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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초등학생이라는 점에서 너무 충격적이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초등학교 교실과 교정에서 버젓이 벌어진 것이다. 학교와 교육청의 은폐 의혹과 안이한 대처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가정과 사회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교육을 포함해 학교 교육 전반에 대한 반성과 대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학교와 교육청이 제때 제대로 대처만 했더라도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학생들의 음란행위 흉내와 동성(同性) 하급생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 시교육청에 정식 보고되는 데는 무려 3개월이 허비됐다. 학교와 지역교육청은 심리치료와 성교육 방송 등 나름대로 조치를 취했다고는 했지만 결국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이어짐으로써 이런 조치는 무용지물이 됐다. 동성 간 성폭력을 `학교 폭력'으로 간주한 것도 그렇고, 학교 측의 `학생들이 모두 반성하고 문제가 해결됐다'는 내용의 보고도 그렇고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사들이 사건 초기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학교 측이 묵살했다는 주장도 있다. 교육 당국과 수사당국은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대처 과정에 잘못이 있는 경우 관계자를 엄중 문책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아이들은 인터넷과 케이블TV 등을 통해 음란물을 보고 성행위를 흉내냈다고 한다. 싸움 잘하는 상급생이 하급생들을 위협해 변태적 성행위 등 자신들이 본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게 하고 음란물을 억지로 보게 했다. 상급생들은 음란물을 보고 따라하지 않으면 동네에서 `왕따'시키겠다고 협박했다. 더욱이 피해 남학생들이 가해자들에 가담해 여학생을 성폭행하기조차 했다. 가해ㆍ피해 학생이 50∼1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우리 아이들이 성인 콘텐츠와 성폭력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이들은 한번 음란물에 빠지면 어떻게든 보는 방법을 찾아낸다. 음란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정보윤리교육 강화가 시급하다. 차제에 성교육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신체적인 차이 정도만 가르치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선 교사들은 전문지식도 없고 대처 매뉴얼도 없는데 어떻게 성교육을 시키라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전문지식과 성교육 기자재를 갖춘 전문가와 기관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성교육은 학부모에게도 필요하다. 성교육을 정식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학교나 교육청의 노력만으로는 아이들을 성범죄 유혹과 성폭력으로부터 완전히 보호할 수 없다. 가정과 학부모의 더욱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
30일 대구에서 밝혀진 초등학교 교내 집단 성폭력 사태는 인터넷, 케이블TV 등의 음란물을 접한 남학생들이 이 내용을 모방, 동성(同性) 후배를 성폭행한 것이 시발이었다. 이 같이 계속된 관행은 결국 피해 남학생들이 가해자들에 가담,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일로까지 이어졌다. 학교 안에서 어린이들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로 뒤엉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학교폭력 및 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구시민 사회 공동대책위(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작년 11월20일께 대구 달서구 A초교의 한 교사는 학생들이 성행위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놀라 상담에 나섰다. 이 교사는 상담 결과 6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한 상급생들이 음란물 내용을 모방, 3∼5학년 남학생들에게 성기를 만지게 하고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 음란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이들은 하급생에게 음란 동영상을 억지로 보여주고 동성간 성행위 등을 요구한 뒤 이를 거부하면 폭행하고 집단 따돌림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성폭행 피해자 중 일부는 가해 학생들과 함께 다른 남.여학생을 추행하고 성폭행하는데 가담, 성폭력이 또 다른 성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이 학교 학생 10여명은 지난 21일 중학교 1∼2학년 동네 선배들과 함께 여자 초등학생 3명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사건을 맡고 있는 대구 서부 경찰서는 가해 학생 중 일부가 29일 '당시 다른 여자 초교생 5명도 함께 성폭행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탐문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대책위는 성폭력에 연관된 학생 수를 밝히는 것은 거부했으나 올해 2월 A초교 자체 조사에서 음란 행위를 한 학생들이 40여명에 이르렀던 점으로 미뤄 볼 때 가해자 및 피해자 수는 최소 50명에서 최대 100여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가해 학생들은 대부분 맞벌이 가정 출신으로 부모들이 집에 없는 시간에 인터넷과 케이블 방송, IPTV(인터넷TV) 등에서 음란물을 본 뒤 이를 모방해 성폭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초교 측은 이런 학생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는 '독서 교육'을 시키고 학교 방송으로 전교생에게 성교육을 하는 등의 조치만 취해 대처가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학교 측은 최초로 성폭력 사실이 드러난 지 약 4개월 뒤인 지난 2월 말에야 교육청에 해당 사실을 통보해 사건을 숨기려다가 '늑장 보고'를 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당시까지 A초교 교장을 맡았던 김모 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가해 학생들도 음란물의 피해자로 봤기 때문에 처벌보다는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며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부모와 같이 상담을 하는 등 필요한 조치는 다 취했고 사건을 은폐했다는 말은 인정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이 학교 B(12) 군 등 10여 명이 C(9) 양 등 초교생 3명을 성폭행해 피해 학생 부모들이 아동 성폭력전담센터와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 결과적으로 학교 측 조치는 무용 지물이 됐다. 학교와 교육청 측이 동성(同性)간 성폭력 문제에 무지해 초기에 사건 대처를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책위에 따르면 A초교 일부 교사들은 성폭력 사실이 확인된 지 10여일 뒤인 작년 12월 초 대구 남부교육청에 익명으로 이 같은 문제를 문의했지만 '자기들(동성)이 서로 좋아서 한 경우는 성폭력이 아니라 학교 폭력으로 보고해야 한다'는 답만 들었다. A초교 역시 성폭력에 연루된 학생들의 명단을 만들고 나서도 동성 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분류하는데 혼동을 겪는 등 사건 대처에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대책위의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은 "무조건 음란물을 보지 마라고 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 음란물에 신비감을 느끼고 더 빠지게 하는 결과만 낳는다"며 "우리 교육계가 이 같은 사태가 터졌을 때 아이들을 치료하고 교육하는 역량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tae@yna.co.kr
서울에 이어 경기도교육청이 30일 0교시 수업과 우열반 편성 금지를 골자로 한 학교 자율화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하자 학생과 학부모들은 "공교육의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는 기회"라며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이들은 특히 수준별 이동수업 확대와 사설학원 등 영리단체의 방과 후 학교 수업 참여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고등학교 3학년생인 김모(18)양은 "우열반 형태는 아니라고 하지만 수준별 수업도 학생 개개인의 성적이 그대로 드러나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면서도 "그래도 차라리 실력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 처음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양 소재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김모(35.여) 교사는 "현재 상중하 3개 학급으로 나눠 수준별 이동 수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측면이 많다"면서 "학생의 실력에 따라 학급을 좀 더 세분화 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이어 "현재는 수업만 나눠서 받는다 뿐이지 시험은 똑같아 중.하위 학급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다"며 "시험과 평가도 학급에 따라 차등을 둬야 교육부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고에 다니는 아들을 둔 신모(42.여)씨는 "학급 내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가계에 부담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 차원에서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의할 경우 부담이 줄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나타냈다. 또 다른 고교생 학부모인 정재희(46.여)씨는 "능력을 인정받은 학원 강사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면 기존 교사들에게도 상당한 자극이 될 것으로 본다"며 "어차피 사교육을 해야한다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도 좋다"고 덧붙였다. 경기도학원연합회의 김태용 사무국장은 "학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책"이라며 "학교 수업을 차지하기 위한 학원 간 경쟁이 도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대다수의 일반 학원들이 방과 후 수업을 유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에서 학원강사를 고용해 사교육을 실시할 경우 학원 교육이 말살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교복이나 급식처럼 뒷돈이 난무하는 상황도 발생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과 후 학교를 영리단체에 위탁운영해 교육비를 내고 공부해야 하는 경우 의무교육과정인 초중학교 교육을 유상으로 실시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교사인 김모(29.여)씨도 "예체능 과목이 아닌 일반 교과목을 외부 강사를 들여와 가르친다는 도 교육청의 논리가 학교 교육과 교사를 무시하는 처사인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교육이 사교육과 마찬가지로 성적 위주의 수업 방식으로 나아갈지 모른다"고 말했따. 한편 도내 교사의 50% 이상이 가입한 경기교총은 "학교 자율화 계획이라는 큰틀에는 지지한다"면서 "당분간 혼란이 예상되지만 자율화의 참뜻을 살리는 방향으로 관련 단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교총의 김무확 교권팀장은 "궁극적인 목표는 도 교육청의 자율화가 아니라 학교 자율화"라며 "반대 논리만 앞세우기 보다 일선 현장에서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 자율화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마련이 함께 이뤄지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lucid@yna.co.kr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정부의 대입 자율화 계획이 차질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학에 대한 예산지원을 늘려줄 것을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키로 했다. 1일 대교협에 따르면 전날 열린 이사회에서 회원 대학 총장들로부터 이같은 의견을 모아 교과부에 전달키로 했다. 대교협 관계자는 "대입 자율화가 되는 것은 좋지만 지방대학의 경우 위기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정부가 입시에 대한 권한만 넘겨주지 말고 이에 필요한 예산, 인력 등도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교협은 또 입시업무 이양을 위해 정부가 입법예고한 대교협법 개정안이 입시일정 추진, 자율화 이행 등에 일부 방해되는 요소가 있다며 수정 의견서를 내기로 했다. 개정안 제18조3은 `협의회가 대학의 대학입학전형계획을 심의할 수 있다'고 돼 있으나 대교협이 각 대학의 입시안을 심의하는 것은 대입 자율화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또 대입전형 기본계획을 학년 개시일의 1년 6개월 전에 공표하도록 하고 있어 2010학년도 대입 기본계획은 오는 8월 말까지 공표해야 하나 시기적으로 촉박하다고 대교협은 지적했다. 대교협 관계자는 "8월에 기본계획을 발표하려면 늦어도 6월까지는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현재 정치일정상 불가능해 보인다"며 "법률개정은 시간이 걸리므로 차라리 시행령을 개정하자는 게 우리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입법예고안에 대해 6일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yy@yna.co.kr
삼별초, 자주를 외치다 지난 호에 이어 진도를 찾아갑니다. 진도는 삼별초의 본거지였습니다. 삼별초는 본래 최씨 무신정권에서 경찰기능을 맡았던 야별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야별초는 그 수가 많아짐에 따라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게 되었고 후에 몽고와의 전쟁 때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병사들인 신의군과 합쳐 삼별초라 부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삼별초는 도둑을 잡고 범죄자를 투옥하는 치안유지의 기능과 함께 대몽항쟁의 최전방에 있었던 군사적인 기능까지 아울렀던 것입니다. 1206년 칭기즈칸이 나라를 세운 뒤 줄곧 고려는 몽고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급기야 1225년 몽고사신 저고여(著古與) 일행이 압록강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계기로 몽고의 본격적인 침략이 진행되게 되지요. 이에 맞서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은 장기적 항전을 결심하고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깁니다. 몽고에 대한 줄기찬 항전에는 최씨 무신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던 삼별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258년 김인준에 의해 최씨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듬해 결국 몽고와 강화를 맺게 되고 그 후 개경 환도가 결정됩니다. 최씨 무신정권의 핵심병력이었던 삼별초는 약 40년간 고려의 수도였던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환도하게 되자, 배중손의 지휘 아래 원종의 6촌인 승화후 온을 받들어 반몽 투쟁을 계속해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도로 옮겨 4년간 항몽투쟁을 계속하게 되지요. 삼별초의 자주정신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진도에 근거지를 마련하게 된 까닭은 개경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남해와 서해를 통괄할 수 있는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본토와 적절하게 떨어져 있어서 본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진도에 도착한 삼별초군은 용장산성을 구축하고 궁궐을 짓고 남해와 서해를 아우르는 해상 왕국을 건설합니다. 하지만 곧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하게 되고 나머지 세력이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옮겨가게 됩니다. 진도에는 삼별초과 관련한 유적으로 용장산성, 남도석성, 궁녀둠벙, 전(傳) 왕온묘, 배중손 사당 등이 있습니다. 진도의 삼별초 유적 군내면 용장리 용장산성은 강화도에서 남하하여 진도에 정착한 삼별초군이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으로 그 둘레가 13㎞에 이릅니다. 현재 산성터, 궁궐터, 우물터, 절터와 석불, 와편 등이 남아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이곳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바다가 가깝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승화후 온을 새 왕으로 추대한 삼별초는 경사면을 이용해 석축을 쌓고 궁궐을 지었습니다. 궁궐 옆으로는 지금도 개울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물이 풍부하고 교통의 요충지에 터전을 잡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 궁궐터 뒤로 난 길을 올라 산능선을 들어서면 진도 주변의 풍경이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능선에서 만나는 성벽은 유난히 희고 정확하게 자른 돌로 복원해서 그런지 옛 감흥을 느낄 수 없어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능선을 따라 조금만 더 걷다 보면 이내 그 시대 그 사람들이 쌓은 성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벽은 세월에 자리를 내주어 아주 낮게 허물어진 몰골로 남아 있지만 그 성벽을 처음 보았을 때는 눈물이 나기까지 합니다. 돌 하나하나를 보듬어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이 산꼭대기까지 돌을 옮겨 성을 쌓던 삼별초군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개경 환도에 반대해서 멀리 이곳까지 오긴 왔는데 과연 불투명한 자신들의 앞날은, 또 고려의 미래는 어떻게 되리라 예측했을까요? 잠시나마 그들이 흘렸을 땀방울과 눈물을 음미해 봅니다. 이곳에서 1년 정도 머물렀던 삼별초군은 고려 김방경과 몽고의 혼도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마침내 성이 함락되고 맙니다. 삼별초를 이끌었던 배중손 장군은 남도석성으로 옮겨 항전하다 전사하고 김통정은 별동대를 이끌고 금갑포에서 마지막 결전을 펼치게 되죠. 하지만 연합군에 밀려 제주도로 탈출하여 제2의 대몽항전을 전개합니다. 이들은 애월읍 고성리 항파두리에다 성을 쌓고 이듬해까지 싸웠으나 결국 연합군에 의해 진압이 되고 김통정은 한라산 기슭에서 자결함으로써 삼별초의 항쟁이 끝을 맺게 되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006년에 용장산성 홍보관이 개관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남도석성에는 아직도 민가가 들어서 있습니다. 튼튼한 성벽을 바람막이 삼아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은 남도의 따뜻한 날씨만큼 푸근해 보입니다. 이곳은 배중손 장군이 최후를 마친 곳으로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수군과 만호(萬戶)를 배치하여 인근 지역을 경비하였습니다. 남문 밖에는 남박다리가 있습니다. 남박다리는 여수 흥국사나 순천 선암사 승선교와 같은 홍예 형태의 돌다리이지만 규모로 치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입장입니다. 하지만 편마암질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투박하면서 서민적인 정취가 물씬 묻어납니다. 남박다리는 가까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단운교와 쌍운교를 함께 말합니다. 배중손의 사당은 임회면 굴포리 바닷가에 있습니다. 오른손을 치켜들고 왼쪽에 칼을 찬 채 굴포 앞바다를 지켜보는 그의 모습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또, 삼별초가 고려의 왕으로 추대했던 승화후 온은 연합군에 밀려 후퇴하던 중 의신면 침계리에 있는 ‘왕무덤재’ 또는 ‘왕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붙잡혀 죽임을 당한 후 고개 한쪽에 묻혔다고 합니다. 