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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먹고 먹히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구순 본능

김정금의 옛날 옛날이야기

아이들의 동화 속에는 유난히 무엇을 먹고 먹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무엇을 잘 못 먹어 동물이 되었다거나, 무엇을 먹고 그 동물 상태를 벗어나는 이야기,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와 산 채로 잡혀 먹혔다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 등. 도대체 먹고 먹히는 관계가 무엇이기에 동화 속에는 끊임없이 이 ‘먹는’ 이야기가 등장할까?


우리가 무엇을 ‘먹는다’는 행위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는데 우선은 생존이다.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이 생존을 위해먹는 행위가 삶의 전부를 좌우할 만큼 절대적이어서 ‘먹는다’는 단어를 ‘살았다’의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숲 속을 헤매던 주인공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엇을 ‘먹었다’, 죽어가던 주인공이 무엇을 ‘먹고’ 삶을 다시 찾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잣대만이 아닌 상징으로서의 삶과 죽음을 의미한다. 또 때로는 어린 시절로의 퇴행과 성숙을 가름하는 잣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동일시하고자 하는 대상을 체화하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앞서 살핀 백설공주에서 왕비의 행동이다.


당시 왕비는 사냥꾼에게 백설공주의 간과 심장을 가져오도록 명령하고 그것을 실제로 요리하여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전형적으로 백설공주를 자기화하는 즉, 백설공주가 가졌던 아름다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구순 본능(口脣本能)’이다.


이 단어는 프로이트의 논문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1905)> 초판에 등장하는 데 당시 프로이트는 유아의 성과 구순적 본능, 성욕을 연결해 설명하면서 아기들이 무언가를 ‘빠는 행위’를 통해 취하는 생물학적 생명의 기능이 이후 어떻게 자기 성애적인 충족감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하게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후학인 프랑스의 장 라플랑슈 등은 <정신분석사전>을 통해 이 구순기를 정리하게 되는데 그 내용을 잠깐 보자.


구순기(oral phase, 口脣期)
‘리비도 발달의 제1단계. 이 시기의 성적 쾌감은 주로 음식 섭취를 동반하는 구강과 입술의 흥분과 결부되어 있다. 영양섭취 활동은 대상관계를 표현하고 조직하는 의미 작용을 선택적으로 제공한다. 예컨대 먹고 먹히는 의미작용이 어머니와 사랑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풀어보면 무언가를 빠는 행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 시기의 아기들은 음식 섭취로서의 빠는 행위를 통해 생명유지만이 아니라 일종의 ‘충족감’을 갖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는 대체로 어머니의 젖을 무는 행위와 관계를 통해 ‘빠는 것’과 ‘충족감’의 상관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어떤 대상에 고착되고’ 그것을 통해 충족감을 얻는 경험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결국 모든 아기들의 욕망이 집중되는 대상 곧, 첫사랑의 대상이 어머니로 귀결되는 것도 생각해보면 이런 구순기의 체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지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정신분석가인 아브라함은 이 구순기를 구순 제1기인 ‘초기 빨기’ 단계와 구순 제2기인 ‘가학적 구순기’로 나누기도 했는데, 특히 가학적 구순기는 아기들의 치아가 발달하는 시기와 연결되며 이때 ‘깨물고 씹는’ 활동을 통해 대상을 파괴하는 활동이 있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때, 어머니에 의해 먹히고 파괴되는 환상이 함께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놓고 동화를 읽어보면 제법 많은 구순기 갈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데 대표적인 작품이 ‘헨젤과 그레텔’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아이를 버리자는 엄마의 말을 들은 헨젤과 그레텔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조약돌과 빵조각을 떨어뜨리는 꾀를 생각해 낸다. 여기서 아이를 버리자고 결심하는 엄마와 그것을 실제 행동에 옮기는 아버지 등, 둘은 모두 아이를 바깥에 ‘버리는’ 행위를 통해 결과적으로 아이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잭과 콩나무에서처럼 더 이상 엄마의 ‘밀키하우스’에 매달리지 말고 이제 스스로의 삶을 찾고 성장하라는 부모의 독려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이 요구에도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즉, “싫어요. 저는 아직 엄마와 아빠 곁에서 생활할 거예요. 바깥은 싫어요”라는 의미가 될 수 있는데 스스로 성장하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처벌은 ‘생각의 퇴행’ ‘생각의 어려짐’이다. 근거가 바로 조약돌과 빵조각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첫 번째 실행한 조약돌 떨구기가 훨씬 더 성숙한 생각이었으나 아이들은 첫 번째 집으로 돌아오고 난 뒤 오히려 새의 이가 될 빵조각 떨구기로 더 낮은 단계의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로 이 빵조각. 스스로 성장을 멈추려 하고, 성장을 늦추려 할수록 ‘빵’이라는 구순적 망에 더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동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을 접한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가장 깊이 기억하는 이 ‘과자집’은 실제로 아이들이 읽는 수많은 동화들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소재일 것이다. 특히 전면에 내세운 ‘구순적 기표’로서의 이 과자집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적나라한 ‘먹고 또 먹는’ 아이들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중요한 재료로써 의미가 크다.


