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서른 살의 당당한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됐습니다. 단순히 흘러간 시간의 궤적이 아닙니다. 지난 30년간 지나왔던 미학적 여정을 내밀하게 성찰하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영화의 미래를 향해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도약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역시 인간의 본질인 감정과 영혼을 통찰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AI와 첨단 기술이 영화적 상상력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BIFAN이 미래영화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7월 부천에서 기다리겠습니다.”
6월 9일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장미희 조직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1997년 출발한 BIFAN은 변방의 낯설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영화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장르영화’라는 BIFAN만의 독보적인 영토를 구축했다. 내로라하는 세계 각국의 영화제가 기성 형식을 고수할 때도, 주류와 비주류, 현실과 상상, 전통과 혁신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물어 온 BIFAN은 30년이 흐른 지금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르영화제로 우뚝 섰다.
제30회 BIFAN은 50개국 321편(장편 170편, 단편 85편, AI 38편, XR 28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이 중 93편이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인다. 작년 개막식을 꾸몄던 송승환 감독이 올해도 개막식 총연출을 맡아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할까’라는 화두를 개막 공연으로 풀어내고, 해금·피리·거문고 등 한국 전통 악기와 서구 현대 음악을 크로스오버하는 세계적인 5인조 밴드 잠비나이의 공연도 준비돼 있어 기대감을 높인다.
개막작은 원화평 감독의 <표인: 풍기대막>
<취권>(1978)으로 성룡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등극시켰고, 이후 홍금보·견자단·이연걸 등과 홍콩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원화평 감독의 신작 <표인: 풍기대막 Blades of the Guardians>가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귀중한 물품을 호송하는 무사’를 뜻하는 제목처럼,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정체불명의 인물을 수도 장안까지 호송하는 과정에서 검이 번쩍일 때마다 먼지와 피가 함께 튀는 야성적인 무협 영화의 부활을 알린다.
세계적인 장르영화 거장과 스타 배우가 함께한 화제작들을 소개하는 갈라 섹션인 ‘시그니처’ 부문에서는 총 19편이 상영된다. 감독과 배우 등이 부천을 직접 찾아 포토타임·무대인사 등 다양한 이벤트로 관객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일본 장르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흑뢰성>으로, 홍콩의 허먼 여우 감독은 <아무것도 아닌 우리>로, 플아스·벨기에·룩셈부르크 공동 제작으로 눈길을 끄는 캉뗑 두피우 감독은 <배부른 필립>으로, 인도네시아의 조코 안와르 감독은 <고스트 인 더 셀>로 관객을 만난다. 거장들의 신작에 출연한 세계적인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 우디 해럴슨, 조시 호, 판빙빙, 아이비 첸 등이 스크린에서 빛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국제영화제 BIFAN의 국제 장편경쟁 부문 ‘부천 초이스 월드: 장편’에는 11편의 영화가 선정됐다. 아시아 작품에서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불안한 청춘의 이야기 <염상>, 일본 호러 <저주의 밈>, 필리핀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컬트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자자 자투나>,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독창적인 세계관 속에서 아이돌그룹 소녀시대의 티파니 영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는 <NIKO> 등이 있다.
해외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장르영화들도 대거 이름을 올렸다. 작년 토론토영화제 이후 북미 장르 팬들의 호평을 받은 <옵세션>은 금지된 욕망과 집착이 초자연적 공포로 번져가는 과정을 그렸다. <레위기>는 올해 선댄스영화제 ‘미드나잇 섹션’ 인기작으로 기독교 신앙과 욕망의 충돌을 퀴어 로맨스와 호러의 결합으로 풀어냈다.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소개된 <미아즈마 캠프에서 생긴 일>은 1980년대 슬래셔 무비의 문법을 메타 호러로 재해석한 연출이 돋보이고, 역시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된 <변이>는 성과와 경쟁에 내몰린 젊은 세대의 불안과 분노가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바디 호러 장으로 강렬하게 풀어냈다.
이 외에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신화와 마녀 전설을 바탕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 서사를 웅장한 비주얼로 스크린에 그려낸 <가우아>, 떠오르는 핀란드 연기파 배우 세이디 하를라, 루퍼트 그린트가 부부로 출연해 출산 이후 증폭되는 가족의 불안과 공포를 포크 호러로 보여주는 <나이트본>, 전작 <오디티>로 부천에서 화제를 모은 다미안 맥카시 감독이 아일랜드 외딴 호텔을 배경으로 민담과 폐쇄 공포를 결합한 음산한 영화 <호쿰>도 눈길을 끈다.
