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부터 이틀간 아내와 전라남도 신안군의 증도를 오가며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을 다녀왔다. 증도는 우리나라에서 국제슬로시티인증을 받은 11곳 중 하나로 주변이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이고,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인 태평염전이 있으며, 침몰한 선체를 비롯해 도자기와 동전 등 14세기 중국 원나라 시대의 고대 유물이 많이 발견된 곳이다. 전남의 남서쪽 해안은 청주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장거리 여행은 피로를 이겨낼 만큼의 체력도 필요하다. 1년 전 구입한 애마 QM5가 경부, 호남, 서해안, 무안광주고속도로를 갈아타며 3시간 30여분 부지런히 달린다. 차창 밖으로 서해안의 질퍽한 갯벌이 보이고 처음 도착한 곳이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에 있는 조금나루해변이다. 조금나루해수욕장은 마을 끝에 툭 불거져 나온 백사장이 4㎞나 되고 곰솔 숲이 울창한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낙조와 기절낙지가 별미다. 아내와 둘째 아이가 같이 했던 전남 백경 여행 중 이곳에서 맛있게 먹은 세발낙지가 생각나 들렸으나 비수기라 횟집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세발낙지에서 세발의 '세'는 숫자 3이 아니라 '가늘다'는 뜻의 한자어로 소주와 함께 가늘고 긴 세발낙
2014-02-04 17:14'오이디푸스왕'은 우선 이 작품이 일종의 수사극으로 짜여있다는 점에 주목되었다. 이 책에서 오이디푸스가 처음에 맞닥뜨린 문제는 '라이오스(오이디푸스 전의 왕, 아버지)를 죽인자는 누구인가?'였다. 그러다가 문제는 '내가 범인인가?'로 바뀌고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오이디푸스왕'을 그저 비극적인 내용이라 일컫는 단순한 독자들처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문장하나와 단어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가며 읽어보니, '오이디푸스왕'은 흔한 비극적 운명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운명극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끼달았다. 소포클레스가 진정 이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 한 것 인지는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저항에 맞서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진실을 밝혀낸다. 혹여 그것이 자신의 파멸로 이어진다 해도 개이치않는다. 이는 어떤 운명이 그를 좌지우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실을 향한 오이디푸스의 굳은 의지가 이뤄낸 것이다. 한데 이러한 입장을 소포클레스는 아주 작은 장치를 통해 슬그머니 밝히고 있다.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가 한 말이 그 장치이다. 그 사자는 자신이 '좋
2014-01-30 14:18남편이 밤낚시를 준비하 있었다. 고맙고 반갑고 즐거웠다.(?)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어야 하는데 출장과 연수가 많아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황금같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온통 책과 함께 할 기회가 온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햄버그를 시켜주고 정글만리 첫장을 시작하였다. 다음 날 아침 햇살 속에서 세 권을 모두 끝내었다. 모처럼 밤을 새워 읽었다. 구성이 어렵고 치밀하지 않아, 책장이 잘 넘어갔다. 흥미진진한 중국의 경제 전쟁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애국심이 확 살아나기도 하는 즐거운 책읽기였다. 정글만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속에서 종합상사원인 전대광을 중심으로 경제 전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우리들이 중국을 너무 모른다는 작가의 말이 직설적으로 드러나고 마치 한 편의 경제 르포기사를 보는 듯하였다. 지난 날 태백산맥의 치밀한 구성을 생각하고 접근한 사람은 실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책을 보는 내내 하였다. 그래서인지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려버리는 소설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 뭐니뭐니 해도 칸시이다. 한국에서 줄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중국 경제를 움직이는 엄청난 존재인 것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이런 것이 없는…
