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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주 괴롭게

이원우의 컬처쇼크

증권부 기자로 일하다 보니 거의 온종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 거래창을 띄워놓는다.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주식 종목별 차트 안에는 인간의 일곱 욕망과 수만 가지의 고민이 한꺼번에 투사된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는 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아무리 똑똑한 사람 1만 명이 있어도 그들이 ‘군중’으로 모이는 순간 지성은 사라지고 만다는 말 등등을 똑똑히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주식 거래의 현장이다.

차트의 움직임은 경이로울 정도로 예측불가다. 단 한 순간도 쉽게 가는 법이 없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종목의 똑같은 상황을 놓고서도 누군가는 ‘사자’를 외치지만 누군가는 ‘팔자’를 외치며 물량을 집어 던진다. 하긴 그렇게 같은 상황을 보고도 생각이 다르니 거래(去來)가 가능한 것일 테다.

중요한 것은, 내 눈앞의 거래에만 시선이 팔려 있으면 시장 전체의 흐름을 놓친다는 점이다. 2011년 ‘지금, 경계선에서’라는 명저를 내놓은 작가 레베카 코스타는 현대 사회의 인간이 작은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문명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꼬집는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에 대해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통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태를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보면 작은 움직임에도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바로 그런 맹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휴대폰을 끄고 명상을 해보기도 하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전대미문의 위기상황

이제 스포트라이트를 2017년 대한민국으로 맞춰 보자.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언론은 연일 떠들어 댄다. 사실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얼굴들이 구태의연한 싸움을 펼치고 있다. 다들 모두가 전대미문의 위기라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목이 쉴 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유권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어째 날이 갈수록 기술은 발전하는데 살기는 더 피곤해진다. 우리는 불과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으로 온 세상의 정보를 흡수하며 똑똑하게 살아가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뱉어놓은 고대의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없던 위기도 만들어내는 인간 

이런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지금이 인류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위기인 걸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이 불행에 지나치게 몰입해 있는 것은 아닐까?

무릇 인간의 환희는 위기의 끝, 슬픔의 뒤안길에서 시작된다. 슬픔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우리는 종종 평화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권태에 빠진 인간들은 없던 위기라도 만들어내 스스로를 드라마적 상황 속으로 밀어 넣은 뒤 자신을 구출하는 데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속성과 역사의 흐름을 균형 있게 살펴보면, 우리의 이 팍팍하고 고단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위기, 부조리, 고난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 평화의 반대급부로 존재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참사, 대통령의 국정농단 파문 등은 분명 국가적 이슈요 ‘큰일’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오고 마음이 답답해지는 일임이 틀림없다.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안들이 한 나라의 운명과 국격 그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안인가 하면 거기서부터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사건들로 인해 국가의 명운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지금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를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결이 잔잔하면 물고기 한 마리도 파도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그 작은 파도를 ‘쓰나미’로 오해하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한국인들에게 국난극복의 DNA가 있다지만, 사실은 국난 ‘초래’의 DNA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며 씁쓸해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얘길 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주길 당부했다.

100년 후 오늘의 역사를 기술한다면 

위기다운 위기, 난세다운 난세가 찾아들지 않자 한국인은 스스로를 핀치로 몰아넣으며 드라마를 써내려가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우리의 여유(?)가 무색하게도 나라 밖의 상황은 격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100년 뒤의 한국인들이 2017년의 역사를 기술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할지 상상해 보면 가끔 마음이 답답해지곤 한다. 우리는 천 년 뒤의 한국인들이 반추할 때 별다른 ‘에지’가 없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커다란 위기나 드라마가 오기 전의, 발단-전개-절정-결말 중에서 ‘전개’ 정도의 어중간한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타국의 물리적 침략을 받거나 길을 가다 총에 맞아 죽을 가능성은 낮지만, 대신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시대적 위기라고 떠들고 있는 대다수 문제에 대해 후대는 ‘저런 걸로 심각한 고민을 한 배부른 세대도 있었군’이라고 한심해 할지도 모른다.

난세에서 영웅이 난다지만, 영웅이 없어진 우리 시대의 모습은 지금이 난세가 결코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평화의 시대를 아주 괴롭게 살고 있는, 사상 최고로 기묘한 아이러니의 후예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