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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파이더맨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받은 ‘사과’

이원우의 컬쳐쇼크

요즘 미국 대중문화, 특히 영화계를 보면 내적으로 융성기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들 안에 담겨 있는 세계관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영화판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영화의 ‘원작’역할을 하는 소설 작가들의 세계관도 점점 넓어지는 모습이다. 


기성세대들이 ‘설계’해 놓은 판 안에서 젊은 세대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묘사한 ‘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메이즈러너’ 등은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훌륭한 은유가 된다.  뭘 한 번 해보려 해도 가진게 없어 쉽지 않은 청년세대의 딜레마가 바다 건너에서도 똑같이 유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기성세대에 갇힌 청년의 고단한 삶
2008년 5월 ‘아이언맨’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 승승장구 중인 ‘마블 시리즈’에도 드디어 ‘청년 캐릭터’가 등장했다.  어느 날 거미에 물려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 10대 소년 피터 파커, 이른바 스파이더맨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10년간 수 십 편의 영화를 쏟아내는 동안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 못한 데에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다.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소니픽처스가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계약관계 때문에 청년이 등장하지 못했다니 그것마저도 은유적이지만,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한 어른들은 ‘청년 노동자 캐릭터’ 스파이더맨을 작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야심차게 등장시켰다.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가 선사하는 짜릿함을 맛본 10대 소년의 흥분을 추적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운영하는 회사의 ‘인턴십'으로 참가하게 된 피터 파커는 오로지 ‘어벤저스’로 데뷔할 그날만을 기다리며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한다. 토니 스타크가 제공한 스파이더맨 슈트에 내장된 각종 최첨단 기능은 당장에라도 그를 슈퍼 히어로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그러나 벽은 높았다. 혈혈단신의 10대 소년이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그의 의견을 묵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 히어로의 DNA를 타고 난 피터 파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악당 ‘벌처’의 계획에 근접해 나간다.


영화의 갈등은 피터 파커의 의욕이 넘치면서 극대화된다. 청년 스파이더맨이 결국 일을 망쳐버림으로써 토니 스타크로부터 슈트를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고만 것이다. 피터는 ‘인턴십’에서 해고를 당하고 만다.


“저 슈트 없이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피터 파커)
“그렇다면 더더욱 슈트를 가져선 안돼.” (토니 스타크)


결국 ‘자체 제작’한, 누추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고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피터 파커. 기성세대가 제공한 자본과 기술 없이 뭔가를 해내기란 참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그 누추함을 이겨내고 인간승리를 이뤄낸다는 데에 이 영화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매력이 있다.  볼거리만으로도 워낙 훌륭한 작품이지만 한 청년의 성장을 받아들이는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피터 파커와 부자 관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토니 스타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낸 피터 파커에게 “자네를 잘못 판단했었다”며 사과를 한다.


이는 상당히 참신한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어른들이 미안해’라는 구호가 유행하긴 했었지만,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보여준 사과라는 건 사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공허하게 내뱉는 ‘이미지 관리용 멘트’인 경우가 많았다. 누구라도 의미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말에는 아무런 힘도 없다. 진짜 청년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성세대는 ‘회사 안’에 있다.


“우리 땐 말이지…”라며 청년들의 경험과 지혜를 일단 무시부터 하고 들어가는 수 많은 ‘인생 선배’들 말이다. 이들이야말로 청년들의 자존감과 자의식을 갉아먹는 ‘진짜 위협’이며 누군가 사과를 해야 한다면 그 주체는 바로 이들이 돼야 한다.


토니 스타크의 사과는 그가 피터 파커의 ‘고용주’였다는 점에서 더욱 빛나며, 또 힘이 있다. 나아가 그는 말로만 사과한 게 아니라 피터 파커를 ‘정직원’인 어벤져스로 가입시켜 주고, 이전보다 더 좋은 슈트를 제공하며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른바 ‘물심양면’의 지원이 시작된 것이다. 이로써 마블 시리즈는 너무나도 중요한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이 공식 일원에 포함됐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빌딩 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는 데에 있다. 이는 문명의 금자탑인 도시 풍경 사이를 날아다니며 재능을 뽐내고 싶은 세상 모든 청년의 꿈이기도 하다. 의욕이 앞서다 보면 실수하기도 한다. 아직 모든 게 서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들도 실수하긴 마찬가지고, 그게 후배들을 짓누르는 짐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똑같이 실수해도 후배들이 선배에게 줄 수 있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반면 선배가 후배에게 주는 타격은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토니 스타크의 사과 한마디는 바로 이런 저간의 사정 속에서 더욱 빛났다. 최저 임금과 노동조건 같은 딱딱한 이슈가 여지없이 뉴스를 뒤덮고 있지만, 이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묘안 역시 어쩌면 ‘사과 한마디’ 같이 작은 부분에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