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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대 점령한 서양등골나물

늦가을 서울 남산 야생화공원에서 정상 쪽으로 가는 길목은 마치 눈이 온 듯했다. 허리 높이까지 자란 식물에는 흰색의 자잘한 꽃송이들이 뭉쳐 피어 있었고, 좀 작은 깻잎처럼 생긴 잎은 마주나고 있었다. 생태계 교란 식물인 서양등골나물이었다.

 

서양등골나물은 길가만이 아니라 음지인 숲속까지 파고드는 것이 특징이다. 제거 작업을 한 흔적이 있는데도, 3~4년 전 보았을 때보다 정상 쪽으로 100m 이상 더 침범한 것 같았다. 야생화공원 화단에서도 서양등골나물이 다른 꽃들 사이로 하얀 꽃을 피운 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잎이 달린 곳마다 가지 갈라지기를 반복해 꽃송이가 많기도 했다.

 

 

토종식물 ‘등골’ 빼는 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은 남산만 점령한 것이 아니다. 인왕산·안산·우면산 등 서울 시내와 근교 산에도 무서운 기세로 파고들고 있다. 남산을 관리하는 서울 중부푸른도시사업소 관계자는 “그나마 주기적으로 제거 작업을 하고 있어서 이 정도인 것”이라며 “번식력이 워낙 강해 지속적으로 제거 작업을 하는데도 돌아서면 또 있고 그렇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거의 속수무책인 셈이다.

 

세계화 추세로 동·식물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귀화식물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이 국내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면 문제가 다르다. 환경부는 서양등골나물을 비롯해 가시박·돼지풀·단풍잎돼지풀·도깨비가지·애기수영·서양금혼초·미국쑥부쟁이 등 15종을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했다. 이 중 산에서는 서양등골나물이, 강 주변에서는 가시박이 자생식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귀화식물은 많지만 대개 울창한 숲에는 들어가지 않고 햇볕이 잘 드는 나대지나 길가에서 자란다. 사람들이 손대지 않아 안정된 생태계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또 대개 한해살이풀이나 두해살이풀이어서 사람들이 마음먹고 관리하면 제어가 가능하다. 공터에 흔한 개망초와 망초 같은 풀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서양등골나물은 좀 다르다. 우선 음지에서도 견디는 힘이 강해 나무 밑 그늘까지, 그러니까 숲속까지 들어가 대량 번식해 자생식물들이 살 공간을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해살이풀이라 제거하지 않는 한 한번 뿌리를 내리면 계속 퍼질 수밖에 없다. 또 한 개체에서 바람을 타고 퍼지는 씨앗이 워낙 많고 발아력도 강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서양등골나물은 분포 중심지가 서울이다. 1978년 서울 남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변두리로 퍼져 나갔다. 요즘 서울 거리나 야산을 걷다가 작은 깻잎 모양의 잎에 흰 꽃이 핀 식물이 있다면 서양등골나물로 봐도 무방하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일대로 맹렬하게 퍼져 현재는 강원도와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까지 자라고 있다.

 

서양등골나물이라는 이름은 자생하는 등골나물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자생 등골나물은 산에서 자라고 키도 서양등골나물보다 큰 편이다. 서양등골나물보다 좀 일찍 피고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것도 다르다.

 

독성 강해 잘 못 먹으면 가축도 위험

서양등골나물은 눈부신 흰색인 데다 다섯 개로 갈라진 꽃잎들이 뭉쳐 있는 것이 그런대로 예쁜 편이다. 이 꽃을 보고 “어머, 예쁜 꽃이 피었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고, 꺾어서 꽃병에 꽂아 놓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꽃이 보기 좋다고 서울시에서 서양등골나물을 무더기로 가로변에 심었다고 알고 있다. 이것이 바람을 타고 급속하게 퍼진 것”이라고 말했다.

 

서양등골나물은 우유병(milk sickness)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세기까지 이 식물의 고향인 북아메리카에서는 우유를 먹으면 토하고, 손발을 떨며, 침을 흘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인 낸시 링컨의 사망 원인으로도 유명하다. 켄터키주 의회는 1830년 이 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 600달러를 내걸었다. 결국 서양등골나물을 섭취한 소나 말, 염소 등을 통해 우유에 들어간 독성물질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식물이 자라는 곳에서 목축을 하지 않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식물계의 황소개구리 ‘가시박’

가시박도 전국 하천이나 호수 주변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일년생 덩굴식물이다. 여름철에는 하루 20~30cm씩 자랄 정도로 생장속도가 빨라 주변 자생 식물들을 덮어 말려 죽인다. 다른 식물을 죽이는 제초(除草)물질까지 뿜어내고, 나무마저도 12m까지 휘감고 올라가 고사(枯死)시킨다. 그래서 가시박은 '녹색 저승사자',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서울 밤섬도 해마다 제거작업을 하는데도 섬의 상당 부분이 가시박으로 뒤덮여 있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4대강과 그 지천은 물론이고, 대청호·의암호 등 전국 호수와 그 주변도 가시박에 시달리고 있다. 환경단체들과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퇴치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광범위하게 퍼졌고,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제거하는 데 그치고 있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1980년대 후반 생존력이 강하고 생장이 빠른 가시박 줄기에 오이나 호박의 줄기를 붙이기 위해 도입했는데, 이것이 전국 강산으로 퍼져 나갔다. 가시박이란 이름은 열매에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어서 생긴 것이다. 한 그루당 최대 2만5000개의 씨가 달려 급속히 퍼지고, 씨가 한번 떨어지면 수십 년 후에도 발아하기 때문에 멸종시키기가 대단히 어려운 식물이다.

 

생태계 교란 식물의 하나인 미국쑥부쟁이는 가을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런대로 예쁜 꽃이다. 다른 국화과 식물에 비해 꽃이 작지만 아주 많이 피고, 노란색 중심부가 점점 붉어지는 특징이 있다. 줄기와 잎 가장자리에 흰 털이 나 있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경기도·강원도의 일부에서만 보였는데, 어느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새로 개간한 땅이 있으면 가장 먼저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는 식물로, 서울 시내 공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서양등골나물·가시박이 보이면 즉시 뽑아 버리는 것이 좋다. 줄기의 아래쪽을 잡고 끌어당겨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남산 등 서울 산을 갈 때마다, 한강 변에서 이들 식물이 욕심 사납게 자생식물의 터전을 잠식하는 것을 보면 서둘러 근본적인 제거 대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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