이 고개에는 주인 없는 비교적 큰 무덤이 5~6기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묘가 그의 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왕온의 무덤 앞에는 그가 탔던 말의 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한편, 부여에 낙화암이 있다면 진도에는 궁녀둠벙이 있습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의 3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듯 진도의 고려 궁녀들은 연합군에 잡히기보다는 차라리 둠벙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지금의 둠벙은 일부가 메워져 규모가 줄었지만 날씨가 궂으면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도깨비불이 자주 나타나곤 했답니다. 4대에 걸친 대화맥, 운림산방 ‘진도 양천 허씨들은 빗자락 몽둥이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근원지가 된 곳이 바로 첨찰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운림산방입니다. 울창한 상록수림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허련의 화실 당호입니다. 허련 이후 일가직계로 4대에 걸쳐 200여 년 동안 대화맥(大畵脈)이 이어지고 있어 이곳은 진도의 상징이자 자존심입니다. 소치(小痴) 허련은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각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상심의 마음을 그림 그리는 것으로 달랬습니다. 그러다가 해남에 있던 일지암의 고승 초의선사를 찾아가 시문을 배우게 됩니다. 녹우당을 오가며 윤공재 일가의 3대에 이르는 명화첩을 통해 그림을 배워 나가던 중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는 기회를 맞게 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서화(書畵)를 익히게 되고 점차 그의 재능이 인정을 받기에 이릅니다. 42세가 되던 해에는 헌종을 15회나 독대하는 등 그 권위와 명예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호 소치는 스승이었던 추사가 내려 준 것으로 소치의 재능과 능력이 원나라 말기 최고의 화가였던 대치 황공망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해서 지어준 것입니다.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하였습니다. 소치는 스승이었던 추사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인 진도로 돌아와 화실을 짓고 ‘소허암’ 또는 ‘운림각’이라 했는데 이곳이 바로 운림산방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2대 미산(米山) 허형은 의제 허백련의 그림을 지도해 주었으며 당시 희귀했던 전문직업 화가로서 가난 속에 살다 간 서민의 화가였습니다. 미산이라는 호는 원래 소치의 장남이었던 허은의 호였는데 일찍 타계하자 4남이었던 그가 큰형의 호를 그대로 물려받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허형을 ‘소미산’ 또는 ‘작은 미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산은 강진 병영을 거쳐 여생을 목포에 정착하면서 작품제작에 몰두하였으며, ‘작대기 산수’로 유명합니다. 역시 양천 허씨 출신으로 유명한 의재 허백련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지요. 그의 화맥은 3대를 잇는 4남 허건과 5남 허림으로 이어집니다. 남농(南農) 허건은 물상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승화시켜 남농 특유의 갈필법을 사용하는 독창적인 화풍을 이루어냈으며 많은 대회에서 수상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운림산방은 그가 복원하여 국가에 헌납한 것입니다. 남농과 함께 형제화가로 널리 알려진 임인(林人) 허림은 남농의 친동생으로 모든 물상을 점으로 표현하는 ‘토점화’라는 독창적인 화법을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그의 아들 허문을 통해 화맥이 이어집니다. 4대인 임전(林田) 허문은 안개로 시작하여 안개로 끝난다 하여 일명 ‘안개작가’라 불리며 백부였던 남농으로부터 그림공부를 익히게 됩니다. 4대에 걸쳐 이어진 이러한 화맥은 남농의 손자인 오당(五堂) 허진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화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적 같은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돌이켜 보면 소치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는 가장 파란만장한 시대였습니다. 그 와중에서 우리의 전통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럼에도 200여 년을 잇는 대화맥을 끈끈하게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진도사람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운림산방에는 화실인 운림산방 외에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양천 허씨 문중 사당인 사천사, 소치의 영정이 그려진 운림사, 소치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연지의 백일홍, 일지매(一枝梅) 등이 있습니다. 모세의 기적, 진도의 기적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은 비교적 수심이 얕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기 때문에 이른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바로 진도에 있습니다.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2.8㎞에 걸쳐 바닷길이 생기는 이러한 ‘진도의 기적’을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진도군에서는 해마다 신비의바닷길축제를 개최합니다. 올해는 5월 5일부터 7일까지 개최합니다. 뽕할머니 사당에서 열리는 뽕할머니 제사로 시작되는 이 축제는 진도 고유의 민속예술을 볼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남도 들노래, 다시래기, 씻김굿, 만가와 북놀이, 강강술래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그밖에 물고기 잡기 행사 등 체험행사도 함께 진행됩니다. 이곳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랑디가 진돗개 연구차 진도에 왔다가 바닷길이 열리는 현장을 목격하고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감탄하여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것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1996년에는 일본의 인기가수 덴도요시미씨가 신비의 바닷길을 주제로 ‘진도이야기(珍島物語)’ 노래를 불렀지요. 진도에서는 이렇게 바닷길이 열리는 것을 영등살이라고 부릅니다. 영등살과 관련해서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지금의 회동마을에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마을을 호동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호랑이의 침해가 날로 심해져 더 이상 살기가 어렵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의신면 모도라는 섬마을로 피하면서 황망 중에 뽕할머니 한 분만 마을에 남고 말았습니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원하였는데 어느 날 꿈속에 용왕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내릴 터이니 바다를 건너가라’고 일러주는 것이었습니다. 모도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 기도하고 있던 중 갑자기 바닷길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서야 모도로 넘어가 있던 마을 사람들이 뽕할머니를 찾기 위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마을에 도착하니 뽕할머니는 ‘나의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만났으니 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면서 기진하여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를 본 주민들은 뽕할머니의 소망이 바닷길을 만들어 영(靈)이 등천(登天)하였다 하여 ‘영등살’이라 하고 이곳에서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영화는 처음에 독일의 평범한 중산층 이상 가정의 청소년들의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전체주의에 마음이 쏠려, 이 운동에 감동하며 열광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는 집단 심리 현상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영화는 68세대 이후 반 권위주의적, 자유주의적 교육 세례를 받고 자란 독일의 청소년들도 상황에 따라 전체주의 집단 최면에 걸릴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몽교육만으로 안심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나치’ 이야기에 신물 난 독일 학생들 보통 독일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누구나 교육과정에서 나치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듣는다. 게다가 평소 저녁 시간 TV를 틀면, 나치의 만행이나 당시 정치적 상황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저녁 황금시간대의 단골 프로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에게 이 주제는 너무 많이 들어 지겹기도 하고, 너무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 남의 일 같기만 하다. 또 요즘 아이들이 그렇듯이 독일 청소년들도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이며, 끼리끼리 그룹을 지어 다닌다. 바야흐로 전체보다는 개성이 중요시되는 시대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이 영화에서 전혀 ‘쿨’하지 않고, 여태까지 ‘악의 구렁텅이’라 여겼던 전체주의에 어떻게 빠져들 수 있었을까? 무대는 바로 현재, 독일의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계층의 아이들이 다니는 남녀공학 인문계 고등학교. 학급구성원들도 여느 학급과 다를 바 없이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다. 여학생의 선망을 받는 잘생기고 학급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남학생, 앞에 나가 아이들을 웃기는 오락 부장, 정치 활동에 열심인 학생, 공부에 열심인 우등생, 부유한 가정의 터키출신 학생 등이 학급 구성원들이다. 영화 ‘독재가 어떻게 발생할까’ 실험 이 학급을 맡고 있는 주인공 교사 벵어(위르겐 포겔)는 청년 시절 90년대 좌파대안운동권에서 유행했던 빈집 점거를 한 경력이 있다. 그만큼 의식 있고,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반권위주의적 교사다. 그런 그가 ‘독재’를 주제로 심화학습을 하려 할 때 학생들은 “어휴, 지겨워. 선생님, 차라리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다루지 그러세요”라며 거부한다. 이에 자극받은 교사 벵어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럼 한번 두고 보자”며 위험한 게임을 시작한다. 그는 심화수업으로 ‘독재’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 하는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처음에 아이들은 “지금 여기서 더 이상 전체주의는 불가능하다 해요”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문제는 학생들이 이 실험에 진지하게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실험은 ‘규율을 통한 권력, 공동체를 위한 권력, 행동을 통한 권력’을 모토로 몇 주간 교사 벵어의 지도에 따라 행하기로 한다. 이 기간 이 학급의 학생들은 고무돼, 흰색 셔츠로 통일해 입고, 서로 협력하며, 이 프로젝트의 명칭을 물결이란 뜻의 ‘디 벨레’라고 붙인다. 이 물결이라는 운동으로 반 전체 학생들이 모두가 합심해, 낙오하거나 소외된 아이들까지 하나의 공동의 목표를 가진 집단에 편입시킨다. 그리고 처음에 코웃음 쳤던 아이들이 점차 정말로 집단 도취에 빠져든다. 이들의 모습은 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닥불, 캠프 등을 떠올리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히틀러 소년단의 낭만적 모습과 일면 동일하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저항자도 있다. 그들은 그 때문에 집단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마침내 교사도 권력의 자아도취 빠져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미국 커벌리 고교의 실화 바탕돼 원래 영화의 원작은 모튼 류(Morton Rhue)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196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커벌리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당시 역사 교사였던 론 존스(Ron Jones)가 실제 이런 실험을 했었다고 한다.이 소설은 80년대 초에 미국 TV시리즈로 제작, 방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현재의 독일 인문계 학교라는 공간을 빌려와도 청소년들이 어떻게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는지 리얼리티를 집단 다이내믹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아웃사이더, 외국인, 헤도니스트, 저소득층 자녀들 이들 모두 ‘물결’이란 공동체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지구화 시대에 어떤 식으로든 소외돼 있는 어린 영혼들은 공동체 의식과 자의식을 가지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정신적 ‘운동’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소수’는 무시되고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전체는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이에 관련해 극우문제 전문가 베노 하페네거는 “청소년들은 외부로부터 인정받고 안정된 환경을 필요로 한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어른들은 사회적으로 비교적 불안정한 상황에서 산다. 이를 보면서 청소년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전체주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영화에 벌어지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 영화는 젊은이들이 극우에 빠지는 메커니즘을 잘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간젤 감독은 영화에서 반권위주의 교육을 받은 청소년도 쉽게 이런 유혹에 빠질 뿐 아니라, 이미 그 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 속의 부모들의 자유주의적이며 반권위적인 교육법에 의문을 던진다. 영화 장면 중 엄마가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고 하자, “엄마가 날 그렇게 키웠으면 차라리 나을 뻔했어. 우릴 키울 때 엄마가 우리한테 좀 엄격했어도 나쁘진 않았겠지”라는 여학생의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1973년생으로 68세대 부모 밑에서 자란 간젤 감독은 영화 속 대사가 실제 자신과 부모 사이에 오갔던 말이기도 하다고 고백한다. 간젤 감독은 “청소년은 부모들과 구분되길 원한다. 자신과 부모 사이의 차이점으로 경계를 긋고 싶어 한다. 그런데 부모와 아이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68세대 이후 지금까지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권위적 어른이기보다 친구인 것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기준으로 삼고 반항할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럼 이런 전체주의에 빠질 유혹에서 구원해 줄 그 무엇이 ‘교육’이 아닐까? 하지만 간젤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교육의 수준이 아주 높더라도 교육으로 전체주의에서 안전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전체주의가 위험한 것은 그 교육의 방법이 아니라, 전체주의 자체의 메커니즘이다. 예를 들어 나치시대에 거의 모든 사회계층이 여기에 열광하며 참여했다. 나치에 참여한 이들 중엔 학식이 정말 높았던 지식인도 많았다. 전체주의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 인간의 저열한 본능에 호소한다는 것이다”고 말한다. 영화 속 학생의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은 알고 있었고, 수천 번 여기 우리에게 전체주의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루고 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게(전체주의) 가능하더라.”
월급날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왜 통장잔고는 바닥을 치는 건지…. 카드사 두세 곳에서 카드대금 나가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우는 소리하는 사람들 참 많이 있죠. 저 역시 그 중 한 명 일겁니다. 버는 건 크게 나아지지 않는데 카드 대금은 왜 상승곡선을 그리고 쭈욱쭈욱 올라가는 건지. 울적할 땐 그저 뭔가 하나씩 장만하는 게 최고의 처방이 아닌 줄 알면서도, 지름신에 지배당하는 신자본주의 쇼퍼홀릭(Shopaholic·쇼핑에 중독된 사람) 진단서. ‘사 버린다’의 메커니즘이 당신을 휘감을 때 한 2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장보러 마트에 들렀다가 신상품인데 특가 30% 해준다기에 예정에도 없던 등산바지 하나 사버렸고요, 다음 달 휴가 가는 동료 면세점 쇼핑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가 나만 빼고 다 쓰는 것 같은 D사의 화이트닝 라인 화장품을 그냥 질러버렸고요,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쓰러져 TV를 켰는데 홈쇼핑에서 멋진 모델들이 자동복부운동기기를 몸에 감고 나와 뱃살을 빼는걸 보니 저게 바로 내게 당장 필요한 물품인 것 같아 10개월 무이자로 신청했더랬죠. 출근해서 메신저에 로그인 해보니 평소에 좋아하는 E브랜드의 스카프세트가 금일선착순 100개 한정 반값 세일을 한다는 팝업창이 뜨는데, 그냥 넘어갈 리 없었죠. 이 일은 30대 중반 워킹걸 B 선배의 실제 얘기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일주일 만에 70만 원을 ‘지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카드고지서가 날아오는 익월 5일이 되어서야 자신의 만행에 대해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녀는 우울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는 분기별 결산 즈음에, 이런 대형 사고를 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죠. 지르면서 ‘업’되는 나의 가치? 보상심리 작용설 B 선배 말고도 둘러보면 주변엔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쇼핑의 방법도 다양해져 물건을 사는 것 말고도 충동적으로 연간 헬스이용권을 끊는다거나, 해외여행상품을 1회 클릭으로 구매해 버린다거나, 공부도 하지 않을 값나가는 영어교재를 카드 일시불 결제 해버리는 등의 계획 없는 소비로 이어지기도 하죠. 이 쇼핑 중독은 흔히들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뇌 속의 세로토닌이라고 하는 호르몬의 수치가 떨어지면 우울증이 도지곤 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물건을 사게 되고, 이때 비싼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보상심리가 작용하게 된다네요. 뭐 학설은 이러하지만 사실 한 줄로 요약하면 ‘내가 돈 벌면서 이 정도 사고 싶은 것도 하나 못사?’라는 감정이 평소보다 ‘파바박’하고 강해지면서 잦아지면 알코올이나 마약중독보다 무섭다는 쇼핑중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름신을 떼어내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구매하려는 시점에서 하루 정도 미루는 것도 처방 중 하나라고 합니다. 온라인에선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창을 닫는 다든지, 오프라인에선 일단 찜 해두고 다른 매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 말이죠. 허나 여기에도 부작용은 있습니다. 하루가 지나서 정작 사려고 하면 그 찜해 놓은 물건이 없어지거나 매진되는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어 버린다는 거죠. 쇼퍼홀릭 친구 최 양은 그게 더 스트레스라고 합디다. 그러면서 지름신 금지처방도 라이프스타일이나 성격에 맞춰 따라가야 한다네요. 최 양은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지름신을 남발하려는 찰나에 ‘이런 거 말고 더 좋은 걸 사자’라는 자기주문으로 극복을 한답니다. 그간 본인의 지름구매행태 분석결과 정말로 별 필요 없는 문구용품이나 생활용품을 온라인으로 잔뜩 구매하고는 카드고지서를 받아보고 때늦은 후회를 수만 번 했다는군요. 그래서 차라리 지르고 싶을 땐 고가의 전자제품을 기웃거리는 게 낫다고 강추합니다. 물론 이외에도 ‘50% 할인’, ‘한정판매’, ‘1+1’ 등 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도 지름신에 대항해 갖춰야 할 덕목이라 하겠지요. 어찌됐든 보는 것으로 즐기거나, 적절한 수준의 쇼핑은 우울한 기분을 날려주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어느새 계절의 여왕 5월이 되었군요. 이번 달은 내가 아닌, 고마운 분들을 위한 합리적 쇼핑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받는 사람이 즐거워할 것을 상상하며 어울릴 만한 선물을 고르는 쇼핑의 재미는 선물하는 사람의 특권이니까요.
