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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에도 ‘헝그리’는 있다

<3편> Z세대 특징별 지도방법②

요즘 아이들은 ‘힘들다’, ‘귀찮다’, ‘짜증난다’,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며 ‘리셋(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조차도 거부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박자(대가리 박고 자살하자)송’을 흥얼거릴 정도로 삶의 만족도는 낮다. 도대체 배고픔도 없고, 사달라는 것 다 사주고, 하고 싶은 것 맘껏 누리며 살면서 뭔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어른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돈이 없어서…’, ‘나는 형제자매가 많아서…’ 양보하고 포기하며 살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고생 없이 커서 어려움을 모른다고, 악바리 정신과 간절함이 없으니 정신력이 저렇게 약해 빠진 거라며 혀를 찬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롭고, 무섭고, 불안해한다.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어른 세대가 경험했던 고단함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들만의 ‘힘듦’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중간고사 성적표’

‘행복감’은 ‘배부름(물질적 풍요로움)’에만 있지 않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이 ‘중간고사 성적표’라며 마스크를 끼고 카페에 앉아, 전쟁 치르듯 공부하는 아이들에겐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정서적 결핍’ 즉, 심리적 배고픔이 존재한다.

 

# ‘정서적 관계’에 배고픈 아이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유난스럽게 고단해한다. 이유가 뭘까? 너무 빨리 ‘경쟁’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작 평균 연령은 만 4세가 되기도 전인 평균 39.2개월이다.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영어조기교육이 시작되고, 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를 ‘영재끼’를 발굴하기 위해 각종 예체능 학원을 다니며, 엄마가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인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져가기 위해 쉼 없이 공부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없음에 좌절하며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지만,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느라 밤낮없이 일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있는 힘껏 용기 내어 “힘들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정신머리가 약해빠져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 거냐”, “너만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할 시간에 공부를 더 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보다 ‘성적’을, ‘내가 원하는 것’ 보다 ‘사회적 잣대’를, ‘힘들다는 고백’에 공감하기보다 ‘참고 버티라’는 질책과 독려를 쏟아내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렇게 부모와의 정서적 관계, 교사와의 정서적 관계는 단절된다. 자식에게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종거리며 일하고, 부족한 것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지만, 정서적으로는 더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 ‘꿈 고문’과 함께 무너지는 자신감

‘자신이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다’며 상담실에서 소리죽여 우는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는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린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포기하려면 ‘빼어나게’ 잘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대부분의 아이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발견되지 않은 영재끼’는 아이들을 끝없이 무너뜨린다.

 

가뜩이나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향해 어른들은 ‘꿈이 뭐냐’고 자꾸 묻는다. 우물쭈물 거리면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아직까지 꿈도 없어서, 뭘 해 먹고 살 거냐?’고. 어른들의 ‘꿈 고문’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아직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본 적도 없으며, 다양한 경험을 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을 현실의 벽 앞에서 주저앉게 한다.

 

청소년 시기는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시기이지, 완성된 자신을 발견하는 시기가 아니다. 어쩌면 아직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자신의 미래가 두렵고, 혼란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지도 않고 포기부터 한다’며 혼내면 아이들은 할 말이 없다. 그냥 답답할 뿐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다 큰 척하지만, 사실 아직 어리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충분한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능력 밖의 일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힘이 필요하다.

 

# 사라진 정서적 쉼터,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는 아이들

과거에는 대부분 집에 엄마가 있었다.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묻고, 혼내고, 잔소리해댔다. 친구 같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가 되어있는 아빠도 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나의 안부’를 묻던 이웃집 아줌마와 동네 슈퍼 아저씨, 학교 앞 문방구와 분식집 등 일상생활 곳곳에 ‘의미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 관계맺음’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쉼터’였다.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 전문매장이 들어찬 요즘, 아이들의 오프라인 세상은 한없이 작아졌다. 아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기껏해야 코인노래방과 PC방, 편의점뿐. 그나마도 정서적으로 기댈 공간은 아니다. 마음 둘 곳이 사라진 아이들은 스마트폰 속에 정서적 쉼터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을 업로드하자마자 달리는 댓글에 위로받고, ‘좋아요’ 숫자와 리트윗 횟수로 존재감을 확인한다. 다양한 SNS로 친구들과 소통하며 일상의 소소함을 즐긴다. 그러니 손에서 스마트폰을 뗄 수 없다. 아이들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는다는 것은 ‘세상 전부’를 빼앗는다는 것과 같다. 온라인 속 관계마저도 단절되면, 마음 붙일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서적 쉼터의 상실보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속 세상의 관계맺음이다. 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쩌면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 자신의 복제판일 수도 있는 ‘유유상종의 집단’ 속에서 아이들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인지구조가 형성된다. 사고체계는 점점 협소해지고, 편협해지며, 혐오감정으로 치닫는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배제한다. 친구의 상황을 공감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상황을 강요한다. 공감, 이해, 배려, 나눔… 등을 머리로는 아는데, 정서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감정을 제어해줄 어른다운 어른이 그 세계엔 없다. 심지어 ‘신조어’로 소통하는 그들의 언어조차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절망적인 일이다. ‘누군가 한 명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상담실을 찾아왔다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간절함이 느껴진다. 아이의 고단함을 공감해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순위였던 어른 세대는 마음을 챙기며 살지 못했다. 성과·성공·결과물이 중요할 뿐 개인의 감정이나 욕구, 의미 따위는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여겼다. 하지만 기본적인 욕구가 부족해 본 적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감정에 민감하고 예민하다.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정욕구’와 ‘동기부여’가 그 어느 세대보다 중요하다. 집도, 학교도 모두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아이들의 고백을 그저 철없는 어리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 ”뭐가 힘드냐?”가 아니라 “지금도 잘하고 있다”

인정은 아이들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인정해주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와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준다. 힘들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네가 뭐가 힘드니?” 대신 “지금도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자. 무엇하나 확실한 것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불안해하는 지금,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어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는 최고의 위로이다.

 

# “넌 틀리지 않았어. 노력도 때론 배신할 수 있단다”

열심히 했지만 성과가 없을 때 우리는 힘이 빠진다. 실패 경험이 반복되면 시작하는 것조차 겁이나 쉽게 포기하게 된다. 트라우마는 삶을 뒤흔들 만큼의 큰 사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부정적 경험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마음속에 엉겨 붙어 ‘스몰 트라우마’로 남는다. 자신감은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며, 현재의 삶을 불만족스럽게 한다.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결과에 실망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까”라고 말하는 대신 “노력도 배신할 때가 있다”고 얘기해주자. 어른들보다 더 상심이 클 아이들의 마음을 챙겨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지금이 노력이 ‘다음’을 준비하는 밑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더불어 노력하는 과정 자체를 인정해주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알려준다면 아이들은 더 성숙해질 수 있다. 그 어떤 행동도 의미 없는 행동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빨리 알아채야 하는 직업임에도 가끔 벅찰 때가 많다. 그만큼 아이들의 ‘힘듦’은 아이들 숫자만큼 많고, 고단하다. 우리학교 아이들을 만나면서 ‘딸내미’에게 한 말과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키다리 아줌마’가 되길 소망하지만, 여전히 ‘잔소리 대마왕 아줌마’인 듯싶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