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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나라 곳간, 재정은 늘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세금을 더 걷기도 어렵습니다. 정부지갑은 늘 빈털터리입니다. 그런 정부가 언제든 화폐를 더 찍어내고 싶습니다. 100여 년 전부터 중앙은행의 독립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만약 돈이 필요한데 중앙은행이 마음껏 찍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경제는 조폐창 윤전기를 많이 돌릴수록 좋아지겠죠? 그런데 그런 시절이 왔습니다. 혹시 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미연방준비제도(FED)가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의 회사채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위기의 기업들에게 직접 돈을 꿔주는 겁니다. 일단 4억 달러가 넘는 회사채를 사들였습니다. 월마트, 필립모리스, 코카콜라도 포함됐네요. 중앙은행이 동네 새마을 금고도 아니고...‘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연준(Fed)은 지난 양적완화(2008~2014) 때 4,500조 원의 돈을 풀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민간 기업의 채권을 인수한 적은 없었습니다. 연준의 무제한 돈풀기가 ‘민간기업에 돈 빌려주기’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연준의 무제한 돈 풀기는 그야말로 끝이 없습니다. 지난 석 달 만에 우리 돈 대략 3천 조 원 정도(M2 기준)를 더 풀었습니다. 돈의 범람 시대. 이러다 보니 초유의 코로나 위기에 오히려 집값이 오르고 주가가 오릅니다. 희한한 세상입니다.

 

위기 때마다 으레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췄습니다. 시중에 돈이 더 돌게 만듭니다. 그렇게 곶감 빼먹듯 금리를 낮추다, 더 이상 낮출 금리가 없습니다. ZERO 금리 시대. 연준은 하다 하다 2022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백화점이 때마다 세일을 하다, ‘이번 세일 앞으로 2년간 계속할께요’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자 중앙은행은 이제 외계인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돈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자 제국은 힘을 잃었다

로마시대부터 왕이 화폐를 초과발행하면 늘 돈의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모든 왕은 돈을 더 발행하고 싶어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갖고 있는 금이나 은만큼만 화폐를 발행하는 금, 은본위제가 수천 년 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90%가량이던 로마화폐의 은의 함량은 기원후 200년에는 5%까지 떨어집니다(화폐를 20배가량 더 발행한 것이다). 화폐가치가 1/20로 떨어지고 인플레가 극심해집니다. 그러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세금을 화폐 대신 현물로 받기 시작합니다. 화폐의 용도가 끝난 것입니다. 화폐가 시들어지면서 제국의 힘도 시들어졌습니다.

 

(금이나 은의 함유량이 줄어든 화폐가 발행되면 시민들은 스스로 함유량이 높은 화폐를 집안에 보관하고, 함유량이 낮은 화폐를 먼저 사용한다. 결국 시장에는 금은의 함유량이 낮은 화폐만 유통된다. 이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고 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

 

그런데 연준이 이렇게 돈을 풀어도 좀처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돈의 유통 속도가 늦어졌고, 또 그렇게 풀린 돈이 자꾸만 돈이 넘치는 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1) 저금리로 돈을 빌린 넉넉한 기업들은 공장을 짓기보다 자사주를 사서 주가를 올리거나, 다른 자산투자를 합니다. 그러니 툭하면 증시나 부동산시장만 뜨거워집니다.

 

2)돈이 풀리면 근로자의 임금도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실업률이 높아서 임금 협상력이 약하고 그래서 임금도 잘 안 오릅니다.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돈을 풀어도 돈이 잘 돌지 않고, 그래서 돈을 더 풀어야 합니다. 고전적인 화폐의 유통 체인이 망가집니다.

 

게다가 DOLLAR는 지구인들이 모두 사용합니다. 3)미국 안에서 아무리 달러를 발행해도 좀처럼 미국 내 물가를 자극하지 않습니다. 이를 ‘미국이 인플레를 수출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심지어 달러가치도 잘 안 떨어집니다. 참 희한합니다. 이렇게 풀린 돈은 주로 금융권에 머물거나, 국경을 넘어가는데 갑자기 제3세계의 자산시장에 투자되거나 (또는 갑자기 회수돼) 그 나라 경제를 흔들어 버립니다. (물론 윤전기를 돌려 실제 달러를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연준이 채권을 매입하면 시중 은행 장부에 수치만 바뀔 뿐이다. 연준이 채권을 자꾸 사들이면 채권 값이 올라가고 채권 수익률이 떨어진다. 은행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내려가게 되고, 기업들이 돈을 구하기가 쉬워진다. 사들인 채권이 연준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이지만 이 역시 모니터상의 숫자일 뿐이다)

 

세금걷어 나라살림하던 시대는 지났다

중앙은행은 원래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입니다. 경제위기가 오고 실물경제가 시중은행으로 전염돼 은행이 망해갈 때를 대비해 중앙은행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위기 시작부터 마운드에 오릅니다. ‘최초의 대부자’가 돼갑니다. 자꾸 돈을 찍어냅니다. 위기가 반복됩니다. ‘그깟’ 세금 거둬서 늘 재정이 부족한 재무부는 이제 중앙은행만 바라봅니다. 정부가 세금 거둬 나라살림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중앙은행이 마구 찍어냅니다. 한도는? 없습니다.

 

생각해볼 문제가 몇 개 있습니다. 선출된 권력도 아닌데, 연준(FED)이 위기 기업을 선별할 권한을 누가 줬을까? 갈수록 많은 채권이 연준의 곳간에 쌓입니다. 그 많은 채권의 이자는 누가 가져갈까? (연준은 남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재무부에 반환하고 그래도 남는 이익은 지역 연준의 주주들에게 배당한다. 결국 양적완화의 이익 상당부분이 민간투자자에게 돌아간다) 그 아픈 기업들이 만기가 돌아오면 빚을 갚을 수는 있을까? 그렇게 위기의 기업들이 살아남으면 시장경제에 결국 득이 될까?

 

한국은행도 결국 사실상의 양적완화(QE)를 시작합니다. 시중은행으로부터 RP(환매조건부채권)를 사들이기로 했습니다. 한국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대신 현금이 시중은행으로 들어갑니다. 적용 이자율은 0.8%, 사실상 공짜입니다. 이 돈을 시중은행은 약간의 이자만 받고 이 다시 기업들에게 빌려줄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자율을 낮추는 것입니다. 한도는? 없습니다. 물론 한국은행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돈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찍어내면 되는 시대가 열립니다(당백전을 마구 발행한 대원군은 얼마나 억울한가... 무턱대고 발행했다가 급격한 인플레가 터졌다). 하나만 더. 그 돈이 돌고 돌아 마지막엔 어디로 가는지도 좀 지켜봐야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우리 지갑에는 잠깐 들어왔다 나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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