동·식물 표본 2천 여점 기부해 국립수목원 감사장 받은 하상교 교사 인천 신광초 하상교(55) 교사는 동·식물학자들에게 ‘신기한 선생님’으로 통한다. 수업이 끝나면 산과 들로 나가 채집하고 밤에는 채집해온 식물과 곤충들을 표본 하는 것이 일상생활인 그는 학자들도 하기 어려운 ‘발견’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그가 대청도에 근무하면서 4년간 채집한 표본에는 그동안 충청 이남지역에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후박나무를 비롯해 실거리나무, 아기사철란, 대청부채, 생열귀나무 등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식물들이 포함돼 있다. 또 열대지역에 주로 사는 살며 제주도에서조차 거의 발견하기 어려운 ‘남색남방공작나비’를 대청도에서 5마리나 채집하는 등 곤충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이런 성과에 국내의 유명 곤충학자인 강원대 박규택 교수, 인천대 배양섭 교수도 직접 대청도에 찾아와 하 교사와 함께 채집을 하기도 했다. “주로 울릉도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후박나무를 인천 앞바다 섬, 대청도에서 발견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죠. 국립수목원에서도 한 마리 보유하지 못한 희귀종인 ‘남방남색공작나비’를 인천 대청도에서 처음 발견한 것도 큰 성과입니다. 1980년대에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한 이후 2004년 제가 발견한 것이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제주도에도 발견하기 힘든 나비가 서해 최북단 섬인 대청도에서 채집됐다는 사실에 대해 학계에서도 놀라워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의 보고 대청도 채집광인 하 교사가 일생일대의 채집 기회를 만난 것은 지난 2002년. 인천 앞바다 서해 5도의 하나인 대청도 대청초교에 발령을 받으면서다. “대청도는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의 보물섬이에요. 그렇지만 학자들은 상주하며 연구하기 힘든 곳이죠. 다른 사람들은 반기지 않는 섬 생활이지만 저는 천국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주변에서 수집한 자료를 과학실에 비치해 놓고 교육용으로만 활용하다 체계적인 조사를 위해 섬 전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자연환경 보존 상태가 좋은 대청도의 동·식물들이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4년간 거의 육지에 나오지 않은 채 자료 수집에 열성을 보였다. 그는 대청도를 샅샅이 뒤져 식물 390여 점과 나비 28종 300여 점, 나방 370여 종 1200여 점, 딱정벌레 200여 점 등 무려 2000여 점을 채집, 표본 했고, 지난 1월 이를 국립수목원에 기증했다. 이들 중에는 곤충과 식물도감에 새로 등재하거나 서식지 지도를 뒤바꿔야 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가 많다. 특히 그가 이들 동·식물을 채집한 자료들은 일반 학자나 전문가들이 채집하기 어려운 대청도에서 4년간 지속적으로 채집해 종류가 다양하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감사의 표시로 지난 3월 하 교사에게 감사장과 기념품을 인천 남부교육청을 통해 전달했다. “소장하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동·식물 표본이어서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가지고 있는 국립수목원에 기증했습니다. 이 표본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손자와 손잡고 수목원에 기증한 표본을 보러 갈 생각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40년간 “채집은 나의 힘” 그가 ‘채집’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 생물반에 가입해 체계적으로 채집·표본 하는 방법을 배웠고 고교, 대학을 거치면서도 그의 관심은 온통 ‘채집’에 머물렀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채집을 했고, 학교를 옮길 때마다 표본을 전시하고, 기증했다. 그렇게 채집과 함께해 온 것이 벌써 40여 년.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나비가 좋아하는 꽃을 찾아 인적이 드문 산을 수없이 헤매기도 하고, 밤마다 하얀 벽면에 조명을 켜두고 나방을 기다렸다. 나방을 채집하다가 인분(鱗粉)이 눈에 들어가 고생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채집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도감(圖鑑)을 연구하고, 채집 중에 모르는 종을 발견했을 때는 관련 전문가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채집에 열정을 바치게 했을까. 하 교사는 채집의 가장 큰 매력으로 ‘발견의 기쁨’을 꼽는다. “채집을 갔다가 처음 만나는 종을 접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을 느껴요. ‘내가 해냈구나!’하는 무한한 자신감이 샘솟죠. 그것이 지치지 않고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매력입니다.” ‘서해 5도’ 동·식물 채집이 꿈 하 교사의 꿈은 앞으로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에 모두 근무하면서 그곳의 동·식물을 체계적으로 조사 하는 것. 최근 교감 연수를 마치고 근무 학교를 서해 5도 지역으로 신청해 놓았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학자들도 지속적으로 연구하지 못하는 섬을 제 힘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싶습니다. 서해 5도의 곤충과 식물 자료를 모아 수목원에 ‘서해 5도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체험캠프 ‘섬에서의 한 달’ 기획하고 싶어 하 교사는 이번 학기에 국립수목원으로부터 희귀 들꽃종을 분양받아 신광초에 ‘들꽃 단지’를 만들 생각이다. 대청도를 떠나 도시학교에 근무하면서 자연을 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본 지 오래되었죠. 자연이 곧 놀이터이자, 삶의 배움터인데 도시의 아이들은 학교, 학원밖에 몰라요. 자연과 ‘함께’해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체험’만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학교장이 된다면 한 반 정도의 아이들이 섬에서 지낼 수 있는 캠프를 마련하고 싶어요.” 그는 채집으로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 꼭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제 교육철학인데 채집이 제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보람이고, 또 앞으로 해야 할 남겨진 과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채집 활동은 계속 될 것입니다.”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교실 뒤에 붙일 독서감상화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간 줄만 알고 있었던 인재가 교실로 찾아왔다. 왼손을 움켜쥔 채 나를 찾아온 것이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다행히 작은 부상이라서 마음이 놓였다. “어쩌다 그랬니?” “학교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랬어요.”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여 보게 하고 물에 담가서 부은 것을 가라앉혀서 교무실로 데리고 갔다. 분무형 파스를 뿌려 주고 다독거려 주었다. “운동장에서 조금만 놀다가 들어와서 독서하자고 했는데 너무 많이 논 것 같구나. 내일부터는 학교 차가 가는 시간을 잘 보고 교실에서 책을 읽다 가면 참 좋겠다. 그렇게 하자. 응?” “예, 선생님.” 아이를 집에 보내고 집에 전화하니 아무도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보기에는 뼈에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혹시 모르니 손가락을 엑스레이로 찍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 학교는 면소재지에 있는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보건 담당 교사도 없다. 의학적인 전문 소양이 없는 필자에게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치는 일은 매우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안전한 학교생활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6학년을 가르치면서 보건 담당 교사까지 겸할 때였다. 학급에서 연 만들기 실습을 하면서 대나무를 잘게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벤 아이가 생겼었다. 집게손가락을 다친 아이가 피를 흘린 채 찾아 와서 가까스로 지혈을 시킨 다음 선배 선생님들께 보여드리니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응급 처방만 끝낸 아이를 데리고 읍내로 나갔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보니 손가락의 신경을 다쳐서 그대로 두었으면 손가락 한 마디를 제대로 쓸 수 없을 뻔 했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고 손가락에 깁스한 채 여러 날을 지낸 후 무사히 치료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학교에서 다치는 아이가 생기는 일이었다. 장난을 치다가 다리를 다치는 아이, 운동회를 하다가 다치는 아이, 수업 시간에 칼에 베는 아이, 점심시간에 친구들끼리 놀다가 다치는 일 등. 그때마다 마음을 졸이고 발을 동동거리며 애태우던 기억들이 새롭다. 왼손잡이인 인재가 왼손가락을 다쳐서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면서도 의젓하게 잘하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새삼스럽게 왼손의 고마움을 느끼며 그동안 잘 쓰지 않던 오른손을 쓰면서 자기 몸의 소중함을 잘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그렇게 커 간다. 아프면서 크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늦게야 연락이 된 인재 엄마는 아들의 장난이 심해서 걱정이라며 병원에 갈 생각도 안 하신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니 한 번 가보시라고 했더니 그러겠노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며 오히려 필자를 안심시켰다. 다른 아이들보다 덩치도 커서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지만 아직은 잘 다치는 나이이다. 아이들이 이제 2학년이 된 지 겨우 두 달째이다. 아직도 1학년 티를 다 벗지 못했다. 그러니 책을 보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노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학생 수가 적으니 동네에 가더라도 같이 놀아줄 동무가 없는 요즘 아이들이다. 모름지기 어렸을 때는 많이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최소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같이 놀아줄 동무도 귀하고 놀 시간도 없다. 운동장에 있는 놀이 기구를 타다가 아래로 미끄러진 가벼운 실수에도 손가락이 부을 만큼 다친 걸 보면 노는 방법이 서툴거나 잘 놀아보지 못했다는 증거다. 운동량이 부족한 아이들은 다치기도 잘한다. 잘 노는 아이가 더 창의적이고 밝으며 행복함을 느낀다고 한다. 모름지기 아이들은 행복해야 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희망사항이다. 명예를 얻고 물질을 추구하는 것, 장수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의 도착점은 결국 ‘행복’에 있다. 해인사 기둥에는 그 ‘행복’을 단적으로 표현한 글귀가 있다고 한다. 해인사에는 부처님이 설법한 모든 가르침을 고스란히 모아 목판에 새겨 놓은 팔만대장경을 봉안해 놓고 있다.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되어 국가적인 보물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재이다. 그 글자 수가 5000만 자를 넘고 권수로는 7000권에 이른다고 한다. 2500년 전에 부처님이 설법한 그 많은 가르침을 콕 집어내 단 열두 자로 요약해서 해인사 두 기둥에 새겨놓았다고 한다. 평생 읽어도 다 알지 못할 내용을 단 열두 자로 표현한 것이 바로 ‘행복(극락정토, 깨달음)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물음인 ‘원각도량하처( )’이며 그 대답은 바로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즉, ‘행복은 당신이 딛고 서 있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바로 이 자리’라고 새겨 놓았다고 한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특히 아이들은 놀면서 행복을 느낀다. 아이들을 가리켜 놀이의 천재라고 하지 않은가? 행복하게 같이 놀아줄 동무가 많지 않은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귀한 시골이니 집에 돌아가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과 동무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노는 방법을 가르쳐 볼까? 학교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학원 차를 기다리는 아이, 집에까지 태워다 줄 통학차에 맞추느라 마음 편하게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른들은 눈만 뜨면 ‘경제’에 몰입하고 아이들은 그저 ‘공부’하는 일에 몰입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숨 막힘으로 세상이 흐릿하다. 진정한 ‘몰입’은 즐거움을 동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할 때 자기 존재감과 성취감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탐색해야겠다. 벌써 봄기운이 월출산을 넘어 내려오는 모양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지닌 모두 다른 품성과 소질의 싹들이 보이기 시작한 요즘, 필자는 아이들마다 깊이와 넓이가 다른 밭이랑이 필요하다는 것과 칭찬의 강도와 격려 수준도 달라야 함을 깨닫는다. 예민한 준희에게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조용한 은비에게는 봄비처럼 조용한 속삭임이 효과적이다. 아직은 거칠고 메마른 현민이에게는 엄마 같은 손길과 눈빛이 더 필요하고 의젓하고 듬직한 인재에게는 경쟁심과 적극적인 칭찬으로 확실하게 표현해 주는 것을 더 좋아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샘이 많고 매사에 관심의 안테나가 주렁주렁 열린 은지에게는 뚜렷한 목적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5명의 아이들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행복의 조건은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교실이라는 획일적인 공간, 똑같은 선생님이라는 물리적 조건에서 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받아들임이 각기 다르니 세심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일상성에 매몰되어 ‘깨달음’과 ‘몰입’의 시간이 줄어든다. 오늘부터 통학차를 기다리는 동안 숙제를 다 마치고 할머니 대신 나의 확인을 받아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현민이의 밝은 표정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집에 가서는 영암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열심히 읽고 오면 된다고 했더니 대답도 크게 잘한다. 이제야 그 아이가 왜 그렇게 다른 아이들보다 습관적으로 밥을 많이 먹고 음식을 탐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는 사랑을 음식으로나마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 시간에는 해찰하고 말장난을 하며 학습 분위기를 흐려놓으면서도 음식 먹는 시간에는 몰라보게 음식에 집착하는 모습이 걱정인 아이. 부모의 사랑 대신에 먹는 즐거움에 ‘몰입’하지 않도록, 모든 욕심의 근원이 ‘식탐’임을 가르치며 자제력을 길러 줄 ‘사랑’의 마술을 날마다 익혀야겠다. 그의 허전한 공간이 진정한 행복의 조건으로 채워져서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그날까지 앞으로 달려갈 동력을 안겨줄 ‘몰입의 즐거움’이 공부하는 일이기를! 아직은 스펀지 같은 흡인력을 자랑하는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기를! --------------------------------------------------------------------------------------------- 교원들이 참여하는 독자와 함께하는 새교육은 수필, 동화 등의 문학작품, 교단일기, 교육정책 제언, 색다른 수업 등 주제의 구분 없이 모두 소개 하는 코너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새교육 이메일 sae@kfta.or.kr로 원고를 보내주십시오. 관심 있는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학교 교육과정 중의 수련활동 행사 책임자로 설악산으로 수련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학년부장으로 480명 정도 학생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2박 3일을 가정과 학교를 잠시 잊을 수 있다는 것으로 설레었다. 학교장에게 신고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학생들은 그다지 신이 난 표정들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출발을 했는데 그 이유를 수련회 마지막 날 알게 되었다. 수련회 활동 중에 마지막 날 ‘사제 통감’코너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원하거나 서운했던 것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시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제발 선생님 그것만은 말아 주십시오’라는 타이틀로 외치기 시작했다. 1. 선생님 제발 수업시간 꽉 채워서 수업하지 마세요. 우리가 얼마나 답답한지 아세요? 5분이나 10분 정도 여유시간을 주세요. 선생님들도 꼼짝 않고 50분 수업 들어 보세요. 몸이 얼마나 뒤틀리는지 장난이 아니에요! 2. 선생님 제발 저희가 좀 졸더라도 내버려두세요. 조금만 졸게 해주세요. 밤 12시가 넘어 잠들고 새벽 일찍 일어나서 오잖아요. 피곤해 죽겠어요! 3. 선생님들! 너무 수업내용에 치중한 나머지 재미없게 하셔서 막 졸려요. 제발 졸리게 수업하지 말아 주세요. 특히 5교시는 졸려 미칠 것 같아요. 저희들 존다고 야단치지 마시고 조금씩은 웃겨주세요. 4. 쭛쭛쭛선생님!! 매번 수업시간마다 수업 열심히 하면 10분 일찍 끝내 준다고 하셔서 정말 열심히 했는데 수업 종치잖아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학생들의 외침이 끝날 때마다 쳐대는 박수소리와 학생들의 환호성은 설악산을 삼켜버릴 정도였다. 교사들도 함께 웃고 있었지만 “그래 너희들 두고 봐라”하는 마음이었다. 이제 교사 차례가 되었다. 1. 너희들 수업시간에 조금만 잔다고? 한 시간 내내 자서 깨우면 인상 쓰고 안 일어났잖아. 제발 그러지 마라. 진짜 기분 나쁘다. 그리고 자는 학생들 그냥 두라는 말이니 선생님이? 2. 너희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예뻐하고 차별한다고 하는데 너희들도 선생님들 차별하잖아. 예쁜 선생님 처녀 총각 샘들만 좋아하고. 나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 너 ○○○! 내가 오라니까 도망가고 ○○○ 선생님이 부르니까 쪼르륵 달려가고. 그럼 안 되지!! 3. 선생님들이 재미있게 수업하려고 노력하는지 아니? 선생님들도 밤낮 교재 연구에, 업무에, 힘들어! 니들이 그 맛을 알아? 그리고 수업과 상관없는 질문들을 그렇게 많이 하니? 그러니까 수업 분량 못 채워서 종 칠 때까지 수업한 거지!! 교사도 까르르, 학생들도 박장대소, 이렇게 수련활동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오며 출발하는 버스에서의 학생들의 밝지 않았던 얼굴의 이유를 알게 됐다. 학교 일정상, 수련원 예약 때문으로 어쩔 수 없이 중간고사 바로 직전에 잡았던 수련활동이 학생들에게 많은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가벼운 5월에 비해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학교를 옮겨 그때의 학생들을 만날 수 없고, 수련활동을 함께할 수는 없지만 5월이 되면 절규하던(물론 분위기도 있었지만) 학생들의 목소리가 쟁쟁 울린다. “얘들아 미안해!”
