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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YOLO와 영수증, 그 사이 어디쯤

이원우의 컬쳐쇼크

트렌드가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법은 거의 없다. 하나의 거대 트렌드 안에는 그와 전혀 반대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페이스북 이 국가간 장벽을 산산조각 낸 세계화 시대에,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멕시코 간의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과학기술이 언제나 ‘새것’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레트로(retro)에 열광한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간 유행어가 있다면 YOLO일 것이다. ‘You Only Live Once’, 이 문장은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의미로 재해석됐다. 더 이상 사람들은 아등바등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금수저’ 물고 태어난 인간을 이길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뭐 하러 애써” 개천에서 용나는 사례도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뼈 빠지게 노력해서 성공해봐야 인생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나 싶은 게 지금의 시대정신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앨범 제목과 함께 돌아온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신곡 가사 에는 욜로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 있다.


“열일 해서 번 나의 pay / 전부 다 내 배에 / 티끌 모아 티끌 탕진잼 다 지불해 / 내 버려둬 과소비해버려도 / 내일 아침 내가 미친놈처럼 / 내 적금을 깨버려도”


흥미로운 건 이 욜로의 반대편에서 ‘21세기형 자린고비’가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그맨 김생민은 장난처럼 시작한 팟캐스트 ‘영수증’을 통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신청자의 영수증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돈을 낭비하고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김생민은 지금까지의 신사다운 이미지를 버리고 낭비를 일삼는 신청자에게 “스튜핏(stupid)”이라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욜로의 시대에 욜로의 반대말 같은 프로그램이 또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두 극단의 시대

욜로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하기 전에, ‘당신은 한 번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의 의미부터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 번 밖에 못산다는 말이 어째서 현재를 탕진하고 오늘만 산다는 의미가 돼버렸을까? 한 번 밖에 못사는 인생이니 삶의 의미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자 는 의미로 갈 수는 없었을까?


김생민의 영수증도 너무 극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돈은 쓰는 게 아니라 모으는 것’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모토 자체야 그렇다 치더라도 ‘커피는 누가 사주면 그때 마시는 것’이라는 행동수칙을 넘어서 ‘음악은 1분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된다’에 이르면 절약인지 민폐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웃자고 하는 말에 너무 정색하는 건지 도 모르지만, 우리가 이제 와서 지향해야 할 캐릭터가 이런 식의 자린고비는 아니지 않을까?


사실 김생민의 영수증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김생민이 보여주는 독설에 있지 않을까 싶다. 미래가 불안하고 삶이 불확실하다보니, 사람들은 그게 누구든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 한 명쯤 나타나, 내 비루한 삶을 욕해도 좋으니 확신에 찬 코멘트를 던져주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반겼던 이유

시계를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으로 돌리면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극단의 시대이다. 그리고 그때에도 지금 못지않은, 어쩌면 지금 이상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있었다. 독일인들은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오늘의 돈이 내일의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당시의 독일인들이 시장에 사과 하나를 사러 가려면 몸통만 한 가방에 산더미 같은 지폐를 가득 채워서 짊어지고 가야 했다. 그렇게 시장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으면, 어디선가 도둑이 나타나 돈은 탈탈 털어서 가방만 훔쳐 가더라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도대체 이 같은 불안과 불확실성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 끝이 보이지 않던 바로 그 순간, 히틀러는 사람들의 나약해 진 귓가에 대고 “네 삶이 그 꼴이 된 건 결 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속삭여 줘, 독일인들에게 히틀러의 초기 이미지는 폭군으로만 보여지지 않았다.


욜로와 영수증을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우리 역시 비슷한 함정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도 모른다. 새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슬로건이 그 예가 아닐까.


어차피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 이놈의 인생,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객이 되길 자처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때로는 욜로에, 때로는 자린고비에 마음이 이끌려가며 타인이 만든 리듬에 그때그때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이 억측이 틀리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