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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 제2기 위원을 위촉했다. 지난 제1기 위원들 사이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 대입 개편 관련 사전 유출 논란이 불거진 후 갈등이 지속되자 재구성에 이른 것이다. 국교위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0차 회의를 개최하고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 제2기 위원 위촉(안) 심의, 교육정책관계자 협의회 구성 및 운영계획(안) 심의, 직업・평생교육 및 교육 기반 분야 관련 국가교육발전 연구센터의 발제와 위원 간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국교위는 지난 11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된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와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외 19명의 위원을 확정했다. 임기는 2년이다. 이들은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 동안 추진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관련 자문과 사전검토 등을 수행하게 된다. 앞서 ‘제1기’ 전문위는 대입 등 개편 관련 논의를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수능 이원화 방안과 논·서술형 평가 도입 등 일부 의견이 외부에 유출돼 내홍을 겪었다. 위원들 간 갈등 속에서 일부는 사퇴하는 등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재구성 절차를 밟게 됐다.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은 “지난 11월에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 재구성과 공동위원장 신규 위촉(안)을 의결한 데 이어, 전문위 위원님들에 대한 위촉(안)을 오늘 의결한다”며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제2기 전문위를 새롭게 구성하는 만큼 많은 위원님들께서 전문위에 요청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교위는 이날 교육정책관계자 협의회 구성 및 운영계획(안)도 심의 후 의결했다.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등과 관련해 관계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와 의견 수렴을 위해 추진되는 안건이다. 협의회는 국교위 사무처장을 의장으로, 교육부 등 11개 관계 중앙행정기관 고위공무원, 17개 광역 지자체 및 시・도교육청 국장급 이상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다. 또한 ‘직업・평생교육 및 교육 기반 분야 중장기 주요 의제(안)’에 대한 국가교육발전 연구센터 발제가 진행됐다. 직업・평생교육 및 교육 기반 분야 관련 ▲생애주기별 맞춤형 평생학습 기회 보장 ▲지역과 함께하는 진로・직업교육의 강화 ▲시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교육 기반 마련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교육 난제 해결 등을 논의했다. 국교위는 지난 9월 출범 2주년 대토론회에서 ‘12+1대 주요 방향(안)’을 제안한 후 3차례 회의를 통해 고등교육 분야 및 유・초・중등교육 분야와 관련한 연구센터의 중장기 주요 의제(안) 발제를 진행한 바 있다. 국교위 관계자는 “이날 발제로 교육 전 영역을 개괄하게 됐다”고 전했다.
순천효천고(교장 조선용)는 19~20일,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과 한자어 이해를 돕기 위한 특별한 행사를실시했다. 첫날인 19일에는 김광섭 강사가'한자어 이해가 학력을 좌우한다'를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특강을 수강한학생들은 한자가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의미가 현대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학생들은 "한자는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한자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또한, 강사님이 강조한 "꿈이 내 삶을 이끌어간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며, 한자 공부를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20일에는 '문해력 증진을 위한 사자성어 탐구행사'를 개최하였다. 학생들은 사자성어의 의미와 쓰임에 대해 그룹토론을 진행하며, 평소 자주 사용하지만 정확한 뜻을 잘 알지 못했던 한자어들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사자성어 경시대회에서는 1학년 황OO학생이 1등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황 학생은 "사자성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미와 깊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제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사자성어가 담고 있는 지혜와 교훈을 통해 삶의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경험은 단순한 대회 참여를 넘어,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한자와 사자성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고,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제 인생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학년 박OO학생도 이번 대회에 적극 참여하였다.박 학생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여러 사자성어의 뜻과 쓰임을 공부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학문에 대한 열정도 더욱 커졌습니다. 또한, 다른 참가자들과의 경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열정과 노력에 감명을 많이 받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사자성어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이를 통해 저와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순천효천고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내년에도 확대하여 더 많은 학생들이 한자어와 사자성어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이를 통해 학업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조선용 교장은"학생들의 문해력 향상과 학습 동기를 높이는 기회로 이번 행사가 매우의미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북 점촌북초(교장 하미경)가 26일 '동물복지국회포럼'에서 주최하는 제6회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 시상식에서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점촌북초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학교 교육과정에 동물복지교육 과정을 편성·운영하면서 미래세대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동물복지 의식과 문화를 확산시키고 미래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다. 하미경 교장은 "학생들이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생명 존중과 배려심을 키울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왔다. 사람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욱더 동물복지 교육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대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는 특히 초등학교 최초로 동물복지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점촌북초등학교가 수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충북 충주예성여고(교장 정문희)는 24일 1학년을 대상으로 선비문화수련 수업을 실시하였다. 7명의 지도위원이 '선비문화 실천의 길', '나를 깨우쳐 줄 퇴계선생', '예절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를 주제로 각 교실에서 실시하였다. 충주예성여고는 1981년도에 설립하여 40회 졸업생 184명을 포함하여 총 1만3715명을 배출한 충주의 명문교이다. 1992년도에는 축구부를 창단하였고, 2005년에는 전국 100대 교육과정 최우수학교 대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교육 실적을 올린 학교로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학교비전은 '바른 품성으로 미래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예성인'이며, 교육목표는 '맞춤형 교육과 존중하는 학교문화 조성으로 미래학교 만들기'로 전 교직원이 교육에 열정적인 분위기이다. 정문희 교장의 학생 독서 지도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이런 노력의 결과 올해도 서울대 의대 합격생을 배출하였다고 전한다. 선비수업 준비를 위하여 들어서자 마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분이 '행운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조그만 선물을 준비하여 지도위원들에게전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이런 이벤트를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신기하게 보였다. 선생님, 학생들에게도 깜짝 준비로 실시하였다니 아이디어가 놀랄만하다. 학생과 교직원 모두가 소통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를 교육 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 현장 등 혼란을 이유로 제의요구를 제안했다. 교육부는 26일 총 11개 교육부 소관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의결 법안 중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포함됐다. 교과용도서(교과서)의 정의와 범위를 법률에 직접 명시하면서 도서 및 전자책으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AIDT의 사용 여부를 교육부 장관이 아닌 학교장 재량에 따르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법 개정안 시행은 공포 후 즉시다. 올해 검정을 통과한 AIDT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된다. 이에 따라 최종 공포 시 내년 신학기부터 초등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교 1학년에 도입하려던 교육부의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학교 현장과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교육부 장관으로서 재의요구를 제안할 예정”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후속 조치를 검토하겠지만, 사용을 희망하는 모든 학교에 대한 행정·재정적 지원방안을 시·도교육청과 함께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교원의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 권한을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안,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의 법적 근거를 법률로 상향하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 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법인을 정상화하는 경우 전·현직 이사협의체와 학내구성원 대표기구 등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도록 의무화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각각 통과됐다.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해서는 수능 출제 참여 전 사교육 영리 행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과세정보 조회 근거가 마련됐다. 폐교재산의 활용 촉진을 위한 특별법, 학교복합시설 설치 및 운영·관리에 관한 법률,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처리됐다. 또한 학생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해 교사 혼자가 아닌 학교와 교육청 등이 함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학생맞춤통합지원법과 도시형캠퍼스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제정안이 의결되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으로 학생의 능력과 상황에 맞는 맞춤형 교육 체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마련되고, 학폭 전담조사관의 학폭 사안 처리 공정성과 객관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서는 “사학의 공공성과 자주성의 균형이 필요한데, 전·현직이사 측의 이사 후보자 추천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해사학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권보호, 개선 기대… AIDT 후속대책 시급” 교총, 교육 법안 통과 입장 한국교총은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 교원의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 권한을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하도록 명시된 개정 교육기본법,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의 법적 근거를 담은 개정 학폭예방법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봤다. 교총은 “학교 현장에 적용될 교육기본법, 학생맞춤통합지원법, 학폭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법 개정으로 교권이 더욱 보호되고 교육 현장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시행령 개정과 철저한 준비가 더 중요한 만큼 교육 당국은 후속 조치 만전으로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도록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교육기본법 개정에 대해 “교원의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함으로써 더욱 보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를 근거로 시·도교육청별로 더 많은 교권 보호 예산 확보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관련 조례 제정이 이루어지는 근거법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개정 교권 5법이 시행됐지만 현장 안착에는 한계가 있어 여전히 학교 현장은 문제행동 학생의 증가, 악성 민원, 툭하면 아동학대 신고 등 교권 침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교총은 학생맞춤통합지원법 제정과 관련해 “부처·사업별로 분절된 지원에 따른 사각지대를 없애고, 복합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 대해 맞춤형 통합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돼 의미가 크다”고 기대했다. 다만 교원의 행정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교육(지원)청과 지자체 등이 협력체계를 잘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교총의 설명이다. 이번 법안심사과정에서 제외된 ‘보호자 동의 없이 학생에 대한 긴급지원 가능’ 등 실효적 방안이 추가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AIDT를 교과서 대신 교육자료로 전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에 대해서는 “정치에 따라 교과서 정책이 요동치며 자칫 소송 분쟁까지 더해져 학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총은 “AIDT의 활용 여부와 관련한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시·도교육청, 여·야 차원의 협의를 지속해 합의점 도출과 대책 마련을 바란다”고 주문했다.
