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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우리가 동물이 되어갈 때

황송하게도 한 학기에 많으면 두세 번씩 대학교에 특강 형식으로 강의를 나간다. 그때마다 과연 내가 이런 자리에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그럼에도 거절한 적은 없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K팝과 시장경제’로, 내용은 간단하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mp3라는 새 압축 기술의 발전으로 한국 음반 시장은 일대 위기를 맞이했다.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故 신해철을 포함해 권위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가요계(그땐 K팝이란 말이 없었다)의 멸망을 개탄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멋진 일들이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 심도 있는 연구가 전개되진 않았다. 경제·경영학과 교수들도 이제 막 호기심을 갖는 단계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고 나에게 멋들어진 강의 기술이나 전문지식이 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나는 그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 음악 이야기와 내 나름의 가설을 두세 시간에 걸쳐 얘기한다. 10대 시절부터 지켜봐 왔던 한국 대중음악의 변천사, 중요한 분기점, 혜성처럼 나타나 유성처럼 사라진 이들에 대해 목격자처럼 얘길 전한다. 그리고 멋진 음악을 학생들과 함께 듣는다. 존재만으로도 음악적인 20대들과 이런 시간을 보내는데 재미가 없을 리 없다. 아니, 없었다.

 

답변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

‘없었다’라는 과거형이 등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나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각도의 질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이렇다. “지금까지 K팝의 발전사에 대해서 좋은 얘기만을 들려주셨는데, 요즘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이제까지 없었던 직업정신의 호출을 요구받는다. 그렇다. K팝이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바로 그때처럼 상황은 다시 한번 변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월 강남의 어느 클럽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 하나가 한국의 K팝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도 상황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짧은 글에서 현상의 원인을 심도 있게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이는 구석은 있다. 분명한 건 K팝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 시점부터 오늘날의 문제가 배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K팝의 성공 요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외모지상주의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의 어느 출구로 나가면 보이는 그 즐비한 성형외과들의 행렬을 상기시킬 필요도 없다. 연예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선망은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에게 갓(GOD)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데까지 와 있다.

 

K팝이 유명해진 계기 중 하나인 세칭 ‘칼군무’는 눈에 보이기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가수 개인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면 너무나 멋진 일이다. 북한의 ‘아리랑’처럼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오로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 혹독한 무대의 삶을 선택한 10대 20대들이 추는 최후의 춤사위. 강처럼 흐르는 땀방울을 쏟아낸 대가를 누가 확실히 보상해 준다는 약속도 없다. 가수가 되려는 연습생들은 많지만 성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데이터는 무대에서 빛나는 가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진흙 위의 연꽃처럼 보이게 만든다.

 

문제는 이토록 힘든 과정을 거쳐 성공한 이들의 ‘그 다음’에 대해서는 우리 중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되고 한 달 뒤의 상황 같다. 로또 1등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한 달 정도는 이 성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색한 마음이 들 터다.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얼마간 돈을 펑펑 쓴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점점 제정신이 들고 당첨이라는 사실이 ‘현실’로 자리 잡으면, 그때부터는 잔액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해진다.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면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1.6%의 어떤 것

K팝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 성공을 올바르게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것. 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단단히 꼬인 실타래의 가장 안쪽에서 미리부터 대형사고의 폭발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빅뱅의 막내 멤버 승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동년배들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승리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업체를 꾸렸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성공의 과실을 나누면서 자못 ‘의젓한 어린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많은 카메라들이 뒤를 따랐으며, 그런 주목을 발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려던 것처럼 보였던 게 사건 직전까지의 상황이다. 그 이후 무시무시한 낙차로 그의 하락세가 시작됐지만, 나는 그가 성공의 정점에서 내놓은 노래 ‘셋 셀 테니’의 한 구절을 지금도 떠올린다.

 

승리가 직접 노랫말을 적은 이 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그런 자태를 가졌으니 / 눈은 네 구두보다 높을 거야 / 조금 새삼스럽지만 / 결국 다 동물이란 생각을 해”

 

인간이 동물인 건 모두가 안다. 단, 이 맥락에서의 ‘동물’에는 무서운 함의가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모든 교양, 윤리, 도덕, 문명들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폭발버튼이 매복돼 있다. 인간은 침팬지와 유전자의 98.4%를 공유한다. DNA 차원에서 봤을 때에는 거의 같음에도 우리가 침팬지이길 거부하는 이유는, 작지만 큰 차이가 저 1.6%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작은 숫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동물의 하나로 간주하며 지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