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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별들의 언덕

소설로 풀어보는 교사를 위한 인문학 - 제 1화

‘레트로(Retro)’가 유행이다. 디지털시대에 지친 현대인들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찾고 있다. 다시, 인문학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작은 동네서점들이 인기를 끈다. 아마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온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은 탓일지 모르겠다. 이번 호부터 교육현장에서 오랫동안 인문학 발전을 위해 힘쓴 우한용 서울대 명예교수가 교사들이 한 번쯤 겪어 봤을 법한 학교상황 속에서 인문학적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 소설로 풀어냈다.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교사를 위한 인문학 소설을 만나보자.<편집자>

 

 

 

꽃지초등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현제명 교장은, 노래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학기 말이 되자 각 학년 반별 합창대회 계획을 발표했다. 3학년 3반 담임 임이랑은 기어코 일 등을 해야겠다는 열정에 달떠 있었다.

한 반 아이들이 20명에 불과했다. 합창에 참여할 사람을 고르고 어쩌고 할 여지가 없었다. 모두 참여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자연 음정을 못 맞추는 아이들이 끼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노래라면 고개를 내젓는 아이들도 있었다. 임이랑은 열정 하나로 아이들을 다독였다. 아이들이 지루해할라치면 간식거리를 사다가 먹이기도 했다. 간식을 사러 가는 일은 5학년 1반 담임 신천강 선생이 거들어주었다.

임이랑은 신천강 선생에게 선곡이며, 아이들 다루는 법 등을 물었다. 요즈음 애들이 별을 못 보고 자라는데, 노래로나마 별에 관해 관심을 두게 하자면서 이병기 선생의 ‘별’을 추천했다. 임용고시를 공부하는 중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시였다. 작곡자는 이수인이었다.

아이들은 자기 음정을 맞추지 못하고 다른 친구를 따라 불렀다. 다른 건 몰라도 파트별로 자기 음정으로 노래하도록 하는 방법이 없었다. 신천강 선생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우리 애들 음정 좀 잡아줘요.”

“어떤 노랜데? 애들이 음정을 못 맞춰요?”

 

임이랑은 노래 대신 이병기의 ‘별’ 첫 절을 읊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그거 나도 좋아하는 시야.”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은 사실 ‘별들’이야. 별도 혼자는 속삭이지 못하거든.”

“제법 시적이네,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그랬지.”

 

그렇게 호흡이 맞아, 신청강은 임이랑 선생 반 아이들의 합창을 지도하게 되었다. 합창 지도가 끝나면 둘이는 모래벌판이 펼쳐진 바닷가로 나갔다. 모래사장에 이어 갯벌이 펼쳐진 끝에 섬 둘이 마주하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임이랑이 꽂지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온 이후 꼭 무슨 전설이 있을 듯한 섬이란 생각을 했다. 누구한테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저 섬이…, 이름이?”

 

임이랑이 물었다. 아직도 그걸 모르냐는 듯이, 임이랑을 바라보던 신천강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라 흥덕왕 말년이라니까 1천2백 년 전인데, 장보고가 안면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했다는 거라, 당시 사령관으로 승언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인데, 안면읍 승언리? 그렇지, 그 지명 연유가 그래. 사령관 승언의 아내는 ‘미도’. 승언대장이 출정을 나갔다가 안 돌아오는 거라…. 아내가 바닷가에 나가 기다리다가, 마침내 죽어서 바위가 되었대. 그게 저 너부데데한 할매바위고, 어느 파도 무섭게 설레던 밤 승언대장이 파도에 떠밀려오다가 어떤 바위에 걸려 자지러져 깨어보니, 그게 미도의 몸인 거야. 그래 같이 절명해서 저 할배바위가 되었다는 거라.

 

“두 바위가 왜 포옹을 하지 않고?”

“떨어져 있어야 더욱 간절하지.”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유성이 하나 흘러가고 그게 ‘샤를르마뉴의 길’이라고 목동이 얘기하잖아. 그게 우리나라로 하면 신라 때, 그 무렵인 거 같은데?”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우리가 별이 된 거 같잖아? 서로 반짝이는….”

“나중엔 홀로 서서 별을 헤겠지. 나 속이 나빠 먼저 들어갈래.”

 

임이랑은 슬그머니 건너오는 신천강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신천강은 돌아서는 임이랑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경연대회를 한 주일 앞둔 수요일이었다. 오랜만에 회식이 있었다. 회식이래야 자기 주머니 털어서 하는 것이라 별다른 흥이 없었다. 현제명 교장만 신이 나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데까지 이르렀다. 자청해서 노래를 불렀다. 산들바람이 산들 분다…. 노래가 절정을 행해 달려갈 즈음이었다. 이인문 교감이 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왜 가시게? 한 곡 하고 가셔야지요.”

“현제명 노래,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결국 현제명 교장선생의 가곡을 끝으로 파장이 돼버렸다.

신천강이 임이랑을 바래다준다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꼿꼿해지는 터라 걸어가기가 내키지 않았다. 걷기로 한다면 20분은 착실히 걸리는 거리였다. 교장과 교감이 사이가 버성그러지는 것은 대강 알았지만, 오늘처럼 노골적으로 들이받는 건 잘한 일은 아닌 듯했다. 다른 선생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그것은 면박이었다.

 

“교감선생 왜 그런대? 너무한 거 아냐?”

 

신천강은 차 속도를 늦추면서 말했다. 현제명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우리나라 초기 음악가…? 산들바람 가사를 정인섭이라는 이가 썼거든…. 해외문학파 친일인사 그렇잖아? 전에 현제명이 작사 작곡한 ‘희망의 나라로’를 불렀다가, 일이 요란하게 벌어졌더라니…. 엔포세대가 사는 헬조선에서 무슨 놈의 희망의 나라냐 하면서, 맥주잔을 차마 교장에게는 끼얹지 못하고 자기 얼굴에다가 끼얹은 거잖아. 좋은 분들인데…. 역사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사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지금 무슨 얘기 하는 거야?”