경기교총(회장 이상호)과 경기교육청은 23일 도교육청에서 ‘2024년도 단체교섭·협의’ 상견례(사진)를 갖고 본격 단체교섭 협의에 들어갔다. 경기교총은 상견례에 앞서 ▲교원 인사 및 임용제도 개선 ▲교원복지 및 근무 여건 개선 ▲교권 및 교원 전문성 신장에 관한 사항 ▲교육환경 개선 ▲전문직 교원단체 지원 등 38개 조, 45개 항을 교섭과제로 제안했으며, 사전 실무협의를 거쳐 교섭 요구(안)을 확정했다. 주요 요구안은 근무 여건 개선 및 보결수당 인상, 맞춤형 복지 포인트 증액, 교권보호지원센터 전문인력 확대, 퇴직예정교원 연수 지원, 학교 성 관련 위원회 교육지원청 이관 등이다. 이상호 회장은 인사말에서 “현재 학교 현장은 교권 추락과 열악한 교원 처우, 학생 지도에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교원이 중도 퇴직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교권 보호, 교원 근무 여건 개선, 행정업무 경감, 복지 확대 등 현장 교원의 의견이 반영된 소중한 교섭안이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합의에 도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북교총(회장 오준영)은 교원 사기 진작과 행복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2024 전북교총회장배 교직원 배드민턴 대회’를 21일 전주 덕진 실내배드민턴장에서 개최했다. 13개 부문 72개 팀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김다영(익산동궁초)·노성호(함열초) 조가 혼합복식 초급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또 남자복식 20~30대 A급 경기 1위는 김기종(원광중)·이상현(군산영광여고) 조에게 돌아갔다. 오준영 회장은 “최근 교권 추락과 교권 침해로 인해 교원 사기가 많이 떨어지고 학교 분위기도 흉흉하다”며 “선생님이 행복해야 학생과 학교가 즐겁게 교육을 담보할 수 있는 만큼, 교원 사기 진작을 위해 다양한 복지 행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용인 샘말초(교장 김혜경)는 24일학부모회 주관으로크리스마스 선물 나눔 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나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는 샘말초 학생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루어졌다. 추운 날씨에 등교하는 학생들을 산타와 루돌프가 등교 맞이 행사로 응원하였으며 크리스마스 및 연말을 기념하는 트리 장식을 1층 중앙현관에 꾸며 산타와 사진을 찍었다. 각 반에 산타가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과 함께 학용품을 나누어 주었다. 연말을 맞이한 학생들 모두에게 따뜻하고 풍성한 시간이 되었다. 나00 샘말초 학부모회 부회장은“크리스마스 나눔 행사에 대한 기획, 회의, 구매, 포장 등 준비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고 이번 행사에 학부모회 모두가 함께 참여해 주셔서 감사했다. 크리스마스 정신과 나눔의 가치를 알아가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또 일년을 마무리하는 연말에 학생들에게 한해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기억되고 학생들의 따뜻한 하루로 추억이 된다면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00 2학년 학생은 “산타할아버지와 인사도 나누고 산타할아버지에게 받는 학용품 선물도 감사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김혜경 교장은 “추운 등굣길에 학부모회원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으로 아이들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된 것 같다. 나눔의 가치를 알고 지역사회와 도움을 주고받는 성숙한 민주 시민 의식을 키우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바른 인성의 실천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말하였다.
한국교총 세대별(2030·3040) 위원회(이하 교총 위원회)가 연말을 맞아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쳤다. 강주호 교총 회장을 비롯한 교총 위원회 운영진 15명은 21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전국천사무료급식소 서울종로점에서 어르신들의 식사 배식에 나섰다. 전국천사무료급식소는 독거노인과 소외된 이웃을 위해 1992년부터 무료 급식을 제공하며, 전국에 26곳을 운영 중이다. 이날 봉사활동에 참여한 교총 교사회 운영진은 음식 배식과 식판 운반, 잔반 처리 등에 손을 보탰다. 2030 청년위원회 운영진으로 활동 중인 장경호 교사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 못지않은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3040 위원회 소속인 이승리 교사도 “이번 활동을 계기로 앞으로 봉사활동을 많이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마친 후 교총은 전국천사무료급식소에 후원금도 전달했다.
대학교·대학원 졸업생 취업률이 조사 대상 변경 등의 이유로 7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하지만 매년 하락 추세인 교대는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전국 고등교육기관의 2022년 8월·2023년 2월 졸업자 64만6062명을 대상으로 2023년 12월 31일 기준 취업 현황을 분석한 ‘202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 결과를26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2년 8월과 2023년 2월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중 취업자는 38만9668명으로 취업 대상자 55만4281명의 70.3%다. 전년의 69.6%과 비교하면 0.7%포인트(P) 높다. 해당 조사에서 취업률 70% 돌파는 처음이지만 이전과 조사 대상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조사부터 방송통신대학, 사이버대학, 원격대학, 기술대학, 전공대학, 사내대학.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대학원대학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학교 유형별 취업률은 대학원이 82.4%로 가장 높고, 전문대학 72.4%, 일반대학 64.6%, 교육대학 59.5% 순이다. 일반대, 전문대, 교대 취업률은 전년보다 소폭 하락했다. 특히 교대 취업률이 50%대에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년 전만 해도 교대 취업률은 80%대를 상회했으나 학령인구 감소 등의 이유로 2018년 60%대로 급감한 이후 매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계열별 취업률은 의약계열이 82.1%로 가장 높고, 공학계열은 71.9%로 평균 취업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교육계열(69.5%), 사회계열(69.4%), 예체능계열(67.2%), 자연계열(66.5%), 인문계열(61.5%)은 모두 평균 취업률을 밑돌았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소재 학교가 72.2%로 비수도권의 68.5%보다 3.7%P 높다. 이는 전년 지역별 격차(2.7%P) 대비 1%P 증가한 수치다. 성별로는 남성 72.4%, 여성 68.5%로 3.9%P 격차다. 성별 간 차이는 전년(3.0%P) 대비 0.9%P 벌어졌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대학 졸업자의 월 평균소득은 309만1000원으로 전년 대비 24만4000원 늘었다. 전문대 졸업자는 257만7000원으로 9만2000원 증가했다. 대학원 졸업자는 509만6000원이다. 기업유형별 취업 비중은 중소기업이 41.8%로 가장 높았고, 비영리법인(17.2%),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12.2%), 중견기업(10.8%), 대기업(10.2%), 기타(4.3%), 공공기관 및 공기업(3.5%) 순이다. 대기업 취업자 비율은 전년 대비 2.2%P 감소했다. 교육부는 이번 취업통계조사 결과를 교육부(https://www.moe.go.kr)와 한국교육개발원(https://kess.kedi.re.kr) 누리집 및 국가통계포털(https://kosis.kr)에 탑재해 국민들이 손쉽게 자료를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경기도 연천군은 화산지대였다. 그래서 현무암을 어느 곳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을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신기했다. 우리나라 전체에서 제주도 이외에 이렇게 흔하게 현무암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전곡리 구석기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탄강과 임진강 주변으로는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정착해서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부족을 이루고 또 자연스럽게 권력자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들이 무덤인 고인돌(지석묘)이 연천군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한 용암, 화산지대가 만들어낸 거대한 바위의 형상은 장관을 이룬다. 임진강과 한탄강을 타고 흐르던 용암은 굳어서 거대한 절벽을 형성했다.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절경이다. ○ 좌상바위경기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307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 시인이 했던 말이다. 그는 시인 로스께의 말을 인용하며 “늙는다는 것은 이제까지 입어 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늙어가는 것이다. 늙어가는 것은 ‘상실의 벌’ 일지도 모른다. ‘벌’은 슬픈 것도 아픈 것도 아니다. 그냥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일 뿐이다. 그렇다. 늙어가는 것은 그냥 벌일 뿐이다. 슬퍼하거나 분노할 필요도 없다.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슬퍼질 때가 있었다. 늙어 가는 것, 어쩌면 그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과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가 하나씩 더해진다. 그래서 납으로 된 옷을 입는다고 표현했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의 나이는 어느덧 25년 전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잠시 눈 감았다 다시 뜨니 25년이 지나가 버린 느낌이다. 삶은 크고 작은 파도가 되어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든다. 파도를 헤치는 법을 알고 싶은데 녹록치 않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배웠던 방법도,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알게 되었던 방법도 잘 통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사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라 믿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부딪치는 크고 작은 파도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하나의 파도를 넘으면 이내 더 큰 파도가 나를 덮친다. 고려시대 국사인 지눌은 “땅에서 넘어진 자(人因地而倒者), 땅을 딛고 일어나라(因地而起)”고말했다. 수 백 년전의 진리는 현재, 아니 앞으로의 미래에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터이다. 넘어진 곳을 그대로 딛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일어서야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낼 수 있다. 그래야 또 걸을 수 있다. 넘어졌다 일어서 본 사람만이 넘어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넘어져 봐야 나에게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파도가 덮치건 넘어지건 어찌어찌라도 버티며 사는 게 인생이다. 한 곳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크나큰 바위는 늙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희석시켜 준다. 같은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는 것이 그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좌상바위는 재인폭포에서 6~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자동차로 약 15분이면 닿을 수 있다. 좌상바위 주변 한탄강은 수심이 얕고 물살이 빨라 견지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차장에서 200m를 도보로 이동하면 좌상바위를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걸을 때에는 조금은 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통행로가 잘 가꾸어져 있고 평탄하기 때문에 접근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이 곳에 닿으면 탁 트인 한탄강이 보인다. 약 10여분 걷고 나서 마주한 좌상바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웅장했다. 바위가 아니라 산에 가까울 정도로 규모가 크다. 바위라는 명칭 때문에 자칫 조그만 바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름만 바위이지 훨씬 거대하다. 절벽을 만들며 우뚝 서서 한탄강을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좌상바위의 위엄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좌상바위의 아래는 한탄강의 세찬 물살이 굉음을 내며 휘감고 흐르고 있다. 물속에 들어가서 낚시를 하기에는 조금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탄강의 바닥은 대부분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이 깊은지 얕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깊은 웅덩이가 있을 수 있다. 어릴 적 여름 휴가철이면 사망사고가 많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어느 선생님께서 여름방학을 앞두고는 한탄강에서는 특히 조심해서 물놀이를 해야 한다는 당부를 들으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좌상바위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 한탄강 주변에 위치하는 약 60m 높이의 불뚝 솟아있는 바위로 중생대 백악기 말에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이 굳으면서 형성된 현무암 바위산이다. 