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학교 교사는 아이들만 가르치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절대 아니다. 또 학교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이 잠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현재 아이들의 생활공간이고 아이들의 삶 자체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학교는 최상의 공간 이어야하고 때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정서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또 학교에서 교사는 지식과 지혜를 인도하는 선생이기도 하고 부모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지적인 성숙을 위해 부단히 가르칠 뿐만 아니라 신변을 보호하고 정서적인 안정까지 도모해 주어야 한다. 내가 맡은 아이들이 소인수 학급이라 6명밖에 안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얼마나 쉽고 편하겠느냐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정작 그렇지 못한 나는 할말이 없다. 그리고 아이들 6명밖에 안 가르치면서 나는 도대체 왜 매일 바쁜가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40명 안팎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활지도를 하고 학급관리를 하게 되면 6명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6명이라고 하여 가르칠 내용을 빼먹거나 건너 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가르치며 해야 할 말은 40명의 학급이나 6명의 학급이나
2006-04-22 09:08나는 자주 나의 앞날을 상상해보곤 한다. 눈을 감고 몇 년 후를 떠올린다. 선생님이 되었다. 부드러운 말과 따뜻한 마음이 가득한 교실에서 나는 웃고 있다. 내 앞에는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예쁜 아이들이 앉아있다. 그동안 그 예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씩씩한 소위 ‘정상’ 판정을 받은 아이들이었다. 내가 기오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 학기 학교에서 누리사업의 프로그램인 특수아동 통합학급 수업을 들었었다. 그 실습으로 내가 만나게 되었던 아이가 바로 기오이다. 이 아이와 나는 겨울 방학 한 달을 함께 보냈다. 기오는 맑은 아이였다. 기오를 만났을 때 정신지체라는 아이의 장애명보다 희망이 먼저 떠올랐다. 교육의 효과 등등의 그런 희망이 아니라 아이 자체에서 빛나는 것이 바로 희망이었다. 처음 만나고 돌아오는데 혼자 설렜다. 어떤 방법으로 아이의 마음을 열고, 무엇을 익히게 해야 나중에도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지금처럼 맑게 살아낼 수 있을까.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정말 너무도 적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장애'라는 이름의 벽에 다가갔지만 넘지는 못한 채 그렇게 한달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한달간의 만남 뒤에 아이의 눈빛
2006-04-22 08:324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정 선생님의 송아지처럼 선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3월에 부임하신 새내기 선생님으로 학교 생활에 막 재미를 붙이고 뭐든지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던 선생님이셨기에 나는 부쩍 걱정이 되었다.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빼들고 정 선생님을 찾았다. 무슨 근심걱정이 그리도 많은지 정 선생님은 그때까지도 화사한 얼굴에 근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짐작에 점심도 거른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사연을 여쭈어보았다. 정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교사가 되면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이해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에겐 친한 언니, 남학생들에겐 정말 자상한 누가 같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말끝을 흐리며 선생님은 또 눈물을 흘렸다. 3월 한 달은 아이들도 이렇게 착한 정 선생님을 잘 따라주며 좋아하는 듯하더니 4월에 들어서자 남학생 특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선 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고 급기야 친구하자며 함부로 농담하는 녀석들도 생겼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도 산만하게 떠드는 아이들이 많아져 수업 장악도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
2006-04-21 16:07''지난밤 꿈속에 나타난 선생님께 전화하지 않으면 평생 뵐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혹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여느 때보다도 하루 종일 선생님 생각이 떠나질 않아 폰을 들었는데 여전히 우리 선생님은 예전 그모습 그대로라는 걸 느끼고 기뻤습니다. 무얼 어떻게 말씀 드려야할지 글을 써야할 지...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습니다. 선생님, 늘 제 기억속에 부모처럼, 언니처럼, 친구처럼 포근하게 기억되어지는 선생님의 존재는 참 그리움과 추억의 그림자였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문득 문득 지난 저의 삶을 돌이켜보며 남은 인생의 미래 계획을 세워 보곤 한답니다. 그동안 많은 생의 변화와 아픔과 기쁨들이 있었지만 선생님께 배운 대로 인내로, 사랑으로 늘 자신을 지키고 살아온 지난 날들 후회하지 않고 지금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책을 좋아했던 제가 한때 인생의 실망감과 절망속에 있을때 절대 내 감정들을 무엇으로도 표현하지 않으리라 맘먹고 현실만을 바라보고 고집하며 달려왔는데 어느덧 잠재되었던 나의 감정들은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샘솟듯 합니다. 앞으로 남은 생들 선생님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가
2006-04-21 08:48컴퓨터를 무리하게 한 탓일까. 며칠 째 심한 어깨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평소에 웬만해서 병원에 가겠다고 말하지 않던 내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자 제일 먼저 걱정을 한 사람은 아내였다. 월요일 아침 수업이 없는 2시간을 할애하여 병원을 찾았다. 휴일이 낀 탓인지 시간이 이른데도 불구하고 병원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정형외과 쪽은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수업시간 때문에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예약을 해두지 않은 것에 후회가 되었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내가 진료를 받을 때까지는 족히 2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 앞에서 내 이름만 불러지기를 기다리며 서성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한 간호사가 나오더니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순서로 보아 분명 내 차례가 아닌 듯 하여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계속해서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간호사의 외침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다가가 이름을 확인한 결과 그 이름의 주인공이 바로 '나'
2006-04-20 12:04“와~! 화사하다.” “고운 눈송이가 날리는 것 같애.” “야. 니 머리 위에 꽃잎 떨어진걸 보니 영화 꽃잎의 주인공 같다. 큭큭.”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등굣길에 활짝 핀 벚꽃의 숲 속에 모여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4월이면 교정에 가득한 벚꽃을 배경으로 3학년 아이들은 졸업 사진을 찍고, 저학년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때론 담임선생님과 함께 나와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주 목격됩니다. 그러다 꽃구경 나온 선생님들을 보면 “선생님, 우리랑 사진 찍어요. 네?”, “안돼. 우리부터 찍어야 해. 너흰 나중에 찍어.” 그러면서 서로 사진을 찍겠다며 팔을 잡아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실에서 시무룩하니 졸던 아이들도 밖에만 나서면 힘이 펄펄 넘쳐 납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농담조로 “야, 닭병 걸린 우리 연주가 귀여운 영양이 됐네.” 하며 웃으면, 그 아이는 “저 원래 영양이에요. 이쁜 영양. 히히.” 그러면서 팔짱을 끼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졸라댑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20여분 정도의 여유로운 시간에 아이들은 그야말로 꽃향기 가득 마음에 담으며 자유로움을 만끽합니다. 또한 사제지간의 딱딱함도 꽃향기 속에 녹아들어 부드럽고 웃음 가득한 관계로 만들어 냅니다.