에피소드 하나. 오랜만에 고향에 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이 모였습니다. 10여 년째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의 '서울 예찬'이 이어집니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은 환상적인 곳이야. 늘 꿈을 찾아 움직이는 삶의 격렬함이 있다고 할까. 이곳은 문화적 혜택도 떨어지잖아. 훌륭한 공연 한 번 찾아보기 쉽지 않고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아이들을 위한 학원도 학교도 서울에 비하면 모두 시원치 않아." 고향에서만 지낸 친구가 대답합니다. "강남역의 번잡함이 꼭 삶의 역동성을 얘기하진 않지. 예술의 전당 공연스케줄은 꿰고 있지만 얼마나 자주 이용할 수 있을까. 요즘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고 훌륭한 대치동의 학원들도 많지만 네 수입에 이를 다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일 년에 한 두 번은 서울에 들르는 친구가 "내가 자주 가봤는데 정말 멋진 곳이야 서울은. 가보지도 않는 네가 그곳의 삶을 얘기할 수 있어?"라며 반격하자 다시 친구가 응수합니다. "가보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고 그 곳의 삶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겐 서울서 귀향한 상사와 매달 보는 잡지, 방송과 전화가 있어. 물론 서울이 멋진 곳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서울 무경험자의 견해에 긍정하시나요? 서울이라는 텍스트는 그대로 있는데 그 텍스트를 경험하는(읽는) 사람마다 그 견해는 다릅니다. 텍스트의 무게에 눌려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습니다. 가서 살지 않았지만 서울이라는 텍스트를 능수능란하게 논의하고, 그 텍스트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다면, 고향의 떠나지 않은 친구도 훌륭한 것 아닐까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바로 이 점을 얘기하며 출발합니다. 책을 읽지 못했다면 주눅이 들어 얼굴을 들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단비(?)와도 같다고 할까요. 저자는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처지지만 자신이 펼쳐보지도 않은 책을 수업에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합니다. 그러면서 '비독서'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가 모두 '비독서'에 속하지만 "그 책의 내용에 대해 모른다고 해서 그 책을 꿈꾸거나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하는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이를 위해 폴 발레리의 대충 읽어보는 책읽기 방식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몽테뉴의 기억력 결함 등을 제시하며 독서의 허상을 들춰냅니다. 그리고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평해야 할 의무에 가장 자주 직면하게 되는 직업, 즉 '선생'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을 들려줍니다. 그렇다면 단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일까요? 언뜻 '독서 불량자'들에게 항변의 근거만 마련해주는 듯하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저자는 오히려 독서 행위 자체에 질식당하고 마는 수동적 독서를 벗어나 능동적 읽기를 권유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은 책들 속에 침몰당하지 않기"위한 것이며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책이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오브제이며 그 유동성은 책을 중심으로 짜이는 권력관계 전체와 관련이 있음"을 상기하라고 합니다. 또 "각각의 책에 대해, 지나치게 분명한 단언들로 축소시키는 것보다는 그것이 내는 다양한 소리를 모두 받아들여 그 잠재적 가능성들을 하나도 상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면서 "책을 깊이 탐독하되 그 책의 위치를 정하지 못하는 사람과, 어떤 책 속으로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모든 책 속을 돌아다니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독자인지" 자문하도록 요구합니다. 결국 저자는 "자기 자신이 창조자가 되는 것이 이 책의 귀착점"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독자는 다른 사람의 책에 빠져 자기 자신의 세계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이건 읽은 책이건 책에 대해 거리를 두도록 요구"하고 "책을 꾸며낼 권리"를 가지라는 것이지요. 나아가 책의 문제를 교양의 문제로 확대합니다. "교양이라는 것은 개인의 무지와 지식의 파편화를 감추는 역할을 하는 하나의 연극"이며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진실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내가 미처 갖추지 못한 교양에 진실해 지자고 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훌륭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신가요? * 이 책의 주어진 명제와는 달리 이 책을 '읽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다소 힘겨운 번역글임은 분명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소설과 영화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자못 흥미롭고 생각의 틀을 확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2008년 2월 29일자 한국일보에는 ‘학부모의 학년말 소망’이라는, 한국에서 자녀를 기르는 외국인 로버트 진스의 글이 게재됐다. 그는 외국인 부모로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안을 했는데 그 첫째로 ‘뇌물 근절’을 들었다. 한국인 아내가 담임에 따라 선물을 주어야하는 지 말아야 하는 지 많은 걱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교육과 같이 중요한 일에 뇌물이 끼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불경스럽고 후진적인 일인가"라며 아이들 교육을 빌미로 돈이나 선물을 바라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이런 교사들은 당연히 처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오해와 뇌물 운운하는 학부모의 눈총을 받으며 꿋꿋하고 성실하게 교직을 지켜가는 많은 선생님께 경의를 표해야 함에도 교사를 둘러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씁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침소봉대한 면이 있지만 소수의 잘못된 행동은 많은 일반인으로부터 교육자의 윤리의식을 의심하게 하는 구실로 작용하고 있다. 교육자의 품성과 언행은 학생의 인격형성을 좌우할 뿐 아니라 사회전반의 윤리적 지표가 된다. 이미 한국교총은 몇 해 전 교육자 스스로 윤리의식을 강화하고 책무를 다하기 위한 교직윤리헌장과 실천 강령을 제정해 선포한 바 있다. 2004년 수능 부정과 교사의 답안지 조작 사건 등 비교육적 사건들이 빈발하면서 교육계 내 자정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1982년 교총이 제정한 사도헌장과 사도강령으로는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각계가 참여하는 교직윤리헌장제정기초위원회가 구성됐고 교직윤리헌장을 선포하게 된 것이었다. 이 같은 현장 제정의 의미는 그 당시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정직과 성실에 바탕을 두어 살아가는 교육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며, 교육공동체를 이루어야할지 생각해보자. 첫째, 학생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며, 개성과 가치관을 존중하여야 한다. 루소는 에밀에서 "어린이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느낀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성인의 사고방식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 자체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학생은 단순히 자신으로부터 특정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 학생 이전에 한 인간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며 생을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나름대로 개성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인정하고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할 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이나 학생에 대한 신체적 폭력행위는 없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파면 해임된 자는 영원히 교단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의 개성과 가치관 존중 당나라 덕종 때 학자로 유명한 한문공(韓文公)이 말하기를 “인불통고금(人不通古今)이면 마우이금거(馬牛而襟裾)니라”고 했다. 즉, 사람이 옛날에서 오늘에 이르도록 사람으로서 통하지 않으면 말이나 소에 옷을 입혀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면 분명히 사람이 자격이 보장되어야하는 인격(사람의 자격)을 지녀야한다는 이야기이다. 또 조선 중기의 학자 노경임은 "남이 비록 나에게 거만하게 하더라도 내가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면 거만한 사람도 공손해지고, 남이 비록 나에게 야박하게 대하더라도 내가 너그럽게 할 수 있다면 야박한 사람도 후해지며, 남이 비록 나를 화나게 하더라도 내가 너그럽게 대하고 말을 부드럽게 한다면 반드시 감탄하여 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여 교사로서 학생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일러주고 있다. 둘째, 학생을 차별하지 않으며 부적응아와 약자를 배려해야 할 것이다. 딥스라는 여섯 살 난 아이가 있었는데 두 살 때 이미 글을 깨우칠 만큼 영리한 아이였지만 괴팍하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 때문에 정신박약아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놀이치료 전문가인 액슬린 박사는 딥스에게는 "고유한 정신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내면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딥스의 내면세계를 그 세계에 드러나게 하는 기술을 발휘했으며 그렇게 드러난 세계를 통해서 딥스가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얻게 해주었다. 딥스는 자기 만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비극의 긴 터널을 벗어나게 되었으며 이는 딥스의 눈높이로 보며 이해하고 사랑하여 얻은 결과라고 할 것이다. 액슬린 박사의 교육결과는 딥스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교사들에게 학생이해를 실천하는 방법을 보여준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셋째,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으며 학생의 성적평가를 투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하며 각종 기록물을 정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조선 세종 때 청백리였던 정갑손은 자신의 아들이 향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의 실력을 생각했다고 한다. 아들이 어려서 향시에 합격할 정도가 되지 못함을 인지한 함경도 감찰사 정갑손은 아무래도 감사의 아들이라고 점수를 후하게 주어 합격하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시험을 공정하게 치루지 못한 책임을 물어 아들을 합격자 명단에서 빼어버린 뒤 그 시험관의 벼슬을 빼앗고 내어 쫓았다. 자식의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해 물불가리지 않고 교사에게 청탁하였던 어느 학부모의 행태를 생각하게 하는 일화이다. 누구에게나 엄정한 원칙 가져야 금품수수, 학생 성적 조작으로 인하여 파면 해임된 자는 원칙적으로 교원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영구 축출하기로 한 교육부의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2008년 2월 19일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교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고 깨끗한 교직 풍토를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으로 청렴도를 높일 수 있게 된 계기로 볼 수 있다. 세상에 많은 동물 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걸어가야 할 인도(仁道)는 바로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의 길이다. 전남 순천에는 ‘팔마비’라는 비석이 있는데 고려시대 순천부사 최석의 청렴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당시 순천에는 부사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면 백성들이 말 여덟 필을 준비하여 선물로 바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임기를 마친 최석 부사에게 백성들이 말 여덟 필을 고르라고 하자 개경까지 가는 데 한 마리면 족하다하며 한 마리만을 골라 개경에 갈 때 타고 갔다가 그 한 마리마저 순천으로 되돌려 보냈다. 마을 사람들은 한 마리는 우리 주민의 정성이니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고 회의를 하여 최석 부사에게 되돌려 보냈다. 그런데 그 사이 말이 새끼를 낳아 두 마리가 되었다. 최석 부사가 다시 말과 망아지 모두를 돌려보내자 순천 백성들은 최석의 깨끗하고 높은 뜻을 헤아려 공덕을 기리는 비석 ‘팔마비’를 세웠다고 한다. 동물들은 깨끗하고 바른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것은 사람만이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이다. 깨끗하고 바르게 사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아무리 이익이 되는 일이라도 바르지 못한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약용은 "청렴은 아주 큰 장사이다. 큰 욕심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게 생활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정말로 열정과 사력을 다해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지도하는 교사들의 이미지가 몇몇 교사들 때문에 흐려지지 않도록, 어려운 임용고시를 거쳐 임용된 교사들이 그저 편한 직장생활을 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교직 윤리를 바로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동반자로 삼아 바람직한 공동체를 형성해야할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가득 차린 상 앞에서 긴 숟가락으로 자신만이 먹겠다고 고집하다 여위어간 지옥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한다. 서로 떠주어 남을 먹임으로 서로 도와 웃으며 음식을 주고받는 천국의 사람들처럼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여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학부모와 지역사회는 동반자 교원들끼리는 존경하고 신뢰하는 교직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협력하는 교직문화 형성을 위해 민주적인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맹자는 "하늘이 준 기회도 지형의 이로움만 못하고 지형의 이로움도 인심의 화합만 못하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같이 살면서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살아간다. 사람이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통해야 한다. 이웃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모두가 나를 도와주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항시 남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서 있어야할 것이다. 다섯째, 교육전문가로서 질 높은 수업과 자기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교사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 볼 수 있다. "작은 물방울이 굳은 돌에 구멍을 뚫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처마 밑의 낙숫물도 돌을 뚫는 것처럼 자기개발이 스스로의 연찬이 어려운 일일지라도 성실하게 인내를 가지고 노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공든 탑은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교육은 교육받는 자에 대한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교육의 현장인 생활 속에 더불어 있는 것이고 또한 단순히 미래의 직업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이므로 교사는 더 많은 준비와 연찬으로 학생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동학년 협의회나 교과연구회 활성화를 위한 노력, 학년 협의회 및 교과 연구회 제도 활성화 방안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며, 교내 자율 장학, 연수 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신규 교사 또는 저경력 교사 전문성 신장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으로 질 높은 수업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사는 누구보다도 자기가 하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열심히 하여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품격 높은 교직문화를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전문성있는 교원단체, 각종 연수원에서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같은 교사의 노력이 있어야만 교육전문가로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이 있어야 진주가 된다 진주조개가 진주를 품기 위해서는 많은 아픔을 견디어 내야한다고 한다. 가슴에서 욕심을 말끔히 지워야하며 자기가 애써 만든 진주를 남을 위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진주조개가 진주를 갖지 않는다면 다른 조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진주를 갖는 아픔보다 편안한 생활을 택한다면 아름다운 진주는 탄생할 수 없을 것이다. 진주를 품는 아픔을 겪어낸 교사의 노력과 배려가 있을 때 학교보다는 학생이,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배우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학교가 만들어 질 것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아무 도움도 없이 우뚝 솟아 나와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고 있지만 진흙물이 들지 않고 깨끗이 홀로 서서 꽃을 자랑하며 향기를 풍긴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퇴임하는 날 내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정성을 다할 때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교원이 교육열정을 되살려 학교현장에서 노력할 때 선진교육강국은 실현될 것이다.
