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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매직’ 여자컬링이 보여준 협동의 묘미

그야말로 ‘돌’처럼 생긴 스톤을 특유의 자세로, 매우 신중하게 밀어낸다. 드르륵 드르륵 얼음판을 밀어낸 스톤은 상대편의 진로를 방해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안착하거나 이미 선점된 좋은 자리의 스톤을 강력하게 밀 어낸다. 스톤의 진로는 밀리미터 단위의 판단력만으로도 크게 달라진다. 경기의 판세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그런 면에서는 마치 얼음판 위의 바둑 같다.



학연·지연의 긍정적 효과

기대와 우려, 논란과 응원 속에 개막된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여자 컬링 선수팀이 선물해 준 짜릿함으로 마무리 됐다. 주장격인 김은정 스킵이 외치는 “영미~”는 최고의 유행어가 됐고, 코치와 후보 선수까지 팀원 전원이 김 씨라는 점도 소소한 화제가 됐다. 이번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팀은 학연·지연이 때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선수단 내의 파벌 갈등이 수시로 노출되는 스케이트 종목이 학연과 지연 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줬다면 여자 컬링팀은 그 반대였다. 이는 컬링이라는 종목이 ‘팀’ 단위의 선수선발을 한다는 점과 관계가 있 다. 종목 자체가 한 팀의 유기적인 시너지와 팀워크에 의해 결과가 달라지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경북 의성여고에서 ‘방과후활동’으 로 시작된 컬링이 올림픽 은메달로 이어졌다는 드라마 뒤에는 긴 시간 다져진 팀워크가 있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한 캐나다의 경우 컬링이 국민 스포츠 급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거의 마을 단위로 갖춰진 컬링 시설은 구성원들의 공동체의식을 제고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국이 써 내려간 이번 ‘컬링 드라마’가 대도시가 아닌 의성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컬링이라는 종목에서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 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 대표팀이 스웨덴팀과 펼친 이번 여자컬링 결승전의 시청률은 36.1%였다. 일요일 오전에 진행된 탓에 한일전보다는 낮았지만 엄청난 시선이 한 데 모아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패배했지만 패배가 결정되는 순간도 흥미로웠다. 마지 막 10엔드를 남겨두고 현실적으로 만회가 불가능한 5점차가 난 상황에서 김은정 스킵이 “중간에 끝내는 것보다는…. 그럼 그냥 악수하는 게 낫겠지?”라며 기권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큰 점수 차이가 난 상황에서 더 이상 ‘끝장 승부’를 고집하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는 게 컬링의 매너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국가대표들이 그야말로 ‘온 국가의 대표’로서 약소국의 설움까지 풀어내 줘야 했던 시절과는 사뭇 온도가 달라 진 것이다.



‘기권’이 완성시킨 감동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중요한 국제대회에서는 한국팀에 지나칠 정도로 편파적인 중계가 일상이었고, 여론 또한 ‘반칙을 해서라도 지고 끝낼 순 없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얼마나 많은 부상을 당했느냐가 ‘투혼’의 기준이 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김연아·박태환 선수 세대가 활약 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서양권 선수들의 독무대인 것으로 인식되던 종목(피겨·수영)에서 세계적인 활약을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잃지 않았다. 스포츠에서 국가의 명예보다 개인이 앞장설 수도 있다는 것은 많은 국민들에게 인식의 전환이 됐다.


지금은 선수들이 경기를 즐기는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스켈레톤 금메달 윤성빈 선수의 경우 그의 압도적인 실력만큼이나 유쾌한 성격이 주목을 받았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운동을 해도 얼마든지 국위선양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새로운 세대들은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든 상황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일부 한국인들은 우리 선수에게 피해를 준 타국 선수들에 대한 미움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국가주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캐나다 쇼트트랙 킴부탱 선수의 경우 한국인들의 악플 세례 때문에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한국 쇼트트랙 선수인 서이라 역시 ‘팀킬을 했다’는 오해와 함께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면서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여자 컬링팀의 존재는 더욱 독보적이었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명예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세대가 이제 스포츠에서도 새로운 룰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 젊은 그들이 4년 뒤 베이징에서 펼칠 활약을 생각하면 ‘드라마’는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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