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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신데렐라의 신발

김정금의 옛날 옛날이야기

미국의 심리학자 겸 작가인 로렌 슬레이터(Lauren Slater)가 쓴 <루비레드>라는 심리동화집이 있다. 백설공주의 이름을 원래는 ‘루비레드’로 짓고자 했던 공주의 아버지와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동화집에는 모두 15편의 창작심리동화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의 전족과 신발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도 작고 예뻤던 왕비의 발, 그 발을 사랑하는 왕. 이야기는 메이 왕후로 불리는 엄마의 전족을 당한 발, 늘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악취를 감추기 위해 갖은 향료를 뿌려대던 발 이야기가 나온다. 왕후였던 엄마는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처음 발을 동여매며 전족을 당하고 평생 그 작은 발로 살아간다. 넓은 들판을 마음껏 가로지르던 어린 발은 붕대 속에서 뼈가 부러지고 섬유조직이 끊어지며 여성으로서의 자기 삶 또한 부러진 나무처럼 고정되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후에 왕인 아버지를 만나 딸을 낳지만, 엄마는 전족을 하던 서쪽 방이 아닌 북쪽 방으로 딸을 데려간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인 딸의 발은 전족을 당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기의 왕국, 자기의 삶터를 떠나 농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가진 것 모두를 잃는 희생을 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껏 나무에 오르고 들판을 달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동화에서 왕은 엄마이며 왕후인 메이 왕후를 곧잘 이렇게 부른다. “요 앙증맞은 것, 요 작고 앙증맞은 것.” 엄마의 발을 움켜잡고 외치는 아빠의 이 신음 같은 소리는 중국의 전족이 무엇 때문에 이뤄졌는지를 설명하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왜 그 많은 신데렐라 풍의 동화에서 ‘신발’,아니 정확히는 ‘작고 예쁜 신발’ 이야기가 나오는지 짐작하게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여성들의 가방 이야기를 해 보자.

언제부턴가 많은 미디어에서 여성들이 좋은 브랜드의 가방을 선호하는 이미지를 거듭 강조하는 것이 보인다. ‘명품백’으로 불리는 온갖 브랜드의 가방이 방송마다 넘치고 홈쇼핑 채널에서는 연일 멋진 가방을 선물하는 남성, 가방 선물에 웃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등장한다. 심지어 어떤 예능 프로에서는 아주 당연한 듯 화가 난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하라는 조언이 잇따른다. 여성 출연자들 역시 ‘명품백’ 선물이 연인으로 가는 첫 단추인 양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물론 일부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가방’의 상징으로 남성이 아닌 여성이 얘기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쨌든 가방을 선물 받는 남성의 모습이나 남성에게 가방을 선물하라는 얘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왜 그럴까. 명품 여부를 떠나 왜 여성은 ‘가방’을 선호하는 것일까. 왜 여성은 곧잘 ‘가방’으로 상징되는 것일까.

다시 신발 얘기로 돌아와 보자.

신데렐라의 신발은 중국의 판본인 예시안(葉限) 이야기 등에서는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와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두 가지 형태가 전한다. 한국의 콩쥐 이야기에서는 꽃신으로 얘기된다. 모두 각 나라의 상황과 문화에 따라 달라진 것 같지만 페로 판본의 신데렐라에 나오는 유리 구두는 조금 다르다.

원래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가죽신이었다. 신발에 맞는 아가씨를 찾으러 온 왕자를 본 새엄마는 먼저 큰언니의 발을 신발 속에 넣어본다. 당연히 맞지 않자 엄마는 발가락을 잘라 억지로 신발에 꿰맞춘다. 그리고 궁으로 출발. 그러나 잘린 발가락으로 인해 신발은 피투성이가 되고 마침 하늘 위를 날던 새들이 이것을 보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아가씨의 발이 피투성이네요. 이 아가씨는 무도회의 아가씨가 아니랍니다.”