흔히 교육의 참여자로서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를 들곤 한다. 그러나 교육의 중요한 참여자로서 교육행정가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교육행정은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지원체제를 의미하며 교육행정은 곧 교육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교육행정의 정의는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교육행정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교육행정의 성격이나 영역, 기능 등도 달리 규정될 수 있다. 교육행정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는 교육행정이란 교육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적·물적 제 조건을 정비·확립하는 수단적·봉사적 활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교육행정은 근본적으로 교육의 기본목표를 보다 능률적으로 달성토록 하기 위한 일련의 봉사활동이며 작용이다. 교육행정가는 이러한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교육행정가가 없으면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교사들의 봉급이 제때 지불되지 않고, 학생 배정이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음은 물론 교과서 조차 제때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육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간혹 윤리문제와 부패를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양 개념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윤리에 어긋난 것이 바로 부패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윤리에서 어긋나는 형태 중에 일부가 부패의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특히 교육행정가를 비롯한 공직자의 경우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의 상당부분은 바로 부패에 연결된다. 윤리는 동기에 초점을 둔다면, 부패는 결과에 더 초점을 둔다. 따라서 윤리문제를 논의할 때 교육이 보다 강조되며, 부패문제를 논의할 때는 적발과 처벌이 보다 강조된다. 그러나 양자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직자로서 교육행정가의 윤리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부패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공직자로서의 교육행정가가 빠지기 쉬운 부패 문제를 간단하게 언급한 후 교육행정가에게 기대되는 윤리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공직자의 윤리와 부패문제 공직자의 윤리는 청렴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부패 없는 공직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패(corruption)의 영어 어원은 라틴어 'cor(함께)'와 'rupt(파멸하다)'의 합성어이다.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함께 파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부패방지법(제2조)에서는 부패행위를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로 보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스까르 아리아스(Oscar Arias)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말했듯이 “부패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착취이며, 소외 계층에 대한 절도 행위”이다. 교육행정가의 비윤리와 부패는 곧 학생들에 대한 착취로 연결될 수 있다. 부패는 사회의 신뢰관계를 훼손한다. 사회의 신뢰관계가 훼손되면 사회자본이 붕괴되고, 국가 정통성이 상실되어 결국엔 패망하고 만다. 부유하던 필리핀을 추락시킨 것은 1986년 물러난 마르코스정권의 부패였고, 중국 국민당 멸망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관료의 부패와 상호 불신이었다. 조선 왕조 멸망의 주요 원인은 3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과 부정부패였다. 공정한 ‘경쟁의 룰’을 확립하고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패방지와 윤리의식의 확립이 필요하다.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가 지난 2003년 부패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들의 65%가 ‘공무원이 부패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가장 시급히 척결되어야 할 분야는 정치(90%), 행정(30%), 공기업(21), 사법(20%), 언론(18%) 순이었다. 행정기능별로는 건축/건설(73%), 세무(58%), 법무(57%), 국방(55), 경찰(51%), 교육(45%) 순이었다. 교육이 6번째로 높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의 윤리의식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2002년 반부패국민연대가 중고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패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한국사회는 부패했다고 응답하였다. 설문조사의 중복 응답에서 중고생의 49%가 교육계를 부패한 집단으로 대답하였다. 중고생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7%는 ‘보는 사람이 없으면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27%의 학생들은 ‘뇌물을 써서라도 문제를 기꺼이 해결할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이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원을 번다면 부정행위를 하겠다’고 응답하는 등 반부패 윤리의식이 박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차 국가의 동량이 될 청소년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직접 부딪치는 교육 분야의 부패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학생이 인식하는 부패는 학생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이러한 부패에 대한 인식은 도덕적 불감증을 낳는다. 교육 분야의 부패는 교육 그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TI)의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CPI) 발표에 따르면, 2005년 CPI 1위의 국가는 아이슬란드(9.7)이며, 핀란드(9.6), 뉴질랜드(9.6), 덴마크(9.5), 싱가포르(9.4), 스웨덴, 스위스, 노르웨이, 호주, 오스트리아 등이 10위권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5.0점으로 159개국 중 40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국민소득이 5000 달러 이하인 칠레(7.3, 21위)나 보츠와나(5.9, 32위)보다 뒤지는 것이며, 아시아 국가 중 싱가포르이외에 홍콩(8.3, 15위), 일본(7.3, 21위), 오만(6.3, 28위), 아랍에미리트(6.2, 30위), 카타르(5.9, 32위), 대만(5.9, 32위), 바레인(5.8, 36위), 요르단(5.7, 37), 말레이시아(39위) 등이 한국보다 청렴하다. 대체로 국가별 부패수준과 1인당 국민소득 간에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2003년 132개 국가의 CPI와 1인당 GDP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CPI가 7.0 이상인 22개 국가의 1인당 GDP는 평균 31,421 달러로 나타났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들은 대부분 CPI 순위가 22위 이상인 나라들이었다. CPI가 5.0이상 7.0 미만인 16개 국가의 1인당 GDP는 15,029 달러로 CPI가 높은 22개국에 비하여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한국이 포함된 부패지수 4.0이상 5.0 미만인 15개 국가의 1인당 GDP는 평균 5,560 달러로 제일 높은 국가들의 1인당 GDP 평균의 1/6, 두 번째로 높은 국가들의 1인당 GDP 평균의 1/3 수준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부패수준은 국민소득 5,560달러 수준의 나라들과 같은 정도로서 실제 국민소득 1만4000 달러(2005년)로 세계40위, 경제규모 6050억 달러(2004년)로 세계11위인 점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임을 알 수 있다(부방위, 2005). TI는 또 뇌물성향지수(Bribe Payers Index : BPI)를 발표하였다. 이는 주요 수출국의 기업들이 신흥개도국에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공여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지수이다. 한국은 2002년 조사에서 10점 만점(뇌물을 지불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 3.9점을 얻어 21개국 중 18위였다. 이는 러시아, 중국, 대만 다음으로 뇌물 제공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꼽힌 것이다. TI의 부패인식지수의 산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부패수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지난 10년 동안의 추이를 보면, 가장 깨끗한 수준이라는 10점을 기준으로 할 경우 5점을 상회한 경우는 단 한번이며, 모두 5점 이하로 나타나고 있다. 행정가가 빠지기 쉬운 비윤리 문제 교육인적자원부가 2000년 2월부터 12월까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 공사립학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에서는 전체 지적사항의 절반 이상이 시설공사(20.7%)와 예산·회계 관리(16.7%), 그리고 물품 구매(13.1%)에 집중되어 있었다. 주로 금전 거래와 관련이 있는 부분에서 감사 지적사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비윤리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반증한다. 교육행정분야 비윤리적 행동 혹은 부패의 사례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계약 및 물품구매, 시설공사, 인사비리가 그것이다. 첫째, 학교에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물품이 필요하다. 각종 교구와 운동기구, 문구는 물론 일상적인 소모품에서 학생들의 졸업 앨범, 구내식당 식자재의 구매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이러한 물품 수요는 지속적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숫자가 많고, 안정적인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물품 공급권한은 적지 않은 이권으로 인식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비록 그 액수가 크지는 않더라도 관련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물품공급 권한을 확보하려고 하며,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나 향응 등의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부방위, 2004). 둘째, 시설 예산과 관련해서는 업자가 시설예산의 확보를 위해 관련 기관에 대한 로비 자금을 지원하고, 이 자금으로 관계자에게 예산 확보를 위한 금품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획득한 예산을 집행하면서 업자와 다시 금품이 오고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현상은 빠르게 개선되고는 있지만, 시설예산 집행은 여전히 비윤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남아 있다(부방위, 2004). 셋째, 인사 제도는 본질적으로 인사권자의 재량이 개입될 소지가 많기 때문에 비윤리의 개연성이 높다. 아무리 제도를 개선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유교문화의 전통으로 혈연, 지연, 친분관계 등을 무시하기 어렵고,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평가결과를 수용하는 문화가 발달하지 못해 항상 비윤리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행정직의 승진, 전보, 보직 등의 인사가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보다도 금품이나 청탁과 결부되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인사 관련 비리의 최대 온상은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수직적 승진구조이며, 아울러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의 차별이 심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좁은 문을 통과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유혹이 상존한다. 비윤리 극복을 위한 제안 교육행정분야의 비윤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비윤리의 문제를 해결하면 될 것이다. 첫째, 물품구매, 각종 계약, 업체선정과 관련된 정보의 공개가 필요하다. 학교나 교육청에 물품구매계획, 업체선정계획이 사전에 공개되고, 경쟁에 의한 납품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구매 계획이 있는 물품의 수량과 품질 등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공급업자들로 하여금 입찰토록 하며, 이러한 정보공개를 통해서 학부모와 교사들이 물품구매현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육청 인사 관련 정보들이 공개되지 않음으로써 각종 인사 관련 비리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청 인사 관련 모든 정보와 절차가 내외에 공개되어야 한다. 교육청 인사위원회 위원 명단 및 선정과정, 선정기준, 교육국장 및 교육장 공모제 심사위원 명단 및 선정과정, 선정기준, 도교육청 전문직 임용시험 출제위원 명단, 도교육청 전문직 임용면접심사위원 명단, 교육전문직 임용예정 직무연수 대상자 선정과정 등이 공개되어야 할 인사 관련 정보이다. 셋째, 공직자들은 상시적으로 비윤리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위험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국가청렴위, 2005). 공무원을 유혹하는 외부 시도의 강도와 제도적 허술함의 정도, 보수수준 등은 보통의 공무원들이 개인적 양심의 힘만으로 비윤리의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후약방문보다는 사전에 비윤리적 행동을 막는 이익충돌을 방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익충돌의 방지는 이익충돌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비윤리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전예방적인 접근방법이다.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있고,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적이다. 이해충돌의 방지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예방적인 제도적 조치이다. 공직자는 자신이 수행하는 특정직무가 자신의 이해와 연결되어 있거나, 자신의 친족 등이 직무관련자가 되는 경우에는 그 직무로부터 회피해야 한다. 넷째, 아무리 강직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비윤리 문제에 둔감하고 이에 쉽게 빠져든다면, 수시로 찾아오는 비윤리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접대문화가 뿌리 깊은 환경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비윤리행위와 연관될 수 있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이럴 경우에는 자신의 비윤리행위 연루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들지 않게 된다. 오히려 자기합리화를 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건전한 조직문화를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의 반부패독립위원회(ICAC)의 연구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패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었다(부방위, 2004). 이는 비록 다른 나라의 사례이지만, 우리와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 남들도 모두 이 정도는 한다. ○ 상대방의 동기는 친절이나 우정의 표시로서 순수한 것이었다. ○ 선물의 제공은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 선물은 우호적인 관계에 도움이 되고, 번거로운 형식을 없앨 수 있어서 능률 향상에 도움된다. ○ 선물의 제공은 문화적 관행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는 것은 적개심을 조장할 뿐이다. ○ 공무원은 봉급이 적기 때문에 그 정도 성의는 받아도 무방하다. 대다수의 공직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비윤리 척결은 요원하다. 만일 누군가가 비윤리 행위로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그는 반성보다는 그저 재수가 없어 나만 피해를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비윤리 예방을 위한 노력에 앞서서 해야 할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조직 문화를 건전하게 개량하는 것이다. 교육행정가의 윤리 확립을 위해 교육 분야의 비윤리는 규모는 작지만 국민의 체감도가 높다. 교육의 본질에 비추어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며, 사람들이 교육 분야 종사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높은 윤리와 투명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육행정가도 교육의 참여자로서 높은 윤리가 요구된다. 교육행정가가 지녀야 할 윤리적 기준을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제시해 본다. 첫째, 모든 결정과 행위는 교육의 일반적인 원리에 부합하고 학생들의 진로와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모든 전문직적 직무와 책임을 정직과 성실로서 완수한다. 셋째, 계속적인 연구와 전문직적 발전을 통해서 전문직의 효과성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고 그 기준을 유지한다. 넷째,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정책을 집행하든 그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그 정책을 통하여 이익 혹은 손실을 보게 될 학생 혹은 교사를 먼저 생각한다. 다섯째, 교육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법령과 조례, 규칙을 준수한다. 여섯째, 교육행정의 윤리적 문화와 분위기 형성에 앞장선다. 일곱째, 관련 정책이나 또는 다른 영향력을 통해 개인적 이익을 얻고자 직위를 사용하지 않는다. 여덟째, 이익 충돌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스스로 회피한다. 참고로 거창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안하는 직업선택의 십계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이는 교육행정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잘 알면서도 실천하지는 못하는 것으로서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1. 월급이 적은 곳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광야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으로 절대 가지 않도록 하라. 6. 장래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끝)로 가라. 9. 양친과 아내, 또는 약혼자나 연인이 필사코 반대하는 곳이라면 틀림없으므로 의심하지 말고 그곳으로 가라. 10. 왕관이 아닌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학부모의 윤리’라는 반가운 표현 어떤 사회이건 그 사회에서 빈번히 이야기의 주제가 되는 말이 있다면, 필시 그것은 그 사회 혹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일상적으로 만족스러운 수준보다는 희소하거나 희박하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윤리’라는 말은 대단히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며, ‘공직자의 윤리’, ‘교사의 윤리’, ‘전문직의 윤리’ 등 모든 직업, 모든 사람들의 윤리가 문제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는 참으로 윤리에 목마른 사회인 것 같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학부모들에게 윤리가 요구되기 시작한 것은 다른 교육 주체들에 비하여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교사나 교육 행정가들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그들의 역할에 대하여 윤리가 기대되고 요구되어 왔지만, 학부모들에 대하여 윤리를 기대하기 시작한 저간의 변화는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종의 지각변동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사회가 어떤 사람들에게 윤리를 기대하는가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 우리는 이성적 사유가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윤리를 기대하지 않는다. 동시에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력이 없을 때, 그들에게 기대되는 윤리는 최소한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커질 때, 그들의 행동이 결정적이거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정도로 파괴력이 커질 때, 그들의 전문성이 일정한 수준 이상이 되어 자기재생산 능력을 가질 때 우리는 특정한 사람이나 사회에 대하여 보다 윤리적이 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면, 학부모들에게 윤리가 요구된다는 것은 학부모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고 번거로운 일일 수 있으나, 동시에 그만큼 학부모들이 교육현장과 사회에 대하여 지니는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과 학부모가 명실상부한 교육현장의 주체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부모는 더 이상 학교와 교사, 교육 행정가들에게 교육에 대한 결정권을 위임하고 그 결정에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육에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고, 학부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이제는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윤리가 부재한 사회가 개탄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부모들에게 윤리가 요구된다는 사실은 필자 자신 학부모로서 매우 자긍심이 느껴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윤리적 요구에 대하여 기꺼이 고민할 수 있는 것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학부모의 윤리’라는 짐을 질 수 있는 것이다. 학부모가 지녀야 할 윤리적 역량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커질수록 윤리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능력과 윤리가 분리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윤리보다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강조하는 참으로 근시안적인 담론이 성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능력과 윤리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윤리보다 앞선 능력이 결국 누구를 이롭게 하는 일에 쓰인단 말인가? 