주인공 헨젤과 그레텔은 이 과자집을 보자마자 와구와구 먹어치우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여전히 구순적 본능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배가 고팠구나. 많이 먹어라.” 라고 따뜻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위장한 마녀의 말에 분별없이 그것을 덜컥 납한 아이들한테 돌아오는 처벌은 마녀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다.


성장하지 않으려 하고 여전히 무언가를 먹고 빠는 구순기에 머무르려는 아이들에게 가오는 형벌은 누군가에게 ‘먹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것은 자기 존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나 다름없다.


구순기 갈등, 구순 본능을 다른 측면에서 알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은 ‘라푼젤’이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이미 ‘먹고 먹히는’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각색되지 않은 원작에서 드러나고 있는 ‘라푼젤’의 원래 의미는 ‘들상추’이다(국내 일부 출물에서는 그 의미를 전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늘 집안에 머물며 창밖을 바라보던 푼젤의 어머니가 높은 성에 사는 마녀의 뜰에 자란 들상추를 먹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뜰에 가득 찬 들상추를 너무도 먹고 싶어 했던 라푼젤의 어머니는 무서운 마녀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편을 졸라 이 들상추를 따오게 한다. 물론 한 번은 들키지 않고 성공한다. 그러나 입안 가득 들상추의 맛이 느껴져 침을 삼키던 어머니는 다시 남편을 졸라 들상추를 따오게 하고 결국 마녀에게 들켜, 그 벌로 아버지는 곧 태어날 아기를 녀에게 준다고 약속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어난 딸의 이름이 어머니가 그토록 맛나게 먹었던 ‘들상추-라푼젤’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탐욕스럽게 취했던 대상을 딸로 다시 취한다는 것인데 몇몇 분석가들은 이것이 어머니의 ‘먹을거리’가 된 딸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구순적 욕망에 사로잡힌 이가 주인공 라푼젤이 아닌 그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구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녀(고텔부인-대모라는 뜻)로 다시 나타나는 어머니는 딸을 높은 첨탑에 가두고 여전히 자신만이 ‘들여다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취할 수 있는(먹을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라푼젤에서는 이외에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 등이 여러 각도에서 설명되고 있지만 일단 이 구순 본능(욕망)을 가진 어머니가 어떻게 딸에게 자기의 욕망을 덧씌우는지, 그 속에서 어머니와 딸의 갈등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해결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이 들어 있다.


구순 본능과 관련된 이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사실 현대 이상심리 등에서 주로 다루는 거식증-탐식증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조금 거칠게 표현해,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나타내는 탐식증과 다시 사랑을 표시하는 토하기(거식증)가 어떻게 반복되고 교차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중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