곧이어 발뒤꿈치가 잘린 작은 언니도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중요한 것은 궁에서 시를 낭독하던 프랑스의 페로가 이 부분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가죽 신발을 유리 구두로 바꾼 그는 아름다운 이야기만을 선호해 이 잘린 발가락과 흐르는 피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사실 이 부분을 빼지 않았다면 왕자는 투명한 유리 구두로 인해 더 빨리 신발 속 피의 존재를 알아챘을 것이다. 이 때문에 신데렐라의 ‘신발’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상징 하나가 누락됐다는 것이 후세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여기서 신발은 ‘여성’, 즉 여성의 ‘성성(性性)’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성의 자궁 등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앞서 살핀 심리동화 속 전족 이야기 역시 작은 발은 반드시 작은 신발이 필요하기에 여성의 발과 신발에 얽힌 이야기인데, 이것이 여성의 ‘여성다움’을 가장 잔혹하게 강요했던 풍습이라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발가락과 뒤꿈치가 잘리고 결국 피를 흘린 언니들은 무엇일까. 맞다. 이미 성숙해 초경을 맞은 이를 표현한 것이다. 쉽게 말해 다 컸다는 것이다. 동화는 성숙한 여성이 아니라 아직 어린, 그래서 ‘순결하다고 생각되는’ 신데렐라를 왕자의 배필로 얘기한 것이다.

지금의 기준, 특히 어른의 시각에서 보면 얼토당토않은 얘기 같고 또 초경을 치른 이들을 ‘순결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중요하게 살필 것은 이 이야기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옛날이야기’, ‘구전동화’라는 것이다.

최근 나오는 창작 동화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아 상징과 은유를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옛 구전동화는 오랜 세월을 내려오며 다양한 메타포들을 숨겨놨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이들은 그 메타포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해도, 아이들은 자기들의 무의식 깊은 곳을 건드려주는 이 구전동화들을 듣고 읽으며 나름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물론 신발이 여성을 상징하고, 여성의 ‘성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모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무언가 주인공 ‘여성’ 신데렐라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고, 그 신데렐라의 신분을 ‘보증’하며, 심지어 당시의 어려운 처지를 반전시키기까지 하는 매우 중요한 무엇, 신데렐라 그 자체라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자, 그럼 앞서 살핀 가방을 한 번 더 살펴보자.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의 지평을 열고 처음으로 인간 무의식을 ‘물(物, Das Ding)’이라 지칭했던 프로이트는 꿈 분석을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이 어떻게 발현되고, 억압된 욕구가 꿈속에서 위장된 형태로 나타나는 ‘꿈 작업’이 어떤 은유와 환유로 이뤄지는지 연구했던 사람이다. 

모두에게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그는 특히 대체로 ‘꿈 작업’의 소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다양한 꿈 분석 사례를 통해 얘기해주고 있는데, 보통 남성을 지칭하는 것과 여성을 지칭하는 몇 개의 대표적 사물을 거론한다. 물론 꿈이란 매우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 무의식의 산물이기에 일대일로 딱 떨어지게 ‘이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통 지갑, 신발, 가방 등이 여성 또는 여성의 자궁, 여성성 등으로 언급된다.

특히 가방은 여성성이 매우 강한 사물로 실제 많은 이들의 ‘꿈 작업’에서 거론됐으며 현대의 많은 꿈 분석 사례에서도 등장한다.

이처럼 신데렐라의 신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는 가방과 지갑 등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난 뒤 읽어보는 동화는 그 의미 자체가 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이 모두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는 의식적 산물은 아니다. 심지어 어른들도 제대로 알고 읽어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나 앞서도 살폈듯이 무의식은 의식의 뿌리, 억압돼 가라앉은 것들로 언제든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는 일종의 ‘의식계의 잉여’다. 오늘은 한번 새롭게 다가오는 동화들을 다시금 만나보자. 놓쳤던 무언가가 섬광처럼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