따라서 필자는 윤리가 역량(competency)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관점에서 학부모의 윤리를 논의할 것이다. 학부모는 상생과 소통, 사유의 윤리를 교육현장에 대한 참여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이와 같은 학부모의 윤리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학부모 스스로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원의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1) 보편적 권리 의식을 통한 상생의 윤리 학부모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윤리는 상생(相生)의 윤리이다. 무한경쟁주의가 주도하는 한국의 학교에서 ‘서로를 살린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윤리는 바로 이 서로를 살림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생’이라는 출발점 없이 윤리를 논의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상생이 왜 윤리의 출발점인가 하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공동체 속에서 태어나서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자기를 실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생존이 불가능해지면 결국은 개인 모두가 존재의 터 자체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는 항상 개인의 무한대의 자유를 규제하면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만든 약속과 규약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를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이 윤리이다. 이렇기 때문에 설령 도적떼의 무리라고 하더라도(도적떼의 공동체가 지속되어야하는가 아닌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 안에서 개인이 자기만을 살리는 일에 몰두하여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조직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와해되고 만다. 공동체가 와해되면 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개인의 존립 근거 자체가 없어지며 이는 결국 개인의 이기적인 이익의 관점에서도 손해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어떠한 공동체이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살려야만 하는 것이 모든 윤리의 출발점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면,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내 아이에게만 향하던 관심을 학급으로, 학교로, 지역사회로, 사회 전체의 교육 문제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학부모는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하여 “이 행동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억누르게 되는가?”라는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즉 “내가 이 책을 학급문고로 기증하는 것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내가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것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억누르게 되는 일인가?”와 같이 자신의 행동이 주게 될 긍정적 영향력과 부정적 영향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양서를 학급문고에 기증하는 것은 모두를 살리는 일이 된다. 그러나 교사에게 촌지를 전달하는 것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암묵적인 불신을 형성하게 만들고, 학부모들 사이의 경쟁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불안감이 팽배하도록 만든다. 결국 이로 인하여 학부모 자신과 자녀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부모는 나의 행동이 내 자녀가 포함된 교육공동체를 살리는 일인가, 죽이는 일인가를 엄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부모의 상생의 윤리는 자신의 자녀만 특권을 누리게 하려는 특권의식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의 보편적 권리라는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하며, 학부모의 역할은 자신의 자녀의 특권이 아닌 모든 학생들의 보편적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즉 나의 자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태도로 나의 자녀가 속한 교육의 현실을 개선시키는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2) 경청과 참여를 통한 소통의 윤리 학부모가 갖추어야 할 두 번째 윤리는 소통의 윤리이다. 학부모는 교육현장에서 직접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나 학생과는 달리 그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존재 의미가 성립되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 교육주체이다. 따라서 관계성을 통하여 존재하는 학부모에게는 소통의 윤리가 그들의 존재 이유이며, 동시에 그들이 가장 잘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바로 관계망들 사이에서의 소통일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학부모가 관련된 교육현장의 갈등 사례가 대폭 증가하였다. 갈등이 발생한다고 해서 무조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이와 같이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중의 대부분이 소통의 부족이나 미숙함으로부터 발생한다.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교육주체들 간에는 오해가 증폭되기 쉽고 이로 인하여 갈등이나 폭력사태까지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 학부모가 교육현장에서 소통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경청과 참여의 태도가 필요하다. 학부모는 자녀를 비롯한 학생들, 교사, 다른 학부모들, 교육 행정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에 대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하여 교육현장을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통이라는 것은 그저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생각, 감정, 정보,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한 ‘더불어 생각하고 더불어 살기’를 통해 인식의 향상과 최선의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학교나 학급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고,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의 통로도 다양하게 열려있으며,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공식적인 기구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학부모 역할이 한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자녀가 교육현장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학부모가 한 개인으로서 소통하기에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럴 때에는 주변의 학부모들과 의견을 모으거나 학부모 단체 등을 통하여 합리적이고 제도적인 문제해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학부모는 다양한 소통의 통로를 통하여 의사표현과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3) 맹목성을 넘어서는 사유의 윤리 이제는 학부모들의 평균적인 학력도 매우 높아지고, 학부모들이 교육에 대한 준전문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대학입시에 관한한 학부모들은 교사들보다 훨씬 전문가인 경우가 많아서, 학부모들이 가진 ‘정보력’에 대한 신화들은 그 중심에 서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지게 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력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가진 전문성에는 무언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부모들의 무서운 정보력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보통의 학부모라면 당연히 자녀의 최선의 행복을 지향하고 있을 터인데, 그러한 목적을 찾는 과정과 방법이 목적에 부합한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교육소설 『에밀』을 쓴 루소(J. J. Rousseau)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우리 사회의 학부모들은 너무나 ‘적극적’이다. 적극적인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부모의 계획과 바램이 주도하는 적극성은 때로 맹목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해서, 자녀의 행복을 구하면서도 실은 자녀의 행복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즉 자녀가 행복하게 자아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모든 적극적인 노력 이전에, 자녀를 ‘관찰’하고 자녀가 가진 특성을 이해하고 자녀의 성장가능성을 신뢰하며 자녀의 고유한 성장발달의 속도에 따라 이를 조력하는 ‘소극적 교육’(negative education)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깊은 생각이 학부모의 윤리인 까닭은, 학부모가 ‘정보력의 신화’, 무한경쟁의 논리에 파묻혀, 자녀를 ‘한줄세우기’에 바쁠 때 학부모는 학부모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본연인 부모로서의 책무를 잊게 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의 대상이 아닌 ‘존재’하는 주체이며, 부모는 ‘…하기 때문에’의 사랑이 아닌 ‘…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통하여 다음 세대의 생명을 길러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부모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정보’에 휘둘리기보다는 자녀라는 확고한 중심점을 통하여 자녀를 관찰하고 그들의 소질을 찾아내고, 특성을 발견해 내며, 그 중심으로부터 잠재력을 확장시켜 나가는 민감성과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윤리적인 학부모가 가장 힘 있는 자 참으로 공교육을 살릴 수 있고,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 있는 학부모는 바로 학부모로서의 윤리를 ‘머리-가슴-손’을 통하여 생각하고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학부모이다. 그렇지만 학부모의 윤리가 반드시 교육현장에 관련된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학부모는 그 자신이 한 인간이며, 사회의 시민이다. 따라서 학부모의 윤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시민으로서의 윤리와의 통합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학부모 역할은 교육현장을 변화시키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향상시키는 일에도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회의 변화 없이 교육이 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학부모의 윤리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없으면 윤리적 학부모가 되는 것이 학부모의 삶을 풍요롭고 품위 있게 하는 일이 아니라, 보상도 없는 무거운 짐을 지도록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학부모의 윤리는 삶의 영역의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학부모의 윤리 뿐 아니라 모든 윤리의 본질이 그렇지만, 윤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것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잣대’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거울’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학부모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시켜 교육현실에 참여할 수 있을 때 학부모의 윤리는 참다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발트함대, 1905년 대한-쓰시마해협에서 일본 함대를 완패시키다.” 물론 사실은 전혀 달랐다. 발트함대는 일본해군에 완패했고, 더불어 러․일전쟁도 끝났다. 그리고 대한제국도 곧 숨을 거두었다. 1905년 5월 27~29일의 진해부근 해전에서 발트함대는 전함의 3분의 2가 침몰하고 6척이 나포되는 등 문자 그대로 참패했다. 겨우 4척만 블라디보스토크로 도주해 침몰을 면했다. 세계 최강으로 소문난 발트함대였지만 7개월의 지루한 항해로 함선도 수병도 지칠 데로 지친 상태에서 기동력과 무기에서 우세한 데다 하늘을 찌를 듯한 상하 병사들의 사기를 자랑한 일본 함대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청일전쟁(1894~95)에서의 승리로 조선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게 된 위에 랴오뚱반도와 타이완 등을 얻어 욱일승천의 기세에 들떠있던 일본은 뜻하지 않게 삼국간섭에 부딪쳤다. 독일․러시아․프랑스의 위세에 눌린 일본이 결국 1895년에 랴오뚱을 청에 반환했지만 이후 한반도는 청․일 대신에 러․일의 각축장이 되었다. 삼국간섭을 주도해 해 일본의 랴오뚱 반환을 이끌어낸 러시아는 청과 비밀협약을 맺고 시베리아철도의 남만주 통과권을 얻었다. 그리고 랴오뚱반도의 전략적 요충지 뤼순을 따련과 함께 25년간 조차하는데 성공했다. 그처럼 만주를 자국 세력권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러시아는 다시 한반도에 눈독을 들였다. 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와 뤼순을 연결하기 위해 마산의 조차를 기도하는가(1900) 하면 1903년에는 압록강을 넘어와 용암포의 조차를 요구했다. 한반도와 만주를 먹기 위해 청일전쟁까지 치른 일본은, 완강히 항의해 용암포를 개항케 했을 뿐 조차하는 것은 막았으나, 새로운 장애 러시아를 제거하지 않고는 목적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발트해와 지중해 등지를 통해 대해로 나오려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줄곧 견제해온 영국과 동맹을 맺는(1902) 등 러시아와의 일전을 준비하는 일방 러시아와의 협상에 나섰다. 1903년 10월부터 다음해 1월 6일까지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를 놓고 협상했지만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설 뿐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일본은 최종적으로 한국에서의 일본의 최우등의 이익을 인정할 것과 러시아의 특수이익을 인정하되 일본 상인의 만주진출을 허용할 것을 요구한 반면 러시아는 일본이 한국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과 북위 39도를 경계로 북쪽에는 러시아군이 진주하고 남쪽에는 일본군이 진주할 것을 제의해 협상은 결렬되었다. 열강은 그때부터 38선이니 39선이니 하면서 한반도를 자기들 구미에 맞게 요리하려 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일본은 연합함대를 편성하는 등 전쟁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1904년 1월 12일에 어전회의를 열고 2월 2일까지 답을 요구하는 최종안을 러시아에 보냈다. 러시아가 회답을 보내는 대신 만주의 군대를 재편성하자 일본은 러시아와 단교한 다음 2월 10일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일본함대는 그 이전인 2월 8일에 이미 인천 앞 바다에서 러시아함대를 포격해 2척을 침몰시켰다(러시아는 러․일전쟁 100주년인 2004년에 제물포해전에서 포함 카레예츠호와 함께 14척의 일본함대에 포위되어 힘겹게 싸우다 자폭을 택해 장렬한 최후를 마친 순양함 바략호의 영웅적 활약을 기렸다). 8일 밤과 9일에는 아래에서 보듯이 뤼순에 숨어든 일본의 구축함이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고 뤼순을 봉쇄했다. 태평양전쟁 때 진주만을 기습공격 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후 미국에 선전포고한 것을 연상케 한다. 시베리아철도를 남만주까지 연장하는 등 만주진출을 서둘렀지만 만주 일대의 러시아 군사력은 미미했던데 비해 일본은 한반도와 그 주변에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시켰었다. 전술했듯이 도고 헤이하치로 휘하의 일본해군은 선전포고를 발하기 전인 1904년 2월 8/9일 밤 선전포고 없이 뤼순의 러시아군을 기습공격 해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경계를 소홀히 하던 가운데 예기치 못한 일격을 받은 러시아해군은 두 달도 더 지난 4월 13일에야 공세에 나섰지만 오히려 마카로프제독이 전사하는 등 큰 손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한편 제물포와 남포에 상륙한 4만의 일본군은 5월 1일 신의주 부근의 전투에서 러시아군 2200명을 사살했다. 다시 5월 26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서 러시아의 뤼순 주둔 해군과 랴오뚱 주둔 육군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한 일본은 6월 14일과 8월 25일의 전투에서도 이겼다. 그러나 일본은 뤼순을 쉽게 함락하지는 못했다. 일본은 1주일이면 함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1904년 여름 이후 뤼순을 포위하고 수차례 값비싼 공격을 감행했으나 1905년 1월 2일에야 러시아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러시아의 뤼순 주둔군 사령관운 3개월의 식량 외에 적절한 보급품을 약속받고 뤼순을 일본 해군에 넘겨주었다. 러시아는 그 2개월 후 뤼순을 탈환하고 랴오뚱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러일전쟁 중 최대의 육전인 선양회전을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선양으로 후퇴해 건곤일척의 결전을 벼루든 러시아군 사령관 쿠로파트킨은 1905년 2월말에서 5월초의 전투에 33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27만의 일본군에 참패했다. 8만 9000의 러시아군과 7만 1000의 일본군이 전사했다. 선양회전 후 프랑스는 러시아 주재 대사를 통해 강화회의를 주선하려 했지만 러시아 황실의 결전의지가 워낙 확고해 포기했다. 여하간 만주에서의 육전에 완패한 러시아로선 발트함대가 펼칠 해전에 최후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었다. 정비하느라 여름을 보낸 발트함대는 1904년 10월에 발트해의 리에피를 떠났다. 하지만 북해에서 영국 트롤어선을 일본 어뢰정으로 오인해 침몰시켜 영국에 사죄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동맹을 맺은 영국은 수에즈운하 통과를 거부해 발트함대는 희망봉을 경유하는 긴 항로를 택해야 했다. 마다카스카르 부근을 항해하던 중 뤼순항 함락소식에 접한 사령관 Z. P. 로제스트벤스키는 회항을 건의했으나 증원군을 약속받고 항해를 계속했다. 그리고 수에즈를 경유해 달려온 증원함대와 베트남의 캄란만에서 합류한 발트함대는 7개월 여 만인 5월 27일에 대한-쓰시마해협으로 접어들었다. 발트함대의 항로를 예측할 수 없던, 그렇다고 일본 앞의 넓은 태평양 여기저기에 전선을 흩어 작전을 펼 수도 없던 일본 해군사령관 도고는 쓰시마해협에 국운을 걸기로 하고 함대를 집결시켰다. 오랜 항해에 기진맥진한 발트함대는 그의 소원대로 블라디보스토크 행 지름길인 대한-쓰시마해협 항로를 택했고, 그곳에 포진하고 호시탐탐 발트함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전의를 불태우던 일본함대에 그처럼 완패했다. 도고는 심각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과 명량해전 등에서 왜의 수군을 연파한 이순신장군의 작전과 전략 등을 주도면밀하게 연구했다던가. 발트함대에 완승을 거둔 일본은 그러나 5월 31일 미국 대통령 D. 루스벨트에게 휴전교섭의 중재를 요청했다. 당시 일본은 장기전으로 초래될 전력의 고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강대국 러시아와 장기전을 벌리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 했던 것이다. 거기다 러일전쟁 중 런던과 뉴욕에서 거액의 국채를 발행한 일본은 그것의 상환을 위해 새로운 외채를 발행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미국의 포츠머드에서 강화회의가 열렸지만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영토와 배상금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 채 한국에서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우월권을 인정받는 외에 남만주철도와 남사할린을 얻었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의 위기가 고조되어 가자 1904년 1월에 대외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로 침입해 각종 건물을 점탈했다. 그리고 이어 무력으로 위협하여 일본이 한국의 영토와 독립을 보전해 준다는 한일의정서를 맺어(1904, 2) 한국을 정치적, 군사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울러 한국이 러시아와 맺은 일체의 조약은 폐기되었다. 일본은 1904년 8월 다시 한일협정서를 체결하고 일본이 추천하는 외국인을 외교고문으로 초빙하며 외국과의 조약체결도 일본과 협의하게 했다. 러․일전쟁은 ‘격량에 나부끼는 일엽편주’ 한반도를 국제뉴스에 자주 등장시켰다. 하지만 그것 뿐 청과 러시아를 따돌린 일본에게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일본의 한반도 점유를 러시아 견제를 위해 바람직한 일로 보았는가 하면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가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고자 했다. 그 결과 맺어진 것이 1905년 7월의 테프트-가쯔라 비밀협약이었다. 영국 또한 러일전쟁 이전에 맺은 영일동맹을 개정해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는 것을 인정했다(1905.8). 그리고 1905년 11월에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지 않았는가. 주지하듯이 러․일전쟁은 조선과 일본은 물론 러시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니콜라이 2세는 입헌체제를 약속했지만 짜르체제의 내적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러시아정국은 결국 볼셰비키혁명으로 치달았다. 러시아의 대외정책도 크게 바뀌었다.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을 대신해 발칸반도가 러시아 대외정책의 중심자리를 차지했고, 이후 발칸반도를 둘러싼 범게르만주의 독일과 범슬라브주의 러시아의 과도한 제국주의적 대립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발트함대가 승리했더라면.” 적어도 일본이 한반도 전체를 식민지로 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태국이 미얀마까지 진출한 영국과 인도차이나를 장악한 프랑스 사이의 완충국으로 독립을 지킬 수 있었듯이 우리 또한 혹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주권을 보전하지 않았을까? “발트함대가 승리했더라면.” 러시아는 물론 유럽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도 볼셰비키혁명도 없었을지 모른다. 일본에 패한 후 러시아가 발칸반도로 눈을 돌림으로서 발칸반도에서의 제국주의 세력 간의 충돌을 격화시켰고, 또한 러시아의 패전은 ‘비효율적 정부․상층시민의 봉건성․근대적 산업의 부재․지식층의 이데올로기적 무기력․대중의 무지 등 러시아의 후진성이 치유되지 못하는 중에 정치적 불만과 경제적 악화를 심화시켜 저항과 소요를 불러왔고 급기야 볼셰비키혁명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이 러시아의 패배와 일본의 승리로 끝난 이후 세계의 역사, 특히 극동과 동유럽의 역사는 그처럼 마치 예정된 길을 따라가듯이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꺾었거나 혹은 러․일전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해보는 것이다.