“이런 게 인문학이라는 거잖아? 인문학? 그건 교감학문이네, 교감 이름이 이인문이니까, 교감선생 투로 말하면 이인문학이 되잖아?”

 

 

신천강은 입을 다물고 차를 몰았다. 승언교를 얼마 앞두고서였다. 숲에서 고라니가 튀어나왔다. 신천강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고 고라니는 가까스로 로드킬을 면하고 건너편 숲으로 사라졌다. 뱃살이 꼿꼿한 채로 썰렁한 자리에 들었다. 눈이 알알하고 잠은 멀리 달아났다. 자정이 지나면서 아랫배 옆구리가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몸을 어떻게 추스를 도리가 없었다.

임이랑은 신천강에게 전화를 했다. 저기 나 병원, 병원, 죽을 거 같아. 술 안 마시기 잘했네. 약간 꿍덜거리는 어투였다. 십 분이나 지났을까, 밖에서 차 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면소재지 승언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으니 태안읍으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태안으로 가는 동안, 임이랑은 배를 움켜쥐고 뒹굴다시피 했다. 신천강은 느긋하게,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별만 서로 반짝인다… 아이고 죽을 거 같아…. 그렇게 쉽게 안 죽어…. 급성맹장이라고 했다.

맹장을 수술하고 닷새가 지나 안정을 되찾았을 무렵이었다. 그날이 합창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가는 가라앉고, 가라앉았던 얼굴들은 유튜브 음악을 따라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다, 합창 연습을 하는 동안, 교과수업에서 얻지 못할 튼튼한 끈이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무렵, 이인문 교감선생이 문병을 왔다.

 

“견딜 만해요? 요새 맹장염은 병도 아니라니까. 아무튼 합창 일등을 축하합니다.”

 

임이랑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아랫배가 찍어 잡아당기는 통에 다시 눕고 말았다. 신천강이 다가가 침대를 세워주었다.

 

“선곡을 아주 잘 했더라고. 아주 평이한 신데, 말하자면 인간이 우주적 존재라는 깨달음을 주는 그런 시지요.”

 

이인문 교감은 간이의자를 침대 곁으로 끌어 앉으면서 이야길 시작했다.

애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 내용을 얼마나 깊게 이해하는가는 차후의 문제지요. 긴 기다림 끝에 문득 찾아오는 그런 깨달음이 있어요. 진리는 대개 그렇게 와요. 안타깝지만 그런 깨달음이 왔을 때, 우리는 그 깨달음을 실천할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에 직면해서 실망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럴 때 우리는, 아, 인생이 그런 것이지…. 하면서 회상에 잠기지요.

 

“별이라는 시는 사실 우리 또래나 되어야 실감이 가는 건데, 노래가 좋으니까 널리 불리는 거고, 작곡자 이수인은 경남 의령 출신인데…. 또 얘기가 길어질라. 그런데 별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 양반 작곡한 노래 가운데, 김재호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의 노래’라는 거 기억하오? 그 노래 이절 첫 구절에 ‘달 가고 해 가면 별은 멀어도’ 그렇게 나오지 않우? 기억하시나?”

 

가람 선생의 별을 이야기하면서, 한참 외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신천강이 임이랑에게 자주 눈짓을 했다. 얘기 줄이게 하려면, 아파서 눕겠다고 핑계라도 대라는 모양이었다.

 

“인간이란…. 자기 존재를 자신이 만들어가는 그런 창조적인 존재지. 믿음 가지고 사는 분들은 손 내저을지 몰라도, 그러니 하나님은 제쳐두고라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고많은 신들은 인간의 상상이 창조한 존재인지도 몰라….” 신천강이 냉장고에서 콜라병을 꺼내 종이컵에다가 가득 따라 교감선생 앞에 내밀었다.

“콜라라는 게, 이게 제국주의 식품이라…. 콜라 거품에는 별이 안 떠요.”<소설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은 모두 가상임을 밝혀둡니다.>

“교감선생님 별은 어디 있습니까?” 신천강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물었다.

 

“사람마다 자기 가슴에 별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그 별이 세월을 따라, 달 가고 해 가면 멀어져만 가지요. 희망이 줄어든다고 해도 될 것이고. 아무튼….” 아무튼 그렇게 말을 마감할 듯 하다가는 다시 이어갔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존재인가 소름이 돋을 정도지요. 그런데 인간은 자기 존재를 주변 사물에, 이웃 인간에게, 그리고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에 의미의 고리로 연결하는 상징적 창조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늘의 별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별에다 이름을 붙이고 해서, 자신을 우주 안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자신과 우주를 연결해낼 수 있는 게 인간의 위대함이지요.

 

“교감선생님, 지금 칸트 얘기하시는 건가요? 칸트는 자기에게 늘 새로운 감탄과 경외심을 불러오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잖아요?” 임이랑이 눈을 반짝이다가 끼어들었다.

“그렇지 맞아요, 별이 빛나는 하늘과 자기 내면에 있는 도덕률, 그게 칸트를 칸트답게 한 시적 상관물이라고 배웠어요.” 신천강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보는 시인의 가슴은 도덕률로 가득한 셈이지.”

“시와 도덕이 통한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진리와 미도 같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임이랑이 한마디 했다.

“내가 이인문 아닌가? 선생들이 내 선생이네.” 이인문 교감은 작은 각봉투를 하나 임이랑에게 내밀었다. 얼마 전에 펴낸 <교사를 위한 인문학>이라는 책이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