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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는 왜 이렇게 숫자 ‘3’이 많이 보일까?

김정금의 옛날 옛날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인에 의한 동화집은 심의린이 편찬한 ‘조선동화대집’이다. 오래도록 채록한 구전 민담과 설화 중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묶어 1926년 처음 출간했다.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에는 이전에 나온 조선총독부의 ‘조선동화집’에는 없었던 ‘의좋은 형제’, ‘은혜 갚은 까치’ 등이 처음 등장했으며, ‘형제담’을 다룬 동화도 모두 8편쯤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숫자 ‘3’과 관련된 작품도 눈에 띈다. 노승을 도와 부자가 되는 동생과 욕심으로 망하는 형의 이야기를 다룬 ‘세 개의 보물’과 못된 성질의 두 형과 막내 이야기를 다룬 ‘두 형의 회개’라는 작품이다. 여기서는 ‘두 형의 회개’를 잠깐 들여다보자.


어느 마을에 욕심 많고 괴팍한 성격의 두 형과 마음씨 착한 막내가 살고 있 었다. 막내는 정직하고 욕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두 형은 부모님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막내를 내쫓아 버린다. 길을 헤매던 막내는 다친 노승을 발견하고 그를 도와준 뒤 세 개의 선물을 얻게 된다. 자리 한 닢, 바가지 한 짝, 젓가락 한 매가 그것이다. 후에 막내는 이 물건들을 잘 사용하여 부자가 되고 벌을 받아 가난해진 형들을 받아들여 다시 우애롭게 살게 되었다.


끝부분에 우애를 강조하는 것이 조금은 작위적인 느낌을 주지만, 심의린 전래동화의 끝부분은 이렇게 교훈적인 내용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시 숫자 ‘3’의 위력은 대단해서 형제도 3명, 받은 선물도 3개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셋’, ‘3’이 등장하는 이야기 속의 묘한 공통점

그럼 서양의 그림동화도 한번 살펴보자. 그림동화에는 숫자 ‘3’과 관련된 작품이 훨 씬 많다. 대표적인 것이 ‘아기돼지 삼형제’, ‘세 개의 언어’, ‘세 개의 깃털’ 등이다. ‘아기돼지 삼형제’는 모두가 알듯이 늑대를 피해 집을 짓는 돼지 형제들의 이야기이다. 두 형은 짚과 나무로, 막내는 벽돌로 집을 짓는다. 그리고 총명한 막내 덕분에 늑대로부터 안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 개의 언어’는 너무도 미련하여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아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미련한 아들에게 “바깥세상에서 스승을 찾아 무엇이든 좀 배우라”고 얘기한다. 아들은 낯선 도시의 유명한 스승을 찾아가 꼬박 일 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버지가 묻는다. “그래 무엇을 배웠느냐?” 아들은 이렇게 답한다. “개 짖는 소리 알아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고작 그런 것을 배웠냐”며 아들을 다시 내보낸다. 다시 일 년이 지났다. 아들은 이번엔 “새들의 말을 알아듣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노발대발 화가 난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쫓다시피 보내고 결국 세 번째에도 아들은 개구리 울음을 알아듣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에 화가 난 아버지는 멍청하다며 아들을 내쫓고, 집을 나온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배운 이 ‘세 가지’ 재주로 결국 가장 높은 교황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반면 ‘세 개의 깃털’은 보통 그렇듯이 똑똑한 두 형과 바보 막내, 이렇게 ‘세 명’의 아들이 등장한다. 왕인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에 즈음해 아들들을 불러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양탄자를 구해오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깃털 세 개를 날려 각자 하나씩 원하는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똑똑한 두 형은 각자 오른쪽과 왼쪽에 떨어 진 깃털을 따라 나아가고 바보 막내는 코앞에 떨어진 깃털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역시 마지막에는 바보였지만 우직하게 깃털이 안내하는 땅속 깊은 곳까지 다녀온 막내아들이 이기는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가장 약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던 막내가 이 이야기에서도 여지없이 승리하고 왕국을 물려받는다.


세 번째 자리 ‘3’은 동화를 읽는 아이 자신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3’이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리석은 막내, 바보스러운 주인공이 결국 승리하고 모든 부와 왕국을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동화 속의 ‘3’은 몇 가지로 의미가 나뉘는데 먼저, 본능(id)-자아(ego)-초자아(super ego)의 세 가지 측면을 말한다고 한다. 사람이 가진 정신의 세 가지 측면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등장인물 각자가 정신의 그 세 측면을 대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인물 속에서 그 세 가지 측면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정신분석적인 해석은 엄마-아빠-아이의 ‘3자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동화를 듣는(읽는) 아이의 입장에서 보자는 것이다. 보통 가정에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는 전형적으로 이 ‘세 번째’ 자리에 속한다. 이것은 형제간의 순서와는 관계없이 거의 모두가 그렇다. 대체로 그냥 추상적인 ‘어른’이 ‘1’ 즉, 첫 번째의 자리를 차지 하고 다음이 엄마-아빠가 두번째, 즉 숫자 ‘2’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음이 아이 자신이다. 즉, 세 번째 자리 ‘3’에 속하는 인물이 바로 동화를 듣는(읽는) 아이 자신인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의 궁금증이 나온다. 왜 아이는 주인공에 동일시하는 자신을 가장 못나고 어리석은 ‘3’의 셋째의 자리에 놓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세상의 모든 어른과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모두 알고 행하는 일들을 자신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 ‘내가 가장 못났어’, ‘나는 바보인가 봐’, ‘나는 왜 이런 걸 못 하지?’ 등의 생각을 무의식 깊이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늘 주인공 ‘셋째(3)’는 바보, 얼간이, 멍청이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바보였던 ‘셋째’가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드디어 왕의 자리에 오르고, 가장 많은 부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동화 속에서 ‘결혼’이 완전한 성숙, 성장을 의미한다면 ‘왕이 된다’는 것은 그 성숙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인생의 성공, 자신 이 꿈꾸는 세상에 이르는 것이 바로 이 완전한 성숙의 자리 곧,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지금은 부족하고 바보 소리를 듣고 또 스스로도 자신을 모자라게 생각하지만 언젠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1 ’은 물론 ‘2 ’ 즉, 엄마-아빠마저 능가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성공인 것이다. 그러니 동화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다시 읽어주세요”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숫자 ‘3’이 갖는 완결성

‘3’에 대한 해석은 그 외도 많다. 특히 동양에서는 숫자 ‘3’을 일종의 의미 완결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의 옛 신화들 속에도 ‘3’과 관련된 이야기는 적지 않게 발견된 다. 특히 도형으로 봐도 삼각형이 갖는 완결구조는 가장 안정된 형태로 얘기되지 않는가. 심지어 서양의 변증법 즉, 정-반-합의 원리로 숫자 ‘3’의 완결성을 해석하는 일도 많다. 또한 동화 분석에 먼저 관심을 보였던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도 이 ‘3’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융은 인간의 의식 탄생과 그 흐름에 따라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참으로 많은 비밀을 안고 있는 동화, 최근엔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다시 동화를 찾아 읽는 일이 많은데 바로 이런 비밀의 코드를 하나하나 되새겨가며 읽어보자. 어린 시절 읽던 그 동화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문을 열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많이 읽어주자. 슬쩍슬쩍 ‘셋째’에 빙의한 아이의 표정을 엿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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