좌상바위의 재질은 제주도의 현무암과 다르게 응회암질 퇴적 현무암으로 다양한크기의 화산자갈이 포함되어 있어 화구나 화도 부근에 용암이 퇴적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두산백과 두피디아). 좌상바위는 오랜 기간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왔다.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고 하여 선봉 바위, 풀무 모양을 하였다 하여 또는 그 곳에서 풀무질을 하였다 하여 풀무산, 스님이 앉아 있는 모양이라 하여 좌살바위, 한국전쟁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하여 자살바위 등등.그러나 어떤 이름보다도 현재 좌상바위가 위치하고 있는 청산면 일원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는 것은 ‘좌상바위’이다(연천문화원). ○ 아우라지 베개용암경기 포천시 창수면 신흥리 산209-1 오랜 세월 변함없이 같은 곳을 지키고 있는 무언가는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그래, 어쩌면 그 곳은 우리가 반드시 찾아가야 할 자리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 거의 매일 친구들과 함께 했던 오징어 게임도 지금은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신기한 퍼포먼스가 되었다. 컴퓨터, 모바일 게임에만 익숙한 MZ세대 세대에게 예전의 놀이 들은 낯설고 신기할 뿐이다. 당시 우리에게 유행했던 취미활동은 우표수집이었다. 오래될수록 가치를 인정해 주었고 희귀할수록 더 가치가 올라간다.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날이면 우체국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서며 기다렸다. 심지어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얻게 된 우표를 보며 뿌듯한 기분을 느꼈고 친구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었다. 필자는 서울에서의 중고교 시절에도 전곡읍의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았다. 손편지라는 말도 최근에야 생긴 말이다. 편지는 당연히 손으로만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버튼 몇 번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밤새 마음을 꾹꾹 눌러쓴 서툰 글씨체의 편지는 낭만이 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집 우편함에 얌전히 꽂혀있는 친구의 답장은 마치 선물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재인폭포에서 전곡 방향으로 나오는 길에 있으며 포천시와 연천군에 함께 걸쳐 있다. 베개 모양처럼 누웠다고 해서 아우라지 베개용암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영평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데, 안내소에 주차를 한 후 약 10여분간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이 있는 한탄강의 건너편에 전망대가 있으며 망원경으로도 관찰이 가능하다. 전망대 인근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어민들이 조그마한 배와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보인다. 주변에 차량 이동이 거의 없어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했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에서 시작되는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또 다른 묘미를 준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총 27.9㎞로 포천과의 경계인 영평천으로부터 한탄강이 임진강과 만나는 도감포까지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영평천길(푸르내길)은 5.5㎞로 포천시와의 경계인 청산면 백의리 영평천에서 영평천이 한탄강을 만나는 아우라지까지이다. 아우라지에서 한탄강 하류 쪽으로 고탄교까지 ‘땅에 미소길’은 8.3㎞이며 다음 하류 쪽으로 고탄교에서 은대리성까지는 ‘선사 유적길’로 총 8.2㎞, 마지막으로 한탄강이 임진강을 만나는 도감포까지는 5.9㎞이다. 연천 쪽 한탄강을 둘러싼 총 길이 27.9㎞의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는 주상절리의 절경과 더불어 선사 유적부터 삼국시대 그리고 근현대 역사 유적과 현대를 살아가는 지역주민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한탄강지질공원). ○ 양원리 지석묘(고인돌) 양원리 지석묘는 파주에서 연천으로 들어오는 경계에 위치해 있다. 필자는 전곡읍을 갈 때 항상 의정부 – 동두천- 전곡을 지나는 자동차 전용 국도를 이용한다. 구리-포천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의정부의 민락IC로 빠져나오면 이 도로와 바로 연결된다. 국도 3호선 우회도로이다. 얼마 전까지 동두천까지만 도로가 이어졌는데 최근에는 전곡까지 개통되었다. 이 도로는 언제나 한적해서 좋다. 그리고 곡선 코스 없이 거의 일자로 달릴 수 있다.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동두천 인근에서 남면이라고 씌여진 표지판을 보고 빠져나오면 어릴 적 잠시 살았던 은현면 봉암리가 나온다. 필자는 봉암리에서 전곡으로 가는 외진 도로를 항상 이용한다. 길가의 편의점에서 커피도 마시고 잠시 쉬면서 살며시 상념에도 잠겨본다. 은현면에서 전곡읍으로 가는 길 의 도중, 한탄강 유원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양원리 지석묘의 표지가 우측으로 보인다. 도로에서 약 50M도 채 안 될 정도로 가깝다. 간판을 따라 우회전을 하면 조그만 마을 입구와 공장이 보이는데 그 앞 공터에 양원리 지석묘가 한가로이 자리하고 있다. 양원리 지석묘, 즉고인돌은 나름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건물이나 인공 구조물도 거의 없고 야트막한 평지에 잔디밭, 주변에는 소나무로 보이는 큰 나무들이 적절한 배경을 이루면서 서 있다. 여러 그루의 큰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아서인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 통현리 지석묘(고인돌) 현대인의 특성을 ‘건너뛰기’ 로 표현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유튜브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하게 보지 않고 대부분이 요약본을 보거나 스킵, 즉 건너뛰기를 계속하면서 본다는 의미이다. 사실 필자도 어느새 건너뛰기가 습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행은 건너뛰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곱씹으며 그 지역을 눈과 귀에 담고 마음을 기록한다. 내면의 의식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기록이다. 전국의 자연인,즉인적이 없는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다. 메인 방송국의 프로그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은 시청률을 보인다. 어쩌면 우리, 특히 중년의 남자들은 자연인을 꿈꾸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또는 내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로망’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잠시 대리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복잡한 일상의 도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현대인은 삶과 생활에 지치고 피곤하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이다. 통현리 일대는 연천 지역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고인돌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이 일대에는 8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 제자리에 있는 것이 4기이고 나머지는 주변 지역으로 이동된 상태이다. 주민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현재 고인돌이 위치한 주변으로 적어도 수십 기가 더 분포하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연천문화원). 통현리 지석묘(고인돌)는 3번 국도 전곡읍에서 연천읍 방향으로 약 10여분 가다 오른쪽으로 통현2리 고인돌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이 마을 동쪽 끝자락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민가와 비닐하우스 등이 있고 밭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통현리 지석묘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비닐하우스와 공장 사이에 간신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석묘를 지탱하기 위해 쇠기둥이 3개 박혀있다. 어울리지 않는 흉물스럽기까지한 모습이었으나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통현리 지석묘의 주변에는 야트막한 산과 경작지가 푸른색으로 펼쳐져 있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볼거리도 아니고 역사적 의미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양원리 고인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보존이 안 되어 있다. 하긴 4만 여 기(基)나 되는 고인돌을 어찌 유적으로 잘 보존할 수 있을까? 연천 고인돌 공원은 통현리 고인돌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연천읍 통현리 199-2 외)군 지정 문화재이다. 연천군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을 옮겨와 2003년 11월부터 2004년 6월에 걸쳐 복원하여 고인돌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연천 고인돌 공원은 총 16기의 고인돌을 모두 모아 둔 장소이다. 다양한 모양의 고인돌을 볼 수 있었다. 연천 고인돌 공원 바로 옆에는 아파트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다소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다. 그전에 보았던 고인돌은 모두 시골 조그만 마을의 한 구석에 있었다. 연천 고인돌 공원은 아파트 단지 바로 옆 근린공원의 느낌이다. 현대 문명의 상징인 아파트와 오래전 유적인 고인돌의 만남, 어쩌면 현재와 과거를 함께 묶어둔 아이러니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 학곡리 고인돌/적석총 임진강 가에 자리잡고 있는 학곡리는 예부터 학이 많이 날아들어 학곡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파주 적성면에서 임진강 비룡대교를 넘어 우회전하여 약 10분 자동차로 이동하면 우측에 학곡리 마을이 보인다. 임진강을 지척에 접하고 있으며 평탄한 지형의 자그마한 마을이다. 시골 마을의 정취가 아름다운 학곡리 마을은 이곳의 옛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적을 품고 있는데, 하나는 고인돌이고, 다른 하나는 돌을 쌓아 만든 적석총이다.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학곡리 고인돌은 두 개의 고임돌 위에 넓은 덮개돌이 올려져 있는 탁자형인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 재질의 덮개돌 위에 차분하게 빗물이 적당히 고여 있어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학곡리 적석총은 마을을 조금 벗어나 임진강 가의 구릉지대에 만들어져 있는데, 강가에서 구하기 쉬운 둥글둥글한 강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기에 돌무지무덤이라고도 불린다. 학곡리 적석총은 학곡리 돌마돌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m정도 떨어진 임진강변의 자연제방 위에 위치하고 있다. 강 쪽의 구릉 말단부에 일정한 크기의 강돌을 보강하여 적석부의 붕괴와 유수로 인한 침식을 막고 자연구릉에 기대어 돌을 쌓았다. ○ 삼곶리 돌무지무덤/임진강 댑싸리 공원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 422 삼곶리 돌무지무덤(적석총)은 다른 고인돌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연천군 중면에 위치해 있다. 1994년 유적건조물로 지정되었다. 삼곶리 돌무지무덤은 댑싸리 공원 내에 있다. 댑싸리 공원을 관람하면서 함께 보면 좋을 듯하다. ‘삼곶리 돌무지무덤’은 원삼국 시대 늦은 시기의 집단 무덤으로 임진강 유역에서 처음 발굴 조사된 돌무지무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무덤은 고구려 적석총과 다르게 분구 위의 돌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즙석묘, 즙석총, 즙석식적석묘 등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었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적석분구묘’로 부르기도 한다. 연천 삼곶리 돌무지무덤은 중면 삼곶리, 충적지대에 있다. 1994년 경기도의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었다.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땅을 평평하게 정리한 다음 그 위에 한두 겹의 자갈돌을 깔아 무덤터를 마련하였다. 동, 서 2개의 무덤은 덧붙여 지어진 쌍분으로 평면형태가 표주박형에 가깝다. 무덤 북쪽에는 제단 시설로 생각되는 무덤지역이 있다. 덧널(곽) 안에서는 사람의 뼈조각, 쇠로 만든 화살촉, 구슬들이 나왔고 그 주변에서 토기조각과 숫돌들이 발견되었다. 전체적인 무덤의 양식이나 유물로 보면, 백제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위키백과). 현재 안내판에는 연천 삼곶리 돌무지 무덤은 백제의 무덤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임진강변에는 약 7km간격으로 백제의 돌무지 무덤이 분포하고 있으며, 주거 유적과 함께 이 일대에 대한 삼국시대 백제 초기의 지배 양상을 보여준다고 하여 돌무지 무덤이 백제의 유적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설명하고는 있다. 8월의 댑싸리 공원은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댑싸리는 쌍떡잎식물이며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이며 코키아라고도 일컫는다. 계절에 따라 그 색깔이 변한다고 한다. 임진강 댑싸리 공원은 연천 삼곶리 돌무지무덤 바로 앞 약 3만㎡ 규모로 댑싸리 2만여 그루를 심어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동글동글하고 자그마한 아이같은 모습의 댑싸리는 8월 말부터 불긋불긋해지고 9월 초 무렵이면 분홍색등 여러 가지 형형색색으로 가을의 들판을 물들인다. 9~10월경이면 단풍이 절정에 이른 형형색색의 댑싸리를 볼 수 있다.