2014-01-30 14:17성실한 불재였던 성진. 그리고 그가 인간세상에 환생한 존재의 양소유. 성진이 여덟명의 선녀를 만나고 잠깐 부귀영화를 요한 탓에, 그를 '후생각고'라 생각했던 스승 육관대사에게 죄를 입고 '양소유'로 환생해, 나중에는 불경한 생각을 한 것을 뉘우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담아낸 불교적 신앙이 드러난 글이다. 이글은 현세계에서 '오두백마생각'하다. 따라서 독자들은 다소 어리둥절 할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양소유의 삶의 궤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환생전에 꾸었던 현실적 욕망 다름 아닌 애정욕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출세 욕구가 핵심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덟선녀와 만나 후 죄를 입어 인간세상에 떨어진것과 과거길에 오르며 여러여인들과 친분을 쌒은 것으로 보아 성진의 현실적 욕망은 불교에서 금하던 애정 용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책의 제목은 '성진과 팔선녀가 인간의 삶을 나타냈다 사라지는 구름'이라 하여 '구운몽'이다. 내용을 보면 여덟선녀와 성진이 각자의 상사에게 죄를 입어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애정을 나누는 부분이 '복잡다단'하다. 제목과 내용을 합쳐보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성진'만이 부귀영화를 요하고, 애정욕망이라는…
2014-01-27 20:14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고등학교 시절 심취하였던 헤세의 대표작이다. 헤세의 소설을 읽으면 어디선가 마른 풀과 들꽃 향기가 나는 듯하다. 여행을 하다 낯선 길에서 만난 들꽃과 마른 풀이 가득 쌓인 헛간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듯 그렇게 다가온다. 지성으로 대변되는 인물인 나르치스와 감성형 인간인 골드문트 두 인물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나르치스는 수도사의 길을 택하여 오직 학문의 길을 정진하는 것이 신의 섭리이고 자신의 소명으로 느끼며 사는 이성적 인물이다. 그에 비해 집시의 피를 타고난 정숙하지 못한 어머니의 기억을 지우도록 교육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도사의 길로 나아가기로 되었던 골드문트는 금기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나르치스가 일깨우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어머니의 세계에 속한 골드문트 수많은 여인들을 만나 사랑하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기쁨을 얻는다. 예술가로 아름다운 작품을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사랑을 쫓아가다 마지막 삶을 마친다. 지성으로 충만한 나르치스에게 골드문트와의 만남과 사랑은 신의 축복 같은 존재이며, 골드문트에게 나르치스는 영혼의 스승이며 인도자이자 안식처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동전의 양면 같지
2014-01-24 13:48한라산(높이 1,950m)은 분출을 멈춘 휴화산으로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백록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름이 많고 봄철의 철쭉부터 겨울철의 설경과 운해까지 사계절 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해발고도에 따라 아열대‧온대‧냉대의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한라산의 상징인 노루를 곳곳에서 만나는 것도 산행의 재미다. 폭설로 며칠 동안 금지되었던 한라산 산행이 전날 해제되었다. 등산객이 많이 몰려들면 인원수를 제한할 수 있어 둘째 날은 일어나자마자 숙소에서부터 속도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모처럼만에 아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느라 전날 밤늦게까지 과음을 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고, 4시 30분에 밥을 먹고, 5시에 숙소를 출발하고, 5시 30분 성판악에 도착했다. 장갑, 모자, 넥워머, 아이젠, 스패츠, 보온병 등 겨울 산행은 준비물이 많다. 랜턴 없이 어둠속에서 겨울산행 초보인 둘째를 챙기느라 일행들과 떨어졌다. 뒤늦은 5시 50분경 다른 산악회원들의 랜턴 불빛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에서 '한라산국립공원, 해발 750m'를 알리는 표석이 눈 속에 서있다. 사방이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다. 어두우면 한 가
2014-01-22 15:148개월 전 둘째와 함께 올랐던 백록담의 겨울 풍경이 보고 싶었다. 지난 1월 11일부터 이틀간 청주 산누리산악회의 백록담 산행에 둘째와 함께 동참했다. 해남의 우수영에서 제주를 쾌속정 로얄스타호로 오간 이번 여행은 첫째 날은 우도 여행, 둘째 날은 한라산의 백록담 산행이 목적이었다. 잠을 설친 채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새벽 2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3시 15분경 2차 집결지인 남부주차장에서 일행들과 합류해 목포로 향한다. 예정했던 47명 전원이 시간에 맞춰 참석했으니 열정들이 참 대단하다. 취침모드로 눈을 감았지만 모두들 폭설로 통제되었던 한라산의 등반여부가 관심사다. 어둠속을 부지런히 달린 관광버스가 호남고속도로 정읍녹두장군휴게소를 거쳐 6시 30분경 목포에 도착한다. 목포여객선터미널 옆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유달산과 목포해양대학교, 목포대교, 고하도와 허사도를 지나 진도 못미처에 있는 해남의 우수영여객선임시터미널로 간다. 차에서 내리니 거북선 모형 뒤편으로 보이는 일출이 아름답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법정스님의 생가가 터미널 앞 강강술래길에 있지만 아는 사람들이 적다. 8시 40분이 되자 2시간 30분이면 제주도에 도착하는 쾌속선 로
