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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아동 교육에 관한 작은 생각


아동은 국가의 미래이다. 아동의 교육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아동은 어머니인 여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 중요하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국가가 부모에게 국가를 위해 키워줄 것을 당부하느라 돈도 주고, 태어날 때 주치의도 제공하고, 보모까지 나와 새내기 부모가 갓난쟁이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고,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다.

사실 여성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조차도 중산층의 가정에서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일보다 가정을 택하는 일이 많다. 내가 가본 유치원에서는 엄마들이 직장이 없는 전업주부가 많았으며 아이들도 두 명 , 혹은 세 명으로 자녀의 수가 내 생각보다 많아서 나는 내 동료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보통 자녀가 두 명이란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세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이 꽤 많았다.

내가 본 미국의 유치원은 1세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2세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1세 교육은 두 가지로 행해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전업주부인 엄마가 1세 자녀를 유치원에 데리고 와서 새내기 엄마가 어떻게 아이들과 지내야 하는지를 유아교육 trainer가 교육하는 즉 부모연수이며,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1세 걸음마기 영아를 교육하며 돌보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이러한 1세아 교육이 확산되는 추세이다. 프랑스의 유치원 교사는 대학원 수준의 전문가 훈련을 받는다. 엄마처럼 푸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2세의 경우도 글자와 수에 관심두게 하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 속의 벌레를 이용한 글자와 수교육, 미술, 음악 및 체육 활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아주 이상하다. 초등학교는 유치원보다 높고,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높고, 고등학교는 대학교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가르칠 수 있다는 의식이 있는 듯이 보인다. 자리가 높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보는 아주 이상한 의식이 선진국이 되는 길을 꽉꽉 틀어막고 있다. 루앙대학의 김박사님에 의하면 프랑스는 교사들을 유치원 professor, 초등 professor, 중등 professor, 대학 professor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각각의 영역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각 분야의 대가를 키운다.

아이를 위한 교육이라는 것이 어떻게 아이만 똑 떨어트려 교육할 수 있는 것인가? 영유아교육의 중요한 부분은 부모교육이다. 즉 성인교육이다. 교육프로그램에는 아이는 전혀 다루지 않고 어머니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어머니가 바로 서야 집안이 바로 되고, 아이가 바로 된다는 이론이다. 저소득층 가족일수록 세상에 대한 자신감은 없고, 비정상적, 비생산적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하루벌이에 파김치가 되었더라도 세상살이에 융통성있는 어머니부터 대상으로 삼아 교육자가 교재, 교구를 가지고 찾아가서 자녀를 가르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한번은 어머니가 자녀가 되고, 한번은 역할을 바꾸어 어머니가 교사가 된다.

이렇게 훈련된 어머니가 자녀를 가르치게 한다. 엄마의 유식함에 아이는 엄마를 달리보게 되고, 아이를 가르치는 동안 엄마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비록 아빠가 술을 먹고 때리고 행패를 부려도 자신감이 있는 엄마는 대항할 힘을 얻는다. 마주하고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제압을 하게 된다. 자신감이 생기면 달라질 것이다. 밝아진 엄마로 인해 가정이 환해지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까지 바꾸어 놓았던 운동이 ‘지탁연’이었다. 지역사회 탁아소 연합회. 1988년 여름에 나는 그 사무실에 가보았다.

사실 나도 내 출세를 하겠다고 아이를 버려두고 세상 밖으로 돌아다녀 내 아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하고 후회를 하는 날들이 있다. 똑똑한 체 하며 세상의 흐름을 비웃다가 더 클 수 있는 아이의 앞날을 막지는 않았는지 미안함으로 가슴이 저미는 날들이 있다. 사회에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을지라도 내 아이들은 그만큼 손해를 보지 않았는지, 나 자신 집안일보다는 바깥일에 더 적성이 맞다고 할지라도 내 아이의 입장에 서면 집에서 아이들만 바라보는 엄마가 더 부러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도 능력을 펼 수 있고, 아이도 엄마, 아빠의 향기를 맡으며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아동과 그 가족에서 생각해보면 유치원이니 어린이집이니 하는 명칭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에 맞는 유아시설’이 필요할 것이다. 저출산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공들여 키운 세월이 더 많은 이미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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