교육부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0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조손가족 아동의 안정적 양육·성장 지원방안’, ‘국가책임 입양체계 개편 방안’, ‘제1차 전통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계획 2024년 주요성과 및 향후 계획’을 상정했다고 밝혔다. ‘조손가족 아동의 안정적 양육·성장 지원방안’은 소외될 수 있는 조손가족을 조기에 발굴하고, 조손가족 아동의 안정적인 양육·성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조손가족 맞춤형 지원을 위해 학생에게 학교장 추천으로 방과후 학교 자유수강권을 지원하고, 가족센터와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연계해 상담을 제공하는 등 학업과 심리·정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부모를 돌보고 있는 가족돌봄청(소)년 등이 이용 가능한 일상돌봄·긴급돌봄 서비스 운영 지역도 확대한다.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고령자복지주택 공급을 연 1000호에서 3000호로 늘리고,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 조손가족이 입소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등 주거시설 입주 기회를 확대한다. 양육 부담 완화를 위해 아동양육비 지원단가도 인상(2024년 월 21만 원→ 2025년 월 23만 원)한다.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조손가족에게 선제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기 위해 사회보장급여(기초연금 등)를 신청하는 조손가족의 정보를 본인 동의하에 가족센터로 연계하고, 전국 가족센터 중심 지역사회협의체를 통해 ‘지역 내 취약·위기 조손가족 집중 발굴 기간’을 운영(2025년 3~4월)할 예정이다. 또한 인터넷을 활용한 정책정보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는 조부모를 위해 ‘손자녀 돌봄‧양육 지원정책 안내서’를 제작해 주민센터 등을 통해 내년 하반기쯤 배포하고, 손자녀를 대상으로는 내년 상반기까지 청소년정책 홍보채널을 통해 정책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가족상담전화(1577-4206)’를 통해서도 조손가족 정책정보를 제공한다. 조손가족에 대한 사회적 수요, 변동 요인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현행 ‘한부모가족실태조사’의 부가조사에 ‘조손가족 실태조사’를 추가해 2027년부터 3년 주기로 시행하고,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와도 연계해 만 9세 이상 가족돌봄청(소)년의 현황을 파악(2025년~)하는 등 관련 실태조사도 정기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를 교육자료로 전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정까지 통과한 상황에서 AIDT를 개발한 발행사‧출판사들은 해당 입법이 헌법이 금지한 소급 입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헌법 소원까지 제기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시·도교육청마다 도입 여부 입장까지 갈리면서 당장 검정 교과서를 선정해야 하는 일선 학교는 어찌해야 할 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에 한국교총은 “여야의 정치 대결과 합의 없는 입법 추진으로 지리한 법적 분쟁과 공방이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혈세, 행정력 낭비 또한 예견된다”며 “학교 현장 혼란 최소화, AIDT 대한 불신과 부작용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문제가 예상되는 만큼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 앞서 정부와 함께 대안을 갖고 진정성 있는 논의와 조속한 해법 마련에 나서 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2025년에는 검정 통과한 AIDT를 당초 계획대로 도입하지 말고, 시도교육청과 학교가 자율적으로 사용해 효과‧부작용 검증 후 정책 보완‧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미 AIDT 개발 및 교과서 검정, 교사 연수, 인프라 구축, 각 학교 별 교과서 채택 등 적용을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교육자료로 전환된다면 국가 정책 신뢰 상실은 물론 막대한 매몰 비용 발생, 학교 현장 혼란 등이 따른다. 하지만 AIDT 교과서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신뢰‧공감 부족, 교사 연수 내용 미흡, 디지털 기기 관리 등 교사 업무 부담, 개인정보 노출 보안 문제 등 준비와 보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와 관련해 교총은 교사의 기기 관리 및 행정업무 부담 완전 해소,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 교실 환경 구축, 도입 속도 조절, 활용 여부 관련 교사 자율권 보장 등 현장 안착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교총은 “검증 이후 AIDT의 도입 범위, 수준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검증 과정에는 교사, 학생, 학부모, 전문가가 참여해 다양한 교육적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분석해야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교육 현장의 정책 수용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총이 젊은 교사 이탈 방지와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저연차 교사 정근수당 인상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인사혁신처는 내년부터 정근수당 기준 연수를 근무 연수 1년 미만 10%를 신설하고, 2년 미만을 5%에서 10%로, 3년 미만을 10%에서 20%로, 4년 미만의 경우 15%에서 20%로 인상하는 2025년 공무원 보수규정 및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에 교총은 24일 입장을 내고 “젊은 교사들이 떠나가는 교단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며 “교총이 요구한 정근수당 인상을 전격 수용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최근 3년간 물가 상승률 대비 교원 보수 인상률이 삭감 수준(-7.2%)임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보수 이상률이 3%에 그쳐 젊은 교사들이 또 한번 좌절했어야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젊은 교사들이 떠나가는 교단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며 “교총이 요구한 정근수당 인상을 전격 수용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총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교원 처우를 회복하는데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교원 보수 10% 이상 인상, 24년째 동결된 교직수당 인상 등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서줄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실제로 교총이 지난 8월 3일부터 27일까지 20~30대 교사 4,603명을 대상으로 ‘월급만족도 설문조사’를 한 결과, 86%가 ‘월급 때문에 이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교총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 국회,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교원 보수 10% 이상 인상 ▲저연차 교사 정근수당 획기적 인상 ▲교직수당 40만원으로 인상 ▲교감(원감) 중요직무급 수당 신설 ▲교원연구비 7만5천원으로 균등 상향 지급 ▲올해 인상에서 제외됐던 보건‧영양‧상담‧사서교사 수당 인상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지난 3월과 7월, 10월 교원 제수당 인상 요구서를 교육부, 인사혁신처 등에 전달한 바 있으며, 9월에는 세종교총, 교총 2030청년위원회, 보건교사회, 전국영양교사회, 한국사서교사협의회와 세종 인사혁신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제수당 인상 요구서를 전달했다. 아울러 10월부터 교원 처우 개선(기본급 10% 인상, 교직수당 및 제수당 인상) 촉구 등 7개 과제를 내걸고 전국 교원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대통령실 등에 요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경기도 연천에는 망국의 한이 서려있는 장소가 있다. 경순왕릉과 기황후릉 터다. 경순왕이 통일신라의 마지막왕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의 릉이 경주가 아닌 이곳 연천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경순왕릉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가 또한 어느 순간 그 역사를 다하게 된다. 삼국시대의 마지막 패자였던 통일신라 역시 예외는 될 수 없다. 천년의 영광을 누렸던 통일신라는 경순왕때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짧은 오르막길을 지나면 외롭게 자리한 경순왕릉을 만난다. 오르막길 주변에는 철책선이 2m이상 높이로 쳐져 있으며 지뢰가 있다는 표식이 보인다. 경순왕릉 주변의 숲은 군사지역이라 출입이 통제되며 바로 앞이 민통선이다. 삼엄한 경계가 느껴질 정도였다. 경순왕은 통일신라의 56대 임금이다. 신라의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경주시 밖에 위치해 있다. 왕릉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데 거기에도 사연이 있다. 현재의 왕릉은 1747년에 경순왕의 후손들이 왕릉 주변에서 묘지석을 발견하면서 새로 정비한 것이다. 재정비 당시 왕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조성한 것이 아니라 사대부 묘의 격식을 따라 꾸몄다. 경순왕의 시호는 '공손하게 따른(敬順)' 왕이라는 의미이다. 고려 태조 왕건보다 35년을 더 살았던 경순왕은 서기 978년 개경에서 죽었다. 신라의 왕인 경순왕릉이 왜 연천 지역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전해온다. 경순왕이 죽자 패망한 국가의 왕이 겪었을 굴종의 삶을 본 신라의 유민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들은 곡을 하며 남쪽으로 가는 경순왕의 상여를 따라붙었다. 장례 행렬이 임진강을 건너기 위해 바로 이곳 연천의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그 인원수는 수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고려 왕족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장례 행렬 인원이 혹시 폭동이라도 일으킬까 두려웠고 이를 막기 위해 ‘왕족의 시신은 도성 밖 100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정을 내세워 이곳 연천에서 멈추게 하였다고 전해온다. 숭의전지(崇義殿址) 숭의전지는 조선시대에 전 왕조인 고려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원래는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 절이 있었던 곳으로 1397년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었던 것을 1971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길가의 주차장에 차를 대면 바로 어수정(御水井)이라는 약수터가 보인다. 임금(태조 왕건)이 와서 물을 먹었다는 의미의 어수정이다. 잠시 왕이 된 듯한 착각을 하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였다. 어수정에서 약 100m정도 길을 따라 올라가며 임진강 가에 조용히 자리한 숭의전을 볼 수 있다. 숭의전 바로 앞 임진강변 벼랑 바로 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는 20m, 둘레는 4.7m이다. 1452년(문종 2년)에 고려 왕씨 후손이 심었다고 전한다. 전(傳) 기황후릉 터 2013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기황후’라는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 기황후에 대하여는 특별한 관심이 없는 터라 눈여겨 시청하지는 않았다. 이 기황후의 능 터가 연천에 있다. 하지만 전(傳), 즉 전해온다는 의미의 한자가 붙은 것처럼 이 곳이 기황후 릉이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는 않다. 기황후는 행주 기(奇) 씨이며 고려 출신 공녀로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혜종의 황후이다. 기황후는 원이라는 대제국을 무려 37년간 지배하였다. 기황후는 출생과 사망 시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 출신의 환관 고용보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었다가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기록만이 남아있다. 혜종은 기씨를 총애하여 황후로 삼고자 하였으니 조정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후에 황태자를 낳자 제 2황후로 책봉하였다. 기황후는 혜종의 총애를 바탕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아들을 황태자에 오르게 하고 군사권도 장악하여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처럼 기황후가 원나라에서 권세를 휘두르게 되자 고려에 남아있던 기 씨의 친족들도 공민왕에 의해 모두 숙청되었다. 