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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촌지와 학교 촌지 근절법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이 법안 마련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던 학교촌지근절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법안은 촌지를 준 학부모와 받은 교사에게 오고간 금품(현금, 유가증권, 숙박. 회원. 입장권)이나 향응(음식. 골프 접대, 교통. 숙박 편의)의 50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똑같이 물도록 규정했으며, 다만 촌지 제공․수수 학부모와 교사가 자진 신고할 경우 처벌을 면하도록 했다. 제정안은 또 16개 시도교육청에 ‘학교촌지근절대책위’를 설치해 촌지 수수행위 신고 접수 및 조사, 수수 관련자 검찰고발 및 관련기관 통보 등을 전담토록 했다고 한다. 이제 촌지는 범법행위로 각 시도에 신고 접수 및 조사, 수수관련자 검찰고발 및 관련기관 통보 등 전담함으로써 교사 전체가 촌지를 상습적으로 받는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제자들에게 나아가 전 사회에 심어주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촌지 이야기만 나오면 먼 옛날 새내기 교사 때 겪었던 가장 멋지고 값진 촌지가 생각난다. 이제는 머나먼 동화 속에 나오는 촌지 이야기이다.

30여 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는 새마을 운동과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서정쇄신으로 군대식의 학교 운영이었다. 교감선생님들도 학급을 맡아 학생지도를 하였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의 업무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교감 선생님이 맡은 반을 다른 반과 합반을 하여 학생지도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한 학급의 학생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 학급을 경험도 없는 새내기 교사인 내가 맡았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는지는 요즈음과 같은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장난을 즐겨하고 활동량이 많은 3학년 학생 87명이 좁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았다.

공부시간도 시간이지만 쉬는 시간의 생활지도는 더욱 어려웠다. 선생님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녀석들은 기고만장하였다. 그러다보니 연신 사고가 나고 다치고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월요일부터 소리 지르다 보면 금요일쯤이면 목이 쉬어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생활을 하던 5월 어느 날 오후, 글씨를 읽지 못하여 나머지 공부를 하던 녀석이 교장실에 결재를 맡으로 간 사이에 장난을 치다가 유리창을 깨고 말았다. 그것 아니라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해가 모자랄 판인데, 또 유리창까지 깨어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의자 위에 올려 세우고 긴 회초리로 종아리를 몇 대 때렸다. 화가 조금은 풀렸다.

"오늘은 나머지 공부 그만하고 집으로 간다. 책보를 잘 챙기도록 해. 그리고 오늘 배운 것 집에서 써 가지고 와. 알았어?"
"……."
대답이 없다.
"빨리 집으로 가!"

교실 밖을 나갈 때 보니 종아리가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미안했다. 화가 나기는 하였지만,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교실 모퉁이를 돌아가는 녀석을 다시 불러서 교실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누런 찌그러진 양동이에 찬물을 가득 담고 종아리를 담그게 하였다. 종아리를 주물러 주었다. 녀석은 의아한 듯 놀란 눈으로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미안하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해서 너를 심하게 때렸구나!"
"선생님, 괜찮아요. 나 별로 아~안 아팠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앞으로 좀 더 우리 열심히 잘 해 보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밖으로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교실에 웬 거지가 들어와 있었다.

"웬 일로 교실에 들어 오셨지요?"
"아~, 저 철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철이 아버지는 남루한 옷에 동냥자루를 등에 매고 있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
"선생님, 절 받으셔유~."

다짜고짜로 교실 바닥에 큰 절을 넙죽하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겁결에 엎드려서 같이 절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마음씨도 착하시고, 공부도 열심히 잘 가르쳐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 막걸리 한잔 사 드리려고 왔구먼유~. 저는 아랫동네 동냥을 하러 갔다가 오는 길이여유~."

선생님 생각을 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흔쾌히 학교 옆 동네 막걸리 집으로 갔다. 그날의 막걸리 맛은 지금까지 먹어본 어떠한 음식보다도 가장 값진 선물이며 촌지였다. 나는 학교와 교사의 촌지 문제가 매스컴에 보도될 때마다, 항상 새내기 교사 때의 촌지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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