학교사회복지는 세계적 추세 환경 속의 인간(PIE)학교사회복지란 학교를 주 활동의 장으로 하여 학생의 문제를 해결, 예방하기 위해 사회복지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방법론을 적용하는 사회복지 실천의 한 영역을 말한다. 사회복지에서는 개인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민이나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적인 결함이나 병리적 현상으로 한하지 않고 가족, 또래 친구, 교사, 기타 여러 개인 및 집단과의 관계와 더 큰 사회적인 역동 속에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은 ‘환경 속의 인간(Person-in-environment : PIE)’라는 용어로 집약된다. 따라서 학생문제의 해결과 예방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상담이나 교육적 개입뿐 아니라 가정과 학교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에 근거하여 가정 - 학교 - 지역사회의 연계 속에서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학생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여 펼쳐나갈 수 있도록 개인의 강점을 최대한 이끌어 내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연계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직무이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 안에서는 교사를 기본으로 하여 지역사회의 의료계, 정신보건 전문가, 복지기관, 방과후보육(교육)기관, 법률가나 경찰, 가족지원시스템 등과 같은 전문가 및 관련기관들과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학교를 중심(school based or school linked)으로 아동의 개별적인 욕구에 기반한 one stop full service가 지원되도록 조정하고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궁극적으로 지금 학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학교사회복지사라는 자격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교육부 사업이든 복지부나 지자체, 민간기금 사업이든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학생 복지를 위한 실천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교사회복지는 미국에서는 100년이 넘는 실천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주에 따라서 학교사회복지사가 상담사, 심리학자와 함께 팀을 이루어 학생의 인성과 복지를 담당하는 지원 체계를 구성하여 가동되고 있다. 1900년대 이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의무교육제도가 시행되면서 교육기회의 보장, 학생 인권 및 복지 지원을 통해 학교사회복지 제도가 퍼지기 시작하여 현재 서구 선진국을 비롯하여 대만, 홍콩, 일본, 몽골 등 아시아와 사회주의권 국가에서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계층의 대물림과 빈곤의 다면성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교실에서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를 불러 보면 외모도 왜소하거나 피부가 꺼칠하고 성적만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재주도 없고 성격도 모나는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게다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가정형편이 가난하고 부모님은 이혼하셨거나 재혼가정이고 부모님의 교육 정도도 낮아서 가정교육도 기대하기 힘들고 친구들도 다 그만그만한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며 방과 후에도 동네를 배회하며 해지기를 기다려 귀가하곤 하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되었다. 가난해도 학교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도 가고 ‘사’자 붙은 전문직도 될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된 것이다. 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은 가정형편도 좋고 부모님도 교양있는 분들이고 여러모로 칭찬할 만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생활태도가 바르지 못하다고 야단치고 벌주는 것은 전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성적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줄세우고 경쟁시키는 구조를 깨뜨리지 못하고 있고, 교사들은 그저 ‘문제 학생 뒤에는 문제부모(가정)가 있다’는 힐난조의 말만 할 뿐 정작 그런 ‘문제부모’나 ‘문제가정’이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들의 삶의 여건이 개선되도록 고민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정환경은 아이들의 성격과 태도, 성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관점과 철학을 가진 것이 학교사회복지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교사가 아닌 학교사회복지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제는 피교육자인 학생을 교육하는 교육자로서가 아니라 학생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서 학생을 만나고 이들의 가장 중요한 삶의 현장인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의 복지를 위해 발로 뛰며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를 넘나드는 일꾼이며 정책의 제안자가 되었다. 아직도 “공부해라, 공부해야 잘 살 수 있다”, “이 담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도대체 넌 장래에 대한 꿈도 없니?”라고 다그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 동기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피라미드를 적용한다면 ‘지적욕구’나 ‘자아성취의 욕구’에 속한다. 그런데 요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인 의식주와 안전,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부터 충족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빈곤의 여러 얼굴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위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아이들은 지적욕구나 심미적 욕구, 나아가 자아성취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따라서 방과 후 교실에 남아서 공부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신체적 발달과 건강의 지원, 가정환경의 개선을 위한 자원연계, 가족기능의 회복을 위한 서비스, 정서적 지지와 애정, 풍부한 문화체험과 같은 서비스가 있어야 공부도 하고 아름다움도 알고 미래의 꿈도 갖게 될 것이다. 학교사회복지사업의 어제와 오늘 1996년 이후 우리 사회와 교육계는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연일 ‘교실붕괴’라는 단어가 신문에 등장했고 공교육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낳게 하는 보도들이 TV에 고발되었다. 게다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빈곤층은 더 가난해지고 중산층조차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더불어 이혼의 증가와 핸드폰의 보급, 인터넷과 케이블TV 등 대중매체에 대한 무한노출 등과 같은 환경변화는 아동과 청소년들의 성장환경을 어지럽혔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의 문제행동과 중퇴 등 학교부적응 현상이 증가하여 교육계뿐 아니라 상담,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학교를 지원하여 학생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한 연구·시범사업들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1996년 교육부의 학교사회복지 시범사업과 1997년 서울시교육청의 사회복지사를 배치하여 운영한 생활지도시범사업이었다. 이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의 생활지도시범사업은 2006년까지 지역사회 여건이 열악한 학교들을 지정하여 시행하는 동안 계속 긍정적인 성과가 보고되었다. 이에 이 사업의 일반화, 제도화를 위하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02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기획사업으로 서울, 대전, 부산에서 약 15개 학교를 협력학교로 선정하여 학교사회복지사업을 시행하였다. 한편 교육부는 연구사업이후 중단되었던 학교사회복지사업을 2004년에 다시 시작하여 전국 16개 시도 총 96개 초·중·고교에서 ‘학교폭력예방 및 교육복지증진을 위한 사회복지사활용 연구학교’를 운영하였다. 이 사업 역시 사업시행학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제도화되지 못한 채 2007년부터는 복지부에서 사회복지사를 파견하는 형식으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또한 위스타트사업과 희망스타트사업 내 학교사회복지, 몇몇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민간기금으로 지원되는 학교사회복지사업 등에서도 같은 모형으로 학교사회복지사업이 운영되고 있어 2007년 말 현재 전국 약 150여 학교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 사업의 공통적인 틀은 1개 학교에 1명의 사회복지사가 상주하면서 취약계층 학생(빈곤, 신체 및 정신적 질병과 장애, 가정 내 방임이나 학대, 다문화, 폭력 가해 및 피해, 정서심리적 문제 등으로 건강한 발달 및 학교적응에 어려움을 가진 학생들)의 발굴 하고 생태체계적 사정(assessment)을 통한 통합적 지원, 공동체적인 학교문화 형성을 위한 폭력예방교육, 자원봉사프로그램, 멘토링프로그램 운영, 지역사회 자원의 개발 및 활용, 가정 - 학교 - 지역사회를 연계한 집중서비스 관리와 같은 일들을 하고 있다. 한편 사회의 양극화와 빈곤의 대물림, 그리고 그 속에서의 교육불평등과 교육격차에 대한 문제인식이 보편화되면서 교육부는 2003년부터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이하 교복투사업)을 시작하였다. 도시 빈곤밀집지역에 학교와 지역 기관을 연계하여 학교를 중심으로 교육, 보건, 문화, 복지서비스를 종합적으로 개발, 지원하는 체계인 교복투사업은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국 60개 지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에서 일하는 교육청의 프로젝트 조정자와 학교의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 중에는 서두에 소개한 학생복지의 비전을 가지고 그동안 학교사회복지 연구·시범사업을 경험한 학교사회복지사들이 많이 있다. 이제는 제도화를 논의할 시점 학교사회복지라는 분야와 학교사회복지사업의 현황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일면 많은 학교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모두가 시범사업일 뿐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몇 가지 사항을 지적, 제안하고자 한다. 1) 통합적인 사정과 개입 필요 교육은 보건, 노동, 주택과 함께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여건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개인과 시장에만 맡기기보다는 많은 부분 사회 또는 국가가 담당해야 하는 영역으로 다루어져 왔다. 또한 교육은 산업혁명 이후 아동의 권리이자 국민적인 기본권으로 추구되어 왔으며 우리나라 헌법 및 교육기본법에서도 ‘능력과 적성에 맞는, 평생 동안의 기회 균등한’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교육은 새로운 계층 재생산의 합법적인 기제로 자리잡게 되었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낮거나 상대적으로 소외계층에 속하는 가정배경을 가진 아동·청소년들은 발달과정과 학교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이것이 학습부진과 문제행동, 사회적 부적응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전인적인 진단 평가 위에 교육, 건강, 복지 등의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들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일관된 가치와 철학, 지식과 기술로 축적된 분야가 바로 학교사회복지이다. 2) 학교중심의 서비스 체계화 한편 학교 내에는 보건교사 외에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방과 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학교 밖에는 지역아동센터, 방과 후 공부방, 종합사회복지관, 청소년쉼터와 대안학교, 청소년수련관, 그룹홈 등 다양한 학생복지 프로그램과 시설, 기관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많은 복지적인 서비스들이 과연 꼭 필요한 아이에게 지원되고 있는지, 소외는 없는지, 모자라거나 넘치지는 않는지, 아이나 가정의 욕구와 서비스가 일치하는지, 사업 주관처들이 다른 부처이거나 관 - 민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협력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서비스 제공 후에도 더 필요한 것이나 부작용은 없는지와 같은 점들이 세밀하게 점검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또한 학령기 아동·청소년의 취학률이 90%가 넘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는 학교를 중심으로 학교 안팎의 여러 가지 아동·청소년 대상 복지서비스들이 체계화되며 아울러 가정에 대한 지원이 함께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내에 이러한 자원 연계조정자(resource coordinator)가 꼭 필요하다. 현재 연구·시범사업이나 스타트사업의 학교사회복지사, 교복투의 지역사회교육전문가들이 이러한 학교 안팎의 자원이 연계되는 고리 또는 다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제도적·보편적 틀 필요 현재 보건복지가족부가 지원하는 사회복지사파견사업, 지자체나 민간기금으로 운영되는 각종 기획/시범사업, 스타트사업 등에 포함된 학교사회복지사 배치학교와 교복투사업 시행학교들을 모두 합하면 거의 500개교를 육박한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전국의 초·중·고교 수 1만여 개의 5%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다. 꼭 도시 빈곤층 밀집지역이 아니더라도 빈곤하거나 취약한 계층,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은 어디나 있다. 오히려 이들이 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지역사회 내에 복지프로그램이 없어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학교사회복지 서비스를 받거나 교복투 학교에서 집중지원을 받던 학생이 졸업 후 그런 사업이 없는 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비스가 지속되지 못해 다시 학생의 부적응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도시빈민지역에 집중 투자하는 교복투 모델과 별도로 기본적으로 어느 학교나 자율적으로 학교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학교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보편적 제도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동안 연구·시범사업과 위스타트사업의 학교사회복지사업을 통해 교복투처럼 큰 예산을 투입하지 않더라도 학교당 연간 5000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얼마든지 학생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교의 교육적 여건이 개선시킨 경험들이 있다. 그렇다면 단위 학교특성상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이런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학생복지를 위한 학교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4) 법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대규모 전국사업인 교복투사업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상 학생들을 만나고 가정방문을 하며 교사에게 복지서비스의 필요성과 개입계획을 설명하고 지역사회 기관들과 협의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실무자인 지역사회교육전문가에 대한 전문적 역할과 직무에 대한 규정 및 보수체계도 마련되지 못했다. 서비스의 대상인 학생과 가족들은 사회구조적이고 골 깊은 문제들로 어려워하고 있으며 그래서 지속적이고 안정된 기반에서의 개입과 지원이 필요한데 계약직의 신분에 5년차와 1년차의 보수구분이 전혀 없고, 인력의 전문성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으며 능력개발을 위한 연수도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면 이 사업의 성공은 그저 대규모의 예산지원과 산발적인 프로그램 세례에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와 마찬가지로 학생복지 서비스도 실무책임자의 전문성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모든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개천 새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내에 학생복지지원국이 신설되었으나 일찍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교육복지정책안을 보면 장학금 지급 외에 교육복지정책의 내용이 거의 없는데 이것이 현 정부의 교육복지정책의 전부라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개천에서 용 나면 장학금 주겠다가 아닌가. 지금은 제 아무리 용이라도 개천에 빠지면 다시는 살아나오지 못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모든 개천의 물을 맑게 하고 용이 아닌 모든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제각각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학생복지를 지원하는 학교사회복지 제도가 하루빨리 우리나라에도 실시되기를 기대한다.