이에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고려를 공격하였으나 최영 장군에게 대패한다. 이후 원나라에서는 기황후를 위시한 황태자파와 반대파 사이에 정쟁이 벌어지고 결국 반대파를 숙청했다.황후가 죽자 기황후가 정후가 되었으나 황태자의 황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으로 원의 국력은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기황후릉 터를 가기 위해서는 연천군 상리를 가야 한다. 상리 입구에는 모처럼 보게 되는 장승이 있었다. 어릴 적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장승의 모습조차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 되어 버렸다. 기황후릉 터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하고 좁은 차도를 아슬아슬하게 거쳐야 한다. 팻말 앞 차 한 대가 간신히 멈출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차를 돌려서 나오기 힘들 정도이다. 팻말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기황후릉 터가 보인다. 사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야트막한 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전 기황후릉 터는 2013년 11월 25일 연천향토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부터 『동국여지지』 등의 기록에 ‘기황후는 죽기 전 고국에서 장례를 치르기를 원하여 이곳 연천현에 장사하였다’라고 전한다. 현재, 릉의 형태는 알 수 없다. 다만, 기록과 더불어 이곳 능선 아래쪽에 기와 파편이 다수 보이고 릉의 석물로 보이는 석수 2점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곳 능선에 남향하여 릉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이곳에서 발견된 석수(석양)들은 현재 연천군 문화원 정원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연천 읍내에 있는 연천군 문화원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앞마당에 석양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연천군 문화원에 전시해 둔 것으로 보아 전 기황후 릉 터는 결정적인 스모킹 건은 없지만 어느 정도 그 신빙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 호로고루 성에서 37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고랑포구가 나온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은 1930년대 고랑포구를 생생하게 재연하고 있다. 내부 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으며 연천 지역의 여러 명소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 학생 등 단체관람 시 교육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은 경순왕릉과도 인접해 있어 호로고루성, 경순왕릉, 고랑포구 역사공원을 함께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임진강 황포돛배 나루터가 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출항하는데 40분간 운행하며 임진강 주변의 주상절리 등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민물인데도 배 위에 있는 나에게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신기했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이는 것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말의 동상이다. 레클리스(ReckIess)라는 군마라고 한다. 여기서 레클리스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라는 뜻이다. 레클리스 군마는 계급이 하사로 미군에 공식적으로 등재된 한국전쟁에서 탄약 등 물자와 부상병을 실어 나르는 등의 활약을 펼쳐 무공훈장까지 받았다고 한다. 레클리스에 대하여 호기심이 생겨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레클리스의 원래 이름은 ‘아침 해’였다. 연천군은 특히 산악이 많아 차량으로 무반동 소총과 탄약 보급이 어려웠다. 군인 등 인력만으로는 효율성이 많이 떨어졌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침 해'는 첫 번째 임무에 투입된다. 당시 레클리스는 수십 kg의 탄약을 짊어지고 오솔길과 45도 각도의 급경사 산비탈을 해병대원들과 함께 386번이나 왕복했다. 왼쪽 눈과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새벽부터 황혼까지 아군의 탄약 공급을 도왔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고즈넉하다. 인적이 뜸한 길목을 굽이굽이 지나치면 연천 경순왕릉으로 들어서는 초입의 오른쪽에 공원이 있다. 공원이 위치한 장남면 일대는 예전에 황해도 땅이었다고 한다. 분단 이후 파주에 편입됐다가 다시 연천군에 속하는 질곡의 과정을 거쳤다. 공원 뒤편 야산을 넘으면 남방한계선과 이어지는 삼엄한 지역이다. 철조망에 ‘지뢰’ ‘출입 금지’ 이정표가 빼곡하다. 사진은 보안상 게재하지 못한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 나오자마자 1.21 무장공비 침투로 간판이 보였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그리고 영화로 접했던 사건이라 관심이 있어 들어가 보려고 하였으나 민통선 구역이라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관련 홈페이지에는 신분증을 제시하면 입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특수부대가 창설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다. 고랑포에서 서남쪽으로 3.5km지점에 위치한 무장공비 침투로는 1968년 1월 17일 23시 북한군 제124군 소속 김신조 외 30명이 남방한계선을 넘어 침투한 곳이다. 속칭 ‘김신조 루트’라 일컫는다. 얼어붙은 고랑포를 건너 파평산, 파주 법원리의 삼봉산을 지나 서울 세검정으로 침투한 사건인데 당시 남북한의 적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남북 관계는 어떠한 국면으로 전개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현지 문화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임진강 뱃길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무렵이라고 한다. 임진강 뱃길의 종점이었던 고랑포는 경기 북부 지역 포구의 중심이었고 고랑포의 상업적 위상은 개항기를 거치면서 보다 커졌다고 한다.
경기도 연천군(漣川郡)은 서남쪽으로 파주시, 북쪽으로는 철원, 동쪽으로는 포천시, 남쪽으로는 동두천시와 맞닿아 있다. 위도상으로 북한의 개성보다 더 북쪽에 위치해 있다. 한탄강이 전곡읍을 가로 질러 흐르며 북한에서 내려오는 임진강과 도감포에서 합수한다. 연천군의 면적은 676.31㎢로 경기도에서는 5번 째로 크며 서울의 약 1.2배에 해당한다. 2개의 읍과 8개의 면, 98개의 리로 이루어져 있다. 2023년 7월 기준으로 연천군의 인구는 약 4만1000명이다. 경기도 전체 시, 군 가운데 인구 수가 가장 적다. 그리고 2017년에서 2021년 사이를 기준으로 연천군의 인구 감소폭은 약 6%로 나타났다. 연천군은 지리적으로도 산지가 많은 경기 이북의 지형적 특성상 인구수가 적고 한적하다. 무더운 여름 휴가철이나 되어야 한탄강 유원지, 동막골 유원지 등에 그나마 사람들이 잠시 놀러 온다. 억측일지 모르겠지만 발전되는 도시라기보다 더디거나 퇴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DMZ 지역은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지역이다. 참으로 무더웠던 지난 여름, 오랜 벗과 함께 한 연천군(漣川郡)의 DMZ 지역을 방문한 후의 여정과 감상을 그려보았다. 경기도 연천군의 명소에 대한 소개를 곁들여 본다. 태풍전망대(연천군 중면 횡산리) 아침부터 무더운 날씨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은 온 사물을 녹여버릴 듯 무서운 기세로 며칠 연이어 기승을 부린다. 70여 년 전 연천의 날씨도 이렇게 무더웠을까? 전쟁은 하루아침에 평화로운 모든 일상을 앗아가 버린다. 6.25 전쟁 또한 예외는 아니다. 비록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지만 비슷한 상상은 해볼 수 있다. 벌써 휴전이 된 지 70년, 정전이 아닌 휴전,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6.25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어린 시절 주로 전방 지대에서 생활한 터라 전쟁, 군대, 안보라는 단어가 낯설지는 않다. 내가 살았던 터전이 대부분 부대 인근, 군사 도시이기 때문이다. 연천도 그렇다. 난 아버지가 군인이셨기 때문에 부대 내 관사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군부대의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항상 접하면서 살았었다. 부대 연병장에서 공놀이를 하였고 일요일이나 방학 때면 군 장병 아저씨들과 함께 놀곤 하였다.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함께 한 것이다. 군부대의 모습이 나에겐 너무나 익숙했다. DMZ는 분단의 모습을 대변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연천군은 6.25 전쟁 당시 수많은 격전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3번 국도는 서울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따라서 연천지역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많은 전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연천지역 곳곳에는 6.25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하여 전사했던 장병들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태풍전망대를 가기 위해서는 군 초소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신원확인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DMZ 남방한계선을 따라 위치한다. 우리나라가 정전이 아닌 휴전 상황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그리고 무섭다. 임진강평화습지원/연강갤러리(연천군 중면 횡산리 224/ 중면 군중로 885) ‘연강(漣江)’이란 연천군 지역을 흐르는 임진강의 별칭이다. 임진강 평화습지원은 두루미 먹이인 율무를 재배하는 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 임진강평화습지원은 태풍전망대와 마찬가지로 민통선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군(軍) 검문소에서 신분 확인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한 번 확인이 되면 태풍전망대와 함께 모두 관람이 가능하다. 횡산리는 민간인 통제 구역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임진강평화습지원은 7개의 테마로 꾸며져 있다. 각각의 테마로 이어지는 통로마다 나무데크가 있어 이동이 편하다. 곳곳에는 임진강 유역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식물들이 많으며 평화로운 임진강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하다.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잘 보존되어 있다. 연강갤러리는 원래 안보전시관이었다. 2016년 안보전시관 건물을 갤러리로 변경하고, 민통선 내 최초의 예술공간으로 연천의 생태와 문화 예술이 만나는 복합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DMZ와 마주한 최북단인 이곳은 긴장이 몰려오지만 실제 현장에 있다 보면 더 없이 평화롭다. 조용한 시골 분위기와 임진강의 수려한 풍광, 예술적 감성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전쟁과 예술, 묘한 어울림이다. 군남홍수조절지 두루미테마파크(연천군 군남면 선곡리 614-5) 두루미는 '학(鶴)'이라고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두루미목 두루미과 조류의 총칭이며 좁은 의미로는 그냥 두루미를 의미한다. 옛날부터 몸통과 꼬리의 흰 색깔과 날개와 목 부분의 검은색, 그리고 머리 부분의 붉은 부분의 조화가 절묘하고, 수명이 굉장히 길어 십장생 중 하나로 꼽혔으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좋아했었다. 민간 신앙에서는 신령한 새로서 ‘신선이 타고 날아다니는 새’로 흔히 알려져 있다. 연천군에서는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가 주로 확인된다. 매년 연천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번식을 위해 러시아, 중국 등지로 이동한다. 군남홍수조절지로 향하는 임진강가 도로에는 임진강 두루미 생태 관찰지가 있다. 꽤 넒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임진강의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는 나무 데크가 있다. 탁 트인 시야로 임진강을 볼 수 있다. 아마 겨울이면 이곳에서 수많은 두루미의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군남홍수조절지와 두루미 테마파크는 함께 붙여서 명명한다. 같은 주차장을 사용하며 바로 옆에 함께 자리한다. 휴전선에서 불과 6km 떨어진 접경 지역에 위치한 군남홍수조절지는 댐 유역의 97%가 북한 땅으로, 임진강 본류의 홍수 조절 능력 확보 및 북측 황강댐에 의한 불규칙한 물 흐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겨울 철새인 두루미(천연기념물), 재두루미(천연기념물), 흑두루미(천연기념물)가 매년 겨울 최대 200마리 이상 월동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남북한 접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과 임진강 자연환경이 만들어 낸 특수성으로 인해 수달, 고라니, 두루미, 어름치 등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 생태지역이다(대한민국 구석구석). 