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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과거, '학종'을 경고하다

유명인사 자녀의 입시 관련 의혹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를 계기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에도 ‘학종’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 일이 국민들에게 던진 파문은 예사롭지가 않다. 실제로 최근에는 ‘학종’을 폐지해야 한다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교육부가 나서서 확실하게 감독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학종’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학입시에 대한 ‘기본 국민정서’인 ‘공정성 원칙’에 어긋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입시의 공정성에 대해 다른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민감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대학입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리 역사에서 오랫동안 실시되었던 ‘과거제도’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제도의 핵심적 조건, ‘공정성’

과거제도는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신분 개방이었다. 원래 과거제도를 실시하려고 했던 목적은 귀족세력을 누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귀족가문에서만 관리를 뽑던 것을 평민들에게까지 그 대상을 개방했던 것이다. 둘째는 능력 중시였다. 관리 선발 요건이 종전처럼 ‘신분’이 아니라면 자연히 ‘능력’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공정한 운영이었다. 관리 선발을 출신가문이 아닌 오직 능력으로만 선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능력 검증’과 ‘공평무사한 운영’이 요구되었다. 특히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백성이 과거제도를 지지하게 되고, 그래야 과거제도가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정성은 과거제도의 핵심적 조건이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의 실제 정서는 어떤 것이었는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살펴보자.

 

(헌납 남효의가 아뢰기를) 형편대로라면 재상의 자제들이 반드시 먼저 과거에 합격할 것이니, 초야의 천한 선비가 어떻게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초야의 선비가 과거에 합격하기도 하고 부귀한 사람들의 자제가 합격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은 공도(公道: 과거제도를 말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과거가 중한 줄 알게 되고 따라서 공도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중종실록 15년 1월 경자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과거시험 합격이 집안의 위세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과거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이는 과거제도의 우월성을 믿게 되는 것을 넘어, 과거제도를 적극 지지하려는 정서를 형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거제도의 미덕은 곧 공정성’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과거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통치자 역시 백성의 정서와 인식에 발맞춰 과거 운영의 최우선적 원칙을 공정성에 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과거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은 시험 방식의 특징인 획일성과 관련이 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동일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동일한 잣대가 제시되는 것 즉,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는 과거시험이 공평한 제도임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전해주는 메시지

오늘날 우리 국민에게 대학입시는 절대적 관심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녀의 시험 준비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상황이다. 입시에 대한 학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험의 공정성’이다. 학부모의 지위나 재력에 의해 합격이 좌우되는 편법이나 반칙이 허용되지 않고, 학생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그런 입시일 때 학부모들은 공정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시험은 공정해야 한다’는 믿음이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조선시대의 정서가 관성을 지닌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오늘날 대학입시가 한 학생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상황이다. 외국에서는 대학 진학이 우리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은 시험의 공정성을 고민하는 수준이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그들은 입시에서 ‘공정성’보다도 학생의 ‘다양성’ 존중이라는 원칙을 우선시한다). 외국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만 유별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지금의 우리에게 ‘시험은 공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삶의 조건이 유사하다면 시대와 상관없이 시험의 운영 원칙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혹시 우리나라 사회가 외국처럼 학력(학벌)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입시의 덕목은 바로 공정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500년 전 정광필이 경고했던 조선시대판 ‘학종’, 추천제도

그렇다면 입시의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 우선 모든 수험생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선발해야 한다. 기준을 달리하여 여러 줄 세우기를 하게 되면 필히 각 기준 간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가급적 선발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혹자는 학생들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선발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교육적 논리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일 뿐 입시의 원칙, 특히 대학에 목을 매는 대한민국의 입시 원칙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입시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은 선발방식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만큼 많은 편법이 개재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학종’은 여기에 얼마나 부합할까? ‘학종’에서 중요하게 따지고 있는 ‘전공과 관련한 학생의 열정·관심·노력·잠재가능성’이라는 것은 사실 얼마나 모호한 것인가? 이것을 판단하기 위한 학생들의 봉사활동·동아리활동·독서활동·경시대회·소논문 등은 또 얼마나 애매한 것인가? 객관적 기준도 없는 정성평가인 ‘학종’이라는 불확실한 전형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 할 것 없이 도움이 될 것 같은 활동이라면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편법, 심지어는 불법도 불사하는 행동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우려는 이미 조선시대에 제기되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인 중종 때 영사(領事) 정광필은 다음과 같이 경계하였다.

 

제가 당초에 이 과거(시험이 아닌 추천에 의한 관리임용제도를 말함)를 실시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까닭은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처럼 순박하지 않아서 뒷폐단이 많을 것이고…-중종실록 14년 12월 계해

 

여하튼 정광필의 언급에서 주목할 것은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시험방식이 명확한 기준이 없게 된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가려고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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