한때 장안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던 영화 가운데, ‘장군의 아들’이란 작품이 있었다.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독립군 사령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었던 ‘김두한’의 풍운아적인 젊음과 의협의 이야기를 얼마간은 허구적 픽션을 가미하여 만든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억압과 울분을 배경으로, 종로 일대 일본 경찰의 끄나풀 패거리들을 김두한의 주먹이 통쾌하게 짓누르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했다. 범상한 사람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주먹의 힘과, 불의를 용서하지 못하는 의협심, 그리고 따르는 무리들을 인간적으로 감동시키는 특유의 카리스마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장군의 아들에 매료된다. 게다가 사랑 앞에서는 한없는 순정의 화신이 되는 멜로의 요소까지 흠뻑 곁들였으니 이런 캐릭터가 대중의 우상이 아니 될 수 없다. 사람들은 과연 장군의 아들답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김두한은 해방 이후에도 ‘장군의 아들’로서 대중적 프리미엄을 누렸고, 이러한 인기를 정치적으로 반영하여, 그는 한때 국회의원의 자리에 나아가기도 하였다. 이 세상에는 실제로 많은 장군들이 있다. 현실적으로 군인은 계급장에 별을 달면 장군으로 칭함을 받는다. 준장에서 대장에 이르는 계급이 모두 장군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현직 장군만도 수백 명에 이르고, 장군 경력을 가졌던 사람까지 치면 이 세상에는 실제로 많은 장군이 있다. 그리고 그 장군의 집마다 ‘장군의 아들’이 있을 것이다. 장군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장군이라는 것으로 인하여 어떤 정체성을 형성해 가며 살아갈까. 영화 ‘장군의 아들’처럼, 빼앗긴 시대와 민족을 되찾기 위해 어떤 반역의 무리와도 싸움을 수행해야 할 것 같은 의식을 가질까. 은연중에 장군인 아버지가 가졌던 명예와 훌륭한 리더십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내면의 심리를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장군의 아들들에게도, 그 장군 아버지로 인한 고충이 있을 수도 있다. 아버지만한 장군감이 되지 못하여 열등의식에 노출될 수도 있고, 장군 가문의 체통을 살려야 한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을 수도 있다. 장군의 아들들이 평범한 병사로 군대에 가서 지내기가 만만치 않은 것은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다. 이번엔 ‘광부의 아들’들을 이야기해 보자. 1980년대 초 강원도 사북 탄광촌 아이들을 따뜻한 정성으로 가르쳤던 고 임길택 선생의 이야기가 근자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KBS가 매우 공들여 제작한 2007년 어린이날 특집 프로그램, ‘길택씨의 아이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코끝이 찡한 감동을 몇 번이고 느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그가 직접 써서 등사지로 밀어서 만든 그 시절의 학급문집들의 외양은 지극히 조촐하다. 그러나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길어 올리면, 목이 메고 마음을 울리는 대목들이 많다. ‘길택씨의 아이들’ 프로그램 기획 PD는 27년 전, 그 때 그 학급문집에 글을 썼던 임길택 선생의 아이들을, 지금은 모두 마흔이 다 된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 모두 다시 찾아가면서, 그때 그 시절 광부의 아이들로서 살았던 삶과 꿈을 지금의 자리에서 의미화 하도록 만든다. 아무튼 나는 ‘길택씨의 아이들’을 보면서 광부 아버지들과 그 광부의 아들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이들의 글에서 아버지에 대한 느낌을 적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길택씨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체로 ‘광부의 아들’들이다. 광부의 아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동어반복으로 강조하자면, 그들은 광부이다. 인생의 막장이라 할 수 있는 석탄 광산의 막장까지 오게 된,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는 광부이다. 아이들의 글에서 등장하는 광부 아버지들은 고단한 육체노동으로 몸이 늘 아프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화투장을 들고 노름을 하거나, 긴 한숨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엄마와 심하게 싸움을 하는 그런 아버지들이다. 아니 또 있다. 술만 먹으면 하는 말, 이 아비처럼 되지 말라는 체념조의 당부를 하는 아버지. 광부의 아이들은 무수히 자기 다짐을 하며 자랄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 같은 광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사회적 정체를 존중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마음에 가지는 응어리는 ‘아버지 넘어서기’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인자가 된다. 그 응어리가 곧 아이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단이 되는 것이다. 장년이 다 되어 그 시절을 술회하는, 그 옛날 ‘길택씨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의 현실, 아버지의 삶을 넘어서기를 추구하면서 살아 왔음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절망의 끝자리에서 희망이 싹을 피우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버지의 절망을 매우 솔직하게 보았기 때문에, 그 절망의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새로운 가능성은 물론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길택씨의 아이들’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삶을 증언하는, 불혹에 가까운 광부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아버지를 사랑으로 승인한다. 아버지를 극복하여 마침내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아이들이다. 그 증거는 무엇인가. 출세를 했건, 그렇지 못하건 이들은 모두 자신이 ‘광부의 아들’임을 의미 있게 승인한다. 그것이 증거이다. 어린 아들들에게 비쳐진 아버지 광부들의 모습은 조금도 숨김이 없다. 아니 숨김을 아들에게 연출해 보일 최소한의 돈도 시간도 공간도 없었으리라.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바깥으로 연출해 보이는 아버지와, 안에서 꾸밈없는 실체로 가지고 있는 아버지 사이에 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즉, 가면으로서의 자아[페르소나 persona]와 자신의 인격적 실체 사이에 달리 틈이 없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보여주는 아버지가 더없이 솔직하기는 하나, 자랑스러울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보여주기 싫은 것까지도 속절없이 보여 주어야 하는 이 당혹함의 현실을 잔뜩 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인 것이다. 심한 곤궁과 심리적 열등과 사회적 약자의 위상에서 광부 아버지는 노상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들에게 사회적 문화적 자아가 고상하게 형성되지는 못한다. 아들들 또한 출세한 아버지의 아름답고 멋있는 허세들을 한번도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자아를 연출하는 데 솔직하였다는 것은, 달리 보여 줄 것이 없었다는 말과 다름없으니 서글프기는 매양 한 가지이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었고,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는 아버지라는 것까지도 철 이른 나이에 볼 수 있었던 광부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아버지에 대해서 어찌 달리 접근할 방도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선생의 아들’은 ‘장군의 아들’에 기울지도 않고, ‘광부의 아들’에는 더욱 기울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이 두 아들 유형의 틈바구니에서 뚜렷한 자기 모델을 구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오늘날 선생의 아들들에게는 선생인 아버지의 긍정적 정체성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퍼스내리티를 의미 있게 강화하는 데에 아버지의 선생 역할이 크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광부의 아들처럼 아버지의 정체성을 핍진한 현실 속에서 아프게 경험하며, 아버지의 실존적 정체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쪽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것 같다. 전통사회의 잔영이 남아 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선생의 아들은 그 역할을 하느라고 고생을 한 셈이다. 작은 실수라도 선생의 아들이기 때문에 실제보다 증폭되어 돌아왔고, 아들 스스로 아버지에게 누를 끼치는 자식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자기 견제의 끈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라고 일일이 아비가 일러주지 않아도 거의 본능적으로 그런 자세를 취하면서 생활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이었다 할 수 있다. 선생을 인식하는 문화의 힘이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는 선생의 익명성을 주변이 허용해 주지 않으려던 때이었다. 이런 부담은 ‘선생의 아들’이 아닌 ‘아비 된 선생’도 마찬가지이었다. 아들이 잘못하면 자기 자식 하나 제대로 못 가르치는 사람이 무슨 학교 선생이냐는 힐문이 금방 따른다. 도덕적 연좌의 묶임에서 ‘선생의 아들’과 ‘아비 된 선생’은 서로를 구속하는 관계이다. 이제 익명성이 넘실거리는 자유로운 개성과 열린 소통의 시대에는 이런 부담이 사라졌는가. 내가 선생으로 살아도 대중사회의 흐름에 묻히면 내가 선생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교조적 규범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를 안으로 규제하는 규찰의 내적 코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죽으나 사나 영락없는 선생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세상이 바뀌었어도 선생의 본질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아무리 곤궁하고 열등해도 인생 막장에 다다른 사람처럼 자아를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이다. 장군 같은 기개와 이상으로 자아를 추스르며, 가르치는 제단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들들이 그것을 위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히 아들에 대해서는 바깥에서 선생으로 비쳐지는 것이나, 안에서 아비로 보여지는 것 사이에 되도록이면 인식의 틈새가 없으면 좋겠다. 이렇게만 된다면 선생으로서 행복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나는 선생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 또한 선생의 아들이셨다. 나는 평생 시골 학교 선생이었던 아버지의 진솔한 실체를 가난 속에서 많이 보았고, 지역사회에 비추어지는 아버지의 공동체적 역할, 즉 아버지의 ‘명분적인 자아’도 보았다. 별다른 인식의 괴리가 없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려서는 늘 아버지의 편이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았고, 내가 선생의 길로 들어서면서는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만한 선생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시대 선생의 길과 지금 시대 선생의 길은 달라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의 아들은 선생인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그는 자신이 ‘선생의 아들’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각 시·도교육청이 최근 실시한 일제고사 형태의 진단평가를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무엇 때문에 진단평가를 실시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점수와 상대적 서열을 공개하는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의 학력진단을 위한 평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평가결과의 활용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금번에 실시한 진단평가는 그 목적이 새로운 학습과정에 앞서 학습 준비도를 점검하기 위한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학생 개인의 상대적 서열이나 학교의 서열을 일깨워 줌으로써 분발을 촉진하기 위함이었는지가 모호해 보인다. 실상은 기왕에 실시하는 일제고사에서 학생의 학력도 진단하고 경쟁도 촉발하고자 하는 한 마디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수확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평가에 대한 무리한 욕심이 결국 사회적 찬반논란의 불씨를 제공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본래 학습의 ‘진단’과 ‘서열공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동시충족을 시도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일차적 목적이 학생개인이 지닌 학습수준을 점검해 학습지도에 참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진단평가 결과로 나타난 학생 개인 또는 단위학교의 성적이나 상대적 서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따라야 했다. 진단평가 실시 이전에 언론을 통해 촉발된 ‘성적’과 ‘서열’이 공개될 것이란 보도는 수험생들로 하여금 점수따기 경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사교육 시장마저 활성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언론 보도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마는 대다수 보습학원들이 진단평가에 대비한 특강을 실시하는가 하면 각종 학습 사이트와 출판사 문제풀이집들이 활개를 쳤다는보도를 접하였다. 진단평가란 용어 그대로 학습자의 학력을 진단해 새로운 학습에 대한 지적인 준비도를 점검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정확한 학력진단의 기초는 응답자의 진실성에 달려 있다. 알고 있는 내용에는 응답을 하되, 모르는 문제는 무응답으로 남겨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진단평가가 될 수 있다. 시험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득점을 향한 본능적 몸부림을 치고도 남을 우리네 학생들이 진단평가의 취지를 살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문제들에 얼마만큼이나 솔직해질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성적표를 내놓아야 할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고, 옆자리 친구로부터 자존심을 상하지 않기 위해 추측에 근거한 답 찍기의 유혹을 어느 정도나 외면할 수가 있었을까? 더구나 금번 진단평가의 문제들이 객관식 5지 선택형으로 되어 있어 추측에 의한 정답 확률이 20%나 되는 문항들이었다. 행여나 학생들이 평가점수에 집착한 나머지 추측에 의한 요행점수가 상당부분 진단평가 결과에 흘러들어갔다면 향후 그 결과의 활용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오진의 결과로 인해 엉뚱한 처방을 내놓는 의사처럼, 학교단위의 수업지도 전략뿐만 아니라 시·도교육청과 국가의 학력제고의 교육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진단평가’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학생 개인 간의 점수경쟁으로 변질된 데에는 진단평가가 실시되기 전부터 시험을 주관한 시·도교육청이 나서서 개인과 학교의 점수는 물론 상대적 서열까지 공개할 방침이란 발표의 책임이 커 보인다. 측정의 순도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자초한 셈이다. 평가의 가치는 신뢰 있는 측정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10년 만에 부활한 일제고사의 성격 때문인지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은 오로지 획득 점수에 모아졌다. 평가를 주관하는 시·도교육청이 나서서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로 진단평가의 근본 취지를 설명하고, 알고 있는 만큼의 지식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내용을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는 일이 미흡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진단평가 이후의 핵심적 과제는 취약한 학생들의 학력을 여하히 향상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도교육청이 나서서 학생들의 학력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긴 했지만, 진단평가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을 향후 어떤 방법으로 풀어나갈 것인가의 문제는 생각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어느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지를 몰라서 지도를 못하는 게 아니다. 학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매우 복잡한 결정구조를 지니고 있다. 학생들의 학력이 병아리의 암수를 감별하듯 단순하지도 명쾌하지도 않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 때문에 이제껏 학교현장에서 보아온 숱한 학력평가들이 처방을 내놓지 못한 채 평가 자체로 끝이 나곤 했다. 학년 말에는 ‘학업성취도 평가’란 이름의 또 다른 일제고사가 진행될 모양이다. 그리고 앞으로 일제고사 형태의 진단평가와 학업성취도 평가가 정례화될 것으로 보인다. 평가는 그 본질을 살려 적절히 사용하면 좋은 약이 될 수가 있다. 차제에 진단평가의 본래 기능을 살려 신뢰성 있는 결과와 교육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기대된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올해에도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대한교육연합회에서는 1983년 5월 12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을 교육주간으로 정하고 전국적인 행사를 갖게 된다. 체신부에서는 스승의 날을 기념하고, 이를 계기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인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 대해 온 국민이 공경하는 마음씨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체신부가 1983년 5월, 스승의 날 기념우표를 발행하면서 함께 발표한 내용입니다.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새교육 1983년 7월호는 제2회 스승의 날 기념화보를 실으며 함께 체신부에서 스승의 날을 맞아 발행한 기념우표 사진을 실었네요. 이후 기념우표 발행은 1991년 제10회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딱 한 번 이뤄진 뒤 사라집니다. 스승에 대한 마음이 사라진 요즘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해 씁쓸합니다. 우정사업본부가 다시 기념우표를 발행할 생각은 없는지 조용히 물어봅니다.
이원희 교총회장은 29일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을 방문해 지난 10년간 제.개정된 법률 중 재개정이 필요한 법률 등을 재검토 해 줄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