군남홍수조절지는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면 이동 없이 바로 관측이 가능하다. 우측 전망대로 잠시 걸어 올라가면 군남홍수조절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마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수량이 많다. 거대한 모습에 잠시 놀랐다. 댐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았던 경험이 없어서일까? 모처럼 본 거대한 건축물이 웅장해 보였다. 길이가 658미터, 높이 26미터로 2012년부터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만든 DMZ 평화의 길(https://www.durunubi.kr) 중 11코스 ~ 14코스가 경기도 연천군 내의 코스이다. 해당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예약, 참가비 입금, 방문QR을 받은 후 해당 코스를 방문하면 된다. 이번 겨울방학을 통해 학생들의 방문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4, 5, 6세기는 삼국의 나라들이 제각기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이다. 삼국의 전성기는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최대 영토를 획득한 시대를 말한다. 백제는 375년 근초고왕, 고구려는 476년 장수왕, 신라는 576년 진흥왕 시절이다. 연천 지역의 은대리성, 호로고루성, 당포성은 모두 고구려의 남하정책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후 임진강 유역으로 후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한탄강변에 있었던 성들은 신라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후 전략적 가치의 상실로 인하여 폐성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기도 연천군 지역에는 옛 삼국시대 성터가 여러 개 남아 있다. 한강유역과 더불어 이 지역은 옛부터 한반도의 군사적, 지리적 요충지이다. 한국전쟁 뿐 아니라 옛 삼국시대에도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많은 피를 흘렸던 곳이다. 한탄강와 임진강을 기점으로 적을 방어하기 용이한 지역에성터가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은대리성, 당포성, 호로고루 성이다. 일시적으로 백제, 신라에 내어 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고구려 소유의 성으로 추정된다. 연천군에 이러한 삼국시대의 성터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지 않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또, 이 지역에 자주 다녔던 필자조차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갈색 표지판(문화재 임을 알리는 표지판 색)을 조금만 유심히 쳐다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경기도 연천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은대리성은 전곡읍 내에 있으며 당포성과 호로고루성은 전곡읍에서 약 30분 거리 이내에 위치해 있다. 전곡읍내에 사는 주민조차 은대리성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은대리성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연천군보건의료원 주차장을 지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즉, 도로밖으로 노출이 되지 않고 보건의료원 내부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기에 그 접근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은대리성(차탄천)/물거미 서식지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577 은대리성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2006년 1월 2일 사적 469호로 지정되었다. 한탄강 북쪽 기슭, 장진천의 합류 지점에 형성된 삼각형의 하안단구 위에 축조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성곽의 전체 길이는 약 1005m이고 동서 400m, 남북 130m이다. 성 내부의 면적은 약 7000평 정도인데 일부는 경작지로 이용되고 나머지 부분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은대리성을 가기 위해서는 전곡읍 내 연천군 보건의료원 내부를 지나쳐야 한다. 그곳에 주차하면 바로 은대리성을 마주할 수 있다. 한탄강과 차탄천이 만나는 삼각형 지형의 언덕 위에 옛 고구려의 작은 성인 은대리성이 자리한다. 은대리성은 1995년 연천군 문화원에서 발간한 ‘향토사료집’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과 토지박물관 등에서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였고 2003년 단국대 매장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정식으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성의 평면은 삼각형으로 3면이 막다른 벼랑이다. 동쪽만 평지로 이어져 수비하기에는 좋은 요새지만 만약 성이 적군에게 점령당한다면 고립되어 싸우다 죽던지, 아니면 벼랑에 몸을 던져야 한다. 무조건 성을 사수하고 만약 성이 함락되면 성과 함께 최후를 맞으라는 왕이 주는 무언의 명령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현재 은대리성은 성벽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흡사 토성과도 같은 모습이다. 차탄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지점이 굽어 보이는 높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파주, 연천 방면에서 오는 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적들이 어느 방향으로 침범을 하던 쉽게 관측이 가능하고 방어에 용이하다. 5, 6세기경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병사들은 이 절벽을 끝없이 오르고 또 막아내길 반복했을 것이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새하얗게 성을 뒤덮은 듯한 개망초는 그 당시 홀로 죽어간 병사들의 영혼이라도 깃든 것일까? 수많은 나비들이 그들의 영혼을 달래듯 쉴 틈 없이 날아다닌다. 가끔 들려오는 구슬픈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차탄천의 물소리만이 정적을 깨곤 한다. 띄엄띄엄 서 있는 소나무들의 모습이 외롭게만 느껴진다. 전쟁의 상흔은 평화로운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의 줄기는 아픈 상처를 피하여 나아가듯 흐르고 있다. 물거미 서식지는 세계적 희귀종인 물거미(argyroneta aquatica)의 국내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제412호이다. 전곡읍 은대리의 차탄천변 습지 일대에 위치한다. 주변은 현재 대부분이 논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외의 지역은 군사 훈련장이 있다. 은대리성과 함께 연천군 은대리에 속해 있다. 은대리성과 매우 가깝다. 물거미는 공기 방울을 만들어 물속에서 거의 모든 생애를 보내는 독특한 생활사를 가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동물이다. 물거미는 전 세계에 1속 1종만이 존재한다. 북반구 유럽에 주로 분포하고, 아시아권에서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 등지에 분포하는데, 국내에서는 1950년대 중반에 보고된 이후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5년 전곡읍 은대리 일대의 군 주둔 지역에서 물거미의 서식이 확인되었다. 2007년 개체 수 조사에 의하면 이 서식지 내에 약 4만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연천문화원). 당포성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778 당포성은 임진강 하류에서 중상류로 올라가는 수상 교통의 요지인 당개나루(당포나루)에 자리하고 있다. 육상 교통상으로도 양주 일대에서 최단 거리로 임진강을 건너 북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당포성은 2006년 1월 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면적은 35,174㎡이다. 당포나루로 흘러 들어오는 당개 샛강과 임진강 본류 사이에 형성된 높이 약 13m의 삼각형 절벽 위 대지의 동쪽 입구를 가로막아 쌓은 성곽이다. 1994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고 2003년 이후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성의 구조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 동쪽 성벽은 길이가 50m, 잔존높이가 약 6m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한다. 당포성의 배후에 있는 마전현(현재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 인근)은 개성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양주분지 일대에서 최단거리로 북상하는 적을 방어하는 데에 꼭 있어야 할 성이었다. 또한 북진 시에도 강의 북안에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신라의 점령기에도 꾸준히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에서는 대부분 신라계인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석축이 있는 부분의 퇴적토와 성돌 사이에서 삼국시대 기와 조각을 포함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와 조각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성 내부에서는 고구려 토기조각과 고구려 기와 조각들이 다수 출토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당포성은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오늘날 연천 9경 중의 하나로도 지정되어 있다. ‘당포성 별빛 축제’라는 이름으로 2022년부터 매년 9~10월에 당포성에서는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별’이라는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당포성 또한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삼국의 치열했던 전투의 장소이다. 한탄강이 굽어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삼면에서 다가오는 적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방어할 수도 있다. 성의 서쪽은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천애의 절벽이다. 적들은 절대 이곳으로 오를 수 없지만 자칫 성을 점령당했을 때에는 여느 다른 성들과 마찬가지로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당포성을 본 느낌으로는 당포성이 군사적 요충지임에는 동의하지만 적으로부터 성을 지키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소라고는 말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침입하는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전열을 정비할 수 있고 보급도 가능하나 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직 등 뒤에 절벽을 두고 적들과 싸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포성은 삼화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캠핑장도 몇 군데 자리하고 있다. 동쪽 성벽은 아직 돌을 쌓은 모습이 남아 있지만 그 외 부분은 흔적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앞서 말했듯이 당포성은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포성 입구에는 별과 달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명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호로고루 성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8 호로고루 성은 최근 4~5년 전 무렵부터 연천군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고 현지 주민에게 들었다. 9월이면 호로고루 성 앞 벌판에 ‘해바라기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유튜버나 사진작가들은 호로고루 성 주변의 아름다운 일몰을 화면에 담으려 수없이 모여든다고 한다. 호로고루성 주변에는 임시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당포성이나 은대리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은 벌판과 탁 트인 시야가 인상적이었다.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는 코스모스는 세련된 댄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서로 각자가 움직이는 듯하지만 멀리서 보면 비슷한 모습으로 함께 춤을 춘다. 조화롭다. 이처럼, 약속되고 계획된 시간보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삶의 시간들이 훨씬 여유롭다. 