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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벼락치기 과거 전략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대부분 사람의 생각 속에는 선비들 하면 으레 올곧은 삶의 표본으로 각인되어 있어, 선비들의 공부 자세 또한 대단히 모범적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문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비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선비는 기본적으로 과거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수험생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비들이 어떻게 과거시험을 준비하였는가를 다시 들여다보면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사실(史實)들이 비로소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된다.

 

벼락치기 공부를 하다

그 중 먼저 언급할 것은 임기적(臨機的) 학습이다. 이는 시험 때에 닥쳐서 학습한다는 것으로서, 평소에는 학습에 치중하지 않고 있다가 과거시험 때가 다가오면 그때 가서 급하게 공부를 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선비들이 어떻게 벼락치기 공부를 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다.

 

가을에 초시를 실시하고 봄에 이르러 복시를 실시하기 때문에, 유생들이 겨울 3달 동안에 기억하고 외우면 요행으로 과거에 뽑힐 수 있다고 여겨 모두 제술에 전념하고 경전 학습에 힘쓰지 않습니다. - 성종실록 18년 12월 정축

 

지금까지 사람을 뽑는 법은, 그해 가을에 초시를 뽑고 이듬해 봄, 회시 때 강경시험을 실시하므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올가을에 초시에 합격하면 8월부터 내년 3월 때까지 모두 8개월이니, 이때에 글 읽기에 힘을 써도 강경시험을 볼 수 있겠다”하여, 이 때문에 학습을 폐기하고 글을 읽지 않고서 놀러 다니며 이야기나 하면서 날을 보내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이런 풍조입니다.

- 성종실록 19년 9월 갑자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대과의 경우 1차 시험인 초시는 가을에 제술시험(일종의 논술시험)을, 2차 시험인 회시(복시)는 그 이듬해 봄에 강경시험(일종의 구술시험)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흔히 당시 선비들은 초시와 회시에 대한 모든 공부를 마친 다음 과거에 응시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먼저 초시만을 준비해서 만일 여기에 합격하게 되면, 바로 이때부터 회시 준비를 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초시와 회시 사이에 8개월이라는 공백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8개월 내내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겨울 동안인 3개월만 학습하려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경시험 과목인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응시 전에 대체로 학습이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개월 동안, 심지어 3개월 동안에 경서 공부를 마치려 했다는 것은 무모한 행태였다고 할 수 있다.

 

편법으로 시험을 연기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비정상적 행태는 다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당시 과거 응시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여러 가지 편법을 행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우선 이와 관련된 사료를 보기로 한다.

 

이번에 한성시에 합격한 유생들이 병이 들었다는 증명서를 받은 자가 상당히 많은데, 그 무리가 어찌 다 참으로 병들었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요행으로 한성시에 합격하고서 강경시험 보기를 꺼리는 자일 것입니다. …(중략)… 이런 경우는 다음 과거시험(회시)에 참가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 성종실록 21년 9월 기사

 

당시에는 초시에 합격하면 바로 그다음 단계인 회시에 응시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3년 후에 실시하는 차기 과거시험의 회시에 응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다만 수험생 본인이 응시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시험 연기가 허용되었다. 그런데 당시 유생들은 초시(한성시)에 합격하더라도 회시에 응시하지 않고 병을 핑계로 연기하려는 경향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이 허위로 병을 칭탁하면서까지 시험을 미루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다음의 기록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초시에서 합격한 자가 글을 더 읽고 강경시험에 응시하려는 속셈으로 병을 핑계 대고 글을 충분히 읽은 다음에 와서 시험 보는 사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가시험에 있어서 공평하지 못한 일이니, 여러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병이 아니면 허락해서는 안 된다. - 중종실록 27년 9월 기사

 

그 이유는 한마디로 유생들이 초시 합격 후에 곧바로 회시에 응시하는 것보다는 회시를 연기하여 더 많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하면 그만큼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이 기록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시험 연기 이유가 그들이 회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유추할 수가 있는데, 이들 중에는 앞서 초시에 합격하고 벼락치기로 회시에 응시하려 했으나 결국 그러한 계획이 실패로 끝났던 유생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의 기록 내용을 보면 당시에는 상당수 유생이 허위 증명서를 제출하고 시험 연기를 허락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허위 증명서를 제출하여 연기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명백한 범법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연기를 통해 3년이라는 시험 준비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초시 후에 곧바로 회시에 응시하는 유생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편법이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도 비난을 받을만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이해하기

그렇다면 당시 선비들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먼저 평상시에는 학업에 태만하다가 과거시험이 코앞에 닥쳐야 학습에 매진했던 경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임기적 학습 행태는 단순히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성교육을 강조했던 당시의 시선에서 그러한 행태는 불성실함의 증거였기 때문에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임기적 학습 행태는 다음과 같이 규범적 차원이 아닌 수험 전략의 차원에서 이해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수험생들은 나름대로 효과적인 시험 준비 방법을 추구하게 되는데, 평소에 지속적으로 학습에 매진하기보다는 시험 때가 임박해서 집중적으로 학습을 하는 것이 실제 시험에서는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흔히 망각의 곡선으로 알려진 인간 기억능력의 실상 즉, 기억은 일관되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만 효과가 크고 그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다는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평소에 꾸준히 학습에 매진한다는 것은 학습의 효율성 즉, 투입한 시간 대비 학습의 효과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험 때가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단지 학습의 성실성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당시에는 불성실한 태도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학습 전략적 측면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편법적 시험연기 행태도 이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과거시험 공부는 끝을 알 수 없는 고행의 과정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에 걸쳐 응시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종일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마땅히 그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당시 과거시험은 많은 응시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승부를 건다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모든 시험 단계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하나씩 해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선비들은 우선 초시만을 준비하여 합격하게 되면, 시간을 갖고 다음 단계 시험인 회시를 준비하기 위해 편법을 써서라도 연기하려 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덧씌워진 ‘성실인’이라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단지 ‘수험생’이었다는 관점에서만 들여다본다면, 앞서 살펴본 모습들은 그들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였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 중에 편법적인 행태마저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만일 오늘날의 수험생들이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그들 역시 똑같은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험이 수험생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그들보다는 그 주범인 시험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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