2006-04-19 13:46지난주의 이야기지만 교장연수과정에 5분 발표가 있다. 10%의 연수성적에 들어가고 협력위원과 현직교장선생님이 평가를 한다. 마치 면접시험을 치르는 기분이고 긴장도 되었다. 발표내용은 학교경영우수사례, 훈화, 경험담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여 5분 내에 분임 원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 원고를 보고 읽는 분도 있고 중간 중간에 원고를 봐가며 발표하는 분도 있고 원고 없이 발표하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다. 쉬운 것 같지만 5분이라는 시간 안에 내용을 요약하여 청중에게 잘 전달한다는 것은 학교장에게 매우 중요한 자격요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5분 스피치, 또는 5분 발언과 같은 것으로 학교장이 되어 학생들 앞에서 또는 교직원이나 학부모들 앞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말을 하는가를 훈련을 쌓는 것이라고 본다.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재미있게, 일목요연하게 상대방에게 전하는 훈련이 평소에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관의 장으로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두 번째 덕목인 말하기 시험을 치른 셈이다. 욕심을 내다보면 장황해지거나 산만지기 쉽고 이야기의 핵심을 잃기 쉽다. 우리교육에서 남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훈련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2006-04-19 10:59해마다 이때쯤이면 슬슬 겁이 난다. 저녁 뉴스 시간이 두렵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왜냐하면 마치 기획 시리즈처럼 언론에서는 교육 부조리가 계속 보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빌미는 늘 우리 교사들이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최근 몇 년 간 우리 교사들은 5월을 맞이하면서 살얼음판을 디디는 초조함으로 살아왔다. 교사들은 기득권에 안주한 대표적 저항세력으로 매도되었고, 반성과 개혁에는 미온적이었으며, 촌지수수를 비롯한 교육부조리가 끊어지지 않았고, 걸핏하면 거리에 나가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에 대하여 누가 존경심을 가졌겠는가. 늘 개혁의 대상으로만 각인되었을 것은 뻔하다. ‘촌지에 무너진 스승의 날’이란 기사를 보면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의 날만 되면 촌지 수수 등 각종 교육부조리가 불거지면서 그 부끄러움을 감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날을 아예 휴업일로 정했다는 것이다. 고뇌에 찬 결정(?)에 동의하면서도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다. 제자와 함께 하지 못하는 ‘스승의 날’이란 자식들과 함께 하지 못한 ‘초라한 아비의 생일날’과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된
2006-04-18 09:06야간자율학습이 실시되고 있는 학급마다 교실 전면 게시판의 크기에 맞는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학생들의 자율학습을 주관하고 있는 학년부장 선생님들이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랍니다. 한창 피가 끓는 이팔청춘의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몰아 놓고 밤늦게까지 공부시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공부보다는 친구와 잡담을 하는 것에 능숙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음악을 듣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주기 위하여 현수막을 붙여 놓은 것인데, 그 효과는 예상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자율학습을 하는 도중에 잠깐 고개를 들면 현수막이 보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가다듬기 마련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현수막을 부착하면서까지 아이들의 학습의욕을 북돋워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서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선생님들의 생각이랍니다.
2006-04-18 09:06학년초, 교장과 교감은 신규교사와 3년 미만의 저경력 교사에 대한 수업 장학을 하고 있습니다. 1학년 어느 반을 들어가니 학급 환경 구성이 정성스럽게 되어 있고 사제동행한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교감으로선 그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고마울 따름이죠. 사물함 뚜껑에도 '나의 다짐'이 표시되어 있는데 학생마다 그 내용이 다 다르고 글씨체를 보니까 개성도 드러나 있네요. 사물함에 물건을 넣거나 꺼낼 적마다 그 다짐을 읽게 하니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봅니다. 어느 학생은 장미 그림까지 그려 넣었네요. 어절(語節)도 줄여 '열공'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네요. 교감은 '열공'을 '열심히 공부'로 해석했습니다. 맞습니까? 그러고 보니 '열강(熱講)'만 있는 것이 아니군요.
2006-04-18 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