길쭉하게 뻗어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서 있는 호로고루성의 해바라기는 연천의 코스모스와는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통일바라기’라 명명한 호로고루의 해바라기는 가을 저녁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과 어울리며 한 폭의 진한 톤의 유화를 만들어낸다. 그동안 이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건 말건 상관없이 자신들 나름대로 아름다운 장관을 매일 만들어낼 뿐이다. 호로고루 성 초입에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릉비 모형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 중국에 가서 본 실제 광개토대왕릉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보낸 광개토대왕의 기상과 호기로운 모습이 연상되었다. 호로고루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 부근의 지형이 표주박, 조롱박과 같이 생겼다"하여 호로고루라고 불린다는 설과 "고을"을 뜻하는 ''홀(호로)''와 ''성''을 뜻하는''구루''가 합쳐져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호로고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효종 7년(1656)에 편찬된 『동국여지도』이며 이 책에는 호로고루가 삼국시대의 유적임이 명시되어 있다. 1991년부터 2003년 사이 호로고루 성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성의 형태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임진강에 접한 현무암 천연절벽의 수직 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재었을 때 약 400여m이고, 그중 남벽은 161.9m, 북벽은 146m이며, 동벽은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이 93m이고 성내부는 전체적으로 해발 22m, 성벽 최정상부는 30m 정도이다. 성벽 중 가장 높은 동벽 정상부와 서쪽 끝부분에는 장대(將臺)가 설치되었으며, 성으로 진입하는 문지는 동벽 남쪽을 제외하고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위키백과). 앞서 밝혔듯이 은대리성, 당포성, 호로고루 성은 모두 30분~ 4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전곡 읍내에서 은대리성과 물거미 서식지 등을 돌아본 후 당포성을 거쳐 호로고루 성으로 이동할 것을 추천한다. 호로구루성 인근에는 경순왕릉과 고랑포구역사공원이 있다. 또 그 인근에는 황포돛배나루터가 있어 돛배를 타고 임진적벽을 관람할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조금 일찍 서둘러 나가면,하루동안에 모두 관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이 빠듯하다면 아예 당포성과 호로고루 성 주변만 여유있게 관광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재인폭포는 연천군 전곡읍에서 연천방향으로 약 11km정도에 자리하고 있다. 통현리 고인돌을 끼고 우회전 하면 재인폭포 방면이다. 사실30~40년 전만해도 연천에 볼거리라고는 재인폭포가 유일했다고도 말할 만큼이 재인폭포는 연천군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기억의 재인폭포는 주변에 아무런 시설물이 없이 자연 그대로의 재인폭포였다. 재인폭포 방면으로 가다보면 중간쯤에 '종자와 시인 박물관' 표지판이 보인다. (http://www.fspmlove.co.kr) '종자와 시인 박물관'은 '농부는 흙에 씨를 뿌리고 시인은 사람의 가슴에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기치로 198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희귀본 씨앗 및 다양한 종자 표본들과 고서, 사전 그리고 옛날 교과서 및 전국 문인들의 저서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 전시하고 심층적으로 연구하여학술 및 교육자료로 활용, 제공하고 나아가 다양한 교육, 체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운영하여 생활 문화예술 발전과 활성화에 공헌하고자 한다'라고 홈페이지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박물관도 2개의 파트로 구분되어져 있는데 한쪽은 다양한 씨앗을 전시했고 다른 한쪽은 옛날 서적, 레코드판, 타자기 등 문인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1990년 중반, 대학을 졸업한 해의 봄, 발령을 앞두고 홀가분한 마음과 허전함을 함께 안은 채 여행을 떠났다. 무작정 떠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짐이 반은 접힌다. 펼치면 새로운 인생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혼자의 여행은 나와의 끊임없는 ‘대화의 시간’이다. 난 나에게 계속 물었다. 옳게 살았는지, 또는 열심히 살았는지, 대학을 졸업 후 너는 무엇을 목표로 살 것인지 등,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묻고 스스로 대답하며 걸었다. 특히 이곳(전곡)에서는 그런 물음과 대답이 훨씬 편하고 담담하게 이루어진다. 3월, 촉촉이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길가에 핀 들꽃과 삶에 대하여 차분히 대화를 나누었다. 전곡을 떠난 지 십 년이 훌쩍 지나서야 다시 만난 동창들과 읍내에서 맥주 한잔을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은 술 한잔과 더불어 이내 사라졌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가 함께 놀고 있었다. 삶에 조금은 지쳐 있을 때였다. 그리웠던 옛 친구들과의 만남은 신선한 에너지를 준다. 허름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재인폭포를 가려고 길을 나섰다. 전곡에서 재인폭포까지는 걸어가기에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약 11km). 하지만 난 여행에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당시부터 선호했던 방법이다. 그냥 걸었다. 필자는 지금도 어지간한 곳은 걸어서 여행한다. 재인폭포는 전곡에서 적당히 먼 곳에 있어 마음먹고 걷기에는 딱 좋은 곳이다. 사실 재인폭포 자체를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봄의 향기도 느낄 심산이었다. 때마침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적당히 내리는 봄비는 마른 마음을 적셔 부드럽게 해 준다. 그리고 뾰족했던 마음속의 무언가를 무디고 뭉툭하게 만들어 준다. 한참을 걸었을 때였다. 뒤에서 승용차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당시만 해도 승용차는 흔하지 않았다. 친구 W였다. 어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이다. W가 차를 끌고 나를 찾아 따라온 것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 앞의 자전거 수리점에 갔더니 아침에 내가 자전거를 빌리지 못하고 그냥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재인폭포에 갈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W의 차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인폭포로 향하였다. 당시 재인폭포는 지금처럼 인공 구조물이 전혀 없었다. 나무 데크(deck)는 고사하고 계단 몇 개만 덩그러니 있어서, 등산하듯 재인폭포 앞으로 힘겹게 다가가야 했다. W와 초등학교 이후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군대 이야기, 대학 이야기, 여자친구 이야기 등 평범한 젊은이들이 그 나이에 겪었을 여러 이야기를 재인폭포 앞에서 신나게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재인폭포는 이런 추억이 스며있는 곳이다. ‘슬픈 광대의 사랑 노래’라는 전설을 담고 청록색에 가까운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광대가 한 가닥 줄에 의지하여 자신을 보여주듯, 살기 위한 몸부림을 포기한 듯 폭포 저 아래로 푸른 물을 끝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현재 재인폭포에는 관광객을 위한 많은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와 출렁다리, 그리고 나무 데크(deck)로 된 길과 주차장, 편의점 등이 재인폭포를 둘러싸고 있다. 사람들이 편리하게 관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왠지 재인폭포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행여 그렇지 못할 것만 같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재인폭포 입구의 도로에는 옛 표지석 위로 현대식 표지판이 올려져 있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가 1986년에 창립된 것으로 추정해 보면, 옛 표지석은 1980년 후반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조금만 이동하면 바로 재인폭포를 볼 수 있다. 전망대와 출렁다리에서 내려다보면 재인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비해 변치 않은 것은 재인폭포밖에 없다. 재인폭포 외의 주변 경관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재인폭포 주변에는 장마로 흙탕물이 된 한탄강이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 저 멀리 한탄강댐이 웅장하게 한탄강 물을 머금고 있다. 거대한 절벽과 그 절벽 사이로 웅장한 소리와 함께 무서울 정도로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한탄강 물이 유유히 흐른다. 한탄강은 언제 보아도 슬픈 느낌이다. 전에 가보았던 남쪽 지방의 강들은 밝은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유독 한탄강은 무섭고 슬픈 느낌이다. 큰 절벽과 거대하고 검은색을 띤 바위들 사이로 흘러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재인폭포는 한탄강 주변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재인폭포는 북쪽에 있는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하천이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柱狀節理) 절벽으로 쏟아지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또한, 재인폭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잉어목 모래무지과의 민물고기)’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여러해살이풀의 하나)’ 등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폭포의 이름과 관련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함께 전해오고 있다. 첫 번째 전설은 문헌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옛날에 한 재인(才人)이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 사람과 이 폭포 아래에서 즐겁게 놀던 중에 재인이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하자, 마을 사람은 재인의 재주를 믿지 못하고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 재인이 줄을 타고 반쯤 지나가자 다급해진 마을 사람은 줄을 끊어버려 재인은 폭포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한다. 두 번째 설화를 살펴보면, 옛날 재인폭포 인근 마을에 금실(琴瑟) 좋기로 소문난 광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줄을 타는 재인이었던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광대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의 계략이었다. 줄을 타던 남편은 원님이 줄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그만 숨을 거두었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하게 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은 ‘코문이’가 산 마을이라 하여 ‘코문리’라 부르게 되었고, 현재 재인폭포가 있는 마을인 ‘고문리(古文里)’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재인폭포는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광대 재인과 관련된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종자와 시인 박물관'과 '재인폭포'를 함께 여행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전곡-연천간 큰 도로로 다시 나와서 우회전, 연천방향으로 5분 정도만 가면 동막골 유원지가 나오고, 다시 조금만 더 가면 연천읍에 이른다. 연천군 통현리 인근에는 지석묘(고인돌)가 있으며 고인돌공원도 인접해 위치한다. 가까운 거리 안에 관람할 명소들이 널려있다. 이어서 추천 명소를 계속 소개할 예정이다. 연천군에는 생각보다 많은 관광명소들이 있다. 인근의 강원도 철원까지 포함해서 2~3일 정도 일정으로 여행을 할 것을 권장한다. 사진: choon