2014-01-22 15:09영화 ‘변호인’이 개봉 33일 만인 1월 19일 관객 천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로 1016만 1834명이 극장을 찾았다. 한국영화론 9번째, ‘아바타’까지 셈하면 10번째 ‘천만클럽’ 영화이다. 신인 감독이 이뤄낸 일이라 더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영화사의 쾌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변호인’은 어떤 영화인가.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대중일반이 열광하는가? 우선 ‘변호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림사건’ 변호인을 맡았던 변호사 시절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다시피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부산 지역 용공조작사건이다. 감독이나 송우석 역의 배우 송강호 모두 ‘친노무현 색깔’을 경계했지만, ‘변호인’은 일단 그럴만한 전직 대통령을 두었다는 점에서 만족해도 될 영화이다. 사실 역대 대통령중 고(故) 김대중말고 이렇게 그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자랑스럽게’ 만들어도 될 전직은 없었다. 그것이 과언이 아닌 점을 떠올려보면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고졸 출신 변호사. “자갈치시장 아줌마란 소릴 들어도 돈 버는 게 억수로 좋다”던 ‘속물 세법 변호사’ 송우석이기
2014-01-20 14:54"과학자는 우주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시인은 시간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느낀다."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브 말하라, 기억이여 중에서 과학자도 아니고 시인도 아닌 보통사람인 나는 어디에서 모든 것을 보고 느끼는가? 대답은 바로 책이다.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책이라고 답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여기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내 인생의 위대한 스승은 바로 책이다. 좋은 책을 만나는 기쁨은 살아 있음의 감동을 선물한다. 언제부턴가 도서관의 책을 빌리는 습성을 바꾸게 되었다. 이름 있는 책 중심으로 빌려 읽거나 사서 보는 습관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도서관 분류 칸을 두루 옮겨 다니며 책 목록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만난 책이 바로 공자처럼 학습하라였다. 공자! 너무나 많이 알려진 인류의 스승이라 진부할 것 같은 책 제목이었지만 그래도 -학습하라는 말꼬리에 시선이 꽂혔다. 사랑에 빠진 순간!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책과 사랑에 빠지는 책을 고르는 것이다. 직관적인 느낌, 마치 첫사랑의 눈동자처럼, 순간적인 사랑에 빠지는 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읽는 동안 호흡이 자주 멈춰지는 책이어야 한다. 깨달음을 안겨준 문장을 베껴 쓰느라…
2014-01-20 14:52요즈음 북극 한랭기류 영향으로 도심의 사람들은 매우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청년들의 마음에 추운 겨울이 자리잡고 있다는 현실이다. 방학인데도 도서관을 떠나지 못하는 취업 준비생들은 이른바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다. 세상으로 나가는 관문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학점은 기본적으로 해야 되고, 거기에 더해서 스펙도 쌓아야 하는데 스펙도 영어, 자격증, 대외 활동도 해야되고, 그래서 너무나도 할 게 많다보니까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이 인력 채용 방식을 바꾸기로 발표하여 취업 준비생들은 당혹시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4월 공채부터 적용되는 채용 제도의 핵심적인 변화는 1995년 폐지했던 서류 전형의 부활이다. 이를 통해 스펙 중심의 응시자를 걸러내고, 학점과 관련 동아리 활동, 경진대회 참가 여부 등으로 직무 전문성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또 서류 전형 통과자만 SSAT를 응시할 수 있게 해 취업 사교육비 부담도 줄이겠다는 취지를 발표한 것이다. 삼성전자 인사팀장은 “직무와 무관한 자격증 등 보여주기용 스펙보다는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 열정을 종합적으로 검증하여 인재
2014-01-17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