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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규제, 먹방 규제는 국가주의였을까?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이른바 ‘외모 규제’를 하려 한다며 큰 반발이 일었다. 여성가족부가 2017년에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는데, 2019년 개정판에 부록으로 딸린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문제가 된 것이다.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 출연자들이 아이돌로 음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며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이 심각하다고 안내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부가 왜 아이돌 외모까지 규제하느냐, 아이돌 외모를 팬한테 맞춰야지 정부한테 맞춰야 하느냐, 아이돌도 각각 차별성을 확보하려 노력하는데 정부가 구분 못하면 획일적인 거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여성가족부가 완장을 찼다”며 과도한 권력행사를 비판하는 말도 나왔다.

 

심각한 오해다. 정부가 아이돌의 외모를 규제하거나 지침을 내리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돌이 비슷한 외형인데 그런 아이돌들이 출연을 독식하니 결과적으로 외모 획일성이 심각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가이드라인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이돌 출연 독점을 줄여라’가 된다. 이것은 타당한 문제 제기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모두 아이돌인 현상은 극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우리 대중음악계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아이돌 분량을 줄여야 하는 게 맞다. 이것을 사람들이 아이돌 외모 규제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된 아이돌 외모 논란

정치권까지 나서서 일이 더 커졌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음악방송에 마른 몸매·하얀 피부·예쁜 아이돌 동시 출연은 안 된다는 데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른가. 외모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나. 닮았든 안 닮았든 그건 정부가 평가할 문제가 아니고 국민들 주관적 취향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장능인 자유한국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부가 이제는 국민 외모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려 하는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가 회수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국민은 정부의 외모 통제가 무서워 어디 얼굴이나 들고 다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정말 황당한 반발이다. 2019년 여성가족부의 가이드라인을 군사정권하고 비교하는 것이 말이다. 물론 여성가족부 가이드라인도 이상하기는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연구소의 토론회에서 발제로 나올 법한 이야기를 여성가족부가 부처 이름을 걸고 발표한 것은 지나쳤다. 과도한 ‘오지랖’의 돌출행동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까 여성가족부도 잘못은 했는데, 그에 대한 반발과 정치권의 파장은 어이없는 수준으로 황당했다.

 

독재정권의 지침과 검열은 정말 서슬 퍼런 것이었고, 어길 시 정보부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반면에 여성가족부의 지침은 제작현장에서 아무 의미도 없다.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2017년부터 배포됐지만 어느 제작진도 그 지침에 구애받지 않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인, 그저 구속력 없는 문서에 불과하다. 그것을 대단한 국가의 폭압이나 되는 것처럼 선동한 정치권도 놀랍고, 그런 선동에 호응해 여성가족부를 향해 ‘국가권력의 남용’을 질타한 누리꾼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인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낸 방송에서의 여성차별적 표현에 대한 보고서까지 질타의 대상이 됐다. 국가가 방송 내용 하나하나까지 검열하고 지침을 내린다는 것이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원래 그런 방송 내용에 대해 분석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역할을 맡은 기관이다.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이곳에서 문제 제기해도 현장 제작진에게 별 영향이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조차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라고 했다.

 

'위험한 먹방' 정부는 침묵해야 하는가

처음 있는 논란이 아니다. 2018년에 이른바 ‘먹방 규제’ 논란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2018∼2022)’ 보도자료에 ‘폭식’의 진단 기준을 마련하고, 폭식 조장 미디어(TV, 인터넷방송 등)·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 개발 및 모니터링 체계 구축(2019년)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별첨자료엔 ‘먹방과 같은 폭식 조장 미디어로 인한 폐해가 우려됨에도 모니터링과 신뢰할 만한 정보제공 미흡’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것을 두고 수많은 매체들이 ‘정부가 먹방을 규제한다’고 보도하면서 누리꾼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폭식 조장 미디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했을 뿐 먹방을 규제한다는 말이 없는데도 매체들이 침소봉대식 보도를 했다. 같은 문서엔 ‘음주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선 매체들이 ‘술 규제’라고 보도하지 않아서 문제가 안 됐다.

 

가이드라인 자체가 크게 구속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또 폭식 조장 미디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도 일반적인 먹방과는 상관이 없다. 보건복지부도 ‘먹방과 같은’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어서 오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핵심은 먹방이 아닌 폭식 조장 미디어였다.

 

유튜브 등에서 나타나는 개인방송 플랫폼의 일부 먹방은 너무나 극단적이고 엽기적이어서 방송하는 당사자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시청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어린 시청자가 먹방 개인방송을 하겠다면서 그런 행동을 모방할 경우 큰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정부의 ‘국가주의’가 문제라며 국가권력이 과도하게 국민의 삶을 통제한다고 공격했다. 여성가족부 ‘외모 규제’ 논란 때와 똑같은 논리가 펼쳐졌던 것이다. 많은 누리꾼들도 이런 논리에 공감을 표시했다.

 

민주주의가 잘못 이해되고 있어서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 정부가 아무 일도 안 하고 모든 것을 자유방임으로 놔두는 게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부가 다양한 일에 개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독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도 아주 많은 영역에 개입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자유, 자율’만을 내세우면서 국가의 개입을 독재라고 오인한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만들고, 보건복지부가 ‘폭식 조장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어차피 이런 것들을 만들어도 군사정권 시절처럼 어긴 사람을 잡아가거나 방송프로그램을 폐지하지 않는다. 그저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이런 일조차 국가주의라면서 반발하는 것은 정부에게, 국가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가 정부와 국가 역할의 축소라고 오인한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자유방임주의 즉, 시장주의로 진행됐고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양극화 약육강식 생존경쟁, 정글 같은 사회가 됐다. 이젠 정부의 역할, 국가의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이것에 반대하고 자유방임주의로 가자는 사람들이 정부의 일에 대해 ‘국가주의’라고 딱지를 붙이면서 정부를 옥죄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먹방 규제, 외모 규제 등의 구실로 선동을 하면서 정부를 공격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선동에 대중과 언론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개입은 기본적으로 불쾌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주의 선동에 넘어가 공분하는 일이 반복된다.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해야 민주주의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냉정히 따져보면 먹방 규제, 외모 규제 모두 그렇게 분노할 일이 아니었다. 보다 성숙한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