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이다. 성년의 날이 있기도 하다. 이번 주에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개교 기념식이 있다. 시험이 끝나고 홀가분하게 잠시나마 살짝 해방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개교식을 맞이하여 작은 이벤트를 하나 추진하고자 하여 우리아이들이 자신에게 주는 스스로의 격려의 메시지,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할까?에 대해 엽서를 써서 꾸미고 전시를 하려고 글을 쓰게 했다. 엽서글을 붙이면서 한 장 한 장 읽어보다 어쩌면 이리도 우리 아이들은 자신에게 상채기를 내고, 자괴감에 빠져있는 학생들이 많을까? 가슴이 허허로워짐을 느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혹 우리 아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 또는아이들이 생각하는 사고 방식,우리 아이들의 언어 하나 하나가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모습과 말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청년 실업이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자신감과 자긍심의 부재는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또한 그로 인해 나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도 많이 부족한 현실인것 같다. 전에 TV예능에서 안철수 씨가 나와서 어머니의 교육관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항상 자신에게 존댓말을 써왔다고 한다. 학교를 갈 때에도 “안녕히 다녀
2011-05-06 22:23사랑하는 아이에게 예쁜 모습으로 씩씩하게 자라는 귀여운 아이야! 네가 있어 아빠도 엄마도 선생님도 아름답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단다. 공부하기 힘들어도 가끔은 몸이 아파도 잘 이겨내는 멋진 아이가 될 수 있지?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사랑하는 부모님의 자랑이 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희망이 될 수 있지? 좋은 책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부모님을 존경하는 아이야!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 우람한 나무가 되어 힘든 사람들이 네 곁에서 쉴 수 있도록 시원한 그늘을 선물해 주겠니? 2011년 5월 5일 어린이 날을 축하하며 너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2011-05-04 19:25지난 일요일초임지 제자 3명이 우리집을 방문하였다. 44살이 된 제자들 손에는 꽃다발과 화분 하나가 들려있다. 그들과작년 이 맘 때 만났으니 꼭 1년만이다. 찾아 준 그들이 고맙고 반갑기만 하다. 당시 졸업사진 한 장을꺼내보면서 제자들 얼굴과 이름을 맞추어본다. 어렸을 적 모습이 그대로 있는 제자가 있는가 하면 몰라보게 변한 제자들도 있다. 추억 속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 당시 이야기가화기애애하게 이어진다. 그들에게 컴퓨터에 있는 1977년 봄소풍 흑백사진을 보여주니 깜짝 놀란다. 못난이 스승을 잊지 않고 찾아 준 그들. 미리 준비한 선물 한 보따리씩을 건네 주었다. 종이 가방 속에는 필자의 교육칼럼집 3권, 수상 기념 타월, 손수건, 카드지갑, 시계가 들어 있다. 책을 꺼내어 저자 사인을 하여 주니자식에게 자랑하며 가보로 간직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과 함께 초임지를 향해 출발한다. 그들에게는 모교다. 그 당시 주소는 용인군 수지면 죽전리. 지금은 학교 주변이 모두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중앙 현관에서는 교가를 합창하였다. 교무실에 가서는 학교 앨범을 보면서 유년시절을 회상하였다. 마치 '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장면 같다. 교정을 둘러보는데 없
2011-05-04 09:14누군가가 유명 연예인의 죽음을 알려준다. 대낮에 웬 헛소리냐며 면박을 주었더니 당장에 확인해보라며 불만 섞인 표정이다.찾아든 인터넷은 만인의 연인이다시피 했던 망자의 사진으로 첫화면부터 도배되어 있다. 경제적인 압박감을 못 이기고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부터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추측도 모자라 상상에 가까운 말들까지 활개를 친다.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나 기구처럼 날아다니는 대중의 입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죽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모방 심리를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괴테의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생각났다. 한 사람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주인공의 순애보적인 자살로 끝을 맺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동쪽의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에까지 나비효과처럼 번지어 나갈까 염려가 되어서다. 가까운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좋아라하는 연예인이 남긴 이야기들로 상다리가 휠 지경이다. 그중에는 그들의 화려한 모습과 남은 가족들을 염려하기도 했다. 대충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나는 내놓고 죽은 자를 강한 어조로 대했다. 죽은 자를 다루는 방송가의 상식도 문제 삼았다. 사람의 가치에 높낮이가 있을 수 없지만 자연사도 아닌 자살을 앵무새처럼
2011-05-02 13:09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70년대에는 먼 미래를 그리면서 교직으로 진로를 결정한 것도 아니다. 또한 나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서 교사가 된 것도 아니다. 단지 고등학교 시절에 역사수업을 잘 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교사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그 후 발령지를 따라 외딴 섬으로 고향으로 그리고 여러 학교로 옮기면서 그곳에서 많은 꽃과같은 생명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과 함께 나의 삶을 살았으며, 많은 것을 배우면서 성장하였다. 그들은 체격은 어렸지만 마음만은 결코 어리지 않았다. 내가 그들은 모두가 나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고교시절 내가 가졌던 교직에 대한 이미지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잘 들어보면 사연도 다양하다. 아픔과 절망, 자신에서 탈피하고자 몸부림을 치는 경우도 있었으며 자신과 싸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보다 더 먼 미래를 향하여 기대하는 것들이 많았다. 난 그것을 다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갈 수 있도록안내자가 되어 그들의 가슴에 메시지를 보낼 때 메아리가 아닌 용기와 다짐으로 되돌아 왔다. 그들은 지금도 풍랑이 이는 세파에서 나의 후원과 격려를 기대하면서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고…
