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1 (토)

  • -동두천 22.6℃
  • -강릉 28.7℃
  • 연무서울 24.2℃
  • 연무대전 25.5℃
  • 구름많음대구 26.2℃
  • 구름많음울산 26.4℃
  • 흐림광주 23.9℃
  • 박무부산 23.7℃
  • -고창 23.4℃
  • 구름조금제주 24.9℃
  • -강화 21.8℃
  • -보은 23.9℃
  • -금산 24.2℃
  • -강진군 23.7℃
  • -경주시 26.1℃
  • -거제 23.6℃

라이프

엉겅퀴, 가장 야생화다운 꽃

김민철의 야생화 이야기

6월 설악산 한계령에 거의 도착했을 때 길가에 진한 자주색 꽃송이들이 하늘을 향해 핀 것이 보였다. 엉겅퀴인 것 같았다. 차를 세우고 가보니 줄기에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달린 지느러미엉겅퀴였다.


엉겅퀴는 한여름에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꽃을 피운다. 진한 자주색 꽃송이에다 잎에 가시를 잔뜩 단 모습이 자못 위용이 있다. 야생화 중에서 가장 강인하면서도 야생화다운 느낌을 주는 꽃이다. 이름부터 억센 느낌을 주지 않는가. 꽃에 함부로 다가가면 가시에 찔릴 수 있다. 그러나 가시를 피해 잎을 만져보면 놀라울 만큼 보드라운 것이 엉겅퀴이기도 하다.


엉겅퀴는 마을 주변의 깨끗한 야산이나 밭두렁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공터가 생기면 망초, 명아주와 같은 잡초와 함께 어김없이 나타나는 식물이다. 가시가 달린 억센 이미지에다 짓밟히면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민중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다.


6·25의 상처와 그 치유 과정을 다룬 임철우의 단편 ‘아버지의 땅’을 읽다가 엉겅퀴를 발견했다.

주인공 이 병장의 아버지는 6·25 때 행방불명됐다. 이 병장은 소대원들과 함께 야전 훈련 중 진지를 파다 유골 한 구를 발견했다. 그 자리는 ‘쑥대며 엉겅퀴 같은 억세고 질긴 풀들이 서로 완강히 얽혀 있는’ 유난히 잡초가 무성한 곳이었다.


주인공은 인근 마을에 가서 한 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현장에 도착한 노인은 6·25가 끝날 무렵 지형적인 특색 때문에 빨치산들이 많이 이곳을 지나갔고, 그러다 보니 국군도 대응하면서 이름 모르는 시신이 많이 묻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인은 뼛조각을 정성스럽게 수습한다. 소대원들이 빨갱이 시체인지 아닌지를 따지자, 노인은 “그런 걸 굳이 따져서 무얼 하자는 말이오”라고 나무란다. 주인공은 수습을 마치고 음복을 하면서 6·25 때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쓰러져 누워있을 것인가. 해마다 머리맡에 무성한 쑥부쟁이와 엉겅퀴꽃을 지천으로 피워내며 이제 아버지는 어느 버려진 밭고랑, 어느 응달진 산기슭에 무덤도 묘비도 없이 홀로 잠들어 있을 것인가.

반합 뚜껑에 술이 쭐쭐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이처럼 이 소설에서 엉겅퀴는 버려진 땅에서 자라는 잡초의 하나로 나오고 있다. 이 소설에서 엉겅퀴꽃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스러져간 아버지의 험한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땅’과 같은 1984년에 나온 송기원의 소설 ‘다시 월문리에서’에도 엉겅퀴가 나오고 있다. 주인공이 시국사건으로 감옥에 있는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가 살던 집에 출소 후 들어가는 장면이다.


나는 삐그덕이며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놈아!”

또한 나는 내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후려치는 어머니의 마디진 두 손의 감촉을 느꼈다. 비틀거리며 대문에 기대 선 나를 감전과도 같은 전율이 꿰뚫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대문에 기댄 채 이를 악물고 안마당이며 안채를 노려보았다. 안마당은 물론 토방에 이르기까지 내 키를 웃도는 망초꽃이며 엉겅퀴, 쑥부쟁이 따위 잡초들의 시든 대궁이가 건들거리고 있었고, 바로 어머니가 기거하던 안채는 방문이 떨어져나가 마루 위에 나뒹굴며 찢어진 창호지를 너풀대고 있었다.




송기원 작가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투옥돼 있던 중 1981년 여름 실제로 어머니상을 당했다. 월문리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실제 지명이다. 이 소설에서도 엉겅퀴는 망초 등 다른 잡초와 함께 폐허가 된 집 마당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땅’에서 엉겅퀴가 역사에 스러져간 아버지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면, ‘다시 월문리에서’의 엉겅퀴는 험한 시대를 산 어머니의 ‘현신(現身)’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80년대 대학에 다닐 때 잠시 풍물패에서 장구 등 풍물을 배운 적이 있다. 그곳 상쇠를 맡은 선배는 북을 치면서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 잃고 홀로 사는 엉겅퀴야’로 시작하는 창작민요를 아주 구성지게 부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엉겅퀴꽃을 보면 항상 그 민요 가락부터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대학을 다닌 80년대에는 소설에서도 노래에서도 엉겅퀴가 참 많이 등장했던 것 같다. 80년대가 민주화운동 시대이자 이념의 시대였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엉겅퀴가 민중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엉겅퀴는 6~8월 진한 자주색 꽃송이가 하늘을 향해 달린다. 긴 잎은 깊게 갈라지고, ‘가시나물’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잎에 삐죽삐죽 가시가 있다. 가시는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다 자라면 1m 넘게까지 크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가을에 맺는 열매는 민들레 씨앗처럼 부풀어 하얀 솜털을 달고 바람에 날아간다. 엉겅퀴라는 이름은 엉겅퀴의 잎과 줄기를 짓찧어서 상처 난 곳에 붙이면 피가 엉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엉겅퀴와 비슷비슷하게 생긴 친구들이 많다. 일단 지느러미엉겅퀴는 줄기에 미역 줄기 같은 지느러미가 달려 있어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큰엉겅퀴도 이름 그대로 키가 1~2m로 크고, 꽃송이가 고개를 숙인 채 피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려엉겅퀴는 잎이 달걀 모양으로, 다른 엉겅퀴에 비해 잎이 좀 넓고 갈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자리에는 가시 같은 톱니가 있다. 강원도에서 나물로 먹는 곤드레나물의 본래 이름이 바로 고려엉겅퀴다. ‘곤드레밥’은 고려엉겅퀴의 어린잎으로 만든 음식이다. 정영엉겅퀴는 꽃이 노란색을 띤 흰색이라 구분할 수 있다.


산비장이와 뻐꾹채도 엉겅퀴와 비슷한 시기에 피어 구분을 어렵게 하고 있다. 7∼10월 산에서 피는 산비장이는 엉겅퀴 비슷한 꽃이 피고 잎도 갈라지지만 잎에 가시가 없다. 이름은 꽃이 산을 지키는 비장(조선의 하급 무관)과 닮았다고 붙여진 것이다. 6~8월에 피는 뻐꾹채는 잎이 엉겅퀴를 닮았으나, 더 크고 가시가 없다. 뻐꾹채도 엉겅퀴 비슷한 꽃이 피지만, 꽃송이가 지름 6~9cm로 크고 원줄기 끝에 하나의 큰 꽃송이만 달리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화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전설적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일생을 그린 영화 ‘브레이브하트’ 초반에 주인공에게 엉겅퀴꽃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