경북 비안초(교장 이임남)가 교육부가 주최한 2024년 행복한 함께학교 우수사례 공모에서 전국 30개 우수학교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비안초는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며 따뜻한 교육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정받았다. 함께학교는 학생, 교원, 학부모 등 모든 국민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교육정책을 논의하고, 현장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장으로, 이번 공모는 플랫폼에 접수된 미담 사례를 바탕으로 내·외부 전문가들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진행되었다. 비안초는 ‘모두가 행복한 따뜻한 비안초등학교’라는 제목으로 제출된 사례를 통해 학부모, 학생, 교직원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따뜻한 학교 문화를 소개했다. 농촌 지역이라는 특성을 살려 학부모들이 학교 설명회와 체험 수업, ‘모두의 그래피티’ 행사 등 다양한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학생들은 자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교육장기 육상대회와 탄소중립 숏폼 공모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교직원들은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협력하며 모두가 행복한 학교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임남 교장은 "비안초가 함께학교 우수사례로 선정된 것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모두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결과이며, 학교의 따뜻한 문화와 상호 존중의 전통이 인정받아 매우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학생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비안초의 이번 수상은 농촌 지역 학교에서 교육공동체가 협력하여 만들어낸 성공적인 사례로,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따뜻하고 창의적인 교육 문화를 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은 땅속에 지뢰를 묻어놓고 무서워 벌벌 떨며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은 전혀 두려움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뢰밭을 점령해 버렸다. 「소이산」을 두고 누군가가 했던 말이다.소이산(所伊山)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四要里)에 위치하는 해발 362m의 낮은 산이다. 노동당사(勞動黨舍) 바로 앞에 있다. 철원(鐵原)은 우리말로 ‘쇠둘레’라 하며 해방 당시부터 6.25전쟁 때까지 북한 땅이었다. 접경지대의 주민들이 늘 그러하듯이 자신들의 이념에 대하여 동조와 선택을 강요받았고 그 결과물로 수많은 생명이 죄없이 죽어갔다. 수많은 희생을 대가로 지켜낸 슬픔의 땅, 바로 이곳 철원이며 그 중심에 소이산이 60여 년을 무덤덤하게 자리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야 오랜 금단(禁斷)의 시간을 풀고 우리에게 그 속살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소이산을 방문한 것은 겨울답지 않게 따스했던 1월의 어느 맑은 날이었다. 철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중에 연천 인근에 살고 있는 친구 P를 길잡이 삼아 방문하였다. 친구는 특전사 공수부대 출신이고 필자의 부친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이다. 지금은 국립서울현충원에 계시다. 나름 우리는 요즘 말로 국뽕(?)에 가득 차 있었다. 즉, 우리나라의 안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세대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철원의 흙 한 더미,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그냥 허투루 보일 리가 없다. 비장한 표정으로 철원과 소이산 인근을 야심 차게 둘러보게 되었다. 양주군이나 파주 인근에서 출발하는 경우 전곡읍-연천읍을 지나 대광리역, 신탄리역의 경원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3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차량의 통행이 적은 편이라 주말에도 막힘없이 이용할 수 있다. 백마고지역 부근에 오면 좌측에 정춘근 시인(詩人)의 시집(詩集) 제목인 「지뢰꽃 마을, 대마리」 의 배경이 된 철원읍 대마리(大馬里)가 보인다. 대마사거리에서 87번 국도를 이용, 우측으로 조금 더 가다 보면 제2땅굴과 철원평화전망대를 방문할 수 있는 표지판이 보인다. 물론 예약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월정리역과 함께 안보 관광 코스로 묶어서 이용할 수 있다. 노동당사는 해방 이후 이 지역을 관할하던 곳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이곳에서 고문과 학살을 당했던 장소이다. 국가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가 촬영되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라 커다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2024년 11월에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노동당사 앞의 ‘철원 역사문화공원’에는 옛 철원의 모습들이 세밀하게 재연되어 있다. 필자가 2008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곳 노동당사 앞은 자그마한 주차장만 있고 건물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지금은 시설물들이 여기저기 설치되어 노동당사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다른 건물 속에 그냥 묻혀있는 느낌이다. 그 당시 ‘철원 역사문화공원’이 있던 자리는 그냥 논밭이나 빈 벌판이었다. 지역 문화 유산에 대한 개발이 필요한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하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도록 개발하여 해당 문화유산을 최대한 알리며 지역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것인지, 아니면 보존에 더 신경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타협이 필요할 것 같다. 노동당사 인근 바닥에는 정춘근의 ‘6시에서 12시 사이’라는 시(詩)가 보였다. 한반도는 지금 몇 시인가? 남한의 모든 총과 대포는 12시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고 북한은 6시로 고정되어 있다. 철원 출신인 정춘근 시인(詩人)의 대표작은 ‘지뢰꽃’이라는 시(詩)였다. 인간이 서로에 대한 살상을 위해 만든 지뢰를 꽃으로 비유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슬픔이 느껴졌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중략) 정춘근, ‘지뢰꽃’ 中 –실천시집선 『지뢰꽃』 2023. 지뢰의 뇌관을 통해 이 소이산의 흙에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널찍한 담벼락이 아닌 가시철망에 꽃을 피운다고 말한다. 지뢰가 많은 것을 그냥 예쁜 꽃들이 핀 모습으로 비유한 줄만 알았는데 훨씬 더 큰 아픔과 비극을 표현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시시각각 이념의 선택이라는 카드를 집어야만 했던 그 당시 철원 주민의 삶은 어땠을까? 물론 선택의 결과는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담보로 했을 터이다. 공원의 가장 안쪽으로 가면 철원역이 있다. 그곳에서 소이산을 오르는 모노레일을 탈 수 있다. 날씨가 춥고 눈이 내려 걷기가 힘든 까닭에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정상으로 올랐다. 군데군데 새집을 인공적으로 지어 둔 것이 보였다. 나름 생태 보전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모노레일을 만들어 새들이 쉴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여겨졌다.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은 3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지뢰지대를 오른쪽에 두고 왼편으로 소이산 자락을 끼는 1.3km의 ‘지뢰꽃길’이 있다. 그 이름만큼이나 이념 또한 함께한다.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이념의 양 갈래가 지뢰와 꽃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두 개의 단어를 합성하여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 ‘지뢰꽃길’은 두 번째 길인 ‘생태숲길’로 이어지고 마지막 구간은 소이산 정상으로 향하는 ‘봉수대 오름길’이 자리하고 있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미군 막사를 지나 소이산 정상인 ‘평화마루공원’에 이른다. 주변에 벙커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제아무리 평화의 길이 어쩌고 한들 전쟁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다. 당장이라도 천지가 흔들리고 굉음이 난무하는 공중 포격이 시작될 듯하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소이산이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약 4년 동안 계속된 철원군의 노력으로 60년간 금단의 땅으로 머물렀던 소이산이 일반인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야트막한 산의 정상이지만 높은 산 못지않게 전망이 너무 좋다. 드넓은 철원평야가 나지막하게 자리해서인지 몰라도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다. 안내판에 의하면, 멀리 북녘의 오리산과 평강고원, 백마고지, 아이스크림 고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철의 삼각지대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누가 봐도 지리적 요충지이다. 우측의 남쪽으로 노동당사 건물과 철원 읍내가 보인다. 이렇게 소이산은 반백 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던 모습을 이제야 우리에게 힘겹게 건네주었다.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는 여느 지상에서는 보기 힘든 너른 대지의 모습이다. 볼록볼록 튀어나온 듯한 이름 모를 고지들은 전쟁의 상흔 때문인지 몰라도 검붉은색이 감도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없이 죽어간 넋들이 모여서 뭉쳐진 것처럼, 고지 위쪽에는 커다란 먹구름이 유유히 떠다닌다. 억겁의 시간 동안 용암이 빚은 대지, 그 위에 어려있는 슬픈 역사의 흔적들…… 안보 체험은 이미 나이 지긋한 노인들의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필자가 다녀본 연천, 철원의 관광지에는 학생들은 거의 없으며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실제로 안보 관광을 해야 할 사람은 젊고 어린 우리의 후손들이다. 필자의 초임 교사 시절이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철원, 연천 지역의 여러 전적지나 전망대, 땅굴 등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심심치 않게 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예, 목공, 역사 체험이나 아니면 아예 놀이공원 등으로 체험학습을 자주 가는 편이다. 안보 체험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이념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오히려 젊은 학부모들한테 시대에 어긋나는 행사나 한다고 민원 세례나 받을 것이다. 전쟁이 무엇인지, 왜 호국영령이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렇게 죽어갔는지 이곳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며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PC게임으로 총을 쏘는 아이들은 자칫 자신이 총에 맞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난다는 착각을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우리나라가 아직 분단된 국가이고 언제 또 전쟁이 발생할지 모르는 급박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3년, 아니 그 이상의 많은 시간 동안 전쟁과 대립의 역사를 견뎌왔고 그 대가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으며, 지금도 70년이 넘는 동안 여전히 분단 되어 있는 조국의 모습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어야 믿지 않을까? 하루 동안의 짧은 여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경기 이북 지역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져버린다. 철원을 자주 오는 편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그 아쉬움을 뒤로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철원도, 나 자신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일반적인 관광명소는 눈으로 보거나 일정 시간 그 속에서 머물면 어느 정도 이해되고 기억에도 남게 된다. 하지만 철원지역은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단순히 걸음을 옮기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을 우리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안겨주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철원의 중요한 안보 유적들이 한낱 인터넷 유튜브에서 소개하는 갈만한 곳, 맛집 정도만으로 그 가치가 훼손될지 우려된다. 출발할 때의 비장했던 마음가짐과 달리 오늘의 철원 여행도 근심과 염려만 한 줌 안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