2011-05-02 12:00꽃피는 작은 교실 우리 교실은 미니교실입니다. 조그만 농촌 학교이긴 하지만 남양만을 막아서 마련된 간척지가 수십만 평이나 생겨서 새로운 들이 생겨난 이곳에 경상도의 안동댐과 충청도의 충주댐을 막을 때 생긴 수몰지역의 사람들이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몰민 이주지역 1,2,3,4지구라는 야릇한 이름의 부락이 네 개나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바람에 그만 교실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장실을 반 칸으로 만들고, 나머지 반 칸의 교실에서 우리 반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반은 전체 학생수가 32명뿐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농촌학교의 모든 학급이 30명 안팎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가 공부하던 시절(80년)만 하여도 한 학급에 50명에서 55명씩이나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우리 반은 참으로 오붓한 교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교실에 아이들이 작으니까 넉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6학년이니까 제법 덩치들이 자란 우리들이 32명씩이나 들어간 교실이 반쪽이니 넉넉할 리가 없었습니다. 반쪽짜리 교실에 칠판도 반쪽이고, 딴 아이들과 달리 복도를 향하여 앉아서 출입문도 하나뿐인 교실이었습니다. 가끔은 교장실에서 하시는…
2011-05-02 11:52아이들이 아침마다 학교에 오고 있다. 책가방을 메고 한손에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멀리서부터 선생님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다. 친구와 장난치며 웃으며 가로수 길을 달려서 나에게 오고 있다. 오늘도 즐겁고 신날 거라는 기대로 오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만나러 아니 나를 만나러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등교하는 신선한 아침에는 그 아이들의 호기심과 장난과 재미와 기대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교사인 나는 이런 아이들이 아침마다 기대에 차서 들고 온 빈 광주리에 무엇을 채워서 보내 줬을까? 나를 올려다보며 무언가 재미있는 걸 기대하고 있는 초롱한 눈망울을 애써 무시하지 않았을까? 호기심으로 탐색하고 꾸민 일을 늘 일만 저지른다고 질책하지 않았을까? 오늘도 무슨 일인가 신나는 일을 바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느새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질책의 말부터 하지는 않았을까? 아침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떠들고 있다고, 또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공부시간에 친구와 떠든다고, 청소시간에는 청소는 하지 않고 빗자루로 칼싸움이나 한다고, 점심시간에는 골고루 먹지 않고 먹기 싫은 음식이 나오면 식탁 밑에 몰래 버렸다고, 받아올림이 있는 두자
2011-05-02 11:44우리학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종종 학생들과 함께 학교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기숙사에서 자면서 생활을 한다. 어제도 학생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이리저리 거닐며 쉬고 있었다. 한 학생이 빵 종류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 가까이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저녁식사를 하고 먹고 있는지 물었더니 저녁은 먹지 않고 빵 종류의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있었다. '오미구상'(五味口爽)이 생각이 났다. 맛있는 음식은 입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다. 학교식당에서 준비하는 음식으로 족할 텐데 왜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늦게까지 공부하고 긴장이 되어 밥맛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학교에서 규칙적인 식단으로 식사를 했으면 좋으련만…. 오미구상(五味口爽)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五色令人目盲 (오색영인목맹)-화려한 색을 추구할수록 인간의 눈은 멀게 된다. 五音令人耳聾 (오음영인이롱)-세밀한 소리를 추구할수록 인간의 귀는 먹게 된다. 五味令人口爽 (오미영인구상)- 맛있는 음식을 추구할수록 사람의 입은 상하게 된다. 難得之貨令人行放(난득지화영인행방)- 얻
2011-05-02 11:39이제 조금 있으면 제30회 스승의 날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학창시절에는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선생님이 한 분은 꼭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리포터도 지금까지 그리 긴 인생을 살지 않았지만 중학교 때 떠오르는 선생님이 계시다. 문득 리포터가학교를 다녔던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 한 체육선생님이 계셨다. 매번 체육시간이 되면 그 체육선생님은 헌 운동화를 계속 신고 다니셨다. 처음에는 헌 운동화를 신고 계셔서 단순히 검소하신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느 날 반장이 “선생님은 요즘 운동화 좋은 것도 많은데, 왜 그 헌 운동화만 신고 다니세요?” 하고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체육선생님께서는 “너희 선배 언니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준 거라 정이 많이 들었단다.” 하시며 그리고 “아직 이정도면 신을 만하다” 고 웃으면서 말씀하신 기억이 떠오른다. 때마침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체육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듣고 반장과 부반장을 중심으로 우리 반도 돈을 조금씩 모아서 체육선생님께 새로운 운동화를 선물한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다음 체육시간부터는 항상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선물한 운동화를 신고 다니셨다. 그리고 체육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선물한 운동화가…
2011-05-02 11:36우리 학교에 아랍어과 교생실습생이 5명이 와서 4월 한 달 교생실습을 하였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학교만이 아랍어과가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에서 오신 교생선생님이시다. 오늘 오전 교생선생님과티타임을 가졌다. 교생선생님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가슴에 와닿는 것이 많았다. 어떤 교생선생님은 "우리학교 학생들이 순수해서 좋다", "준비를 많이 해서 수업을 해보니 떨리고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하였다. 어떤 교생선생님은 "맡겨주신 일-과제가 너무 많아 걱정이 되었고 하나하나 해보니 선생님들이 대단해 보였고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지도선생님의 배려와 이해심에 감동을 받고 존경심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어떤 교생선생님은 "수업기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새로운 수업방법을 찾아야 될 것 같다"고도 하였다. 담임선생님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또 어떤 교생선생님은 "학생들을 상담해보니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게 되고 학생들이 상담하면서 울기도 해서 달래기도 하고 자기의 경험과 책 읽은 것을 토대로 상담해 주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짧은 한 달간의 교생실습기간이지만 모두가 시간이 짧음을 아쉬워하였고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마
2011-04-28 2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