하드고어 호러부터 코미디와 애니메이션까지
한국영화 경쟁부문인 ‘부천 초이스 코리안: 장편’ 섹션에서는 작년보다 2편 늘어난 10편의 영화가 선정됐다. 하드고어 호러부터 코미디와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BIFAN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호러 장르에는 3편의 영화가 극장 공기를 서늘하게 할 예정이다.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 방송을 소재로 한 <킬링타임>(감독 장준엽)은 반전을 놓고 관객과 수싸움을 벌이는 지능적 공포영화이고, 카메라를 매개로 초자연적 현상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포커스>(감독 심규호),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잔혹한 사건을 독특한 톤으로 담아낸 <오가>(감독 정효정) 등이 있다.
범죄를 모티브로 한 영화도 3편이다. 두 명의 10대 남녀가 주인공인 <더 러버>(감독 송현범)는 틴에이저 장르의 중요한 테마인 일탈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펼쳐내고, <정육점집 외아들>(감독 유형준)은 우발적이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퍼즐같이 꼼꼼한 스토리로 구성한다. <비누>(감독 이준섭)는 한 배우 지망생이 겪는 엉뚱하면서도 느닷없고 때론 악몽 같은 사건을 보여주는 스릴러 영화다.
올해 BIFAN에서 ‘판타스틱 7’으로 선정한 <종말의 인간>(감독 허건)은 제목이 암시하듯 디스토피아적 SF영화로, 독특한 미장센과 비주얼을 선보인다. <노크>(감독 정범)는 다큐와 픽션의 리얼리티 사이에서 관객을 몰입시키는 독특한 드라마이고, <에일리언 비키니>(2011), 옴니버스 영화 <이웃집 좀비>(2010) 등으로 이미 BIFAN과 만난 바 있는 오영두 감독의 <스마일 찰스>는 주인공의 허허실실 연기가 인상적인 코미디다. 애니메이션 <직장인 체육대회>는 이용선 감독이 <반도에 살어리랏다>(2018) 이후 9년 만에 부천을 찾는 작품으로, 풍자 정신과 유쾌함은 여전하다.

AI 영화의 한계는 어디인가?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인 ‘부천 초이스’에는 전 세계에서 출품된 576편의 작품 중 영상·시나리오·사운드 영역에서 AI 기술을 창의적으로 사용해 영화 제작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 15편을 엄선했다. 5분짜리 단편부터 75분짜리 장편까지, 현재 AI 기술이 영화의 한계를 어디까지 넓혔는지 확인할 수 있다. BIFAN이 지난 2년간 선도적으로 진행해 온 AI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부천 AI 콘텐츠 서밋’을 출범하면서, 비경쟁 초청 섹션인 ‘AI 프론티어’를 신설하고 상영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AI 영화 지평을 넓힌다.
BIFAN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섹션은 다름 아닌 ‘B 익스트림’ 섹션이다. 피와 광기, 짜릿한 상상력 그리고 섹시한 에너지로 무장한 액션·스릴러·호러 등 장르적 쾌감이 폭발하는 대담한 B 무비의 세계는 올해도 관객을 열광시킬 전망이다. 대만·홍콩·영국이 공동 제작한 <자살예고>, 캐나다의 <데스스토커 리부트>, 멕시코의 <나를 따라오지 마>, 헝가리의 <(이제) 집이라고 생각해>, 미국의 <망할!>, 태국의 <고스트 보드게임>, 일본의 <살인 불곰의 습격>, 인도네시아의 <더홀: 핏빛 비극까지 309일> 등 각 국가의 민속과 신화, 금기와 결부된 공동체의 불안을 담아내는 영화부터 여성 중심 서사와 퀴어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 외에도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장르영화와 유구한 문화적 특성을 엮어 조망하는 프랑스 SF 기획전은 물론, 산업 프로그램과 XR 부문에서도 프랑스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30회를 기념해 3개년 프로젝트인 ‘아시아 장르영화 99’ 프로젝트도 런칭했다. 매년 33편씩 총 99편의 아시아를 대표하는 장르영화를 선정하는 기획 프로그램인데, 매년 권역별로 작품을 선정하며 그 시작점인 올해에는 한국 장르영화 33편을 꼽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지구를 지켜라!>, <왕의 남자>, <타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부당거래>, <무뢰한>, <부산행>, <극한직업>까지 10편을 부천에서 만날 수 있다.
제30회 BIFAN은 7월 2일부터 12일까지 부천시청, 한국만화박물관, CGV소풍, 롯데시네마 부천, 부천아트벙커B39 일대에서 열린다. 여름 더위를 날려버릴 장르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7월에는 부천이 제격!
사진 제공 ● BIF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