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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한국을 사랑하는 안디잔 사람들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동쪽에는 안디잔이라는 도시가 있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안디잔까지 기차로 6시간이 걸린다. 험준한 산을 넘고 담수호를 지나 풍경은 설산으로 이어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즐기다 보니 6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역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꽤 많은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뭐 하러 외국인이 왔을까?’ 하는 시선이었다. 안디잔에는 대우 자동차 공장이 있어서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한국인이 종종 다닐 텐데, 걸어가던 걸음까지 멈춰가며 내 쪽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궁금해 이유를 알고 싶어 체크인을 서둘러 마치고 도시를 걸었다.

 

 

숙소를 나서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나를 보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잠시 팬 미팅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녀들은 사진 몇 장을 찍고 내일 또 온다는 인사를 던지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호텔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슬쩍 보았다. 잘 생기지도 않고 여행하느라 꾀죄죄하고 심지어 기차에서 자느라 뒷머리까지 떴는데, 그녀들은 누굴까? 뜬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시장으로 걸었다.

 

시장 주변이라 노점이 많았고 행인들도 많았다. 과일 천국답게 달콤한 향기가 시장에 가득했다. 인심 좋게 맛보라며 체리·오디·듸냐(커다란 참외)를 내밀었다. 과일을 맛보고 있는데 현지인들이 다가와서는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한 명 두 명 다가오더니 어느 순간 내 주변을 온통 에워쌌다. 카메라맨이라도 있었더라면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에서 마치 TV 프로그램 촬영이라도 하는 줄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모두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안디잔 대우 자동차 공장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 대부분은 코리아드림을 꿈꾸고 있었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한국어책을 펼쳐서 대화를 시도하는 청년이 있었다. 밭에서 일하다 와서 나만큼 꼬질꼬질한 얼굴과 손을 하고 있던 청년은 꼭 한국에 가고 싶고, 한국에 가면 꼭 연락을 하겠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다. 나는 그저 안디잔이 보고 싶어 온 여행자일 뿐인데, 학생들은 왜 나에게 와서 다짐을 하고 한국어 배우는 걸 자랑하고 있는 걸까?

 

한국어 선생님이 꽤나 실력이 있으신 것 같고 학생들도 열의가 대단해 보였다. 배낭에 넣어둔 명함을 학생들에게 건넸다. 한국에 오거든 서울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지키기 힘든 약속을 했다.

 

 

한바탕 소란했던 시장을 빠져나왔다. 안디잔 출신으로 꽤나 유명한 사람으로 ‘바부르’가 있다. 그의 박물관은 시장 뒤쪽으로 있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박물관까지 가는데도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바부르 박물관에 도착하니 불이 꺼져 있다. 문이 닫힌 줄 알았는데 나무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안에는 직원들도 있었다. 정전이 된 박물관 구경을 원하면 입장료를 반으로 깎아준다고 하는 말에 솔깃해 안으로 들어섰다.

 

햇살이라도 좀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날이 어두워 핸드폰 조명을 켜야 했다. 북적거리던 시장과 너무 다른 텅 빈 박물관을 나왔다.

 

박물관 앞에는 철물점들이 즐비했다. 그곳에서도 한국어를 하는 안디잔 사람들을 만났다. 코리아드림을 이루고 고향에 돌아와 사업을 하고 있다며 손을 꼭 잡는 사람이 있다. 한국이 좋고 한국인을 사랑한다며 손가락 두 개를 겹쳐 하트까지 만들었다. 그 모습을 몇 발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삼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와 아이들을 데리고 안디잔을 구경하러 온 딜무롯 가족이었다. 한국어를 몰라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러시아에서 일하다 열악한 작업장 환경에 폐가 아파서 그만두고 고향에 왔는데 턱없이 적은 월급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망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오늘은 사촌 여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인데 같이 가서 잔치를 함께 즐기자는 제안을 받았다. 잠시 고민을 했다. 이 잔칫상을 받음으로서 한국으로 가는 비자를 만들어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었지만 일단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결혼식은 조금 조촐하게 열렸다. 약식으로 하는 결혼식이라고 했다. 여기 사람들의 결혼식을 잘 안다. 나흘 동안 먹고 마시고 춤추는 과정 대신 오늘은 가까운 친척만 참석해 서너 시간으로 마무리가 된다고 했다. 배를 좀 채우고 축의금으로 달러를 드리려고 보니 봉투가 없다. 근처에 신문지가 보여 최대한 예쁘게 봉투를 만들어 축의금을 전달했다. 그 길로 숙소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차로 30여 분 떨어진 자기네 집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안디잔 사람들의 호의는 늪 같다. 한 번 담근 발이 빠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집 구경시켜준다는 말에는 식사도 포함이 되어 있던 것. 결혼식에서 먹고 왔다고 해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딜무롯 아내는 식탁이 안 보이게 음식을 내왔다. 안디잔 사람들은 우즈백 사람 중에서 정도 많지만, 자존심도 높은 사람들 같았다. 음식도 기질도 다른 지역과 달리 안디잔스러운 것이 있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했다. 안디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판단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을 이렇게 사랑해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오고 싶은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