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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경영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플라톤의 모색

플라톤의 교육론 ①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닌 듯 되었고, 성역은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교육기관으로 존중받았던 학교는 이제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샌드백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국교육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그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전통적인 가치는 설 자리를 잃었고 새로운 가치관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과연 그에 따른 삶의 모습이 타당한 것인지 새로운 가치 규범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등장하는 젊은 청년이 떠오른다. 부친의 강권으로 소피스트에게 궤변술을 배운 청년은 “아이보다 어리석은 어른은 맞아도 싸다”며 부모를 때리고도 당당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교직과목 <교육철학 및 교육사>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교육사상가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아쉽게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너무나 위대한 철학자였던 탓에, 우리는 그들이 어떤 배경과 문제의식에서 자신들의 철학사상을 생성하게 되었는지 탐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역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회적 일탈과 혼란에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우리가 배워온 것보다 훨씬 잔인했고, 비이성적·비민주적이었으며 주요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감정과 이익에 따라 움직였을 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 선동가들은 탐욕스러웠지만, 지혜를 갖추지 못했고, 민중들은 선동가들의 탐욕을 알아챌 만큼의 식견이 없었다. 아테네인들의 일탈과 만행에 대한 반성은 고스란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몫이었다.

 

선동가와 민중은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를 타락시켰다(Apologia, 24a)’며 소크라테스를 기소했지만 실제 아테네를 타락시킨 것은 이들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이 다루어지는 <변론>에서 그는 변명 대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역설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정해놓은 악법도 법이라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것이 아니다. 탐욕과 오만이라는 육체적 쾌락에 집착했던 아테네인들에게 정신적 가치를 강조했고, 당연한 진리로 인정되었던 것들에 이의 제기를 했을 뿐이었다.

 

소크라테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기소되었지만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법(nomos)과 정의(to dikaion)의 편에 서서 법률과 법률 제정자인 국가 신을 믿는다. 그런 면에서 소크라테스가 들었다는 신들의 음성(daimonion)은 사실 양심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잘못된 일이 일어나면 소리가 들려 행동을 바로잡도록 도와줬다는 음성은 소크라테스의 사형 선고 때는 다행스럽게도(?) 침묵한다. 죽음이 인간에게 최선인지 최악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Apologia, 29b)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가장 훌륭해지도록 하는 것(Apologia, 29d)에 있다. 소크라테스가 민중들의 불편한 진실을 헤집어놓았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서 불편한 마음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민중들은 소크라테스가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처자식을 데려와 눈물로 호소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민중들의 비뚤어진 오만에 대해 ‘가르치고 설득할 것’을 선언한다.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을 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유인답지 못한 행위를 거부한다. 무엇이 진리인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시도하는 모습은 결국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임을 상기시킨다. ‘가장 쉽고 훌륭한 삶의 방식은 바른말 하는 남들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최대한 훌륭해지는 데에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떤 희극작품이 가장 훌륭했는지 결정하는 것은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아니라 전문가들의 이성적인 판단’이 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은 혼란스러웠던 젊은 시절에 대한 회고였을 것이다.

 

지도자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조한 플라톤

플라톤의 교육론이 오늘날에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은 그 주장의 실현 가능성 외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시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귀족 출신이었음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귀족들의 정치참여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를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왕이 철학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는 것(Epistolai, 326e)’이다. 가장 지혜롭고 공평무사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민주파와 귀족파로 나뉘어 목숨을 걸고 정쟁을 벌였던 아테네 사회가 혼란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돈만 밝히는 부자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되어 사회갈등이 폭발하게 되고, 민중의 지지로 집권하게 된 선동가는 독재자가 되어 민중들을 노예로 만들 것’이라는 통찰은 그가 왜 서양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지를 보여준다. 계급론자라며 엄청난 비난을 받는, ‘민주사회의 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플라톤의 주장은 사실 그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오히려 플라톤이 강조하는 것은 지도자의 전문성과 공공성에 있다. 교사를 포함해 모든 공직자와 지도자는 전문성과 공공성을 지녀야 한다. 전문성은 그가 지녀야 하는 재능(physis)이 최대 상태로 발휘된 것이라면, 공공성은 그가 공익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공평무사함의 완성에 있다. 그런 점에서 공공성은 오늘날 일부에서 제기되는 전문가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과는 구분된다. 더 높은 지위일수록 더 큰 책임이 부여되고 전문성과 공공성의 기준도 까다롭게 적용된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 수십 년의 교육과 경험을 요구하고서는 어떠한 부귀영화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사유재산과 처자식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현실 속에서 구체화할 수 있을지는 늘 의문이다. 하지만 ‘이데아(IDEA)는 모범의 기능을 한다’는 플라톤의 말을 곱씹어보면,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습관의 변화 없이는 철학자의 완성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하루 두 끼씩 배불리 먹고, 여자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회에서 철학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은 철학자에게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보통사람들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며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수도자의 모습임을 확인하게 한다.

 

자유보다 자율을 강조

비트겐슈타인과의 논쟁으로도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적들>에서 플라톤의 주장에 전체주의적 획일화와 인종주의, 우생학의 공포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대체로 포퍼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국가>에 등장하는 인간에 대한 금·은·동의 구분방식,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생산자 집단에 대한 무관심 등은 플라톤이 대다수의 시민을 마치 노예처럼 취급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제기는 플라톤이 보기에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에게 정의는 ‘각자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이었다. <국가>는 ‘정의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저작이었고 이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상국가의 모형과 그 국가의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공공성을 지닌 수호자와 지도자의 양성을 추구했다. <국가>에서 생산자 교육이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과거 농사일이 그렇듯 대를 이어 아버지가 자식에게 전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플라톤이 정의와 직접 관련 없는 주제에 대해 서술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농사비법을 다루었던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을 기억하면 그만이었다.

 

플라톤의 교육을 엘리트 교육으로 볼 수 있지만, 그가 시민교육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시민들이 철학자의 말을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철학자는 현명한 시민들 속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에게 시민교육은 철학자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자유 대신 자율(autonomia/autokratia)을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자유는 책임지지 않아도 될 권리를 낳게 되고 그것은 모든 사회적 권위의 붕괴와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저자 레나타 살레츨의 지적처럼 오히려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 장애에 빠지거나, ‘아무거나’ 선택하거나 선택권을 넘기며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선택과 책임을 지는 자세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소크라테스를 현자로 알아볼 수준의 지혜가 시민들에게 강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플라톤은 시민들의 충분한 교양을 위해 다양한 방향에서의 교육을 제안하고 지혜를 갖춘 원로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획한다. 머뭇거리는 원로들에게 술을 먹여서라도 젊은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모범을 보일 것을 제안하는 <법률>의 한 구절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플라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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