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어려운 것이 많은 요즘, 희망을 섞어 이야기할 소식이 있다. 남과 북이 철도 연결 문제를 놓고 상의한다는 것이다. 남쪽에서 올라간 기차가 북쪽의 철길을 달린다는 것은 흥미를 떠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철도 연결 이슈는 이미 오래전에도 나온 적이 있다.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은 경의선 도라산역을 방문해 연설을 하고 침목에 공동 서명을 했다. 그 배경에는 군사분계선이 생기면서 끊긴 경의선 기찻길을 두 대통령이 방문하기 직전에 복원했던 일이 있다. 기차는 시범 운행으로 임진각을 지나 도라산역을 거쳐 북쪽의 판문점역까지 다녀왔다. 만약 남북관계가 이후로도 계속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다행히 다시 남북이 철도를 연결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기차가 지나간 도라산역의 이름이 갖는 내력이 흥미롭다. 역 근처에 있는 도라산(都羅山)은 신라(羅) 도읍지(都)를 돌아보는 산이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누가 여기까지 와서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을 돌아보았을까. 그 이야기를 찾아 왕릉으로 떠나보자. ‘도라산’의 배경이 된 연천 경
도시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는 역사다. 서울도 조선과 백제의 역사가 서린 고도(古都)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내세울만한 시간의 깊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부산이나 군산은 인근의 큰 고을인 동래와 옥구에 부속된 작은 항구에 불과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을 거치며 변화가 일어난 근대도시. 특히 오랜 시간 대외강경책이며 해금정책을 통해 교류가 없다가 개항을 맞아 변화한 항구도시의 변모는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그곳에서 근현대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피난민의 한, 땀 곳곳에 베인 도시 부산=부산은 한국 근현대사를 오롯이 품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어촌인 부산포였지만 그렇다고 여느 고을과 같지는 않았다. 동래 왜관이라고 부르던 곳이 이전을 거듭하다가 지금의 용두산 아래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부산은 대일본 교섭창구였다. 그러다가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며 부산은 개항장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대륙 침략의 교두보가 된 부산은 해양과 대륙이 만나는 접점으로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이미 급격히 성장한 부산은 해방 후 한국전쟁이 터지며 더욱 주목 받았다. 수십 만 명의 재한일본인이 돌아가는 곳이며 또 수십 만 명의 재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