손쉽게 보고 만지며 세계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농촌지역이나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저개발 국가의 인력들이 결혼의 형태로, 노동인력의 형태로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일부 영어를 할 수 있는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지역 학교에서 아이들의 영어를 가르쳐 주는 강사가 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영어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국어, 러시아어 등 아시아어, 유럽어, 남미어, 아프리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은 세계를 무대로 살아갈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 일터와 삶터를 마련할지 모르는 일이다. 각 지역의 문화를 알려주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이 작은 박물관은 그 지역에 사는 외국분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지역에 대한 소속감도 높여주며, 더 나아가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자손들의 바른 정체성 형성과 부모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부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자라서 사회에서도 소중한 사람이 된다. 더 중요한 일은 한국 아이들이 집 주변에서 다문화를 늘, 공기처럼 손쉽게 접하고 체험하여, 혼혈의 아이를 가슴으로 인식하고 세계의 넓고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편견과 아집, 쫀쫀한 잘난체를 없애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람들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50년 후의 세계는 지금의 세계와 달라질 전망이다. 잘 사는 나라들이 모두 못사는 나라들을 원조하려는 援助 전쟁 중이란다. 이제는 침략으로 일방적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 받는 상생으로 상호간의 이익을 구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남을 해함으로 이익을 구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전쟁의 상처로 질곡의 세월을 견디고, 더욱이 나라마저 둘로 나뉜 상태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세계의 큰 나라로 성장한 한국은 가난과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저개발국가들에게 미국이나 중국, 일본만큼 많은 돈으로 원조를 할 수는 없으나 同病常鱗의 심정으로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일들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인종과 피부색이 달라도 그 마음밭은 같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일의 첫걸음은 서로를 아는 일이다. 함께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들을 훈훈하게 엮어주며, 서로의 삶의 모습에서 서로 배우는 지혜를 얻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세상문을 보다 넓게 열어주는데 이 작은 박물관은 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반상회’라는 모임이 있어 가깝게 사는 이웃들이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벌금을 내더라도 모임에 가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함께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므로 서로간의 예의가 부족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오히려 고통이 되어 서로 마주할 시간을 피하고자 한다. 만약 우리의 주변인들이 작은 박물관겸 아이들의 교육관을 꾸려간다면 ‘더 넓은 세상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어른들의 작은 노력’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한 깊은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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